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웹소설 '시맨틱 에러'의 성공이 검증한 'BL' 장르의 가능성

이문규 munch@itdonga.com

[IT동아]

'거의 모든 이야기는 주인공의 익숙한 세계가 낯설게 바뀌며 시작된다. 매일 똑같은 루틴을 되풀이하며 평온한 매일을 지내던 상우의 삶에 어느 날 갑자기 새빨간 오류 같은 재영이 들이닥친다. 이 낯선 불청객은 상우의 평온한 일상을 온통 헤집어 놓는다. 하지만 차츰 재영에 대한 상우의 감정은 반감에서 호기심, 호기심에서 호감으로 변해간다.'

2022년 올해 BL(Boy Love) 장르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 올린 최고의 화제작, 웹소설 '시맨틱 에러'의 이야기 첫머리다. 상우의 세상에 들이닥친 재영처럼, 웹소설 시장에 낯선 바람이 불어닥쳤다. BL 장르는 생겨난 지 50년이 넘도록 여전히 어둠의 장르에 머물러 있었다. 그 선을 '시맨틱 에러'가 넘어선 것이다.

<출처=리디>
<출처=리디>

웹소설 원작 OTT 드라마 '시맨틱 에러'는 왓챠 시청 순위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화제작이 됐다. BL 장르 드라마로서는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둔 셈이다. 모 영화 잡지의 표지를 두 주연 배우가 장식했고, 이례적으로 공중파 TV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됐다.

흥행 배경에도 관심이 쏠렸다. 일단 '시맨틱 에러'는 이미 수차례 검증된 IP(지식재산권)다. 노블코믹스, 스페셜 애니 등으로 제작될 때마다 원작 웹소설 매출까지 동반 상승하며, 오랫동안 '시에러단'이라는 팬층을 공고히 쌓아왔다. 완성도 높은 IP는 좋은 각색으로 더 빛을 발했다. 에로스는 빼고 담백한 청춘 로맨스로 독자와 시청자에 어필하면서도, 두 주인공의 키 차이 같은 간지러운 디테일까지 빠짐없이 챙겼다.

드라마로 제작된 '시맨틱 에러' <출처=왓챠 유튜브 채널>
드라마로 제작된 '시맨틱 에러' <출처=왓챠 유튜브 채널>

BL이라는 장르가 오래 전부터 많은 독자의 지지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최근 BL 작품은 동시대 독자의 시대관과 윤리의식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등 장르적인 배경까지 논의됐다. 이런 측면에서 '시에러'의 흥행은 전무후무하지만, 조만간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슈인 듯하다.

심지어 '시맨틱 에러'는 작품 자체의 흥행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음지에 머물러야 했던 BL 장르가 빛의 장르로 가는 신호탄을 쐈다. 또 다른 BL 장르 웹툰/웹소설 IP가 잇달아 확장을 시작하며 그 분위기를 증명하고 있다. '신입사원', '을의 연애' 등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고, '유성의 궤도', '소라의 눈' 같은 작품은 웹 애니라는 새로운 시도 위에 올라탔다.

생소하고 낯선 BL 작품의 흥행을 넘어, 장르 전반의 양지화까지 영향을 미친 것은 확실히 이례적인 결과다. 다만 그 배경을 살펴보면 이 이례적 사건은 그저 돌출된 하나의 현상이 아니라, 이전보다 많은 다양성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변화의 표지로 판단된다.

하나의 콘텐츠 장르로서 확립된 BL 웹소설 <출처=리디>
하나의 콘텐츠 장르로서 확립된 BL 웹소설 <출처=리디>

BL 장르뿐만이 아니다. 지금껏 대중화되지 않았던 몇몇 장르가 빛을 발할 새로운 기회가 많아지고 있는 분위기다.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 환경이 일상이 된 이후 고객의 콘텐츠 소비가 확실히 '개인화'로 바뀌면서, 콘텐츠 채널도 이전보다 더욱 다각화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그 변화에 가속이 붙었다. 대중성만큼이나 다양한 개인 취향이 산업의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른 것이다.

이처럼 개인화되는 콘텐츠 소비 환경 속에서, 고객의 다양한 취향은 각 산업 분야의 플레이어들이 개척해 나갈 드넓은 토양이 된 셈이다. 고객의 취향 구석구석을 만족시키고 심지어 고객 자신도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자기 취향까지 재발견할 수 있도록 이후로도 콘텐츠 시장엔 낯선 바람이 끊임 없이 이어지리라 예상한다. 낯섦은 일반적으로, 이야기를 흐르게 하는 원동력이다.

글 / 리디(RIDI) 이재희

정리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

IT동아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Creative commons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의견은 IT동아(게임동아) 페이스북에서 덧글 또는 메신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