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앵글 이현우 대표 "가상자산은 묻지마 투자? 투자자 이해 돕는 서비스 필요"
[IT동아 권택경 기자] 주식 시장에 상장된 회사에는 공시 의무가 있다. 투자자들이 알아야 할 회사의 경영 상태, 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 생기면 숨김없이 사실대로, 빠르게 알려야 한다. 이를 위해 금융감독원이 운영하는 게 전자공시시스템(다트, DART)이다. 시장에 투명성을 더함으로써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요소다. 주식 시장과 달리 가상자산 시장에는 공시 의무가 없지만 다트와 유사한 전자 공시 플랫폼이 존재한다. 바로 크로스앵글이 운영 중인 ‘쟁글(Xangle)’이다.
크로스앵글 이현우 공동대표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15년 차 개발자이자 창업가이다. 2011년도에 모바일 기반 여론조사 서비스 오픈서베이를 창업해 시장에 안착시킨 뒤 엑시트했다. 이후 커머스, 패션 등 다른 분야에 도전했지만,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다 2017년 무렵부터 한국에서 열풍을 일으켰던 암호화폐로 대표되는 가상자산 시장에 주목했다.
“대학 때부터 데이터 분야에 관심이 많았어요. 데이터를 어떻게 사업으로 연결할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했습니다. 오픈서베이도 그 고민 속에서 탄생했고요. 암호화폐를 봤을 때 큰 기회라는 걸 직감했죠. 암호화폐라는 게 자산이자 투자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에는 공공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로서의 성격도 있습니다. 현재의 웹 2.0 시대는 구글이나 아마존, 페이스북 등 서비스를 크게 성공시킨 기업들이 데이터를 독점하는 구조입니다. 데이터 기반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선 일단 서비스를 성공시켜야 하는 구조인 거죠. 반면 블록체인으로 탈중앙화된 웹 3.0 시대가 오면 누구나 데이터 기반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가상자산 시장을 들여다봤을 때, 암호화폐 프로젝트 팀들이 겪는 어려움이 이 대표 눈에 띄었다. 암호화폐 프로젝트 팀들은 초기 스타트업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다. 보통 스타트업이라면 초기 투자는 벤처캐피탈(VC)에서 받는다. 일반 개인 투자자를 만나는 건 충분히 성숙해 규모가 커지고 난 뒤다. 암호화폐 프로젝트는 다르다. 일단 화폐를 발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투자자와의 적절히 관계 설정을 하고, 소통하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다 보니 시세가 떨어지면 이를 방어하려고 단기 호재성 이슈를 남발했다. 프로젝트 성장을 위한 기술이나 제품 개발에는 소홀해진다. 이현우 대표는 이런 모습을 보고 암호화폐 회사들이 투자자와의 소통을 체계화하고 정제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그러다 생각해낸 게 전자공시시스템이었다.
문제는 공시 의무도 없는데 민간 업체가 무작정 공시 플랫폼을 만들어봤자, 프로젝트 팀들이 거기에 올라 탈 이유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먼저 생태계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크로스앵글은 온체인 데이터 분석 서비스부터 만들었다. 블록체인은 모든 데이터를 공유하게 되어 있는데, 이를 분석하면 해당 암호화폐의 지분 구조, 주요 거래내역, 활용도 등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온체인 데이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서비스를 먼저 만든 뒤 여기에 각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이 공시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물론 처음부터 선뜻 참여하지는 않았다.
“프로젝트 팀들을 하나씩 만나서 설득했죠. 암호화폐 시장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공시 시스템이 필요하니, 함께 그 문화를 만들어 보자고요. 지금은 알아서 찾아와 참여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한 곳 설득하는 데 평균 한 달 정도가 걸렸어요.”
쟁글은 신용평가사들이 기업과 채권을 신용평가하듯, 암호화폐에 대한 신용도 평가 서비스도 제공한다. 기술력, 안정성, 확장성, 활성도, 실사용 지표, 탈중앙화 지표, 유통량, 로드맵, 거버넌스 등 수많은 평가 기준을 바탕으로 각 암호화폐 프로젝트의 신용도를 평가한다. 국내 주요 거래소들이 코인 상장을 결정할 때 중요한 참고 자료로 삼는다. 은행연합회도 지난해 특금법 시행을 앞두고 거래소들의 실명 확인 입출금 계좌 발급을 심사할 때 쟁글의 신용도 평가를 참고하도록 했다. 거래소에 상장된 암호화폐들이 믿을만한지, 아닌지 판단할 때 쟁글의 신용도 평가를 보겠다는 뜻이다.
논란도 있었다. 크로스앵글은 상장에 필요한 준비 절차를 도와주는 서비스를 제공했었다. 상장을 원하는 암호화폐 프로젝트 팀들에게 이를 위한 자료 작성, 문서 검증, 근거 자료 실사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라는 게 크로스앵글 측 설명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쟁글이 사실상 상장 브로커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논란을 겪으면서 내부적으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오해를 풀기 위해 홍보를 열심히 할까 고민도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신 공정한 평가를 위한 내부 리서치 역량을 강화하고, 정책을 바꿨습니다.”
크로스앵글은 이전까지 가상자산평가 결과 공개 여부를 프로젝트 팀의 자율에 맡긴 게 문제라고 진단했다. 매우 엄정한 평가를 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프로젝트가 낮은 등급을 받는다. 하지만 등급이 낮게 나오면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좋은 평가를 받은 결과들만 공개되니, 마치 쟁글이 후한 평가를 퍼주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가 일어났다. 이 대표는 “지난해부터는 신용평가 결과는 무조건 공개해야 한다는 조항을 계약 단계에서 넣고 있습니다. 이제는 엄격한 기준의 가상자산평가에서 높은 등급을 받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아시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크로스앵글이 시행착오와 성장통을 겪으며 흔들리는 사이, 쟁글의 대안을 자처하는 후발주자들도 등장했다. 지난해 6월 출범한 비영리단체인 가상자산가치평가원이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시장에서 경쟁은 늘 좋은 것”이라며 “후발주자들이 잘하는 영역들을 보고 더 나은 서비스로 발전하는 밑거름으로 삼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쟁글과 같은 공시 플랫폼이나 가상자산 신용평가 서비스가 등장하며 시장에 투명성을 더하고 있다곤 하지만, 여전히 가상자산 시장은 투자 피해가 빈발하는 복마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상자산 시장에 유독 사기꾼이 많은 탓일까? 이 대표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스타트업도 많지만, 그 뒤에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훨씬 더 많은 스타트업들이 있습니다. 가상자산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없이 많은 암호화폐 프로젝트 중 살아남는 건 소수일 겁니다. 하지만 스타트업 투자는 전문적인 VC들이 분산 투자로 리스크를 최소화하죠. 반면 암호화폐는 누구에게나 투자 기회가 열려있습니다. 그만큼 리스크도 누구에게나 노출될 수밖에 없죠.”
이 대표는 결국 투자자 개개인이 가상자산 시장을 더 깊이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제도적 장치도 한계가 있습니다. 스캠과 같은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하죠. 저희의 공시 플랫폼이나 평가 시스템도 정보를 균등하게 분배하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물론 개인 투자자들이 전문 투자자들만큼 깊이 이해하는 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주식 시장에서도 ‘동학개미운동’ 등을 거치며 투자자들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관련 서비스나 매체들도 많고요. 가상자산 시장도 그런 진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계는 있다고는 하나, 제도도 여전히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암호화폐 시장은 중요한 전환점에 서있다. 곧 들어설 차기 정부는 현 정부보다 암호화폐에 유화적인 동시에, 적극적인 제도 내 편입을 약속했다. 이 대표는 차기 정부가 암호화폐 관련 정책을 만들 때 먼저 업계 의견을 경청하고, 암호화폐라는 분야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규제를 하는 건 필요합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한국 시장이 글로벌 시장의 흐름과 동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부작용을 줄이는 것과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실제 업계에서 다양한 경험을 갖춘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많이 반영해야 합니다.”
2018년 문을 연 크로스앵글은 올해로 3년을 넘겼다. 이 대표는 가상자산 시장에 없었던 공시와 평가라는 문화를 밑바닥부터 쌓아 올렸다는 점에서 큰 자부심을 느낀다는 소회를 밝혔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동안 쌓아 올린 전문성과 역량을 바탕으로 쟁글을 종합 암호화폐 정보 서비스로 키워나갈 예정이다. 이른바 쟁글 2.0이다. “현재 내부 리서치 역량과 더불어 데이터 처리 인프라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의 판단을 돕기 위해 쟁글을 다양한 각도의 데이터를 통합해 제시하는 플랫폼으로 발전 시켜 나가려고 합니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