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현의 이슈산'책'] 어릴 적 '일진'이던 친구의 심리는 무엇이었을까

이문규 munch@itdonga.com

[IT동아]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어 있었어요!'라는 말을 새삼 실감하는 요즘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콘텐츠 공유 속도가 번개처럼 빠르다 보니, 전 국민이 알게 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는다. 또한 SNS와 1인 미디어의 확산으로 공중파 방송을 통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될 수 있다.

이번에도 탄생하는 듯했다. 새로 시작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첫 회부터 대중의 주목을 끌며 시작이 좋았던 한 참가자, 워낙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이곳에서 데뷔할 수만 있다면 부와 명예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런데 방송이 나가자마자 그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학창시절 그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등장으로 그의 과거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연이은 동창들의 폭로가 쏟아지면서 대중은 미련 없이 그를 외면했다. 결국 그는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소속사도 떠나야 했다.

얼마 전 '한국 영화 100주년'이라는 뜻깊은 의미가 더해진 '2019 백상예술대상'에서 시상식의 꽃이라 불리는 특별 공연 무대에 신예 그룹이 올랐다. 그들의 인기를 입증하는 상징적인 자리였다. 서정적인 가사와 특유의 감성으로 음원 차트를 석권하며 최근 대세로 떠오른 밴드. 각종 예능과 축제에 섭외 1순위에 오르며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그러나 밴드 멤버 역시 학창시절 학교 폭력의 가해자였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밴드는 타격을 받았고, 해당 멤버의 탈퇴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싸늘한 시선으로 그들에게 등을 돌렸다. 정상급 인기를 누렸던 걸그룹의 멤버 출신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한 여가수도 학창시절의 불량했던 행실이 밝혀지며 대중의 비난을 받고 있다. 이제 대중도 소비에 있어 윤리와 도덕성, 사회적 가치를 상당히 중요하게 여긴다.

<트라이앵글의 심리>, <소녀들의 심리학>, <트라우마>, <인성이 실력이다>, <평판이
전부다>
<트라이앵글의 심리>, <소녀들의 심리학>, <트라우마>, <인성이 실력이다>, <평판이 전부다>

이제는 숨긴다고 숨길 수 없는 시대다. 사람뿐 아니라 스마트폰과 CCTV 등 보는 눈과 귀가 너무 많아졌다. 여기에 소셜미디어라는 열린 장은 거의 모든 정보를 연결하고 노출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것처럼, 이제는 소수에 의해 가려질 수 없으며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애초에 잘못을 하지 않는 게 중요하고, 잘못을 했다면 빠르게 인정하고 솔직하게 용서를 구하는 게 최선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평판 사회'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평판이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최근 인플루언서를 CEO로 둔 기업의 잇따른 추락은 평판의 위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보여준다. 한순간에 스타로 만들기도 하지만, 한순간에 바닥으로 끌어내릴 수도 있다.

이번에 수면 위로 떠오른 학교 폭력 문제를 들여다보자. 여기서 말하는 폭력이란 관계적, 간접적, 사회적 공격을 모두 포함한다. 예민했던 학창시절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피해자들은, 그때 받은 상처를 평생 안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괴롭힘의 주체가 되었던 이들은 아무런 죄책감이나 고통 없이, 되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부와 인기 속에 화려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화면으로 바라보며 피해자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 가해자들의 폭력성은 어떠한 연유로 발현되는 걸까? 그들은 정말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까? 학교 폭력을 들여다보려면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탐구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들이 속한 사회와 집단, 심리가 작용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트라이앵글의 심리/양철북>의 저자이자 23년간 학교 현장에서 학교 폭력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보경 교사는 아이들의 심리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한다. 아이들도 학급 내에서 자신들만의 계층과 서열이 매겨진다. 이때 자연스럽게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기고, 나머지는 주류에 끼고 싶고 거부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결국 따돌림에 동조하는 제3자가 된다. 불안감과 두려움이 양심을 이기는 것이다.

이는 권력자들이 공포를 이용해 통치하는 수단과 같은 원리다. 인간을 폭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한 개인의 절대 악이 아니라 '체제의 힘'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이미 여러 실험을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에게는 비인간적인 행동을 해서라도 인정받고 싶어 하는 본질적인 나약함이 있다.

문제는 제3자의 이러한 방관이 의도치 않게 더 큰 폭력을 불러오기도 하는데, 연구에 따르면 가해학생들은 자신이 누군가를 괴롭히는 행동을 했을 때 주변 아이들이 침묵하면 자신을 지지하는 것으로 느낀다고 한다. 즉 잘못된 자의식까지 더해져서 보란 듯이 더 큰 가해 행동을 쇼처럼 보여주려고 한다는 것.

<소녀들의 심리학/양철북>의 레이철 시먼스는 '최고'에는 공통분모가 있는데,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주장적이고 자신감이 있으며, 그것을 숨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욕구와 욕망도 강하고 말이나 행동에도 거리낌이 없다. 인기를 증명하듯 그들을 추종하는 팔로워가 따른다. 그러다 보니 일부의 충성적인 지지에 눈과 귀가 가려져 자신의 잘못이나 도덕성의 결여를 잘 인지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고 마는 것이다. 어느 순간 안하무인이 되어버린다.

폭력에 따른 피해자의 심리적 충격은 어마어마하다. 무너진 건물 밑에 깔린 사람들의 심정만큼이나 막막하고 절망스러우며 우울하고 무기력해진다는 스트레스 측정 연구 결과도 있다. <트라우마/열린책들>의 주디스 허먼은 트라우마는 시간이 흘러 잊는다고 해서 잊어지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철저히 기억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기억의 해법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심리적인 상처를 그냥 덮고 지나쳐 버린다면 이러한 정서적 불안정은 추후라도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다중 인격, 관계 장해, 섭식장애, 성기능 장애, 기억 상실, 무기력감, 우울증과 자살 시도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정신과적 질환을 경험할 수 있으며, 만성적인 불안과 깊은 분노는 평생 씻기지 않는다. 그러나 고립 속에서는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심리적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상처를 입었지만, 결국 다시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치유될 수 있고 변형되었던 심리적 기능도 되살아 날 수 있다고 한다. 이 때 주변의 세밀한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보경 교사는 올바른 가치관과 삶의 태도로 실천하는 인간을 길러 내는 교육의 역할이 새삼 무겁게 다가오는 요즘, 아이들이 진정한 선함의 파워를 가진 사회적 존재로 성장하도록 돕는 멘토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조벽 교수도 <인성이 실력이다/해냄>을 통해 아이들의 인성이 점점 망가져가고 있는 것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음을 우려한다.

어린아이들이 친구를 죽음으로 몰고 갈 정도로 잔인하게 괴롭히고 있다. 21세기형 괴롭힘은 학교를 벗어나 24시간 계속된다. 이런 아이들이 대거 양성되어 사회로 진출한다면? 갈수록 윤리와 도덕은 점점 무너지고, 비리와 부정부패는 늘어가며 이기주의는 강해지고 있다.

신뢰, 정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오늘날 더 늦기 전에 인성 교육을 통한 인간성 회복이 시급하다. 조벽 교수는 자기조율, 관계조율, 공익조율 이라는 '삼률'을 강조하며, 인성은 노력에 의해 배울 수 있기에 자질이 아닌 실력이라고 말한다. 이제 인성은 단순한 자기관리와 대인관계 능력을 뛰어넘어 올바른 행동을 이끄는 감성지능이자 창의적 리더십과 통합의 핵심 역량이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태어나 관계 속에서 살다 간다. 인간의 사회화 과정은 복제 능력을 통해 이루어지며, 경험, 지식, 문화를 사람을 통해 대부분 습득한다. 부모의 잘못된 행동이나 가치관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또래의 잘못된 언어나 행동을 따라 하는 것이 그것이다. 정서를 느끼거나 사색할 시간이 부족한 요즘 아이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배울 기회가 없다. 되레 그릇된 정보에 노출되어 빠르게 모방하고 흡수하는 미성숙한 아이들, 사회와 어른의 관심과 책임이 필요하다.

이른바 '갑질'이 넘쳐나는 시대, 어른들은 과연 아이들에게 어떤 모델이 되어주고 있는가?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우는가? 그들에게 어떤 가치관이 자리 잡게 될 것인가?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미래가 달려있기에 책임감을 가지고 물려줄 것과 아닌 것을 정확히 구분하여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바로 어른들의 '지혜'이다. 학교 폭력의 심각성에 대해 방관하지 않고 대중이 칼을 든 것은 우리 사회 변화의 시작이다. 이러한 순기능이 분명 미래의 아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리라!

글 / 오서현 (oh-ko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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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널리 알리고 비(非)독자를 독서의 세계로 안내하고자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는 도서 큐레이터. 수년 간 기획하고 준비한 북클럽을 오프라인 서점 '최인아책방'과 함께 운영하며,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 한 달에 한 권, 수 많은 신간 중 놓쳐서는 안될 양질의 책을 추천하고 있다. 도서 큐레이터가 세심하게 고른 한 권의 책을 받아보고, 이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최인아책방 북클럽은 항상 열려 있다.

정리 / IT동아 이상우 (lswo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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