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UHD 방송 5년째, 그런데 보는 사람이 없다?

김영우 pengo@itdonga.com

[IT동아 김영우 기자] 최근 TV 시장은 예전의 HD급 대비 4배나 정밀한 고화질을 볼 수 있는 UHD급 TV가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대기업 제품은 물론, 중소기업 제품 역시 UHD급임을 강조하는 제품이 많다. KBS, MBC, SBS 등 주요 공중파 방송사도 2017년부터 UHD 방송을 전송하고 있다. 여기 까지만 보면 UHD 방송 콘텐츠가 순항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17년 5월, 공중파 방송사 3사가 지상파 UHD 방송 서비스를 개시했다
2017년 5월, 공중파 방송사 3사가 지상파 UHD 방송 서비스를 개시했다

하지만 현재, UHD 방송의 현실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KBS, MBC, SBS의 UHD 방송을 실제로 보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2022년 현재, 3사는 오로지 지상파로만 UHD 방송을 전송하고 있는데, 국내 전체 TV 시청자 중 지상파를 직접 수신해 방송을 보는 비율은 3% 수준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케이블이나 IPTV, 위성방송 등의 유료방송 서비스를 통해 TV시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5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준 유료방송 가입자는 3645만 9267명에 달했다.

케이블이나 IPTV등을 통해 KBS, MBC, SBS의 방송을 수신하고 있는 시청자는 많지만, 이는 UHD급 이 아닌 HD급으로만 전송이 이루어진다. 공중파 3사 및 유료방송 사업자 사이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UHD급 콘텐츠의 재전송 역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KT 및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의 유료방송 사업자들은 이미 ‘UHD급’ 이라는 이름이 붙은 상품을 팔고 있지만, 5~6개의 전용 채널(스카이UHD, 유맥스 등) 및 일부 VOD에서만 UHD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으며, 공중파 재전송 콘텐츠는 UHD를 지원하지 않는다.

케이블, IPTV 서비스 업체들도 UHD 상품을 내놓았지만 방송 3사의 채널은 HD급으로 제공된다 (출처=KT)
케이블, IPTV 서비스 업체들도 UHD 상품을 내놓았지만 방송 3사의 채널은 HD급으로 제공된다 (출처=KT)

물론 유료방송 이용자라도 지상파 UHD 수신이 가능한 TV에 별도의 안테나를 달아 KBS, MBC, SBS 등의 공중파 방송을 UHD 화질로 보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시중에 팔리는 UHD TV 중 지상파 UHD 수신이 가능한 건 삼성전자나 LG전자와 같은 대기업 TV들 뿐이다. ‘가성비’가 높은 중소기업 UHD TV 중에 지상파 UHD 수신용 ATSC 3.0 튜너를 갖춘 제품은 없다시피 하다. UHD 수신용 안테나 역시 공짜가 아니다.

게다가 위와 같은 조건(대기업 UHD TV 구비, 수신용 안테나 설치)을 모두 갖추었다 해도, 평상시에 셋톱박스로 케이블이나 IPTV를 시청하다가 KBS, MBC, SBS 등을 UHD로 보려면 그때마다 ‘입력 전환’ 버튼을 눌러 TV 수신모드를 전환해야 한다. 이는 특히 전자기기 조작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이나 저연령층에게 적지 않은 불편과 혼란을 줄 수밖에 없다.

UHD 콘텐츠의 전반적인 보급률 역시 지지부진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17년 지상파 UHD 방송을 개시하며 공중파 3사에 UHD 방송을 위한 이른바 ‘황금주파수’ 대역인 700MHz 주파수를 무료로 할당했다. 그리고 UHD급 콘텐츠의 의무편성 비율을 2018년까지 10%, 2020년까지 25% 수준으로 높이도록 했다. 하지만 2020년에 들어서도 각 사의 UHD 편성 비율은 KBS1TV 13.7%, KBS2TV 11.4%, MBC는 10.5%, SBS 12.7%에 불과했다. 시청 가능 인구가 적은데 제작 비용은 많이 드는 지상파 UHD 콘텐츠의 편성 비율을 늘리기는 방송사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에 2020년, 방송통신위원회는 UHD급 콘텐츠의 의무편성 비율을 2022년까지 20%, 2023년까지 25%로 조정했으며, 2021년까지 완료 예정이었던 지상파 UHD 방송망의 지방 확대 계획 역시 2023년까지로 연기했다. 사실상 정책 실패를 인정한 셈이다.

한편, 공중파 방송사들은 자사 콘텐츠 재전송을 통해 유료방송 사업자들이 수익을 내므로 합당한 대가 지불 없이는 UHD 콘텐츠를 유료방송으로 재전송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료방송 사업자들은 오히려 공중파 방송사들이 유료방송 사업자들의 구축한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널리 배포할 수 있는 혜택을 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양쪽의 입장이 평행선을 이루는 가운데, 기존 방송사가 아닌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의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 UHD 콘텐츠를 시청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OTT 서비스는 스마트 TV나 스마트폰, 태블릿 외에도 IPTV용 셋톱박스나 콘솔 게임기를 이용해 손쉽게 접속할 수 있다.

최근의 중소기업 UHD TV는 지상파 UHD 수신 기능을 포기한 대신 스마트 기능을 강조한다
최근의 중소기업 UHD TV는 지상파 UHD 수신 기능을 포기한 대신 스마트 기능을 강조한다

중소기업의 UHD TV 역시 초반에는 지상파 UHD 수신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 받았으나 최근에는 그런 지적이 쏙 들어갔다. 셋톱박스를 연결하거나 TV 자체의 스마트 기능을 통해 UHD급을 포함한 다양한 콘텐츠를 공급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중소 TV 브랜드인 ‘이스트라’의 손정훈 이사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지상파 UHD 수신 기능이 없는 UHD TV라도 HDMI 연결이나 안드로이드TV 기반 스마트TV 기능을 통해 UHD 콘텐츠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며 “이용 빈도가 낮은 지상파 UHD용 튜너를 굳이 탑재하는 것은 개발 비용과 제품 가격을 올릴 뿐, 판매에 아주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UHD 방송 콘텐츠의 보급이 늦어질 뿐만 아니라, 국내 방송사의 영향력 및 경쟁력 저하가 한층 가속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시청자들이 콘텐츠를 선택할 수 있는 플랫폼은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또한 TV를 비롯한 관련 제품들 역시 기존 방송사를 비롯한 전통적 플랫폼을 점차 벗어나는 추세다.

무엇보다 UHD TV를 산 소비자들이 KBS, MBC, SBS를 UHD 화질로 시청하기가 쉽지 않다는 현재의 상황은 누가 봐도 비정상적이다. 이 상태로 몇 년 정도 지나면 KBS, MBC, SBS 등의 기존 방송사 콘텐츠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시청자조차 사라질지도 모를 노릇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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