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에 기생하는 'N번방'의 늪", N번방 방지법이 놓친 것은?
[IT동아 정연호 기자]
“N번방은 사회의 무관심을 먹고 자란다"
성범죄에 관대한 사회가 여성들을 성범죄, 성착취에 내몰았다는 뼈 아픈 지적이다. N번방 사건을 돌이켜 보자. 시작은 당시 대학생이었던 ‘추적단 불꽃’이 탐사보도 공모전에 낸 텔레그램 N번방 기사였다. 그 이후로, <한겨레>가 2019년 11월에 N번방을 보도했지만, 이에 관심을 기울인 언론사는 드물었다. 여성을 향한 성범죄에 무관심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현실이다. 이에 커뮤니티와 SNS, 국민청원을 중심으로 N번방을 공론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그 덕분에 N번방은 사회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N번방 사건은 SNS 텔레그램을 중심으로 발생한 디지털 성범죄, 성착취 사건이다. 조주빈을 비롯한 성착취 사건의 가해자는 해외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이용해 피해자에게 성착취 영상을 찍게 했고, 이를 다른 이용자와 거래했다. N번방은 닉네임 ‘갓갓’이 운영한 방이며 닉네임 ‘박사’ 조주빈이 운영한 것은 ‘박사방’으로, N번방 자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지난해 5월 N번방 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이달 10일부터 시행됐다. 2년이란 시간 동안 우리 사회는 N번방이란 늪에서 빠져나왔을까? 이와 관련한 쟁점들을 하나씩 짚어 본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찰’은 존재해선 안 된다”
N번방 방지법은 하루 이용자 10만 명 이상 또는 연 매출 10억 원 이상의 부가통신 사업자에게 이용자가 불법촬영물을 유통하는지 사전에 확인하도록 정한다. 네이버 공개 블로그나 카카오 오픈채팅방, 그리고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 등 대중이 볼 수 있는 공개 게시판이 적용 대상이다. 통신과 비밀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카카오톡 대화방(1대1 톡, 단체톡)과 텔레그램처럼 사적 대화방은 적용되지 않는다.
법 시행과 함께 논란이 됐던 부분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쟁점이었다. 이에 윤석열 대선 후보는 페이스북에 “N번방 방지법은 제2의 N번방 범죄를 막기엔 역부족인 반면, 절대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에게 ‘검열의 공포’를 안겨줍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고양이 동영상’도 검열에 걸려 공유할 수 없었다는 제보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고양이 등 일반 영상도 검열, 차단된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사진의 문구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동영상을 업로드할 때 방심위가 심의·의결한 불법촬영 영상에 해당하는지를 기계적으로 확인한다는 걸 안내하는 문구다. (방통위가) 확인해본 결과 해당 고양이 영상(or 사진)은 차단된 바 없다”고 밝혔다.
필터링 방식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제공하는 불법촬영물 등의 디지털정보 DB와 공개 서비스에 업로드되는 디지털 특징 정보(영상의 내용을 확인할 수 없도록 디지털 특징 정보로 치환한 형태)를 비교하여, 일치하는 경우 게재를 제한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사업자는 정부에서 제공하는 기술을 적용하거나, 성능 평가를 거친 자체 기술을 이용할 수 있다.
이용자들 사이에선 ‘필터링 과정으로 인해 이용 시간이 지연되고, 불법촬영물을 올린 것도 아닌데 이용 제한을 당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동영상이나 움짤은 메시지보다 용량 단위가 크기 때문에, 업로드되는 시간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방통위는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 프로필 사진을 게재한 이후로 불법촬영물 검열 때문에 이용 제한을 당했다는 주장이나, 불법촬영물 제한을 테스트 하려고 여성 BJ 사진을 올렸다가 이용 제한을 당했다는 말이 나오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위와 같은 사례는 카카오의 운영정책을 위반했다고 신고됨에 따라 제재를 받은 것이지, 불법촬영 필터링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한편, 필터링 행위 자체가 검열과 다름없다는 문제 제기도 나오는 상황이다. 방통위는 “헌법상 금지되는 검열은 행정권이 주체가 돼 사상과 의견이 발표되기 이전에 예방적으로 하는 조치로, 그 내용을 사전에 심사하거나 선별하는 절차를 거쳐야 성립된다. 비교 식별 기술은 불법촬영물의 특징 정보 DB와 영상의 특징 정보를 기술적으로 비교하고, 불법촬영물 여부만 검사한다. 내용을 사전 심사하는 것이 아니므로 검열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방통위에 따르면, 통신비밀보호법상 금지되는 ‘감청’은 송수신 중인 정보의 내용을 당사자 동의 없이 파악하거나 녹취하는 걸 뜻하는데, 이용자가 업로드한 영상의 특징 정보만을 기술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감청에 해당하지 않는다.
업계 관계자는 공개된 영역에서 플랫폼이 혐오, 선정적인 콘텐츠를 필터링을 하거나 신고가 접수될 때 제재하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전했다. 카카오 오픈채팅방 같은 경우엔 운영정책을 통해서, 문제가 접수되면 최대 영구정지까지 조치를 가한다. 플랫폼마다 이용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마련돼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이에 대해선 반론도 존재한다. 국가가 사업자들의 기술을 통해서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한다면, 그것 역시 억압적인 국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기술을 책임 회피에 사용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법안의 실효성이 문제다”
텔레그램 등 해외 플랫폼, 메신저 사업자가 규제 대상에서 빠져 ‘사각지대’가 생겼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N번방은 텔레그램과 같은 사적 대화방에서 시작된 사건인데, 사적 공간을 규제하지 않고 국내 플랫폼 부담만 늘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외사업자라고 해서 법안이 적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카카오톡의 사적 대화방이 법 적용 대상이 아니듯, 텔레그램이 제외된 이유는 사적 대화방이기 때문이다. 국내외 사업자 모두 공개 게시판에선 불법촬영물을 필터링해야 한다. 방통위 관계자는 “사적 대화방을 통한 불법 촬영물 거래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상 외부에서 사찰이 불가능하다. 이는 경찰 수사와 신고를 통해서 대처할 수밖에 없는 한계점이 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경찰과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사건에 대응할 것이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는 “사적공간을 확인하지 않는다는 지적은 완전히 개인적인 공간을 겨냥한 게 아니다. N번방 방지법의 취지에 맞게 불법적인 영상을 유통하는 ‘문제가 있는 채팅방’에도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모든 개인 채팅방을 확인하자는 게 아니라 범위를 한정해서 이에 집중하고, 절차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지사를 두지 않는 텔레그램은 규제가 어렵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텔레그램 본사와 협력할 순 있지만 사실상 쉽지 않다. 비밀 요원처럼 채팅방에서 불법적인 걸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무엇을 선택할지는 정책적인 판단이다. 후자의 방식은 지금도 행해지고 있지만, 그게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고 답했다. 물론, 비밀수사를 대중에게 공개한다면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생길 수 있다. 장 교수의 말은 관련 기관에서 이를 정책적으로 시행하면서, 비공개 위원회 형식으로 정책을 평가하는 자리가 필요하단 뜻이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N번방 방지법은 네이버, 카카오톡, 구글, 페이스북 등 정보매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이용자의 모든 통신 내용과 공유하는 정보를 사전에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게 하여 이용자의 통신 비밀, 표현의 자유, 알 권리를 침해한다”면서 위헌 소송을 냈다.
오픈넷은 “정보 매개자는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모든 게시글의 내용을 실시간으로 검토하고 불법성을 판단하여 신속히 차단·삭제할 것이다. 이때, 정보 매개자가 과도한 사적 검열을 행하여 합법적인 정보의 유통도 차단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불법성범죄물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기업은 사안에 따라 연평균 매출의 최대 3%를 과징금으로 낸다. 필터링의 기술적 문제로 서비스 장애가 발생한다면, 인터넷 사업자는 '넷플릭스 법'(부가통신사업자 서비스 안정화법)에 따라 제재를 받는 상황이다.
장영수 교수는 “필터링하는 영상 중 많은 것들은 등록된 영상과 완전히 동일하진 않을 것이다. 그것과 유사성이 있는 영상을 삭제하는 것이다. 유사성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데, 국가에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기준을 내리기가 어렵다. 플랫폼 사업자가 알아서 관리할 부분이다. 플랫폼 입장에선 법적 제재를 피해야 하므로, 콘텐츠 제재를 강하게 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 자체를 시간을 갖고 충분히 테스트할 수 없었다. 기술을 전달받은 시점이 8월 말이다. 기술적인 장애가 생길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넷플릭스 법에 대한 면책 조항 같은 것도 없다. 여러 가지 면에서 부담이 되는 법은 맞다”고 전했다.
N번방이란 늪에서 빠져나오려면, “재유포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N번방을 세상에 처음 알린 ‘추적단 불꽃(이하 불꽃)’은 “더 나아가 불법촬영물을 시청한 사람도 처벌할 수 있도록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현실적으로 시청자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는 수사기관 내부에서 연구가 필요하지만, 플랫폼 사업자가 피해 영상에 대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협력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불법촬영물 시청자를 처벌하려면 수사 과정에서 불법시청물을 고의로 시청한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
또한, 그는 “N번방 검열 논란에서 피해자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다. 영상이 한 번 올라가면, 불법 성착취 사이트에서부터 일반 포털 사이트와 SNS, 커뮤니티에까지 빠르게 퍼진다. 이런 영상을 삭제하는 걸 지원하는 기관도 직원이 기간제인 경우가 많다. 업무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불법촬영물을 다시 봐야 하는데, 이 부분을 피해자들이 불편해한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의 연속성을 이어가려면 전문 인력을 기를 필요가 있다. 플랫폼 사업자가 디지털 성범죄물에 경각심을 갖게 하고, 기술적인 제한을 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고 말했다.
불꽃은 N번방 방지법을 이용해 성별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인들의 언행을 지적했다. 그들이 일부 남성 커뮤니티의 스피커가 되면서,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는 것이다. 불꽃은 “1년 전에 업로드된 영상이 10년, 멀리 가면 20년 뒤에도 회자되고 공유된다. 한번 올라온 걸 삭제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영상의 재유포를 막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N번방이란 늪에서 빠져나오려면 필요한 게 무엇인지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