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수리하는 시대 열렸다··· 애플, 셀프 서비스 프로그램 공개
[IT동아 남시현 기자] 유엔(UN)이 발간한 ‘2020년 전 세계 전자폐기물 집계(The Global E-waste Monitor 2020)’에 따르면, 2019년에만 전 세계적으로 5천 360만 톤의 전자 폐기물이 생성됐으며 2030년까지 7천 400만 톤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2019년의 폐기물 수치는 불과 5년 만에 21% 증가했고, 16년 만에 약 두 배 늘어난 수치다. 전자 폐기물은 주로 전기 및 전자 장비에서 발생하며, 더 높은 소비율과 짧은 수명 주기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가 더 빠르게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바꾸고, 여전히 사용할 수 있는 전자 제품을 폐기함으로써 전자 폐기물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전자 폐기물이 빠르게 늘고 있는 이유에는 스마트폰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과거 피처폰은 성능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아 오래 사용하더라도 불편함이 없었고, 분해와 수리, 배터리 교체가 간단해 오랫동안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스마트폰은 얇고 가볍게 진화하고 있어, 그만큼 분해나 수리가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나 1~2년만 지나면 스마트폰 성능이 느리다고 느껴질 만큼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서 교체 주기도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의 소비자들은 사용자가 직접 수리할 권리에 대해 주창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제도적 발판이 마련되고 있다.
애플의 셀프 서비스 수리 프로그램, 바이든의 행정명령 덕분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9일, 애플과 같은 전자기기 제조 업체들의 수리 제한 관행을 불법으로 규정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행정명령에 따른 정책 성명서를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앞으로 미국의 전자제품 제조업체는 사용자가 직접 제품을 수리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야 하며,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애프터 서비스를 개방해야 한다. 애플이 ‘셀프 서비스 수리 프로그램’을 발표한 이유다.
애플의 셀프 서비스 수리 프로그램은 애플 아이폰 12 및 13 라인업을 시작으로, 사용자가 직접 애플의 정품 부품과 도구를 구매해 아이폰 디스플레이, 배터리, 카메라 등을 직접 수리할 수 있게 된다. 서비스는 내년 초 미국에서부터 제공되며, 2022년까지 다른 국가로 지원 범위를 넓혀간다. 앞으로 고객들은 5천 곳 이상의 애플 공인 서비스 업체 및 2천 800곳 이상의 개별 수리 서비스 업체 등을 통해 애플의 정품 부품과 도구, 매뉴얼을 구매해 직접 수리할 수 있게 된다. 이후 애플 아이폰은 물론 M1 칩을 탑재한 맥 컴퓨터로 범위를 넓힌다.
애플의 최고 운영 책임자 제프 윌리엄스(Jeff Williams)는 “애플의 정품 부품에 대한 더 많은 접근성을 제공함으로써 수리가 필요한 고객에게 훨씬 더 다양한 선택권을 제공한다”며, “지난 3년 동안 애플은 애플 정품 부품, 도구,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지를 두 배 이상 확장했고, 이제는 기기를 직접 수리하고 싶어 하는 고객에게 이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직접 진행하는 수리, 어떻게 하나?
고객이 직접 수리를 진행하는 절차는 애플 홈페이지에서 제공되는 수리 매뉴얼을 검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다운로드 한 매뉴얼을 통해 고장난 부품과 수리 방법을 확인한 다음, 본인이 진행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애플 셀프 서비스 수리 온라인 스토어를 통해 애플 정품 부품과 도구를 주문한다. 새로운 온라인 스토어는 200개 이상의 부품과 도구를 제공하게 되며, 교체에 사용된 폐부품을 반납하면 향후 새 부품을 구매할 때 사용 가능한 크레딧으로 받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서비스가 도입되더라도 이는 전자기기 수리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사람만 진행할 수 있다. 애플 아이폰 12, 13의 디스플레이를 직접 교체한다고 가정하자. 사용자는 아이폰 하단을 고정하고 있는 접착제를 열풍기나 전용 도구로 녹인 다음, 접착제가 식기 전에 흡입 컵으로 디스플레이에 흠을 만든다. 이 흠을 통해 전용 도구를 넣고 전체 틈을 벌려 디스플레이를 분해한다. 이때 틈에 1mm 이상 들어가면 디스플레이의 전면 패널이 손상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분해된 상태에서도 여전히 리본 케이블이 아이폰에 연결돼있어서, 디스플레이를 든 상태에서 배터리, 디스플레이 커넥터, 디지타이저 케이블, 전면 센서 커넥터를 해제해야 한다.
분리된 디스플레이는 그대로 교체하는 게 아니라 접착제로 부착된 스피커와 전면 센서, 조도 센서, 마이크, 투광기 모듈을 접착제를 녹여 분리한 다음 다시 새 디스플레이에 부착하고 디스플레이를 조립하면 화면 교체가 끝난다. 조립이 끝나더라도 분해 시 방수 봉인이 해제되므로, 방수가 안 될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수리할 수 있게 된 것은 맞지만, 이것이 소비자가 쉽게 수리할 수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직접 수리는 어려워도, 소비자가 수리할 권리는 찾았다
애플의 셀프 서비스 수리 프로그램의 도입은 그동안 소비자가 직접 수리할 권리에 대해 외면해온 기업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수리하는 과정에 대한 난이도나 가격에 대한 부분보다는, 제조사들에게 독점적으로 부여돼있던 애프터 서비스를 사용자가 직접 진행할 수 있다는 데 의의가 크다. 아마도 현재 존재하는 많은 사설 서비스 센터들이 정품 부품을 활용해 수리할 수 있게 되면서 수리 비용이 줄어들고, 그만큼 오래 사용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다. 소비자들 역시 수리하기 쉬운 제품이 친환경적이라는 인식을 갖게 될 것이고, 오래 쓸 수 있고 직접 수리할 수 있는 제품을 찾는 수요도 늘 것이다. 한편, 애플 셀프 서비스 수리 프로그램의 국내 도입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정된 바가 없다.
글 / IT동아 남시현 (s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