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루나·테라…'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은 허상이었을까?

권택경 tk@itdonga.com

[IT동아 권택경 기자]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와 그 자매 코인 루나가 날개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애플 엔지니어 출신 한국인이 만든 암호화폐 프로젝트로 전 세계 주목받으며 한때 암호화폐 시가총액 10위 안에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가상자산 시장 전체를 뒤흔든 뇌관이 됐다.

암호화폐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루나 1개의 가격은 13일 오후 기준 0.00003574달러를 오르내리고 있다. 이달 초만 해도 80달러 선에 머물렀던 루나가 불과 일주일 사이 사실상 휴지 조각으로 전락한 셈이다. 국내 거래소 업비트의 비트코인 마켓에서도 루나는 약 0.00000002비트코인에 거래되고 있다. 1원이 채 안 되는 수준이다.

금리 인상 공포로 증시를 포함한 자산 시장 전체가 추락하고 있긴 하지만, 루나의 낙폭은 그중에서도 이례적인 수준이다. 루나가 이처럼 유독 극심한 폭락을 겪은 건 프로젝트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루나는 신현성 티몬 창업자와 애플 엔지니어 출신 권도형 대표가 설립한 테라폼랩스에서 발행한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USD(이하 테라)의 가치를 떠받치는 데 이용되는 자매 코인이다.

출처=셔터스톡
출처=셔터스톡

스테이블 코인은 변동성이 커 사실상 화폐로 기능하지 못하는 암호화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코인 가치를 달러와 같은 법정화폐 가격과 1:1로 유지하는 게 특징이다. 이렇게 가격을 고정하는 걸 못을 박는 행위에 비유해 페깅(Pegging)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스테이블 코인은 기축 통화인 미국 달러 가격에 페깅돼 있다. 이론적으로 이러한 스테이블 코인 1개의 가격은 항상 1달러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같은 달러 페깅 스테이블 코인이라도 가격을 유지하는 방법은 코인마다 다르다. 가장 흔히 사용되는 방식은 실제 달러나 실물자산 혹은 다른 암호화폐를 담보로 두는 방식이다. 스테이블 코인 중 시가 총액 1위인 테더(USDT)가 달러를 담보로 하는 대표적인 코인이다.

테라는 이러한 담보 대신 알고리즘을 이용해 가격을 1달러로 유지한다. 이때 이용되는 게 바로 루나 코인이다. 루나는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와 달리 채굴로 발행되는 일반 암호화폐다. 달러를 담보로 하는 스테이블 코인이 코인 1개를 1달러와 바꿔주겠다는 약속을 한다면, 테라는 1달러 대신 1달러에 상응하는 가치를 지닌 루나와 바꿔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이렇게 서로를 떠받치며 맞물려 있는 두 코인의 통화량을 공급과 소각으로 적절히 조절하며 가격을 유지하는 구조다. 만약 테라 가격이 1달러 아래로 일시적으로 내려가더라도, 1달러 치 루나를 받을 수 있으니 결국 가격이 다시 1달러에 수렴된다.

다만 이같은 생태계는 어디까지나 테라와 루나의 수요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된다는 전제 하에 성립한다. 그동안 테라폼랩스는 테라를 ‘앵커 프로토콜’이란 일종의 예금에 예치할 경우 연 20%에 달하는 이자를 지급하는 파격적 조건을 내세우며 이를 유지해왔다. 실제로 테라 공급량의 70% 이상이 이 앵커 프로토콜에 예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업계 내에선 테라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만약 테라가 높은 이자율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자율을 낮추면 수요가 줄면서 생태계 전체가 붕괴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통신도 앞선 지난 3월 “몇 년 전 탈중앙 금융(DeFi) 붐이 일었을 때 더 높은 이자율을 제시한 프로젝트들도 있었지만 그들 중 남아있는 건 거의 없다”면서 “테라의 이자율은 3%에서 5.5% 정도의 이자를 지급하는 다른 비슷한 프로젝트들과 비교했을 때 훨씬 높다”며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이달 초 80달러 선이던 루나 가격은 지금 1달러 한참 아래로 떨어졌다. 출처=코인마켓캡
이달 초 80달러 선이던 루나 가격은 지금 1달러 한참 아래로 떨어졌다. 출처=코인마켓캡

이처럼 테라에 대한 우려와 불안이 존재하는 가운데, 테라가 극심한 디페깅 현상을 일으킨 게 동반 폭락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테라는 지난 10일 기준 0.67달러까지 떨어졌다. 가격을 1달러로 유지해야 하는 스테이블 코인으로서의 역할을 못 하면서 신뢰를 잃은 것이다. 이 영향으로 루나도 같은 날 60달러에서 24달러까지 급락을 기록했다. 서로를 떠받쳐줘야 할 두 코인이 오히려 서로를 끌어내리는 죽음의 소용돌이(데스 스파이럴)가 발생한 것이다. 결국 이후에도 폭락을 거듭한 루나는 현재는 사실상 아무 가치가 없는 수준까지 내려앉았다.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는 13일 루나의 상장을 폐지했으며, 국내 거래소들도 상장 폐지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자산 공시 및 평가 플랫폼인 쟁글은 지난 11일 루나에 대한 평가 등급을 기존 A+에서 BB로 강등한 데 이어 13일에는 ‘평가 불가’ 결정을 내렸다. 테라 측이 급락 사태에 대응하며 메인넷(블록체인 네트워크) 운영을 중단함에 따른 것이다. 쟁글은 루나에 대해 “과거에서부터 꾸준히 리스크로 지적되었던 뱅크런(Bank-run) 사태가 발생하였고, 루나의 가격은 -99% 이상 하락하며 단기간 내 회생은 매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출처=쟁글
출처=쟁글

가장 성공적인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 코인으로 평가받았던 테라가 몰락하자, 일각에서는 담보 없이 페깅을 하겠다는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 코인의 발상 자체가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 코인의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목소리도 있다. 쟁글 운영사인 크로스앵글 이현우 대표는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신뢰가 많이 손상된 것은 맞다”면서도 “FRAX와 같은 부분적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은 아직 페깅이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도 디자인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아직 그 한계를 평가하기엔 이르다고 본다”고 말했다.

비록 테라 프로젝트 내부에 이미 리스크가 존재하긴 했으나, 이번 폭락은 특정 공매도 세력에 의해 촉발된 측면도 있다. 이 대표는 “정황상 어떠한 세력이 커브 파이낸스에서 테라를 대량으로 매도해 이 상황을 촉발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후 시장에 공포감이 형성되며 대량 매도가 일어났고, 데스 스파이럴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특정 통화에 대한 세력의 공격이라는 점에서 조지 소로스가 지난 1992년 파운드화 공매도로 영란은행을 굴복시킨 사건이 연상된다는 말들도 나온다.

이번 사태로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규제 논의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미국은 그간 암호화폐 시장에서 기축통화 역할을 하는 스테이블 코인이 달러 패권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며 신중한 태도를 취해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막대한 투자자 피해 등 시장에 충격을 안겨주자 규제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도 지난 10일 미 의회 청문회에서 테라 폭락 사태를 직접 언급하며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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