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열풍, ‘보물’로 거듭난 과거의 유물들

김영우 pengo@itdonga.com

[IT동아 김영우 기자] 언제나 ‘최신’만 추구하던 콘텐츠 및 매체 시장 전반에 난데없이 ‘레트로’ 열풍이 불고 있다. 단순한 ‘추억 팔이’ 수준을 넘어, 실제 시장의 판도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그 열풍이 크다 보니 기업들도 진지하게 이 현상에 대응하고 있다. 단순히 예전의 제품을 다시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원본의 감성에 최신의 기술을 더해 한층 높은 상품성을 추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때 퇴물 취급 LP, 소장가치 인정받아 판매량 ‘껑충’

대표적인 사례가 음악 시장이다. 세계 음악 시장은 2010년대 들어 CD를 비롯한 물리적 형태의 매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속적으로 줄어든 반면, 온라인 스트리밍 기반의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고 있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세계 음악 시장 수익에서 스트리밍이 차지하는 비중은 65%에 달했다.

LP로도 출시된 블랙핑크의 첫 정규앨범 (출처=YG엔터테인먼트)
LP로도 출시된 블랙핑크의 첫 정규앨범 (출처=YG엔터테인먼트)

그런데, 이런 와중에 이미 과거의 유물 취급을 받고 있던 LP(Long Playing Record) 시장이 급격하게 커지고 있는 것이 이례적이다. LP는 195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널리 쓰인 아날로그 기반 음성기록 매체다. 1990년대 이후 CD나 MP3 디지털 음악 매체가 본격 유통되면서 2000년대 전후 부터 LP는 사실상 퇴출 분위기였으나, 2020년대 들어 다시 부활했다.

특히 빌보드와 MRC의 2021년 발표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미국시장에서는 전년에 비해 46.2% 증가한 2754만장의 LP가 판매되었고, 이는 30년만에 최대의 성장폭이라고 한다. 과거 출시했던 이른바 ‘명반’ LP의 가치가 높아진 것은 물론,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 아이유 같은 현역 가수들이 LP로 최신 앨범을 출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LP가 디지털 매체만큼 깨끗한 음질을 들려주진 않는다. 하지만 매체 자체의 크기가 큰데다 희소성도 있어 소장가치가 높은 아이템으로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 LP ‘역주행’의 이유다.

사라질 뻔한 즉석 카메라, ‘귀한 몸’ 취급에 신제품 속속 출시

카메라 시장에선 아날로그 방식의 즉석 카메라가 인기다. ‘폴라로이드’로 대표되는 즉석 카메라는 촬영한 후 그 자리에서 바로 사진을 출력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석 카메라는 1980년대까지 큰 인기를 끌다가 디지털 카메라가 본격 등장한 1990년대를 전후해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다. 결국 2001년, 즉석 카메라 대표주자인 폴라로이드가 파산보호신청을 하고 제품 판매도 중단되면서 이 시장은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즉석 카메라는 전용 필름 값이 비싼데다 이미지 품질도 흐릿하다. 선명한 이미지를 촬영할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촬영이 가능한 휴대폰 카메라가 대중화된 마당에 굳이 즉석 카메라를 쓸 이유는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촬영 즉시 실물 사진을 뽑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흐릿한 화질이 오히려 독특한 느낌을 준다는 점에 매력을 느낀 신세대 소비자들이 2010년대 전후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폴라로이드를 인수한 새 경영진은 이 시기를 즈음해 필름 생산을 재개했으며, 2020년대 들어 즉석카메라 신제품도 내놓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더한 하이브리드 즉석 카메라, ‘인스탁스 미니에보’ (출처=후지필름)
디지털 기술을 더한 하이브리드 즉석 카메라, ‘인스탁스 미니에보’ (출처=후지필름)

또한 폴라로이드와 함께 즉석 카메라 시장을 이끌던 후지필름의 ‘인스탁스’ 시리즈는 폴라로이드가 자리를 비운 사이, 오히려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며 시장 지배력을 높여갔다. 2017년에는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이른바 하이브리드 방식 인스탁스를 출시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도 했다. 2022년 현재, 후지필름의 인스탁스 시리즈는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바로 품절될 정도로 ‘귀한 몸’ 취급을 받는다.

30년 전 추억의 게임 콘솔, 복각판 나오니 매진 행렬

1980~1990년대에 큰 인기를 얻었던 옛 비디오 게임 콘솔 역시 레트로 붐을 타고 부활했다. 2016년, 닌텐도는 1985년에 미국에서 출시한 게임 콘솔인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하 NES)’의 복각판인 ‘NES 클래식 에디션’을 출시했다.

1980년대 게임콘솔의 복각판, ‘NES 클래식 에디션’ (출처=닌텐도)
1980년대 게임콘솔의 복각판, ‘NES 클래식 에디션’ (출처=닌텐도)

이 제품은 과거의 NES를 작은 크기의 본체로 재현하고, 30여개 추억의 게임을 내장했다. 일부 팬을 위한 팬 서비스 차원으로 출시한 제품이었으나, 예상 이상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매진과 재생산을 반복했다. 닌텐도는 이에 힘입어 NES의 일본 버전인 ‘패밀리 컴퓨터’의 복각판도 출시했으며, 2017년에는 NES의 후속 모델인 ‘슈퍼 NES’의 복각판을 출시하며 인기를 이어갔다.

1980~1990년대 비디오 게임 시장에서 닌텐도의 최대 경쟁자였던 세가 역시 레트로 게임 붐에 뛰어들었다. 2018년, 세가는 1988년에 자사에서 선보인 ‘메가드라이브’ 게임 콘솔의 복각판인 ‘메가드라이브 미니’를 출시했다. 이 역시 닌텐도의 복각판과 마찬가지로 과거 메가드라이브의 형태를 정교하게 재현하면서 크기를 줄였으며, 추억의 게임 40여개를 내장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메가드라이브 미니의 성공에 고무된 세가는 2022년 6월, 메가드라이브의 또 다른 버전인 ‘메가드라이브2’를 복각한 ‘메가드라이브2 미니’도 출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메가드라이브2 미니는 전작에서 수록하지 못했던 마니아 지향 게임을 다수 내장할 예정이며, 해외 기준 올해 10월에 출시한다.

과거의 유물 재조명하며 새로운 가치 창출

아날로그 감성 충만한 ‘과거의 유물’이 현대 시장에서 부활, 무시 못한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최근 상황에 대해서는 갖가지 해석이 분분하다. 고성능 제품, 고품질 콘텐츠가 너무 흔해진 탓에 오히려 과거의 제품과 콘텐츠를 특별하게 느끼는 신세대 소비자들이 늘어났다는 관점이 있다.

또한, 인구 구조의 변화로 인해 40대 전후의 세대가 사회의 주류를 차지하게 된 점 역시 최근 레트로 붐에 한 몫을 했다는 관점도 있다. 청소년 시절에는 금전적인 문제로 즐기지 못했던 제품과 콘텐츠가 있었고, 이들이 경제권을 가지게 되면서 이제서야 그 시절의 것들을 다시 사서 즐기게 되었다는 해석이다. 그 외에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인해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과거를 되돌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 최근 ‘레트로 붐’의 이유라는 관점도 있다.

진짜 이유가 무엇이건, 잘 만든 제품이나 콘텐츠는 시대나 세대와 관계없이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과거의 유물을 재조명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비즈니스 기법은 앞으로도 한동안 유행할 것으로 보인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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