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체인저’ 될 줄 알았던 그 물건들, 지금은 어디로?
[IT동아 김영우 기자] 처음 등장했을 때 높은 관심을 모으며 향후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기대되던 몇 가지 기술이나 제품이 있었다. 하지만 몇 가지 이유로 초반의 높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지거나 일부 소수 이용자의 전유물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는 특히 TV나 모니터와 같은 디스플레이 기기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시장 자체가 커서 초반에 주목받기는 비교적 쉽다. 하지만 이후에 전개되는 콘텐츠 지원이나 후속 서비스 등의 생태계 형성이 미비하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기도 쉽다. 그리고 일부 제품이나 기술의 경우, 시장의 주도권을 둘러싼 관련 업체들 사이의 갈등 때문에 흐지부지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를 살펴보자.
‘용두사미’로 끝난 3D TV
3D TV는 시청자의 양쪽 눈에 각기 다른 각도의 영상을 전달, 기존의 2D TV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입체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2009년에 전세계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아바타’의 3D 상영 버전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면서 3D 영상에 대한 시장의 관심도가 높아졌다. 또한 2012년에 개최된 런던올림픽에서 일부 경기가 3D로 시험 방송되기도 했다.
이 시기를 즈음해 삼성전자, LG전자 등의 TV 제조사들은 가정에서도 3D 영상을 볼 수 있는 3D TV를 앞다퉈 내놓고 치열한 홍보전을 벌이기도 했다. 각 사의 주력 TV 제품에는 3D 기능 탑재가 거의 기본이 되었으며, TV 외에도 모니터나 노트북, 프로젝터에도 3D 기능이 탑재되곤 했다.
다만, 이런 3D 열풍은 불과 수년 만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드웨어의 보급은 어느정도 진척되었지만 정작 이를 활용할 만한 콘텐츠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3D 영상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전용 안경을 착용하고 화면 정면을 바라봐야 하는 등의 불편한 점도 있었다. 3D TV는 2015년을 전후해 출시되는 수가 크게 줄어들었으며, 2017년 즈음부터는 시장에서 거의 사라졌다.
잠재능력 높지만 콘텐츠 환경이 발목, 21:9 모니터
: 화면의 가로와 세로 길이 비율을 ‘화면비’라고 하며, 2022년 현재 모니터 시장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건 16:9 화면비의 제품이다. 화면 해상도(정밀도)로 따지면 1920x1080, 혹은 3840x2160 제품이 가장 흔하다. 그런데 그 외에도 한때 큰 기대를 모으던 화면비가 있었다. 이른바 ‘울트라 와이드’라고 하는 21:9 비율이 그것이다.
21:9 화면비는 해상도 2560x1080를 주로 적용하며, 16:9에 비해 좌우로 길쭉한 것이 특징이다. 이는 여러가지 장점이 있다. 극장용 영화의 화면비와 유사해 영화를 볼 때 위아래 검은 공백(레터박스)이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16:9에 비해 좌우로 더 많은 정보를 표시할 수 있어 게임(특히 FPS나 레이싱)을 할 때 한층 광활한 배경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한층 넓은 영역에 각종 콘텐츠를 배치할 수 있어 사무용으로도 활용도가 높은 편이다.
다만, 문제는 21:9를 제대로 지원하는 콘텐츠가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게임이 16:9 화면비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온라인 영화 서비스 역시 16:9로 화면비를 조정해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16:9로 제공되는 콘텐츠를 21:9 모니터에서 구동할 경우, 화면 양쪽 측면에 검은 공백이 생기거나, 위아래로 눌린 듯한 어색한 이미지가 표시되기 때문이다. 21:9 모니터는 2013년을 전후해 시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해 큰 기대를 모았으나, 2022년 현재까지도 시장의 주류는 되지 못하고 있다.
신기함,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한 커브드 TV
커브드(curved) 화면이란 이름 그대로 화면 양 옆이 시청자 방향 쪽으로 살짝 휜 화면을 뜻한다.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주로 1500~1800R 정도의 곡률을 가진 제품이 많으며, 더 많이 휘어진 화면일 수록 한 눈에 들어오는 정보량 역시 많다.
커브드 화면은 본래 화면을 접거나 휠 수 있는 것이 특징인 OLED 디스플레이의 장점을 응용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OLED 패널은 가격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TV나 모니터보다는 화면이 작은 스마트폰에 주로 적용되었으며, 커브드 화면을 탑재한 초기 제품 역시 스마트폰이었다. 이후 상대적으로 저렴한 LCD 패널에도 커브드 형태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2015년을 전후해 커브드 TV 및 모니터가 다수 출시되기 시작했다.
커브드 TV와 모니터는 특이한 형태 덕분에 등장 초반에 높은 관심을 끌었으며, 각 제조사들 역시 자사의 고급형 제품군에 커브드 형태를 적극 적용하며 시장 개척을 하고자 했다. 특히 커브드 화면이 게임이나 영화를 즐길 때 한층 몰입감이 높다는 점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커브드 화면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은 빠르게 사그라졌다. 휜 화면이 독특하긴 했지만 콘텐츠의 형태가 왜곡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또한, 벽걸이 형태로 TV를 설치하고자 할 때 어색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2022년 현재, 커브드 제품은 게이밍 모니터 시장을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TV 시장에선 신제품이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시장 주도권 다툼 때문에 무용지물, 지상파 UHD 방송
UHD TV는 3840x2160의 고해상도를 구현하며, 1920x1080 해상도를 갖춘 기존의 풀HD TV에 비해 4배가량 정밀한 화면을 표시할 수 있다. 그리고 KBS, MBC, SBS 등 국내 주요 공중파 방송사들은 2017년 5월부터 UHD 방송 전송을 시작했다. 다만, 2022년 현재까지도 이들 3사의 UHD 방송을 제대로 보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방송 3사에서 오로지 지상파 방식으로만 UHD 방송을 전송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전체 TV 시청자 중 지상파를 직접 수신해 방송을 보는 비율은 현재 3% 수준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케이블이나 IPTV, 위성방송 등의 유료방송 서비스를 통해 TV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공중파 3사 및 유료방송 사업자 사이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케이블이나 IPTV 상에서 KBS, MBC, SBS의 콘텐츠는 HD급으로만 재전송이 되고 있다.
KBS, MBC, SBS의 UHD 방송을 시청하려면 지상파 UHD 수신이 가능한 TV에 직접 지상파 안테나를 연결해서 보는 방법밖에는 없다. 지상파 UHD 방송 시청이 활성화되지 못한 것은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각 관련 집단의 이해관계 충돌, 그리고 이를 조율하지 못한 정부의 정책 실패에서 비롯되었다는 지적이 많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