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넷플릭스의 '전략적 파트너십', "K콘텐츠 노하우가 곧 경쟁력"
[IT동아 정연호 기자] ‘오징어게임’ 현상은 세계 속 한국 콘텐츠의 위치를 그대로 보여준다. 드라마, 영화, 음악, 웹툰 등의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따라, 넷플릭스도 한국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는 중이다. 2015년부터 5년간 7700억 원을 투자했는데, 지난해 한국 콘텐츠 제작에 넷플릭스가 쓴 돈만 5500억 원이다.
오늘 19일, 넷플릭스는 25편의 새로운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를 공개했다. 지난해에 비해 10편이 늘어난 규모다. 전 세계 넷플릭스 회원들의 한국 콘텐츠 시청 시간은 지난 2년 동안 6배 이상 증가했으며, 넷플릭스 콘텐츠 중 가장 많은 회원이 시청한 오징어게임은 시청 시간의 95%가 해외에서 발생했다. 오징어게임은 한국, 미국, 브라질, 프랑스, 터키 등94개국에선 가장 많이 본 작품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넷플릭스는 세계에서 통하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전략적인 파트너’로 한국을 택한 것이다.
이는 넷플릭스에만 ‘이득’이 되는 장사가 아니다. 한국이 넷플릭스와의 협력을 통해 얻는 경제적인 효과도 크다. 작년 9월 딜로이트 코리아가 발표한 ‘넷플릭스 코리아의 사회 경제적 임팩트 보고서’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지난 5년 동안 한국 콘텐츠에 투자하면서, 약 5.6조 원의 경제적인 파급효과를 만들고 1.6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동안의 노하우로 '한국스러운 작품을'
넷플릭스의 2022년 공개 예정작은 다음과 같다. ‘지금 우리 학교는’, ‘소년심판’, ‘종이의 집: 공동 경제구역’, ‘안나라수마나라’, ‘인간수업’ ‘글리치’, ‘택배기사’, ‘모럴센스’, ‘카터’, ‘서울대작전’, ‘정이’, ‘20세기 소녀’ 등 총 25편이다. 이 중에서 눈에 띄는 작품들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1월 28일 공개되는 기대작은 ‘지금 우리 학교는’이다. 사건의 시작은 학교에 퍼진 좀비 바이러스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학생들은 좀비로 변하게 된다. 좀비로 가득 찬 학교에 고립된 학생들은 살아남으려면 좀비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그렇지만, 좀비들은 그들이 방금 전까지 학교생활을 함께 한 친구들이다. 극한의 상황에서 사실적인 묘사와 세심한 심리묘사로 인기를 끈 주동근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만든 작품이다. 드라마 ‘더킹 투하츠’, ‘베토벤 바이러스’, ‘다모’ 등을 연출한 이재규 감독과 ‘추노’ 등의 극본을 담당한 천성일 작가가 작품을 맡았다. 여기에, 박지후, 윤찬영, 조이현, 로몬, 유인수, 이유미, 임재혁 등이 출연한다.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인기를 끈 웹툰 ‘안나라수마나라(작가 하일권)’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공개된다.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애어른 ‘윤아이’와 어른임에도 아이로 남고 싶어 하는 마술사 ‘리을’의 만남이 감성적인 분위기로 재구성된다. ‘이태원 클라쓰’ 성공시킨 김성윤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한류스타 지창욱과 드라마 ‘괴물’에서 섬세한 연기를 펼친 최성은, 그리고 황인엽 등이 출연한다.
모든 게 완벽하지만 남에게 알릴 수 없는 성적 취향을 가진 남자와 그의 비밀을 알게 된 여자의 로맨스를 신선하게 그린 영화 ‘모럴센스’도 2월 11일날 공개된다. 인기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드라마 ‘사생활’에서 변장술을 잘하는 사기꾼을 연기한 서현과 ‘제발 그 남자 만나지 마요’, ‘이미테이션’에 출연한 이준영이 작품의 주연을 맡았다.
셀럽파이브가 넷플릭스에도 등장했다. 김신영, 송은이, 신봉선, 안영미로 이뤄진 ‘셀럽 파이브’는 2018년에 타이틀곡 ‘셀럽이 되고 싶어’로 데뷔한 프로젝트 그룹이다. 넷플릭스 단독쇼를 제안받은 뒤, 무대를 꾸미기 위해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모습을 ‘셀럽은 회의 중’으로 공개한다. 진짜처럼 만들어진 가짜 다큐멘터리 ‘페이크 다큐’ 형식을 빌려, 실제 무대보다 더한 기발하고 재미난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범인은 바로 너’, ‘투게더’, ‘신세계로부터’ 등으로 넷플릭스 코리아의 예능작을 만들어온 컴퍼니상상이 제작하고, ‘박나래의 농염주의보’, ‘이수근의 눈치코치’ 등을 기획한 김주형 PD가 셀럽파이브와 공동 기획했다.
경쟁을 통한 스트리밍 생태계 확장… “모든 것은 콘텐츠에 달려 있다”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 강동한 총괄 VP는 19일 한국 콘텐츠 라인업에 대한 비대면 화상 Q&A세션을 진행했다. 그는 “지난해는 꿈만 같은 한 해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부담보단 앞으로에 대한 기대로 차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에 넷플릭스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역으로 생각하면, ‘코로나19 이후의 성장동력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강동한 VP는 “OTT를 보는 사람보다 보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다. 업체 간 경쟁이 심해지더라도 시장은 더 커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발굴되지 못한 작품이 알려질 기회를 얻게 되고, 고객에겐 좋은 콘텐츠가 더 많이 제공되는 것이다. 이는 다시 작품에 대한 투자로 이어지고, 선순환이 시작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넷플릭스 경쟁력을 한국 콘텐츠 생태계와 협력해온 지난 6년간의 경험으로 꼽았다. 해외에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 콘텐츠를 다른 나라에서 서비스하는 것. 모두 많은 역량을 요구하는 일이다. 더빙만 하더라도 해당 나라의 문화를 자세하게 분석해야 자연스럽게 녹음이 된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오리지널 드라마뿐 아니라, ‘모럴센스’처럼 넷플릭스가 기획과 제작에 참여한 영화도 확대할 계획이다.
앞으로 넷플릭스는 다양한 IP 확장 실험도 시도한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기묘한 이야기’는 모바일 게임으로 만들어졌으며, 오징어게임 IP를 활용한 공식 굿즈도 출시했다. 극장에서 넷플릭스 영화를 개봉하기도 했다. 넷플릭스는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게임 서비스를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콘텐츠를 가장 잘 소비할 방법을 발견하면 이를 확인하기 위한 실험에 나선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넷플릭스가 성장의 시기만 보낸 것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정치권과 대중의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망 이용료, 요금 인상, 저작권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쌓여 있는 상황이다. 강승환 VP는 “한국 콘텐츠의 투자 규모와 서비스 이용 요금은 망 이용료와 별개의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CP와 ISP(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의 역할은 다르다고 말했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건 넷플릭스와 같은 CP(콘텐츠제공자)가, 이를 전송하는 건 ISP가 맡아야 한다는 뜻이다. 고객에게 최선의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논의를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하지만, 각자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빠른 시일 내로 해결이 어려워 보인다.
또한, 콘텐츠 제작사가 성공에 비례한 보수를 받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가 됐다. 강 VP는 “넷플릭스는 월정액 서비스라서, 구독료를 내면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볼 수 있다. 콘텐츠마다 성공과 실패를 정량적으로 책정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넷플릭스는 광고나 PPL에 제한받지 않고, 기획 의도를 작품에 모두 반영하도록 제작비를 100% 지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존의 성공이 추후 시즌이나 다음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자연스럽게 반영이 돼서 보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저작권 침해 이슈도 골치 아픈 숙제다. 넷플릭스 코리아는 ‘콘텐츠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커뮤니티에 소통을 하기 위해 작품을 인용하거나, 사업적으로 크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느슨하게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창작자에게 피해가 가거나, 오징어게임의 이미지가 망가지지 않는 이상, 그리고 마케팅 관점에서 도움이 된다면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간다는 것이다.
글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