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ing] 서사 정도성 대표, “책을 읽지 않아도, 책을 읽은 것처럼”
“TV 좀 그만 보고, 책 좀 봐라!”
“게임 좀 그만 하고, 책 좀 보라고!”
귀 따갑도록 듣던 부모님의 잔소리였다. 초중고 시절을 거쳐, 대학교를 나와 기자로 일하는 이 순간에도 부모님의 잔소리는 여전하다. 수백, 수천 번 들어 익숙해질만도(?) 하지만, 묘하게 ‘책 좀 보라’는 잔소리 같은 충고는 귀에 참 따갑다. 마땅한 이유는 모르겠다. 책을 보는 행동 이외의 모든 행동은, 꼭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기자의 아들은 올해 수능을 앞둔 고3이다. 어린 시절, 그렇게 듣기 싫던 잔소리를, 이제는 기자가 아들에게 그대로 소리친다. “제발, 책 좀 보라”고. 그 때는 몰랐다. 책을 보라는 잔소리 속에는, 질책이나 꾸중이 아닌, 아이를 위한 걱정이 담겨있다는 것을. 또한, 차마 ‘사랑’이라는 거창한 감정까지는 아니지만, ‘다, 너를 위한 거야’라는 나름의 책임감을 더한다.
프랑스의 작가 샤를 단치(Charles Dantizg)는 ‘왜 책을 읽는가’라는 책을 통해 ‘왜 책을 읽는가? 지식의 경계를 확장하고, 편견을 없애며,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다. 왜 책을 읽는가? 자기 울타리 안에 갇혀 편견 속에 살면서 무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책에는 타인의 삶과 생각, 이해 등이 담겨 있다. 독자는 이를 간접 경험하며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을 얻는다. 책을 보라는 부모님의 작은 부탁에는 당신의 손으로 자식에게 전달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지 않을까.
서사는 ‘책’을 전하는 스타트업이다. 바쁜 현대인을 위해 책을 읽지 않아도, 책을 읽은 것처럼 전달하고자 노력한다. 서사 정도성 대표는 “스마트폰 보급 이후, 많은 것이 변화했습니다. 무엇보다 콘텐츠가 바뀌었죠.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에 글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유튜브를 즐깁니다”라며, “과거 주요 콘텐츠는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음성, 이미지, 영상 등의 콘텐츠를 손쉽게 공유하고 볼 수 있죠. 서사는 이러한 변화에 맞춰 책을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스타트업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책 속의 낙서, 여기서 ‘서사’를 생각했습니다
IT동아: 만나서 반갑다. 서사라는 이름만 들었을 때, 어떤 업체인지 떠올리는 게 쉽지 않았다. 먼저 소개를 부탁한다.
정도성 대표(이하 정 대표): 서사는 ‘일하는 사람에게 성장하는 감각을 제공’하고자 노력하는 스타트업이다.
(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요청하자 )
하하. 음…, 이렇게 설명하고 싶다. 우리는 책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책을 내용을 함축해 3분~5분 길이의 짧은 동영상과 요약한 글, 이미지(카드 뉴스) 등의 콘텐츠를 생산한다.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이하 OSMU)라고 이해해도 좋다. 그리고 OSMU 콘텐츠를 이를 여러 사람이 보다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서사(Seosa)’ 앱을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 선보였다.
IT동아: 책을 함축해서 전달하는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 마치 유튜브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함축해 소개하는 채널과 비슷한 듯하다.
정 대표: 워낙 책을 좋아한다(웃음). 아니, 회사에서 일하며 책을 좋아하게 됐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수도 있는데, 서사 설립 전에는 삼성생명 법인영업 부서에서 직원으로 일했다. 기업 고객을 관리하며, 규모가 꽤 큰 거래를 담당했기 때문에 미팅의 중요성은 상당하다. 이에 어떻게 하면 고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 미팅을 진행하며 거래의 중요한 안건을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이러한 스킬과 경험을 연구했다. 고객의 행동을 분석해 어떤 상태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현재 미팅은 원활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인지 등을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즉, 일종의 행동 패턴 분석이다.
재미있었다(웃음). 고객의 행동을 분석해 어떻게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지, 미팅을 진행할 수 있는지 파악했고, 이를 연구하다가 기업교육 전문 기업 멀티캠퍼스로 이직했다. 각 직업군이 상대하는 고객의 행동을 분석해 상황에 따라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IT동아: 고객의 반응을 분석해 원활한 대응 방법을 고민할 수 있다는 뜻인가?
정 대표: 맞다. 예를 들어보자. 환자를 상대하는 의료진(의사, 간호사)이라고 가정하자. 사람들은 공통된 환경과 유사한 목적을 지닌 상황에서 비슷한 행동을 보인다. 소아청소년과에 아이를 데리고 방문한 어머님이 갑자기 눈을 깜빡이는 경우가 있다. 보통 1세 미만의 영유아를 데리고 방문했을 때 나타나는 행동인데, 의사가 아이의 상태를 알려줄 때 긴장해서 눈을 깜빡이는 행동이다.
또한,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고령의 환자는, 의사가 진단 결과를 말해주는 순간 몸을 경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행동 패턴을 분석해 각 직업군이 고객을 상대할 때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서강대 대학원에 진학해 연구하고 분석했다.
IT동아: 뭔가… 지금까지의 얘기만으로는 ‘책’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은데.
정 대표: 하하. 직장 생활을 하며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하면서 책을 정말 많이 읽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좋은 책을 공유하고 싶고, 전달하고 싶고, 알려주고 싶었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지난 2019년 ‘서사, 당신의서재’라는 북카페를 창업했다.
북카페를 운영하며 방문하는 손님들의 행동에서 몇 가지 의미를 찾아냈다. 직장인과 대학생의 행동이 한가지 지점에서 달랐다. 책에 있는 낙서를 대하는 행동이었다. 책을 읽으며 기억에 남는 문구나 중요한 문구의 경우, 한번쯤 밑줄이나 형광펜으로 덧칠하곤 하잖나. 직장인은 이러한 낙서를 대할 때, 이렇게 생각한다. ‘내 시간을 줄일 수 있겠구나’라고. 오히려 낡은 헌책을 사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학생은 다르다. 낙서있는 책은 거들떠 보지 않는다.
여기에 집중했다. 직장인은 적잖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읽어야 하는 책을 대할 때, 다른 사람의 해석 또는 생각을 유용한 정보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낙서를 믿을 수 있는 사람(북카페나 서점을 운영하는 주인)이라면 신뢰로 받아들인다. 낙서의 가치를 오히려 인정해주는 셈이다. 마치 하나의 서평처럼 말이다.
특히, 직장인은 무언가 배우거나, 익히고자 책을 찾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낙서는 책 속의 정보, 인사이트를 축약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받아들인다. 이 같은 북카페 방문 손님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의 ‘서사’를 생각했다. 속된 말로, 책 속의 써먹을 수 있는 정보를 보다 쉽고 빠르게 전달할 수 있다면, 유용한 하나의 콘텐츠로 재생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콘텐츠를 위해 전진하고 있습니다
IT동아: 서사는 언제 창업했는지.
정 대표: 지난 2020년 8월이다. 지금의 서사 앱은 올해 2월 28일에 런칭했다. 이제 5개월 정도 지났다(웃음). 모든 스타트업이 그렇듯,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는데, 작년에 제작했던 약 100개의 콘텐츠를 모두 폐기했다. 이유?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 스스로 생각했을 때, 독자를 만족시킬 수 없는 퀄리티의 콘텐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 속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거나, 스토리텔링을 살리지 못했거나… 내부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시행착오가 많았다. 책이 담고 있는 내용 중 핵심을 담아 3~5분의 짧은 영상으로 소개한다는 것. 말로만 들으면 쉬워 보이지만,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툭툭 책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과 짧은 시간 안에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유명한 강연자를 섭외해 영상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책의 저자를 직접 모셔와 영상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방송 프로그램 작가를 섭외해 영상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그렇게 나름의 스킬을 쌓았다.
그렇게 내린 결론이 작년까지 생산한 콘텐츠는 경쟁력을 지니지 못했다였고, 그래서 폐기했다. 생각보다 서사 앱을 늦게 런칭한 이유다.
IT동아: 그거 쉽지 않은 결정이다. 분명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생산한 콘텐츠 였을텐데… 그걸 폐기한다는 것은 살을 깍아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나. 특히, 스타트업에게는 뼈아픈 결정이다.
정 대표: (씁쓸하게 웃으며) 맞다. 양과 질, 그 사이에서 많이 고민했다. 약 1년 정도의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 투자한 비용도 뭐…. 지금에서 돌이켜 보면, 서사라는 스타트업을 만들어가기 위한 팀을 구성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외주 프로덕션에서 일하던 직원, 디자인 회사에서 영상을 제작하던 직원, B2B 교육용 영상을 제작하던 직원, 영상 콘텐츠를 기획하던 직원들이 모여 수많은 논의를 거쳤다. 서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품질에 대해서, 목적에 대해서, 방향에 대해서 머리를 맞댔다.
현재 서사 직원은 총 17명이다. 콘텐츠 제작을 위한 인원이 가장 많다. 작가 3명, 촬영 및 편집 1명, 모션 그래픽 담당자 2명, 콘텐츠 디자이너 2명, 개발자 3명, 앱 기획자 4명 등이다. 서사는 어디까지나 콘텐츠 생산자다. 콘텐츠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설립 초기에는 4명에 불과했지만…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정기적으로 우리 스스로 만족하는 품질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구축했다고 자신해 앱을 런칭했다.
IT동아: 투자도 유치했다고 들었는데.
정 대표: 좋은 인연을 만나 초기에 시드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 엔젤투자자와 김기사랩 등으로부터 약 1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고, 올해말 프리-시리즈A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책을 읽지 않아도, 책을 읽은 것처럼
IT동아: 현재 상황이 궁금하다.
정 대표: 크게 B2B와 B2C 두 영역에서 조금씩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양대 스토어에 앱을 런칭한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반응은 B2B쪽이 더 빠르다.
B2B는 이전에 일했던 기업교육 네트워크를 활용 중이다. 기업교육 시장에서 책은, 독서는 의미있는 교육 방법 중 하나다. 특히, 교육 내용을 보다 세분화해 진행하는 마이크로러닝(Microlearning)과 학습과 SNS를 결함한 소셜 러닝(Social Learning)에 서사는 아주 잘 어울린다.
기업교육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스킬과 경험을 짧은 영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니즈를 발견했다. 은행 본점에서 일하는 10년차 과장, 지점에는 일하는 10년차 과장, 10년차 의사와 5년차 의사, 10년차 간호사와 5년차 간호사 등 각각의 직군에 따라 필요한 교육은 제작각이다. 여기에 맞춰 서사의 콘텐츠를 활용,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을 제공하고자 노력 중이다.
과거에 일했던 경험을 B2B 영역에 녹이고 있다. 직업군과 업무 형태에 따른 행동 패턴을 분석해 콘텐츠에 권장한다. 우리가 활용하는 행동 패턴 분석은 ICRU( I Can Read You)인데, 크게 ‘창의적인 일’, ‘행동적인 일’, ‘꼼꼼한 일’, ‘사람과 함께하는 일’ 4가지 패턴으로 분석하고, 이를 기준으로 16가지 유형으로 나눠 필요한 교육을 제공한다. 음… 요즘 MZ 세대에게 크게 유행하고 있는 MBTI를 더 전문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이해해달라(웃음).
IT동아: 책을 활용해 만든 콘텐츠를, 사람에게 맞춰 제공하는 셈이다.
정 대표: 맞다. 해당 직무에 필요한 콘텐츠, 직무와 무관하게 직장인 10년차에게 필요한 콘텐츠, 관련 산업에 필요한 콘텐츠 등 세분화해 제공한다.
간혹 유튜브의 추천 서비스와 비슷한 것 아니냐고 오해하시는데, 조금 다르다. 유튜브가 개인에 맞춰 추천하는 것은 그 사람이 평소 많이 보고 좋아하는 영역에 그친다. 하지만, 서사가 추구하는 것은 책이라는 콘텐츠를 통해 시야의 확장하는 것이다. 단 하나의 인사이트라도 더 얻어갈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때문에 서사는 전문가의 시선으로 추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큐레이터, 컨시어지에 가깝다.
IT동아: B2C 고객을 위해서도 준비할 것이 많을텐데.
정 대표: ‘2019 통계청 국민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대부분은 책을 충분히 읽고 있지 못하다. ‘충분히 책을 읽고 있다’라고 대답한 30~40대는 9.2%에 불과하다. 책을 읽지 못하는 이유로 다른 콘텐츠를 이용하느라(29.1%), 시간이 없어서(27.7%) 등을 꼽는다. 서사는 여기에 집중했다. 책을 다른 콘텐츠(영상, 카드뉴스 등)로 제공하고, 짧은 시간에 함축해 제공한다.
책을 읽으려고 하는 근본적인 원인도 파악했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함(25.9%)’,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얻기 위함(18.4%)’, ‘교양과 상식을 쌓기 위함(16.8%)’, ‘시간을 보내기 위함(15.1%)’, ‘업무에 도움을 받기 위함(8.8%)’ 등 성인들의 독서 목적 상위 5위(2019 통계청 국민독서실태 조사)에 맞춰 콘텐츠를 준비했다.
책을 읽지 못했던 고객의 패턴을 분석하고, 시간이 없어서 못 읽는 현실에 맞춰, 필요한 책을 추천한다. 서사 앱을 통해 1달 동안 8시간 콘텐츠를 이용하신 고객이 있다. 5분 콘텐츠라고 가정했을 때, 약 96개의 책을 읽으신 셈이다. 이러한 고객 사례를 계속 늘려나가고자 한다.
IT동아: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바가 있다면.
정 대표: 계획이라기 보다,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대형 병원, 금융권 등을 바탕으로 B2B 기업교육 시장은 계속 확장하고 있다. 이를 자연스럽게 B2C 영역으로 넓히고자 한다.
서사의 콘텐츠는 크게 지식(마케팅, 비즈니스모델, 조직관리, 경영관리, 자기계발, 투자 등)과 휴식(심리, 스트레스, 인간관계, 일의 의미, 멘토링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를 현재 ‘북 인사이트’, ‘마음챙김’, ‘부의감각’ 메뉴로 전달하고 있는데, 각각의 콘텐츠를 보다 원활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정진할 생각이다.
서사는 책에서 시작했지만, 책은 아니다. 3~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고객에게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하나의 플랫폼이다. 누군가에게는 지식 창구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잠시 쉬어가는 쉼터일 수 있다.
아직 콘텐츠를 쌓아가야 할 단계다(웃음). 원활한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한 경험을 쌓았고, 이제 막 세상에 나서 우리 소개를 시작했다. 앞으로 서사는 ‘책을 읽지 않아도, 책을 읽은 것처럼’ 지식을 쌓고, 위안을 얻을 수 있는 플랫폼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콘텐츠로 도전하는 우리 서사에게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