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파편화, 1인 가구 시대…늘어난 '계정 공유' 안 막나, 못 막나

권택경 tk@itdonga.com

[IT동아 권택경 기자] 넷플릭스가 지난 16일 칠레, 코스타리카, 페루 남미 3개 국가에서 하위 계정 기능을 시범 도입한다고 밝혔다. 소정의 비용만 내고 다른 사람의 계정에 더부살이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한 가구 내에서만 계정을 이용하도록 한 현행 약관을 무시한 채 이뤄지고 있는 계정 공유 사례 중 일부를 수익으로 연결하기 위해 일종의 절충안을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가입자 증가 둔화와 이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는 넷플릭스는 만연한 계정 공유 사례를 그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넷플릭스는 최상위 요금제인 프리미엄을 기준으로 최대 4명이 동시접속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동시접속을 허용하는 건 가구 구성원, 즉 동거인을 위한 것이며 그 외 타인에게 계정을 공유해서는 안 된다고 약관에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용자들은 이런 약관을 무시하고 계정을 공유하며 요금 부담을 아끼는 길을 선택하는 게 현실이다. 4명이 요금을 나눠 낼 경우, 동시접속이 불가능한 기본 요금제보다 낮은 가격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매지드(Magid)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20년 말을 기준으로 넷플릭스 이용자 중 33%가 적어도 1명 이상의 사람과 비밀번호를 공유하고 있다.

국내나 넷플릭스 외 다른 OTT(온라인 기반 콘텐츠 제공 서비스, Over The Top) 상황을 살펴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1 디지털전환시대 콘텐츠 이용 트렌드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 온라인 콘텐츠를 이용하는 전국 15~59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계정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이용자는 87.2%이며, 이들 중 51.6% 가족 외 타인과 계정을 공유하거나, 공유받고 있다.

출처=피클플러스
출처=피클플러스

이렇게 OTT 계정을 공유하고자 하는 수요가 많다 보니 계정 공유를 중개하는 플랫폼도 등장하고 있다. 계정을 공유할 짝을 찾아주고, 요금 정산도 대신해주는 대신 수수료를 받는 식이다. 현재 국내에서만 피클플러스, 링키드, 그레이태그, 벗츠, 위즈니 등의 계정 공유 플랫폼이 운영되고 있다. 이중 피클플러스는 이용자가 20만 명을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계정 공유 수요가 증가하는 배경에는 OTT 경쟁 심화로 인한 파편화가 자리잡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이용할 수 있는 주요 OTT 서비스 중 월간 유료 구독 요금제를 운용하는 곳만 해도 유튜브,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디즈니+, 애플 TV+, 왓챠, 웨이브, 티빙, 시즌, 유플러스모바일TV, 라프텔 등 11곳이 있다.

OTT마다 콘텐츠 구성이 다른 데다, 구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오리지널 콘텐츠나 독점 콘텐츠를 강화하는 추세라 원하는 콘텐츠를 다 즐기려면 여러 플랫폼을 이용하는 게 불가피하다. 콘진원 조사에 따르면 유료 구독 중인 플랫폼 평균 개수는 2.69개였다. 구독 하나로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는 OTT 플랫폼의 장점이 퇴색하고 있는 셈이다. 전체적인 구독 비용 상승과 여러 앱을 이용해야 하는 점도 이용자 경제적 부담과 정서적 피로를 높인다. 이른바 ‘구독 피로’다.

웨이브의 2022년 오리지널 작품 라인업. 출처=콘텐츠웨이브
웨이브의 2022년 오리지널 작품 라인업. 출처=콘텐츠웨이브

국내 OTT 업체들은 계정 공유 플랫폼이 OTT 서비스 약관을 위반하는 게 맞다면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 사업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고, 오히려 이용자 저변을 넓히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계정 공유를 빌미로 돈을 받은 뒤 잠적하는 ‘먹튀’ 사례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플랫폼들을 긍정 평가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거나, 계정 공유 플랫폼들이 매출에 악영향을 준다는 판단이 선다면 태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국내 한 OTT 업체 관계자는 “당장 조치를 취할 계획은 없지만 주의 깊게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글로벌 OTT 서비스들이 먼저 움직임을 보인다면 국내 업체들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1인 이용자에게 불리한 요금제 설계도 이용자들을 계정 공유로 이끄는 요인이다. 넷플릭스, 왓챠, 티빙, 웨이브 등은 플랫폼마다 차이가 있지만 저가 요금제에서는 동시접속 회선을 1개로 제한하고, 고가 요금제에서는 동시접속 회선을 4개까지 지원한다. 그런 점에서 저가 요금제는 1인 이용을, 고가 요금제는 4인 가구를 상정하고 설계한 요금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동시접속 회선뿐만 아니라 화질이나 이용 기기에도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저가 요금제에서는 화질을 FHD나 HD 이하로 제한하거나, 스마트 TV 앱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식이다. 4K 고화질로 콘텐츠를 즐기거나 큰 TV에서 콘텐츠를 즐기고 싶다면 1회선만 사용하더라도 고가 요금제에 가입하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다. 1인 가구 입장에서는 화질 때문에 4인용 요금제 가입을 강요받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요금제에 따라 동시접속 회선뿐만 아니라 화질이나 이용 가능 기기에도 차이를 두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티빙 요금제 구성. 출처=티빙
요금제에 따라 동시접속 회선뿐만 아니라 화질이나 이용 가능 기기에도 차이를 두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티빙 요금제 구성. 출처=티빙

OTT 업체들은 이 같은 요금제 설계가 1인 이용자를 홀대하거나, 화질에 동시재생 회선수를 끼워팔려는 의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요금 구분은 기본적으로 트래픽 이용량에 따라 나눈 것이며, 그에 따라 화질, 동시재생 회선 수가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4인 가구 이용을 상정한 고가 요금제에 혜택이 집중되는 현재의 요금제 설계는 인구통계학적 현실과 괴리가 크다.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 주민등록 1인 가구는 825만 7439가구로 전체 가구의 40.1%에 달했으며, 4인 가구는 19.0%에 불과했다. 고가 요금제를 100% 활용할 수 있는 가구 비중이 갈수록 줄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1인 가구 비중은 꾸준히 늘어 사상 처음 40%를 돌파했다. 더욱 더 많은 이용자가 계정 공유에 눈길을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들도 현실에 맞는 요금제 다각화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이동통신 요금제도 현재 굉장히 다양한 요금제가 나와있지 않나. OTT도 시장이 커지고 좀 더 자리잡으면 다양한 수요에 맞는 다양한 요금제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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