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 스타트업] 지브레인 "머스크의 뉴럴링크? 저희 기술이 더 뛰어납니다"
[IT동아 권택경 기자] 지난 2019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기습적인 반도체 분야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소부장 공급이 막히면서, 국내 반도체 산업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당시 정부는 이 위기를 소부장 국산화와 다변화로 돌파하고자 했다. 이에 소부장 독립을 선언하고, 이듬해인 2020년에는 소부장 기업 육성, 특화단지 조성 등의 내용을 담은 ‘소부장 2.0 전략’도 수립했다. 수출 규제 사태가 특정 국가에 소부장 공급을 의존하는 산업 구조로는 안정적 성장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이러한 흐름의 일환으로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2020년부터 ‘소부장 스타트업 100’이란 이름으로 소부장 기업 육성 사업을 펼치고 있다. 소부장 자립에 기여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매년 20개씩 선정해, 오는 2025년까지 100개 기업을 육성하는 게 목표다. 선정된 기업들은 사업화 자금, 멘토링, 연구개발 등을 지원받는다.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는 이 ‘소부장 스타트업 100’ 사업 첫해부터 꾸준히 주관 기관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도 최종 8개 기업을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8개 기업 중 융합바이오 분야 우수 기업으로 뽑힌 지브레인(Gbrain)을 만나봤다.
미래 기술 BCI의 한계, 신소재 ‘그래핀’에서 해법을 찾다
지난해 4월 전 세계 눈길을 사로 잡은 원숭이가 있다.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스타트업 ‘뉴럴링크’가 공개한 영상 속 원숭이다. 이 원숭이는 영상에서 별다른 입력장치 없이 생각만으로 간단한 컴퓨터 게임을 조작했다. 이렇게 원숭이가 생각만으로 게임을 할 수 있었던 건 뇌에 이식한 컴퓨터 칩 덕분이다. 원숭이가 게임을 조작하고자 할 때 뇌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신호를 칩이 직접 읽어낸 것이다. 이렇게 뇌와 컴퓨터가 직접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장치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 BCI)라고 한다. 범주를 컴퓨터에 한정하지 않고 뇌-기계 인터페이스(Brain-Machine Interface, BMI)라고도 부른다.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일론 머스크의 이름값 덕분에 더 관심을 받긴 했지만, 이런 시도는 뉴럴링크가 유일하지도 않고 처음도 아니다. BCI 연구는 이미 70년대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다. 특히 의료 분야에서의 연구가 활발하다. BCI로 뇌파를 읽어 뇌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뇌로 직접 조종하는 전기 의수나 의족 등 인공 신체도 실현 가능하다. 하지만 이를 실제 상용화가 가능한 수준까지 구현하려면 아직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먼저 뇌에 심는 전극의 생체 안정성을 확보하는 게 필수적이다. 기존에 흔히 사용되던 방식은 전극을 뇌에 찔러넣는 방식이다 보니 혹시 인체에 미칠지도 모를 악영향, 즉 생체독성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실제로 최근 뉴럴링크의 실험에 동원된 원숭이 23마리 중 15마리가 후유증으로 폐사했다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지브레인 양성구 대표는 전극을 뇌에 직접 심어넣는 방식에서 비롯한 뇌 세포 손상, 생체독성 등이 문제가 됐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양성구 대표는 그런 점에서 지브레인이 뉴럴링크보다 뛰어난 솔루션을 지녔다고 자부한다. 그는 현직 인천대학교 생명공학부 교수이자 이 분야 전문가다. 학교에서도 뇌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료기기를 만드는 일을 했었다. 본인의 전공 및 연구 분야를 그대로 사업화한 셈이다. 공동 대표를 맡은 김병관 대표도 분자생물학을 전공하고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원 지냈으며, 셀트리온에서 기획·제조 업무를 담당한 전문가다.
기술력에 대한 이들의 자부심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지브레인은 기존 전극의 한계를 그래핀 소재 전극로 극복한다. 사명도 ‘뇌 속의 그래핀(Graphene in Brain)’이란 말에서 따왔다. 그만큼 핵심이 되는 기술이다. 그래핀은 가볍고 튼튼하면서도 유연하고 전도율도 높다.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는 신소재다. BMI 분야에서도 역시나 활용도가 높다. 그래핀으로 만든 지브레인의 전극은 뇌세포에 직접 찔러 넣는 대신 뇌 표면에 있는 뇌막 위에 얇게 펼치는 형태다. 뇌세포를 관통하지 않기에 안전하면서도 높은 해상도로 뇌파를 기록할 수 있다.
이렇게 전극이 읽어들인 뇌파는 두개골 바깥에 위치한 초소형 무선통신 칩으로 전송된다. 이 칩은 아날로그 형태의 뇌 신호를 컴퓨터가 처리할 수 있는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의료기관에서 분석하면 뇌 질환을 진단하는 게 가능하다. 뇌에 이상이 있으면 뇌파도 정상 뇌파와는 구별되는 특이한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지브레인은 이처럼 그래핀 전극과 무선통신 칩이라는 핵심 기술을 중심으로 뇌 질환을 상시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뇌 질환 올인원 케어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그래픽 전극과 초소형 무선통신 칩으로 수집한 데이터는 손목 밴드 형태의 기기로 전송해 저장한다. 이를 의료기관에 제출하면 빠르고 간단하게 진단할 수 있는 방식이다.
뇌파 데이터를 손목에 착용한 기기로 전송할 때 인체통신을 활용한다는 점도 지브레인만의 기술적 차별점이다. 인체통신이란 생체 전류를 이용해 데이터를 전송하는 기술이다. 인간의 몸이 하나의 통신 회로가 되는 셈이다.
‘올인원 케어’라는 명칭처럼 지브레인의 솔루션은 진단뿐만 아니라 치료까지 한 번에 가능하다. 먹는 약이나 별도의 외과 시술없이 치료 효과가 있는 전기자극을 전송하는 방식이다. 이른바 ‘전자약’이다. 치료 자극 프로그램을 손목 밴드에 입력해두면, 증상이 발현했을 때 치료 자극을 즉각 적용할 수 있다. 효과도 순식간에 나타난다.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발작을 일으키며 몸을 가누지 못하던 쥐에게 치료 자극을 가하자 순식간에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2019년 8월 창업한 지브레인은 현재 뇌 질환 올인원 케어를 사업화하는 걸 목표로 연구 개발에 한창이다. 현재 인천 남동인더스파크에 올해 3월 완공을 목표로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우수 의약품 제조·관리 기준) 인증 시설을 짓고 있으며, 식약처 인증 절차가 마무리된 이후인 올해 말 즈음부터는 임상시험을 시작할 예정이다.
기나긴 임상시험을 과정 거쳐 인증을 받아야 비로소 그 결실이 세상에 빛을 보는 바이오 산업 특성상 당장 상용화가 가시권에 들어있지는 않지만, 그 잠재력은 상당하다. 뇌졸중, 뇌전증, 파킨슨병 등 뇌 질환 치료에 이용되는 전자약은 현재 뇌 심부 자극기(Deep Brain Stimulator, DBS), 반응형 신경자극기(Responsive Neurostimulation, RNS), 경두개 자기 자극기(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 TMS), 미주 신경자극기(Vagus Nerve Stimulator, VNS) 등이 시중에 있다. 시장조사기관 리포트링커에 따르면 이를 모두 포함하는 신경자극기의 전 세계 시장 규모는 지난 2020년 기준 72억 달러(약 8조 6천억 원)이었으며, 오는 2027년까지 약 156억 달러(18조 8천억 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 전자약들은 아직까지는 비용 부담이 높고 심각한 부작용 사례가 잦다. 이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는 사실상 가망이 없는 중증 이상의 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브레인은 현재 구상하고 있는 뇌 질환 진단 및 치료 솔루션이 완성되면 이러한 비용 부담과 부작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래핀이라는 소재 특성을 활용해 주사기 주입 방식 시술을 개발함으로써 전극을 심을 때 필요한 복잡한 외과 수술도 간소화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뇌 질환 치료용 의료기기 시장의 국산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서울창조경제센터가 융합바이오 분야 우수 소부장 스타트업으로 지브레인을 선택한 것도 이런 잠재력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양성구 대표는 지난해 소부장 스타트업에 선정된 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선정 소식이 알려지자 여러 곳에서 관심을 갖고 연락을 해왔다. 그 관심이 투자로도 이어져, 30억 원 규모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투자형 기술개발 사업인 ‘스케일업 팁스(TIPS)’에도 선정됐다.
지브레인은 당장은 뇌 질환 진단 및 치료용 의료기기 시장을 개척하는 게 목표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너머까지 내다보고 있다. 뉴럴링크가 공개한 원숭이처럼, 지브레인의 BCI 기술을 활용하면 사물을 뇌로 직접 조종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생각만으로 외부기기를 제어하거나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쌍방향 신경 인터페이스를 우리 산업통상자원부는 ‘브레인 투 엑스(Brain to X, B2X)라고 지칭한다. 생각만으로 집에 있는 전자제품을 조작하거나,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도 언젠가는 가능해질 수 있다.
하지만 당장 이 기술의 수혜를 가장 크게 누릴 수 있는 건 장애인들이다. 뇌 신경과 직접 연결할 수 있는 인공 신체 기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의수나 의족은 물론이고, 음성이나 청각, 시각 등도 언젠가는 대체할 수 있다. 실제로 지브레인은 지난 2020년부터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하는 ‘알키미스트 프로젝트’ 일환으로 ‘음성의사소통을 위한 완전이식형 폐회로 Brain to X 개발’이라는 과제에 참여하고 있다. BCI를 활용해 듣거나 말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실현된다면 귀에 있는 수신기가 음성을 뇌로 직접 전달하거나, 턱에 있는 스피커 형태 장비가 뇌파를 읽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재생하는 것과 같은 일도 가능해진다. 서울대, 연세대, 강원대, 고려대, 인천대 등이 공동 참여하고 있는 이 과제에서 지브레인도 한축을 맡고 있다. 알키미스트(Alchemist, 연금술사)라는 프로젝트 이름처럼 성공하면 혁신적 결과를 불러오지만, 매우 도전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현재 음성을 뇌파로, 뇌파를 음성으로 변환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가능성을 확인한 단계다. 앞으로 해상도를 높이고, 변환 과정을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한다면 과제 달성이 눈앞까지 다가온다.
양성구 대표와 김병관 대표는 B2X와 같은 기술이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보급될 수 있으려면 더 많은 기업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직까지는 B2X를 위해 뇌에 전극과 칩을 심는 시술을 선뜻 받을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일부에선 이러한 시술 부담을 이유로 두개골 외부 장치를 활용하는 방법도 고안 중이지만 절연체인 두개골을 사이에 두고 있는 한, 한계가 명확하다. 결국 시술을 감수할 만큼 일반 대중들이 얻을 수 있는 혜택이 커질 수 있도록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B2X로 사물을 조절하는 기술들은 아무래도 제반 기술들이 조금 더 있어야 합니다. 저희만으로는 부족하죠. 그래서 저희는 뉴럴링크와 같은 회사들이 더 많이 생기길 원합니다. 대중들의 인식 개선, 기술 발전을 같이 해나가야 합니다. 그러는 동안 저희도 저희 나름대로 의료기기 분야에서 안정성과 기술력을 쌓을 계획입니다. 그러다 보면 대중들도 이 기술을 필요로 할 날이 생각보다 금방 올 것이라 믿습니다.” 김대표 말에 이어 양성구 대표가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덧붙였다. “경쟁에서 항상 앞설 자신이 있기 때문에 따라오는 주자들이 많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