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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에 숨은 이이제이의 원리

서동민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에 숨은 이이제이의 원리 (1)

기내에서 느낄 수 있는 제트엔진의 소음은 대략 75~80데시벨이라고 한다. 이는 한낮 시내 번화가에서 발생하는 교통 소음과 맞먹으며, 오래 들으면 불쾌감을 유발하고 심할 경우 수면 장애나 난청으로 이어질 수 있을 만큼 큰 소음이다. 이렇게 시끄러운 소리를 비행 내내 참아야 한다는 것은 고역이다. 특히 음악을 감상할 때가 심한데, 엔진 소리와 음악이 뒤엉켜 도무지 음악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볼륨을 높이자니 옆 사람에게 피해를 줄 것이 분명하고…

이런 경우를 대비한 제품이 바로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ing) 이어폰이다. 이 이어폰을 착용하면 거짓말처럼 엔진 소리가 없어지고 음악만 깨끗하게 들린다. 비단 비행기 엔진 소리뿐만이 아니다. 열차나 자동차 등 주변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소음이 상당수 감소된다. 주변 소리를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잦은 여행에서 가장 유용하기 때문에, 여행용 이어폰이라고도 불린다.

귀를 완전히 덮을 만큼 큰 헤드폰이라면 그렇다 치지만, 이렇게 조그마한 이어폰은 어떻게 소음을 줄일 수 있는 것일까?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이 소음을 줄이는 원리는 음파간 상쇄간섭을 기초로 한다. 쉽게 말해 오랑캐로 오랑캐를 무찌르는 이이제이(以夷制夷)와 같다고 하겠다.

가령 호수에 2개의 동일한 돌멩이를 던진다고 하자. 2개의 돌멩이는 2개의 원형 물결을 만들 것이다. 만일 물결의 방향이 같다면 양쪽 물결은 서로 힘을 받아 더 큰 물결을 만들지만, 물결이 서로 충돌하는 부분은 이내 힘을 잃고 양쪽 물결 모두 잦아들고 만다. 음파로 치자면 전자는 보강간섭, 후자는 상쇄간섭이다. 즉,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은 외부 소음에 맞먹는 소리를 발생시켜, 궁극적으로 양쪽 소리 모두를 줄이는 것이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에 숨은 이이제이의 원리 (2)

이렇게 소리를 발생시키려면 일반 이어폰과는 다른 구조를 띨 수밖에 없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은 크게 마이크, 노이즈 캔슬링 회로, 스피커, 배터리로 나뉜다. 먼저 마이크가 일정 크기 이상의 소음을 잡아 낸다. 노이즈 캔슬링 회로는 이 소음의 주파수 및 진폭을 분석하고, 해당 소음과 완전히 반대되는 음파를 생성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역(逆)소음은 스피커를 통해 방출되어 해당 소음을 제거한다. 하지만 음악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 과정을 진행하려면 별도의 전원이 필요하기에, 충전 방식의 배터리가 탑재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배터리가 방전된 상태에서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없는 일반 이어폰과 다를 바 없다. 또한 배터리가 차지하는 만큼 휴대성이 떨어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배터리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이는 일부 전용 기기와 함께 제공되는 특별한 전용 이어폰이다. 이 경우, 반드시 해당 기기와 이어폰을 함께 사용해야 노이즈 캔슬링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노이즈 캔슬링의 소음 감소 효과는 얼마나 될까?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들을 보면 90%에서 99%까지 소음을 줄일 수 있다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이어폰의 기본적인 차폐 기능에 노이즈 캔슬링 효과를 합친 것이다. 노이즈 캔슬링 효과 단독으로 놓고 본다면, 보통 약 20데시벨 정도의 소음을 줄일 수 있을 뿐이다. 클럽에 놀러 갈 때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낀다고 해서 도서관처럼 조용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은 여행용에 최적화됐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서 두루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요즘같이 길거리에서 무슨 돌발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는 시대에, 외부 소음과 완전히 차단된 채로 음악에 심취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 없다. 도보 이동이 잦은 사람은 일반 이어폰을, 가만히 앉아서 여행할 일이 많은 사람은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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