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주사율 경쟁 돌입한 게이밍 모니터…꼭 필요할까?
[IT동아 권택경 기자] 게임 시장이 코로나19의 수혜를 보면서 함께 급성장한 분야가 게임용 기기 및 장비 분야입니다. 디스플레이 시장도 예외는 아닙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게이밍 모니터 출하량은 1800만 대를 넘었습니다. 1366만대였던 2020년에 비하면 31.7% 늘어난 수치입니다. 2019년에는 772만 대였으니 2년 사이에 두 배 넘는 규모로 성장한 셈입니다.
게이밍 모니터라고 하면 보통 120Hz 이상의 고주사율을 지닌 제품을 말합니다. 주사율은 화면이 1초에 몇 번 깜빡이는지를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모니터 화면은 우리 눈에는 계속 켜져 있는 거처럼 보이지만 사실 1초에 수십 번씩 깜빡이고 있습니다. 60Hz라고 하면 1초에 60번 깜빡이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주사율이 높으면 움직이는 물체나 장면을 더 부드럽고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게임처럼 빠른 움직임이나 화면 전환이 잦은 환경에서 빛을 발하죠.
게이밍 모니터 시장이 커지다 보니 기술 경쟁도 치열합니다. 이제 120Hz로도 모자라서 144Hz, 165Hz 이상인 제품이 기본입니다. 200~300Hz를 넘는 제품까지 시중에 나와 있습니다. 최근에는 초고주사율 제품이나 고해상도와 고주사율을 동시 지원하는 제품도 등장했습니다. 에이수스가 지난달 엔비디아 컴퓨텍스 기조연설에서 선보인 ‘ROG 스위프트 500Hz’라는 제품인데요. 세계 최초 500Hz 고주사율을 지원하는 모니터라고 합니다. 삼성전자도 4K 해상도 모니터 중에서는 처음으로 240Hz 고주사율을 지원하는 ‘오디세이 네오 G8’을 27일 국내에 출시했습니다.
제조사 입장에서 높은 성능 수치는 제품을 차별화하고 높은 가격표를 정당화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이 됩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겐 어떨까요? 주사율이 높을수록 게임에서 반응성을 높여주므로 경쟁형 게임에서 더 좋은 결과를 낼 기회가 많아지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500Hz에 달하는 고주사율이나 고해상도와 고주사율을 동시에 지원하는 제품들은 현재로서는 대부분의 소비자에겐 과할 정도로 ‘오버스펙’인 제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이를 100% 활용할 만한 하드웨어 성능을 갖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주사율 모니터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높은 주사율에 맞춰 빠르게 화면을 그려낼 수 있는 성능을 지닌 컴퓨터가 필요합니다. 즉, 주사율 이상의 초당 프레임 수치(Frames Per Second, 이하 FPS)를 꾸준히 뽑아낼 수 있는 성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최신 게임을 그래픽 품질 타협 없이 FHD 해상도에서 평균 500FPS 이상 혹은 4K에서 평균 200FPS 이상 꾸준히 유지하며 실행할 수 있는 일반 소비자용 그래픽카드는 아직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최상급 그래픽카드인 지포스 RTX 3090이 ‘오버워치’를 그래픽 품질 최상 FHD 환경에서 400대, 4K 환경에서 200대 초반대의 FPS를 뽑아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00%는 아니지만 고주사율 모니터의 성능을 그나마 어느 정도 이끌어낼 수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RTX 3090은 현재 시세 기준으로 가격이 200만 원이 넘는 데다, 오버워치는 출시된 지 6년이 넘은 비교적 낮은 성능을 요구하는 게임입니다. RTX 3090이라도 FHD에서 500에 근접한 FPS를 뽑을 수 있는 현 세대 경쟁형 게임은 ‘오버워치’ 외에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 ‘발로란트’와 같은 소수의 게임밖에 없습니다. 다른 대부분의 환경에서 초고주사율 모니터의 활용도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픽 품질을 다소 희생해 더 높은 FPS를 뽑아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게임을 즐길 때의 시각적 만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고주사율 모니터는 주사율을 높이는 데 집중한 만큼 색표현력, 밝기, 시야각, 해상도 등 디스플레이의 다른 성능 요소가 비슷한 가격대의 일반 모니터보다 다소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승패에 집착하는 성향의 게이머가 아니라면 적당한 주사율의 고해상도, 고품질 화면으로 게임을 즐기는 게 여러모로 더 나은 게임 경험을 할 가능성이 큰 거죠.
개인차는 있지만 고주사율에서 초고주사율로 갈수록 체감할 수 있는 차이가 작아지기도 합니다. 많은 분이 60Hz 모니터를 쓰다 120Hz를 쓸 때는 그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만, 120Hz에서 240Hz로 넘어갈 때는 이전만큼 크지 않다고 말합니다. 일종의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용하는 셈입니다.
당연히 게이밍 모니터를 쓴다고 게임 실력이 절로 향상되는 것도 아닙니다. 주사율이 높더라도 동체시력이나 게임 실력이 받쳐줘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초고주사율 게이밍 모니터는 사실상 일반 소비자가 아닌 프로게이머를 겨냥해 출시된 제품이라고 봐야 합니다. 에이수스는 500Hz 모니터 제품의 패널에 E-TN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E스포츠-TN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스포츠를 위한 제품이라는 걸 분명히 한 겁니다. '발로란트'나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처럼 현존 하드웨어로도 500 내외의 FPS를 뽑아낼 수 있는 종목에서 활동 중인 프로게이머들에겐 충분히 의미 있는 제품일 수 있습니다.
고해상도와 고주사율을 동시에 지원하는 ‘오디세이 네오 G8’와 같은 제품은 미래지향적인 제품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100% 활용하기 어렵지만 조만간 하드웨어가 충분히 발전하면 4k 240Hz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도 있습니다. 당장 올해 하반기 출시가 전망되는 엔비디아의 지포스 RTX 40 시리즈의 최상급 제품과 조합하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해볼 수 있겠습니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