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구독 생태계' 완성한 MS, 무심한 표현 하나에 담긴 의미

권택경 tk@itdonga.com

[IT동아 권택경 기자] 마이크로소프트가 13일 오전 2시(한국시각) ‘엑스박스 & 베데스다 게임 쇼케이스’를 진행했다. 베데스다를 비롯한 마이크로소프트 산하 게임 개발사와 협력사들이 엑스박스 콘솔과 게임 구독 서비스인 게임 패스에서 향후 12개월 안에 선보일 게임들을 발표하는 행사였다.

출처=마이크로소프트
출처=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날 최근 게임 패스 라인업 부실화와 서비스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일각의 목소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수십 개에 달하는 게임을 대거 공개했다. 말로만 하는 설명, 홍보용 CG 영상은 최소화하고 실제 게임 장면이 담긴 영상으로 95분을 대부분 채웠다. 행사 말미에는 최대 기대작이었던 우주 배경 SF 롤플레잉 게임인 ‘스타필드’의 실제 게임 장면이 첫 공개되며 대미를 장식했다.

작지만 눈여겨볼 만한 변화도 있었다. 예고편들 막바지에 나오는 발매 플랫폼 표기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엑스박스 콘솔(Xbox Consoles)’이라는 표현을 썼다. 지난해 게임 쇼케이스 행사에서는 엑스박스 시리즈 X, 엑스박스 시리즈 S, 엑스박스 원 등 세부 모델 이름을 모두 표기했었다. 물론 단순히 긴 글자 수를 줄이기 위한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간 마이크로소프트가 펼쳐왔던 게임 사업 전략을 살펴보면 이는 다분히 의도적인 표기법으로 보인다.

지난해 쇼케이스에서 공개한 '스타필드' 영상(위)에서는 기기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한 데다 공식 로고까지 배치했지만 올해 쇼케이스에서 공개한 '스타필드' 영상(아래)에서는 '엑스박스 콘솔'이라는 모호한 표현만 사용한다. 이날 공개된 다른 모든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출처=엑스박스, 베데스다 공식 유튜브 채널
지난해 쇼케이스에서 공개한 '스타필드' 영상(위)에서는 기기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한 데다 공식 로고까지 배치했지만 올해 쇼케이스에서 공개한 '스타필드' 영상(아래)에서는 '엑스박스 콘솔'이라는 모호한 표현만 사용한다. 이날 공개된 다른 모든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출처=엑스박스, 베데스다 공식 유튜브 채널

전통적인 콘솔 게임 산업에서는 콘솔 게임기 하나가 중심이 되어 생태계를 형성한다. 7~8년 정도의 생명 주기를 마친 후, 세대 교체가 일어나면 또다시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게임이나 일부 주변기기 등이 호환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단절된 생태계다.

‘엑스박스 콘솔’이라는 표기는 이러한 기존 콘솔 게임 산업의 상식으로 따지고 보면 상당히 이상한 표현이다. 소니라면 아마 독점작 트레일러 마지막에 ‘플레이스테이션 콘솔’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일단 플레이스테이션4를 말하는 건지, 플레이스테이션5를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마케팅 측면에서 봐도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인 게임기 명칭을 이렇게 뭉뚱그려 표현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완전히 사정이 다르다. 전통적인 하드웨어 중심 생태계가 아니라 서비스 중심 생태계를 꾸리는 데 완전히 성공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번 세대 엑스박스를 성능과 가격대에 따라 나눠 두 가지 모델로 나눠 출시하는가 하면, 어떤 버전의 게임을 구매하더라도 하드웨어 세대에 맞춰 실행되도록 하는 ‘스마트 딜리버리’를 도입했다. 하드웨어 하나에 생태계를 종속시키는 대신 여러 기기를 사정에 맞게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세대 간 연속성을 강조하며 세대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오는 30일부터 삼성 스마트TV에서도 엑스박스 게임 패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출처=삼성전자
오는 30일부터 삼성 스마트TV에서도 엑스박스 게임 패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출처=삼성전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여기서 더 나아가 PC용 게임 패스 서비스를 확대하고, 클라우드 게이밍을 확대하면서 기기와 플랫폼 구분마저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오는 30일부터는 삼성전자와 손잡고 2022년형 삼성전자 스마트 TV에서 엑스박스 클라우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향후 삼성전자 외에도 다양한 제조사와 협력하며 TV를 활용한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를 점차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엑스박스가 없고 TV만 있어도 엑스박스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엑스박스 콘솔은 엑스박스 생태계의 중심이 아니라, 이를 구성하는 여러 단말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렇게 PC, 콘솔, 클라우드를 넘나드는 생태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마이크로소프트가 처음 공개한 건 지난 2016년이다. 이른바 ‘엑스박스 플레이 애니웨어’ 전략이다. 발표 당시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단일 하드웨어와 독점 콘텐츠로 생태계를 꾸리는 기존 콘솔 게임 시장 전략의 관점으로 보면 독점 콘텐츠를 다른 기기에서도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건 자책골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그때는 게임 패스를 비롯한 마이크로소프트의 큰 그림을 그 누구도 가늠하지 못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2016년 처음 '엑스박스 플레이 애니웨어' 전략을 발표했다. 출처=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2016년 처음 '엑스박스 플레이 애니웨어' 전략을 발표했다. 출처=마이크로소프트

‘스타필드’도 이날 공개된 여느 게임들처럼 마지막에 ‘엑스박스 콘솔, PC, 클라우드’로 플레이할 수 있다고 안내한다. PC나 콘솔은 물론 스마트 TV나 모바일에서도 클라우드로 즐길 수 있다. 심지어는 이전 세대인 엑스박스 원에서도 클라우드로 '스타필드'를 플레이할 수 있다. 굳이 ‘엑스박스 시리즈 X’니 ‘엑스박스 원 X’니 하는 복잡하고 긴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할 필요가 없다. 엑스박스 콘솔들이라는 적당한 표현 하나면 충분하다. 하드웨어는 이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무심한 표현 하나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플레이 애니웨어’ 전략이 마침내 완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글 / IT동아 권택경 기자 (t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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