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업] 나인브릿지 [2] ‘고객 감동’이라는 명품의 본질
[스케일업코리아 x 한국디자인진흥원] 스케일업코리아가 한국디자인진흥원과 협력해 스타트업이 고민을 해결하고 한 단계 도약하도록 돕는 ‘스케일업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합니다. 우선 인터뷰를 통해 스타트업의 장점과 성과, 현재 겪고 있는 대표의 고민을 살펴본 뒤, 비즈니스모델을 분석해 스타트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 마지막으로 스타트업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맞춰 업계 전문가와의 만남을 주선해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스케일업] 나인브릿지 [1]’ 기사에서 소개했듯, 지난 2013년 설립한 나인브릿지는 차량용 휴대폰 거치대, 수납형 멀티탭, 모바일 충전용품을 개발한 제조 기업입니다. 집게형 휴대폰 거치대라는, 기존에 없던 디자인의 차량용 휴대폰 거치대를 개발해 한때 2분에 1대씩 판매했을 정도로 관심을 받았죠. ‘대쉬크랩’ 브랜드 거치대는 누적 300만 대 판매라는 기록도 세웠습니다.
하지만, 2016년을 전후로 비슷한 디자인의 저렴한 중국 제품이 등장하면서 판매량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응하고자 R&D에 투자하며 제품 경쟁력을 강화했고, 차량용 거치대 이외의 IT 제품을 새롭게 선보였는데요. 크게 바뀌지 않는 시장 흐름에 나인브릿지 김수종 대표는 현재 선택한 방향을 고민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김 대표의 고민 해결에 도움을 주고자 위해 스케일업팀은 비즈니스모델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인사이터스 황현철 대표를 모셨습니다.
“중국이 너무 잘 만들어요”
무려 ‘나인브릿지’라는 명문 골프장과 같은 이름의 이 디자인 기업은, ‘대쉬크랩’이라는 차량용 휴대폰 거치대로 시장에서 나름의 존재감을 가진 업체다. 세계 최초로 집게형 거치대를 생산하는 등 차량용 거치대 부문에서 확고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카카오 IP를 활용한 방향제, 가습기, 보조 배터리 등 제품 영역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잘 나가는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26억 원을 기록했고, 올해 40억 원을 바라본다.
이렇게 잘나가는 나인브릿지의 김수종 대표의 얼굴은 예상과 달리 밝지 않았다. 김 대표의 고민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중국이 너무 잘 만들어요” 정도 되겠다. 차량용 제품 특성상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만 만족한다면, 결국 가격경쟁력이 핵심인 시장이다. 사실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서 ‘Made in Korea’라는 자부심으로 여기까지 온 것 자체만으로 기적 같은 일이다. 외형적으로 성장은 했지만, 대쉬크랩을 비롯한 자체 라인업 매출은 전체 25% 가량으로 줄었고 나머지 대부분은 주문사 요청에 대응하는 B2B 납품 비즈니스다. B2B 거래에서는 말 그대로 납품 업체인 상황이라, 수익성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나인브릿지가 B2B 비즈니스로 생산하는 대표적 제품은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를 적용한 차량용 방향제다. 제품 우수성보다 당연히 IP에 대한 로열티가 구매 이유인 제품이다. 카카오뿐만 아니라 SK텔레콤, 현대자동차그룹 등 여러 대기업과 협업해 제품을 개발하고 납품하지만, 수익성의 한계를 넘을 수 없어 고민이다.
나인브릿지 앞에 놓인 두 가지의 길
김 대표는 “성장을 위해 두 가지 방향 중 어디로 갈지 고민”이라고 말한다. 첫째는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제품군 확장과 고급화 전략으로 명품 브랜드로 성장하는 방향이며, 둘째는 규모와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B2B 비즈니스에 집중하는 방향이다. 김 대표 앞에 놓인 이 두 가지 길은 앞으로 어떤 비전을 바라볼 수 있는지 차근차근 따져보자.
자체브랜드 고품질 전략
어쩌다 보니 ‘명품’이라는 말은 참 흔해졌다. 하지만, 누구도 맘대로 만들 수 없는 것이 명품이다. 하나의 명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난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줄 알면서도 김 대표는 “우리의 브랜드, 디자인과 품질에 대한 열정은 포기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제품을 넘어 작품이 되다’라는 나인브릿지의 캐치프레이즈에도 김 열정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IT 테크 제품에서 명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떠오르는 브랜드는 ‘발뮤다’다. 발뮤다는 뛰어난 디자인과 기술력을 결합한 제품으로 단숨에 전 세계 고객들을 사로 잡았다. 특히, 발뮤다의 히트제품인 선풍기, 가습기, 공기청정기, 토스터 등은 수많은 경쟁자가 각축을 벌이는 레드오션에서 탄생했다. 수많은 휴대폰 거치대, 방향제 업체와 경쟁하는 나인브릿지 입장과 같은 셈이다.
발뮤다의 성공에 대해서는 창업자 테라오 겐의 혁신적인 마인드와 디자인, 기술 구현 등 다양한 관점으로 분석한다. 여러 의견 중에 필자가 가장 공감하는 설명은 “감동의 순간을 제품화한다”는 말이다. 지친 오후, 기분 좋게 창밖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주는 그 순간을 재현했다는 ‘그린팬 S’는 무려 50만 원이 넘는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캠핑을 가서 축축한 빵을 데워 먹었더니 방금 구운 빵처럼 맛있었다는 감동을 제품화한 토스터는 30만 원이다.
나인브릿지가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와 같이, 제품을 넘어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감동의 순간’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감동의 순간을 고객이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차량용 휴대폰 거치대 ‘데쉬크랩’은 고객에게 어떤 감동을 전달하고 있을까?
김 대표는 차량 내부에서 사용하는 제품을 넘어 책상 위에서 사용하는 모니터 받침대, 플러그 정리함 등 데스크 테리어로 확장을 모색하고 있으며, 내심 캠핑 용품도 염두하고 있다. 이어서 ‘어떤 영역이 더 시장성 있을까?’라고 필자에게 물었는데, 앞서 언급한 발뮤다 사례를 보자. 어떤 영역, 어떤 제품으로 확장할 것인가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진정한 작품이 되고 싶다면 ‘어떤 감동을 고객에게 선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
IP 융합 제품 B2B 비즈니스
나인브릿지의 B2B 비즈니스는 SK텔레콤의 ‘NUGU’ 버튼, 카카오프렌즈의 캐틱터를 이용한 차량용 방향제 등 대기업 의뢰로 대량 생산하고 납품하는 비즈니스다. 주문에 의해 생산하는 만큼 매출 성장 기여도는 높고, 재고 부담도 낮다. 다만, 수익율은 그리 높지 않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고객 요구에 맞춰야 하는 B2B 비즈니스 특성상, ‘제품을 넘어 작품이 되다’라는 김 대표의 신념을 만족하기 어렵다.
납품 업체가 아니라 플랫폼이 된다면
단순히 고객사 주문에 맞춰 제품을 만들어 주는 납품 업체에서 한걸음 더 전문적인 방향으로 나간다면, 제품개발대행업체가 될 수 있다. 즉, 고객이 들고 오는 아이디어를 다듬어, 제품을 디자인하고 설계해 양산하는 업체다. 여기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세상에 생각보다 많은 제품개발대행업체가 있으며, 이들이 제품개발 및 양산 서비스를 위해 접근하는 프로세스는 어느 업체나 대동소이하다는 점이다.
제품개발대행업체의 프로세스는 동일하기에, 주요 경쟁요소는 업체마다 특화한 전문성과 풍부한 경험, 서비스의 신속성, 경제성 등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의뢰하는 고객사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쉽지 않아 자신의 일정에 맞으면서 품질과 가격이 적당한(?) 곳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이런 시장 환경에서 나인브릿지가 또 하나의 제품개발대행업체로 나서는 것은 좋은 선택이라 할 수 없다. 여기에 더해 또 다른 차별성을 가져가야 한다.
제품개발 플랫폼 ‘퀄키’에서 배우자
갑자기 그 옛날(?) 레트로 감성의 퀄키(Quirky)를 소환해서 매우 미안하다. 퀄키는 지난 2009년 벤 코프먼이 설립한 업체로,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했다. 한때 매주 2,500건 이상의 아이디어가 올라왔고, 약 20만 명의 회원이 투표를 통해 아이디어를 심사한 뒤, 실제 제품 생산과 판매로 이어지는 혁신적인 프로세스로 주목받았다.
비록 퀄키는 제품 선정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과다한 스크리닝 비용과 개발 및 양산 비용 대비 시장성을 갖추지 못해 파산했지만, 집단지성에 의한 혁신적 제품개발과 양산이라는 가능성을 보여준 역사적 스타트업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이 망한 플랫폼을 나인브릿지가 이어받으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제품 기획과 디자인, 양산, 마케팅에 이르는 다양한 기능 영역과 소비재, 전자제품, 기계 등 다양한 하드웨어 영역이 혼재하는 이 시장에서, 고객의 수요를 흡수하며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각계 각층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플랫폼 구조를 배울 필요가 있기에 언급한다.
혁신적 아이디어 + IP(디자인/캐릭터) + 크라우드소싱(전문성)
만약 나인브릿지가 퀄키처럼 혁신적 아이디어와 다양한 산업의 집단지성을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작용하고, 이미 다수의 레퍼런스를 가진 IP 융합 제품 영역의 전문성을 살려 특화한다면, 나인브릿지만의 차별화된 비즈니스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내용을 도식화하고, 기존 제품개발 전문 업체와 다른 주요 특징을 설명하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아이디어에 IP를 더하다
아무리 독창적인 아이디어라도 모든 사업자는 모방 제품의 출시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나마 모방 제품 출시를 막을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은 포켓몬, 카카오프렌즈와 같은 유명 IP와의 융합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유명 IP 활용은 용이한 시장 진입이라는 장점도 있다.
이 때의 단점은 이른바 ‘슈퍼IP’ 사업자가 과도한 라이선스 비용을 요구하면서 가격이 올라간다는 점이다. 때문에 반드시 슈퍼 IP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웹툰과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다양한 IP를 연결할 수 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곰표 밀가루, 유동 골뱅이, 천마표 시멘트 등도 가치 있는 IP로 대접받는 시대다.
둘째, 크라우드소싱으로 기능 영역과 산업 영역의 전문성 확장
테크 제품에는 화학 소재, 회로 및 반도체,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 등 우리가 아는 모든 기술 요소를 담아야 한다. 또한,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서는 시장 조사와 기획을 거쳐, 디자인하고, 검증하며, 양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고객 손에 도달하는 과정에는 수많은 전문가의 작업을 거쳐야 하는 이유다.
이 모든 작업을 내부에서 모두 훌륭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업은 단언컨대 없다. 기존의 제품개발 전문 업체들도 자신들의 전문 영역을 세분화해 제시하는 이유이며, 이들 또한 일부는 아웃소싱할 수밖에 없다. 기능과 산업, 각각의 영역에서 최고의 전문가들과 협업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든다면, 더욱 신뢰받는 제품개발 플랫폼이 될 것이다.
셋째, 크라우드 펀딩으로 고수익 구조 확보
처음 시작은 기업 의뢰가 주요 수요겠지만,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는다면 제품개발과 양산, 출시에 필요한 펀딩까지 요구하는 스타트업, 개인고객으로 수요를 확대할 수 있다. 이러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제품개발 펀딩 기능을 확보해야 하는데, 개인보다 산업계의 유통, 마케팅, 생산업체 등이 참여하는 플랫폼으로 출발한다면 단시간 내 유효한 운영모델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런 연쇄적 프로젝트 투자 방식의 플랫폼은 기존의 단순 납품 방식 비즈니스보다 훨씬 높은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다.
명품(名品)이 될 것인가, 명가(名家)가 될 것인가
나인브릿지의 발전 방향으로 ‘제품으로 승부하는 방향’과 ‘플랫폼으로 승부하는 방향’ 두 가지를 다뤘다는 것은, 게으른 필자 성격상 매우 파격적인 일이다. 게으름에도 두 방향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명품이 되든, 명가가 되든 김 대표가 강조하는 ‘제품을 넘어 작품이 되다’라는 철학에 모두 부합하며, 성장 또한 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방향의 공통점은, 결국 ‘고객의 감동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 문제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본질적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비어 있는 공간이나 경쟁자보다 뛰어난 기능에 대한 생각보다, 고객의 욕구 그 자체에 대해 집중해야 한다. 제조사에게 있어 흔치 않은 ‘작가 정신’을 가진 김 대표의 철학과 열정을 응원한다. 명품 또는 명가라는 타이틀에 부끄럽지 않은 나인브릿지의 미래를 만들어 가길 기원한다.
글 / 인사이터스 황현철 대표
실전 비즈니스모델 컨설팅 전문가. 20년간 비즈니스 전략, 프로세스, 생산, 품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장 중심의 컨설팅을 수행했으며,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스타트업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실체적 비즈니스모델 컨설팅과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본격 기업 극화 소설 '비즈니스모델러'의 저자이기도 하다.
정리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