[고려대 스타트업 2022] 셀라바이오텍 “세포 기술로 DNA 스토리지 시대 견인”
[IT동아 x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는 2018년부터 연구부총장 직속의 스타트업 창업·보육 기관 '크림슨창업지원단'을 운영 중입니다. 예비 창업가의 꿈을 현실로 이끌고, 고려대학교의 기반 시설을 활용해 스타트업 창업과 성장을 모두 돕는 지원 프로그램으로 이름 높습니다. 크림슨창업지원단에서 꿈을 이룬 고려대학교 구성원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들이 세운 유망한 교원·학생 기업을 소개합니다.
[IT동아 차주경 기자] 오늘날 화학과 의료·바이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이 기술은 연구자들이 사람의 세포 구조와 혈액 성분을 정밀하고 정확하게 분석하도록 돕는다. 덕분에 여러 질병의 진단과 치료 기술이 나왔다. 이제 우리는 질병을 앓을 염려를 줄인 채, 예전보다 한결 건강하게 산다.
이 가운데 세포를 분석하고 DNA를 합성하는 기술은 활용 범위가 특히 넓다. 그래서 기존 산업계와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낳을 기술로 주목 받는다. ‘DNA 스토리지’도 그 가운데 하나다. 모든 생명체가 가진, 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담은 DNA를 데이터 저장소로 쓰는 획기적 발상이 곧 현실이 된다. 소설이나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내로라하는 세계 주요 정보통신 기업들이 DNA 스토리지를 연구 개발 중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DNA 스토리지를 연구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척박한 연구 환경 속에서 세포 분석과 DNA 합성 기술을 자체 개발하고, 이를 토대로 DNA 스토리지를 현실로 이끌려는 스타트업 ‘셀라바이오텍’이다. 고려대학교에 자리 잡은 셀라바이오텍 사무실에서 김봉준 대표를 만나 지금까지 이룬 성과와 계획, 세포 분석과 DNA 합성 기술의 원리와 활용 가능성을 물었다.
“셀라바이오텍은 DNA 합성과 분석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의료·바이오 스타트업입니다. 저희 제품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것은 세포의 크기와 형태를 분석하고 개수도 세는 '정밀 유세포 분석기'입니다. 의료·바이오 연구실, 관련 산업계에서 결과물의 품질을 관리하는 데 써요. 줄기세포 치료 실험 시 필수인 세포 정량화, 혈액 성분의 양을 분석해 질병 유무를 진단할 때 위력을 발휘합니다.
세포를 분석하는 기기는 이전에도 있었어요. 셀라바이오텍의 제품은 손에 들고 다닐 만큼 부피가 작은 포터블 기기에요. 고유의 미세 유체 칩, 3전극 전위차 측정 장치를 적용한 덕분에 1㎛~100㎛ 크기 세포를 검출 가능해요. 클라우드 데이터 전송 기능도 가졌어요. 그래서 연구실뿐만 아니라 더욱 다양한 산업 부문에 적용하기 좋습니다.
예를 들면, 물 속 미세플라스틱의 유무를 검사하려면 이전에는 물의 시료를 떠서 연구실에 가져가 분석해야 했어요. 셀라바이오텍의 기기를 쓰면 그 자리에서 즉시, 간편하게 분석 결과를 얻습니다.
그 다음 주력 기기는 화학 실험 자동화 기기에요. 제약 기업이 신약을 연구할 때 화학 조합 실험을 하는데, 여기에 필요한 필수 기기입니다. 미세 유체 관 안에 공압 조절 기구를 넣어 만든 장치인데, 프로그램을 통해 각 화합물의 농도와 양을 자유롭게 조절 가능합니다. 그 밖에 미세공정을 위한 UV 노광 장비, 시료 정밀 분리를 위한 고전압 제어 장치 등 의료·바이오 실험 기기를 만들어요.”
정밀 유세포 분석기와 화학 실험 자동화 기기는 부피가 매우 작은 물질을 포착, 분석하고 합성할 때 쓴다. 그 대상에 DNA도 포함된다. 즉, 셀라바이오텍은 DNA 분석과 합성 기술을 연구 개발하며 이 노하우를 반영한 기기를 제작해 연구실에 보급하는 일을 한다. 새로운 기술을 연구 개발하면서도 연구자를 도와 실험 효과를 높이는 것, 이는 김봉준 대표의 창업 동기이기도 하다.
“석사로 기계공학을, 박사로 바이오 의공학을 각각 공부했어요. 어느 날 실험을 하는데, 기존 장비를 썼더니 곧 한계에 부딪혔어요. 기계공학 전공을 살려 기존 연구 장비를 개량하거나 새로운 장비를 만들면, 제가 부딪힌 한계를 해결하고 기존 연구자들의 실험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마침 박사 논문 주제도 세포 분석 장치였어요. 당시 제 지도 교수였던 천홍구 고려대학교 바이오의공학과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천홍구 교수는 우리나라 DNA 스토리지 연구의 권위자입니다. DNA에 게임 음악을 저장하는 실험을 성공리에 마친 경력도 있고요. 천홍구 교수와 2018년 셀라바이오텍을 공동 창업하고, 저와 함께 바이오 의공학을 융합 전공한 연구자들을 섭외했습니다.
이어 화학 합성, 기구와 회로 설계, 분석 실험 등 분야별 전문 연구자들이 속속 합류했습니다. 모두 의공학을 활용해 기존 연구 장비의 발전을 이끈다는, DNA 스토리지를 현실로 만든다는 비전과 미래를 공유하는 사이에요.”
셀라바이오텍이 만들 DNA 스토리지를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리가 데이터를 저장할 때 쓰는 스토리지는 무기물 소재 반도체로 만들고, 0과 1을 쓰는 2진수로 데이터를 기록한다. 반면, DNA 스토리지는 유기물 소재로 만들며 2진수가 아닌 4진수로 데이터를 기록한다. DNA의 염기 서열이 4개인 까닭이다. DNA 합성 기술로 데이터를 쓰고, DNA 시퀀싱(Sequencing, DNA의 염기 서열을 결정하는 방법) 기술로 데이터를 읽는다.
“DNA 스토리지에 어떻게 정보를 저장하냐고요? 잉크젯 프린터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워요. 잉크젯 프린터는 CYMK(Cyan·Yellow·Magenta·Key plate) 4가지 색을 조합해 컬러 인쇄물을 만듭니다.
DNA도 AGCT(DNA를 구성하는 핵염기 유기화합물. Adenine, Guanine, Cytosine, Thymine) 4가지 염기 서열로 구성돼요. 실리콘 웨이퍼에 미세 입자를 바르고, 잉크젯 프린터처럼 설계한 특수 프린터로 AGCT를 인쇄해 쌓습니다. 그러면 DNA 스토리지가 만들어져요. 이런 DNA 스토리지에서 데이터를 읽을 때 쓰는 기술이 바로 DNA 시퀀싱 장치에요. 이미 50mer, AGCT 배열 50개에 해당하는 DNA 프린팅과 합성에 성공했어요. 이것을 고도화할 수록 용량이 커지고 DNA 스토리지 상용화에 가까워집니다.
이렇게 만든 DNA 스토리지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먼저 어마어마한 용량이에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가루 형태의 DNA에 팔만대장경 전체에 해당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저장 가능해요. 하물며 DNA 1kg이 있다면 어떨까요? 용량이 크니 대용량 데이터 센터에도 적용 가능합니다.
게다가, DNA는 다른 저장 매체에 비하여 데이터 보관 연한이 매우 깁니다. 화석에서 수억년 전 살던 생물의 DNA를 추출해 연구하는 사례를 떠올려보세요. DNA 스토리지에 데이터를 저장한 다음에는 적절한 온도와 습도에서 보관만 잘 하면 됩니다. 즉, 기존 데이터 스토리지처럼 전력을 많이 소모하지 않고 유지 비용이 싸요. 그러면서도 부피는 작고 용량은 방대합니다.
담긴 데이터를 복제하는 것도 쉬워요. 박테리아를 복제하는 것처럼, DNA 스토리지도 손쉽게 복제 가능합니다. 하지만, DNA를 분석할 때, 방식에 따라 자칫 DNA가 변형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원본 데이터가 손실되는 셈이지요. 셀라바이오텍은 나노포어를 이용해 DNA 데이터를 변형 없이 여러 번 읽는 기술도 가졌습니다.”
DNA 스토리지에 데이터를 저장한 다음에는 적절한 온도에서 보관만 잘 하면 됩니다. 즉, 기존 데이터 스토리지처럼 전력을 많이 소모할 필요도, 온습도를 조절하느라 유지 비용을 들일 필요도 없어요. 그러면서도 용량은 방대합니다. 담긴 데이터를 복제하는 것도 쉬워요. 박테리아를 복제하는 것처럼, DNA 스토리지도 손쉽게 복제 가능합니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이 발전하면서 세계의 데이터 유통량도 폭증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인류는 1초마다 1.7mb 용량의 정보를 만든다고 한다. 동영상과 가상·증강현실 콘텐츠처럼 데이터를 많이 쓰는 기술이 퍼지면 세계의 데이터 유통량은 지금보다 더욱 늘어날 것이다. 자연스레 이들 데이터를 전송할 네트워크, 보관할 스토리지의 규모도 커진다. 하지만, 네트워크와 스토리지의 발전 속도는 나날이 많아지는 데이터를 처리하기에는 더디다.
“하드 디스크나 클라우드 서버, 자기 테이프 등 오늘날의 데이터 스토리지는 곧 물리적 한계에 다다를 거에요. 데이터 스토리지 자체의 부피도 크고, 유지 비용과 전력 소모량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질 것입니다. 이런 물리적 한계 때문에 2040년 경에는 데이터를 저장할 공간이 모자를 것으로 업계는 예측합니다.
그래서 정보통신업계는 차세대 데이터 스토리지 발굴에 힘 씁니다. DNA 스토리지는 그 중에서도 유망한 기술이에요. 특히 콜드 데이터, 자주 찾지는 않지만 오래 보존해야 하는 정보를 담는 데 탁월해요. 모든 생물체는 효율적으로 DNA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법을 터득해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DNA를 질병 진단과 치료에 썼지만, 이제는 정보 저장에도 쓰게 된 거에요.”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나올 듯한 신기한 기술이기에, DNA 스토리지를 만드는 것은 아주 어렵다고 한다. 아직 연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해외의 선진 연구자들은 기술을 보안 사항으로 취급해 공개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김봉준 대표는 기초 연구부터 시작해 독자 기술과 성과를 만들고, 이를 토대로 기관과 투자사와 파트너 기업을 확보해 후속 연구를 이끌 계획을 밝혔다.
“MS, 구글 등 세계 유수의 정보통신기업들이 DNA 스토리지를 연구 개발 중이에요. 하지만, 이들은 좀처럼 연구 성과를 공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DNA 스토리지 연구 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스스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연구하기 아주 힘들어요. 연구에 쓸 기자재 확보부터 난항이에요.
더군다나 DNA 스토리지는 지금 연구 개발 단계라서 아직 시장이 채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사용처나 구매처는 고사하고, 연구를 함께 할 파트너 기업이나 지원을 줄 투자사조차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고려대학교 크림슨창업지원단이 연구 시설과 인력, 법률 자문과 자금 지원 등 많은 도움을 준 덕에 시제품 제작과 홍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었어요.
셀라바이오텍은 시리즈 A 투자 유치를 준비 중입니다. 동시에 DNA 스토리지를 함께 개발할, 이 기술로 혁신을 시도하며 저희와 상승 효과를 낼 파트너 기업도 찾고요. 세포 분석 장치와 화학 합성장치는 연구자를 도울 기기이자 저희의 기술력을 증명하는 기기입니다. DNA 스토리지는 기존의 데이터 스토리지를 쓰는 모든 산업군과 기업에 큰 장점을 가져다줄 기술이니 호응 부탁드려요.”
김봉준 대표와 셀라바이오텍은 올해 선보인 연구 개발 장비에 이어, 2023년에는 초병렬 DNA 합성 장치 개발에 나선다. 이 장치 역시 우리나라 의료·바이오 기업과 연구자들의 연구를 돕는 동시에 DNA 스토리지를 만들 징검다리가 될 기술이다.
“올해 선보인 정밀 유세포 분석기, 화학 실험 자동화 기기에 이어 2023년에는 초병렬 DNA 합성 장치를 출시할 거에요. 투자금을 유치해 다른 기업이나 연구자들도 셀라바이오텍의 DNA 합성기를 활용, 연구 성과를 내도록 도울 예정입니다.
이렇게 연구 개발의 기반을 다진 후, 실제로 DNA에 팔만대장경을 저장하는 실험을 시연할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셀라바이오텍에 여러 관심과 지원이 모일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유망한, 첨단 기술을 연구하는 스타트업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DNA 스토리지를 현실로 이끄는 선봉에 서겠습니다.”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