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티나 디스플레이'가 대체 뭐지?
"오,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구요? 대단하네요" "그런데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뭔가요?"
애플이 자사의 제품 발표 행사 WWDC 2012에서 레티나 디스플레이(Retina Display)를 적용한 신형 맥북 프로를 발표했다. 레티나 디스플레이란 애플이 제창한 마케팅 용어로, 애플을 비롯해 모든 매체에서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신형 맥북 프로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정작 레티나 디스플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없다. 애플 스스로 레티나 디스플레이라고 칭할만한 뭔가 확실한 기준이 있지 않을까?
맨 처음 생각해볼 수 있는 기준은 '해상도'다. 그러나 해상도는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기준이 아니다. 애플은 해상도 960x480의 ‘아이폰4’ 및 ‘아이폰4S’, 해상도 2,048x1,536의 '뉴아이패드', 해상도 2,880x1,800의 '맥북 프로 레티나 디스플레이(이것이 신형 맥북 프로의 정식 이름이다)' 등 다양한 제품에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고 밝혔다. 제품마다 해상도가 제 각각인 점을 감안하면 일단 해상도는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다음 생각해볼 수 있는 기준은 '인치당 화소수(PPI, Pixel Per Inch)'다. 인치당 화소수란 PC나 스마트폰의 화면이 얼마나 선명한지 나타내는 단위이다. TV, 모니터, 스마트폰 등의 화면을 확대하면 빨간색, 녹색, 파란색으로 발광하는 수많은 화소(Pixel)가 보인다. 이 화소가 1인치의 대각선 길이를 가진 사각형 내에 얼마나 밀집돼 있는지 알려주는 단위를 인치당 화소수라고 하며, 인치당 화소수의 수치가 높을수록 화면이 더 선명하다. DPI(Dot Per Inch)라고도 한다.
그러나 인치당 화소수도 정답은 아니다. 과거에는 인치당 화소수가 정답이었다. 2년전 스티브 잡스 애플 전 CEO가 WWDC 2010에서 레티나 디스플레이라는 화두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인치당 화소수가 300PPI를 넘으면 인간의 망막(Retina)으로 화면 내의 화소를 볼 수 없다고 밝히며, 인치당 화소수가 326PPI에 달하는 아이폰4를 소개했다. 즉, 인치당 화소수가 300PPI가 넘어가면 레티나 디스플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인치당 화소수가 264PPI인 뉴아이패드가 등장하면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애플은 뉴아이패드를 소개하면서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기준은 300PPI가 아니라, ‘화면과 눈이 떨어져있는 거리를 기준으로 화면 내의 화소를 볼 수 없으면 레티나 디스플레이’라고 그 기준을 변경했다. 이러한 변경을 두고 일각에서는 화면과 눈간의 거리를 책정하는 기준이 너무 자의적이며, 거실에 있는 HDTV도 떨어져서 보면 화소가 보이지 않으니 레티나 디스플레이인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이번에 등장한 맥북 프로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인치당 화소수는 220PPI 내외다. 처음의 기준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셈이다. 사용자 입장에서 좀 더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정의는 없는 것일까?
레티나 디스플레이, 정의는 불분명하지만 2가지 공통점은 있다
애플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기준은 아니지만, 현재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제품들은 2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기존의 화면 크기를 유지한 채로 해상도만 4배로 증가시킨 것. 그리고 해상도를 4배 증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화면 내 정보량이 기존 제품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 2가지 공통점이야 말로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참된 정의라고 부를만하다.
정보량이란?
정보량이란 어떤 사건을 접했을 때 사용자가 얻는 정보의 크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화면 내 정보량이란 사용자가 PC 화면을 보고 PC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총량을 뜻한다. 기존에는 해상도가 증가하면 화면 내 정보량도 증가한다는 것이 통념이었다. 화면 크기를 유지하면서 정보량만 늘리면, 화면 내에 표시되는 글자나 이미지의 크기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첫 번째 요소를 살펴보자. 아이폰3GS는 3.5인치의 화면 크기 및 480x320 해상도를 갖추고 있었다. 후속작 아이폰4는 3.5인치라는 화면 크기는 그대로 유지했지만, 해상도는 960x640으로 4배 늘어났다. 아이패드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패드2는 9.7인치의 화면 크기 및 1,024x768의 해상도를 갖췄지만 후속작 뉴아이패드는 화면 크기는 그대로 유지하고 해상도만 2,048x1,536으로 변경됐다. 이번에 등장한 맥북 프로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의 맥북 프로 15인치 제품과 맥북 프로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화면 크기는 동일하지만 해상도는 1,440x900에서 2,880x1,800으로 4배 증가했다.
이제 두 번째 요소를 확인해보자. 윈도 기반 PC는 일반적으로 해상도가 늘어나면 글자나 이미지 또는 아이콘의 크기가 줄어드는 대신, 한 화면에 표시되는 정보량이 늘어난다. 이러한 점은 웹 페이지를 열고 해상도를 변경해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아이폰4는 아이폰3GS보다 해상도가 4배 높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콘의 크기 및 배치가 변함이 없다. 웹 페이지를 열면 볼 수 있는 정보량도 아이폰3GS때와 동일하다. 대신 화면은 4배 선명해졌다.
즉, 윈도 기반 PC는 해상도를 증가시키면 화면 내 정보량이 늘어나지만,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기기는 해상도를 증가시키면 글자나 이미지가 훨씬 선명해진다는 것이다. 뉴아이패드의 경우도 이와 동일하다. 뉴아이패드로 웹 페이지를 열어보면 (2,048x1,536 수준이 아닌) 1,024x768 해상도 수준의 정보량이 표시되지만, 글자나 이미지는 아이패드2보다 훨씬 선명하다.
이러한 개념은 맥북 프로 레티나 디스플레이도 동일하게 이어받았다. 다만 맥북 프로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모바일 운영체제인 iOS가 아닌 PC용 운영체제 OS X를 사용하기에 화면 내 정보량을 좀더 세밀하게 설정할 수 있다.
맥북 프로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경우 해상도는 2,880x1,800이지만, (윈도 기반 PC를 기준으로) 1,440x900 수준의 화면 내 정보량을 표시하도록 기본 설정돼 있다. 또한 사용자가 원한다면 화면 내 정보량의 수준을 1,024x600, 1,280x800, 1,680x1,050, 1,920x1,200 가운데 선택할 수도 있다. 화면 내 정보량의 수준을 줄일수록 글자 및 이미지는 훨씬 선명해진다. 이게 바로 맥북 프로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다른 노트북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애플의 제품과 타사의 제품을 구분하는 가장 큰 요소다. 타사 제품은 화면 내 정보량을 증가시키는데 중점을 두었지만,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애플의 제품은 보다 선명한 글자 및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중점을 뒀다. 이러한 애플의 전략은 모바일 시장에서 주효했고, 많은 이들이 애플의 전략을 벤치마킹했다. 마침내 애플은 레티나 디스플레이라는 전략을 PC시장에 끌어들였다. 애플의 전략이 PC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지켜볼 일이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