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 이풍렬 단장, "의료 기관의 디지털 혁신은 선순환 구조"
[IT동아 남시현 기자] “미국 보건의료정보관리시스템 협회(HIMSS)의 일곱 가지 인증 과정 중 인프람(INFRAM)을 먼저 시도한 이유는 우리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IT 기술을 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6단계를 준비하다 보니 삼성서울병원의 역량이면 충분히 7단계도 가능할 거란 확신이 생겼고, 6단계를 달성한 지 5개월 만에 세계 최초로 7단계를 달성했다. 시간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이라 여겨졌지만, 리모델링을 거치며 인프라를 바꾸고 클라우드를 도입한 덕분에 가능했다”
올해 4월, 삼성서울병원(원장 박승우)은 세계 최초로 미국 보건의료정보관리시스템 협회(HIMSS, Healthcare Information and Management Systems Society)의 IT 인프라 인증 과정 중 하나인 ‘인프람(INFRAM, Infrastructure Adoption Model)’의 최고 등급인 7등급 달성에 성공했다. HIMSS는 전 세계 의료 기관의 정보 및 기술 개혁을 주도하는 비영리 단체며, 세계적으로 공신력 있는 기관이다. 하지만 세계 최초로 국내 의료기관이 인프람 7단계를 달성한 점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왜 우리나라 의료계가 디지털화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결과를 주도한 삼성서울병원 디지털 혁신추진단의 이풍렬 단장, 최종수 정보전략팀장을 만나 일련의 노력들을 조명해보았다.
“목적은 첨단 지능형 병원 구축··· 그 과정에서 AWS 도입”
2019년, 삼성서울병원이 개원 25주년을 맞아 디지털 헬스케어 기반 첨단 지능형 병원으로 목표를 잡았다. 지난해 4월에 삼성서울병원 이풍렬 교수(소화기내과)는 디지털 혁신 추진단이 출범하면서 단장을 맡게 됐다. 일단 삼성서울병원의 디지털 혁신 추진단이란 무엇인지, 또 병원에서는 왜 디지털 혁신을 진행하고 있는가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이 단장은 “삼성서울병원이 디지털 혁신을 시작한 계기는 2016년 전자의무기록의 보존과 관리 기준이 변경되면서부터다. 그전에는 병원에서 발생하는 모든 데이터를 병원이라는 물리적인 공간 내에 보관해야 했지만, 법이 바뀌면서 클라우드로도 데이터를 보관할 수 있게 됐다. 이것으로 디지털 혁신의 첫 단추가 꿰어졌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서 그는 “병원에서는 생성되는 데이터는 진료나 전자의무기록 이외에도 연구나 유전체 정보 등 무척 방대하다. 하지만 이 데이터를 정보화하고 지식화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 활용하고자 디지털 혁신추진단이 발족했다”라고 말했다.
디지털 혁신추진단은 현재 병원 데이터를 생성·저장·관리하는 정보 전략팀, 전자의무기록과 용어 표준화를 담당하는 의료정보팀과 함께, 기존에 축적한 자료를 임상 연구용으로 활용하는 임상 데이터 웨어하우스(Clinical Data Warehouse, CDW)의 공통 데이터 모델(Common Data Model, CDM)을 구축·관리하는 데이터 서비스팀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작년 7월부터는 아마존웹서비스(AWS)와 함께 글로벌 임상연구 플랫폼을 구축하는 등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AWS로 기존 데이터에 인공지능, 빅데이터 활용”
의료 데이터를 모아 지식화하는 디지털 혁신추진단의 시도는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연구 개발이다. 최 팀장은 “의료 연구는 IT 부서와 연구자들이 힘을 합쳐 진행된다. 하지만 IT부서는 연구의 맥락을 잘 모르고, 연구자들은 IT 기술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래서 이전에는 연구 개발을 구축하는데만 6개월 이상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은 연구 개발에 필요한 도구가 클라우드를 통해 곧바로 제공되기 때문에 분석 기법이나 방법 등에 대해서 조금만 공부하면 클릭 몇 번으로 연구를 시작하고, 원거리에서 데이터를 공유하며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디지털화 덕분에 가능해진 결과”라고 덧붙였다.
이 단장은 AWS 클라우드로 구축한 두 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대표 사례는 환자의 욕창 부위 사진을 통해 병의 악화 정도를 분석 예측하는 인공지능 솔루션인 ‘스키넥스(Skinex, Skin Explainable AI)’다. 스키넥스는 1만여 건의 욕창 이미지를 바탕으로, 실제 환자의 욕창 부위를 촬영하면 현재 욕창 수준을 1~4단계 혹은 심부조직 손상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또 피부 상태를 추가 입력하면 치료에 맞는 드레싱을 추천하는 기능도 갖췄다. 해당 기술은 HIMSS가 주관한 2022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포스터로 발표될 정도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또 다른 사례는 낙상 예측 기능이다. 환자의 낙상은 간호 업무 중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문제다. 인공지능은 하루 2천 명에 달하는 입원 환자의 데이터를 자동으로 분석해 낙상 가능성의 저위험군과 고위험군을 분류하고, 이를 의료진에게 전달한다. 이를 통해 간호사 숙련도에 따른 차이와 부담을 줄이고, 환자 특성에 따른 요인별 중재를 제공할 수 있다. 두 기능 모두 삼성서울병원의 자체 병원 시스템인 ‘다윈(DARWIN)’의 데이터를 AWS 클라우드로 연계해 연구에 제공하는 글로벌 임상연구 플랫폼, ‘다윈 서치’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이 단장은 “앞으로도 유전체 등 다양한 연구를 통해 시스템을 개발해나갈 예정이며, 이렇게 빅데이터와 연구 개발이 선순환적인 의료 체계를 이루도록 러닝 헬스 시스템(Learning Health System) 체계로 만들어나갈 예정이다”이라고 밝혔다.
디지털 의료 서비스 역량, 인프람으로 입증
이처럼 디지털 혁신추진단이 내부 서비스부터 의료진 업무를 디지털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디지털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가 이어졌다. 그 결과가 바로 지난 4월 획득한 인프람 7단계다. 미국 보건의료정보관리시스템 협회는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의 발전 가능성과 조직의 지속 가능성, 인력 기반의 운영 효율성을 확보할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 단체로, 의료 기관의 IT 인증이나 표준 등을 제정한다. 그중 핵심 인증이 해석학(AMAM), 관리의 연속성(CCMM), 공급망(CISOM), 디지털 이미징(DIAM), 인프라스트럭처(INFRAM), 외래 전자의료 기록 채택 모델(O-EMRAM), 전자의료기록(EMR)까지 총 일곱 개의 분야며, 각 분야별로 0~7단계로 등급을 책정한다.
삼성서울병원이 취득한 인증이 바로 인프라스트럭처 모델로, 유동성과 보안, 협동, 네트워크, 그리고 데이터센터 등의 의료 인프라 및 관련 기술이 얼마나 국제 표준에 맞는지를 평가한다. 구체적으로는 원격 VPN 지원이나 중앙 관리 시스템, 원격 모니터링, 네트워크 제어 기능을 프로그래밍으로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정의 네트워킹(Software Defined Networking, SDN) 등 병원 시스템의 수준을 평가하며, 등급이 높을수록 임상 및 운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IT 기반의 수준이 높은 것이다.
이 단장은 “인프람 7단계를 달성하면서 그동안 관심을 갖지 않던 다른 병원들도 경쟁적으로 인프람 도전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높은 수준의 인증을 받을만한 인프라를 갖춘 병원이 많기 때문에 더 많은 병원이 취득할수록 우리나라의 디지털 헬스케어 시스템도 발전할 것”라고 말했다. 또한 “인프람 달성을 위해 도입한 클라우드 덕분에 공동 연구를 추진하거나 다기관 연구를 진행할 때 물리적인 제약이 없어진 점, 그리고 SDN을 도입하면서 전체 비용이 오히려 20억 정도 절감된 점도 충분히 동기를 부여해준다”고 덧붙였다.
삼성서울병원의 인프람 7단계 달성은 삼성서울병원만을 위한 성취가 아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의료정보원은 2021년 4월부터 병원별로 쌓여있는 의료 데이터를 개방 및 공유해 산학연 공동 연구가 활성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의료데이터 중심병원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에는 29개의 상급 종합 병원과 9개의 종합 병원, 2개의 전문병원이 힘을 합쳐 누적 환자 수 7천300만 명의 의료 빅데이터 활용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만약 각 병원들이 삼성서울병원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혁신을 진행한다면, 사업은 더욱 빠르게 나아가고, 그 혜택은 국민들에게 돌아올 것이다. 병원 자체도 진보된 서비스와 디지털 전환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선순환 위해 끊임없이 시도할 것”
세계 최초로 HIMSS 인프람 7단계에 달성한 삼성서울병원이지만, 디지털 혁신추진단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최 팀장에 따르면 올해 혹은 내년에는 HIMSS 전자의료기록(EMR)과 디지털 이미징(DIAM)에 대한 인증도 취득할 예정이라 한다. 또한 클라우드 기술을 지속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9월 30일까지 ‘디지털 헬스 해커톤 대회’도 후원한다. 아마존 S3 및 EC2를 활용해 입원 환자 및 응급 환자에 대한 의료 개입을 가능케 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을 개발하기 위해 경쟁한다. 이처럼 끊임없이 시도하는 자세가 삼성서울병원의 저력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이풍렬 단장은 “삼성서울병원이 추구하는 디지털 혁신은 최신 IT 기술이나 서비스를 갖추는 첨단 지능형 병원을 넘어서, 병원을 중심으로 우리 모두의 헬스케어를 누리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행복과 감동이 널리 퍼져나갈 수 있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며 포부를 밝혔다.
글 / IT동아 남시현 (s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