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문가 시대의 함정

김영우 pengo@itdonga.com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통계학과 후배 교수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30년전에 어렵게 공부하던 과목에 대한 회고가 나오자,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복잡했던 시계열 과목이 경제학과로 넘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통계학과에서는 더 이상 프로그래밍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계만 하기에도 벅차기도 하고 이제는 통계만 잘해도 전문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전문성 추구로 통계만 잘하는 학생을 길러내는 상아탑이라니, 세상에 이런 학생들이 차고 넘치면 어떻게 될까? 자격증과 스펙을 길러내는 교육제도에서는 박사학위를 받는다 해도 특정분야의 인공지능을 하나 길러낸 것과 다를 바 없다.

김동철 메타넷티플랫폼 고문
김동철 메타넷티플랫폼 고문

자동화가 전문성을 갖추면 인공지능이 된다고 볼 수 있겠다. 미래의 인공지능은 현재의 전문적인 분야를 대체할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인공지능이 다재다능하지 못하다는 단점은 상당기간동안 유지될 것이지만 특정분야에서 인간을 넘어서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다. 인공지능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상용화되고 있어서 전문가들이 향유하던 안락의자들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청년 다빈치로 불리는 와카스 아메드는 다재다능 이라는 뜻의 폴리매스(Polymath, 2020)라는 저서에서 전문성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역사적인 인물들의 사례와 함께 제시하였다. 산업화의 부산물로 태동한 전문가들은 짧은 역사를 가질 것으로 예견하고 있으며, 인간은 본연의 호기심을 다방면으로 추구하는 폴리매스 기질을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플로랜스 나이팅게일은 통계학, 신학, 신비주의, 여성과 페미니즘에 정통한 수학자였으나 간호사로만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태생의 카사노바는 변호사, 바이올린 연주자, 의사, 성직자, 사서, 군인 등으로 활약했으나 호색한으로만 알려져 있다. 애덤 스미스는 물리학, 천문학, 법학, 역사, 형이상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 정통했지만 국부론의 저자로만 알려져 있다. 이러한 현상들도 역시 전문성을 강조하는 문화가 교육에 스며든 결과라는 것이다.

태국의 관광지에서 안전 가이드를 하는 젊은이들은 여러 나라의 관광객들을 상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5개국어 정도를 구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이태원에서도 상점의 직원들은 영어가 유창하다. 정규 교육 보다는 몸으로 익힌 것이다. 대학을 나와도 그다지 전문적이지도 않고, 외국어 실력도 변변치 않다면 최고의 교육을 실력보다는 스팩으로만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대학졸업후에 30년간을 직장 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하고나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퇴직 실업자가 되는 구조속에서 폴리매스적인 변화의 요구는 혁신적이기 보다는 온고이지신의 실천이라고 볼 수 있다.

예전의 사람들이 짧은 생애동안 엄청난 지식을 축적한 것은 당시의 지식인들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것이다. 최근의 전문성을 길러내는 교육은 인간의 다재다능한 호기심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현대인의 스트레스의 원인중의 하나일 것이다. 인공지능이 외국어를 배우는 기회를 없애고 있으며, 인간은 외국어의 습득능력을 상실하는 원인이 될 것이다. 또한 외국어를 배워서 사용할 때 느낄 수 있는 성취감과 쾌감도 없어질 것이다.

한가지만 잘하는 전문가의 시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인간은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면서 적응력을 길러왔고, 수많은 질병을 겪어내면서 면역력을 내재해오면서 생존해왔다. 이번에는 인간이 스스로 만든 인공지능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유행 같은 전문성은 생애가 짧고, 현재의 교육은 하나의 전문성만을 추구하고 있다. 길어진 생애와 지식의 접근성이 월등해진 현대에는 다시한번 역사속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글 / 김동철, 공학박사, 메타넷티플랫폼 고문
정리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필자 소개

김동철 메타넷티플랫폼 고문은 고려대학교 통계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학교 대학원 통계학 석사, 숭실대학교 IT정책경영학과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IBM 금융사업본부장(상무) 및 공공담당파트너, 데이터솔루션 대표이사 및 데이터부문장, 티맥스소프트 대표이사 사장을 지낸 바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BigData BLOG 빅데이터 삐딱하게 보기(데이터솔루션, 2015)’, '삐딱하게 바라본 4차 산업혁명(영진닷컴, 2019)', '뉴스를 전합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영진닷컴,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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