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업] DB·엘핀 “금융 그룹 + 위치 인증 스타트업 = 신뢰”
[IT동아 차주경 기자] 지난 2019년, 자동차 운전 면허가 없는 미성년자가 다른 사람의 면허증으로 자동차를 빌려서 운전을 하다가 바다로 추락해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이 비극은 줄기는 커녕 도리어 늘고 있다.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청소년 무면허 렌터카 사고 발생 현황’을 보면, 2014년부터 2020년까지 7년간 14명이 무면허 렌터카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유형의 안타까운 사고도 있다. 원금을 보장하면서 높은 수익을 내 주겠다는 한 증권사 직원의 설명을 듣고, 수십 년 동안 모은 돈을 펀드에 투자한 한 할머니의 이야기다. 증권사 직원의 말과는 달리 그 펀드는 원금을 보장하지 않는 것이었고, 수익률은 높기는 커녕 원금 손실을 기록했다. 할머니는 증권사 직원이 펀드 운용 조건과 위험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고, 가입 서명도 자세히 보니 자신의 것이 아니라며 울분을 토했다.
렌터카는 무면허 청소년에게 주어지면 안됐다. 금융 상품도 할머니에게 불완전판매(가입자에게 금융 상품의 조건이나 위험 등 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고 판매하는 행위)되면 안됐다.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방식으로 전달된 것들이 돌이킬 수 없는 큰 피해를 가져왔다. 올바른 장소에서 올바른 방식을 따랐다면, 이 피해를 없애거나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스타트업 엘핀(L Fin)이 주목한 것도 올바른 장소에서 올바른 방식으로 일이 이뤄지도록 하는 기술이다. 그래서 이들이 만든 것이 ‘위치 기반 보안·인증 솔루션’이다.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던 금융 그룹 DB가 엘핀에 손을 내밀었다. 이 둘을 서울창업허브(SBA)가 연결했다. 또 하나의 이상적인 CV(Corporate Venturing,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손을 잡고 다양한 시너지를 낳는 행위) 사례가 탄생했다.
이동 통신 기지국 신호로 소비자 위치 파악, 인증하는 기술
엘핀은 SKT, NC소프트 등 한국 굴지의 정보 통신 기업에서 엔지니어, 영업 등 다양한 경력을 쌓은 박영경 대표가 2017년 세운 스타트업이다. 이후 주은정 최고운영책임자가 공동 대표로 합류했다.
엘핀의 위치 기반 보안·인증 솔루션은 스마트폰과 이동 통신 기지국과의 통신 연결을 활용해 이용자의 위치를 확인, 이를 암호로 만들어 보안이나 인증에 쓰는 것이다. 이용자 인증이나 증명이 필요할 때, 금융 거래를 할 때 기존 보안 기술인 생체 인증 및 유심 카드(USIM) 인증에 위치를 더하면 보안을 강화하고 활용 범위를 넓힐 수 있다.
이론은 간단하지만, 인증 수단으로써의 효과는 확실하다. 먼저 생활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만 있으면 손쉽게 고도의 인증 체계를 쓸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이용자의 위치를 파악해 그 정보 자체를 보안 요소로 쓰는 덕분에 보안 카드나 OPT(One Time Password, 비밀번호 생성기)처럼 늘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ID와 비밀번호처럼 유출될 우려도 없다. 위치 데이터는 암호화 처리되므로 문자 인증처럼 스미싱(문자 메시지를 악용한 사기 수법)에 악용될 우려도 없다.
엘핀의 위치 인증을 활용하면 앞서 예로 든 무면허 렌터카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운전 면허증이나 신용 카드 소유자가 실제로 렌터카나 렌터카 매장에 와 있는지 위치 인증을 거치면 된다. 불완전판매도 막는다. 증권사 직원이 실제로 소비자를 만나 상품을 충분히 설명한 다음 동의와 서명을 받았는지 위치로 증명하면 된다.
자동차 부문에도 엘핀의 위치 인증을 이식할 수 있다. 자동차가 주인의 위치를 파악, 근처까지 오면 스스로 헤드 라이트를 켜 위치를 알리도록 하는 것이 사례다. 자율 주행차가 주인의 위치 인증 장소로 자동으로 움직이도록 이끄는 것도 된다.
엘핀의 위치 인증 기술은 금융 상품과도 궁합이 좋다. 금융 기업이 소비자를 찾아가는 금융 판매 방식을 속속 도입하면서 위치 인증 기술의 가치는 더욱 주목 받았다. 나아가 금융 사기도 막는다. 엘핀은 위치 인증을 받을 때 이동 통신사의 기지국을 거치므로, 통신사 가입 정보를 활용해 선불폰이나 불법 개통된 전화기의 여부도 가려낼 수 있다.
불완전판매 보완 원하던 DB, 엘핀과 만나다
DB 그룹의 금융 정보 통신 서비스 기업, DB FIS의 권성제 금융운영팀 팀장과 이강후 DB Inc 금융그룹장이 엘핀을 주목한 이유 역시 이것이다. 금융 기업의 골칫거리, 불완전판매를 엘핀의 기술로 보완할 수 있겠다는 판단 하에서다.
이강후 그룹장은 “불완전판매를 막을 기술을 찾다가 그룹 차원의 스타트업 협업 프로그램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DB와 스타트업을 연결해 줄 파트너를 찾다가 SBA의 소문을 들었다. SBA가 적극 나서준 덕분에 스타트업 다섯 곳과 함께 하게 됐는데, 그 중 한 곳이 엘핀이다. SBA가 연 오픈 이노베이션 행사에서 엘핀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엘핀은 이미 다른 금융 기업에서도 활약한 경력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권성제 팀장은 “금융권이 디지털 전환을 속속 시도한다. 디지털 전환을 이루려면 시스템도, 영업 사원들의 인식도 개선해야 한다. 금융권의 영업장은 이제 영업점 창구가 아니라, 소비자가 있는 곳으로 바뀔 것이다. 이 때 엘핀의 위치 기반 인증 솔루션이 유용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강후 그룹장의 설명처럼, 엘핀은 앞서 여러 금융 기업과 협업해 위치 인증 기술을 검증했다. 이 과정에서 실패도 겪었고, 이를 통해 기술의 완성도도 높였다.
엘핀은 처음에는 GPS로 위치를 파악하려고 했다. 하지만, GPS는 위성 신호를 받는 특성상 신호가 잘 닿지 않는 지하, 건물 안 등 음영 지역에서 위치를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위치를 위·변조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래서 엘핀은 위·변조가 불가능하고 신호 음영도 거의 생기지 않는 이동 통신 기지국의 신호로 위치 인증을 받도록 기술을 개선했다.
이동 통신 기지국의 신호로 위치 인증을 받을 때에도 문제는 생긴다. X축 위치는 잘 잡지만, Y축 위치, 즉 높이는 부정확할 때가 있다. X축으로만 위치를 파악하면 이용자가 1층에 있는지 10층에 있는지 알기 어렵다. 이에 엘핀은 Wi-Fi나 블루투스, 비콘(신호를 발산하는 기기) 등을 활용해 위치 정보를 더 정확히 파악하는 기술을 도입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한 가지 섬찟한 생각이 들었다. 엘핀의 위치 인증 기술은 이동 통신 기지국의 신호를 사용한다. 즉, 내 스마트폰이 켜져 있는 한, 누군가가 내 위치 정보를 24시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주은정 대표는 “엘핀은 절대 소비자의 위치 정보를 24시간 추적하지 않는다. 특정 순간에만, 예를 들면 소비자가 금융 상품의 설명을 듣고 서명할 때나 금융 기업 직원이 특정 기능을 승인할 때에만 일시 동작한다. 물론, 위치 정보를 파악할 때에는 소비자나 금융 기업 직원이 이를 알도록 신호나 메시지를 보낸다.”고 강조했다.
금융 기업의 서비스 강화에 이어 근태 관리까지.
DB와 엘핀은 함께 금융 ODS(Out Door Sales, 외부 영업)의 양상을 바꾼다. 전통 금융의 영업 양상은 지점, 사무 공간 등 물리 공간에서 소비자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금융 상품을 판매할 때의 원칙인 설명의 의무도 잘 지켜졌다.
금융 ODS는 영업 직원들이 태블릿 PC 등을 가지고 소비자가 있는 곳을 직접 찾아간다. 일명 ‘무빙 브랜치’, 친절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움직이는 지점 개념이다. 하지만, 지점의 개념이 바뀌더라도 설명의 의무는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올 9월 금융소비자보호법이 강화됐다. 이 법에는 설명의 의무 강화 조치가 포함된다. 덕분에 소비자는 보험을 비롯한 금융 상품을 살 때 조건과 특약까지 상세히 들을 수 있다. 담당자의 보험 설계사 등록증도 요구하면 확인 가능하다. 대면 서비스의 보안과 신뢰가 금융 업계의 경쟁력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 점에 공감한 DB와 엘핀은 금융과 위치 인증 서비스를 융합하고 함께 고도화했다.
DB는 위치 인증에 이어 엘핀의 출결 관리 도구 ‘아임히어’ 도입을 검토한다. 엘핀 아임히어는 학원이나 기업의 직무 교육용으로 만든 위치 인증 앱이다. 이 도구는 금융 기업의 영업 지원, 법인 비즈니스에 응용 가능하다. 영업 직원이 만난 소비자의 정보를 디지털로 변환해 자동 관리하고 임직원의 재택 근무 인증에도 쓸 수 있다.
양사는 보험 서비스 출동 시 위치 인증 기술로 소비자의 위치를 자동 파악하는 방안, 선불 휴대전화를 악용해서 금융 사고를 일으키는 것을 미연에 막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DB와 엘핀은 CV를 구성한지 불과 두 달 여만에 많은 성과를 냈다. DB는 엘핀의 기술 개발과 판로 개척을 돕는다. SI 부담을 덜어줄 뿐만 아니라, 그룹 차원에서 여러 계열사와의 협업을 주선했다. 엘핀은 DB가 새로운 금융 시대에 적응하도록 도울 아이디어와 기술을 현실화해 보답한다.
최수진 SBA 파트장 “대기업뿐 아니라 그룹사와 스타트업간 CV도 시너지 낼 수 있어”
주은정 대표는 CV 파트너, DB 덕분에 스타트업의 성장통을 잘 이겨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참신한 아이디어와 독보적인 기술을 갖춘 스타트업이라 해도, 업계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면 제대로 활동할 수 없다. 아직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금융 업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녀는 “앞서 엘핀의 기술을 몇몇 금융권 기업에 소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피드백이 오지 않아 우리 기술이 얼마나 유용한지, 어떤 점을 고쳐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스타트업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이것이다. 자신이 보고 가늠하는 업계는 일부일 뿐, 절대로 전부가 아니다. 항상 우리가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시야를 넓혀 업계 곳곳을 바라보면서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드백은 때로 따끔하고 아프기도 하다. 이 지적도 받아들여야 한다. 금융권처럼 문호가 좁은 업계라면 더욱 그렇다. DB는 금융 계열사의 실무 담당자들을 직접 소개하고 피드백을 주는 등 현업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줬다.금융 대기업의 프로세스는 어떻게 움직이고 또 운영되는지 값진 경험을 토대로 엘핀의 기술을 고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강후 그룹장은 “DB의 첫 CV 파트너로 엘핀처럼 좋은 스타트업을 만나 고맙다. SBA와 CV를 꾸준히 이어가려 한다. 엘핀이 DB 그룹의 문화에 새로운 활력을 주는 것도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수진 파트장은 DB가 스타트업과의 오픈 이노베이션에 적극 참여한 덕분에 좋은 CV 사례를 만들었다며 공을 돌렸다.
그녀는 “보험사를 비롯한 금융 기업과는 협업한 경험이 없었다. 그런데 DB는 CV를 위해 금융, 보험 등 그룹 계열사 전체를 활용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스타트업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 CV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도전 의식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DB 덕분에 CV를 그룹사와 운영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DB와의 첫 CV에는 주로 금융 스타트업이 지원했는데, 2022년에는 더 다양한 스타트업이 참여해 기회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며 CV를 고려하는 대기업과 그룹사에게 참여를 권했다.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