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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흥망사] 세가가 쏘아 올린 마지막 꿈, ‘드림캐스트’

김영우

[IT동아 김영우 기자] 업계 2위는 항상 힘들다. 늘 1위와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브랜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업계 1위와 비슷한 제품을 내놓더라도 이를 잘 팔기 위해 몇 배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늘 정당한 대가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기에 더욱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1980년대와 2000년대 사이, 글로벌 비디오 게임기 시장의 패권을 두고 닌텐도 및 소니와 치열한 혈투를 벌이던 일본의 게임 기업 세가(SEGA),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게임기였던 드림캐스트(Dreamcast)가 대표적인 사례다.

세가 드림캐스트
<세가 드림캐스트(1998년)>

세가의 특명 ‘닌텐도를 넘어라’

세가의 게임기 사업 시작은 3세대 게임기 시대인 19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세가는 아케이드(업소용) 게임 시장에서 다수의 히트작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가정용으로도 즐길 수 있는 게임기의 개발에 착수, 1983년에 8비트 CPU를 탑재한 ‘SG-1000’ 게임기를 출시하게 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시기에 닌텐도(Nintendo)에서 또 다른 게임기인 ‘패밀리 컴퓨터(Family Computer, 약자 패미컴)’를 출시한 것이 문제였다. 닌텐도의 패미컴은 서드파티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 닌텐도 이외의 수많은 게임 개발사로부터 다양한 게임을 공급받을 수 있었지만, 세가 SG-1000으로는 사실상 세가 자체 제작 게임밖에 즐길 수 없었다. 당연히 소비자들은 패미컴으로 쏠렸다. 이후 세가는 SG-1000보다 성능을 향상시킨 ‘세가 마크III(1985년)’를 선보이기도 했지만 인기 면에서 여전히 닌텐도 패미컴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세가 메가 드라이브
<16비트 CPU를 강조한 세가의 메가드라이브(1998년)>

절치부심의 세가는 4세대 게임기 시장에서 성능으로 닌텐도를 압도하기로 했다. 1988년에 세가가 내놓은 ‘메가드라이브(Mega Drive)’가 그 주인공이었는데, 이는 16비트 CPU를 탑재해 패미컴의 성능을 훌쩍 뛰어넘었다. 약점으로 지적 받던 게임 소프트웨어 라인업도 보강하고 서드파티도 적극 모집했다. 특히 초음속 고슴도치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닉 더 헤지혹(SONIC THE HEDGEHOG, 1991년)’은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닌텐도의 ‘슈퍼마리오’ 못지 않은 게임계의 아이콘이 되기도 했다.

다만, 닌텐도 역시 가만 있지는 않았다. 그들 역시 1990년에 16비트 게임기인 ‘슈퍼패미컴’을 출시했기 때문이다. 세가의 메가드라이브에 비해 출시 시기가 늦긴 했지만, 출시 몇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출시 가능성을 내세우며 광고를 했기 때문에 이것 만으로도 메가드라이브의 수요를 상당부분 잠재울 수 있었다. 그만큼 닌텐도의 브랜드 인지도가 막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슈퍼패미컴은 패미컴 시절부터 이어온 막강한 서드파티 및 그들이 내놓는 인기 시리즈들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에 출시되자마자 2년이나 먼저 나온 메가드라이브를 손쉽게 압도할 수 있었다.

너무나 강했던 신인, 소니와의 혈투

세가는 여전히 닌텐도에 밀려 2인자에 머물렀지만, 메가드라이브로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북미 시장에선 닌텐도와 거의 대등한 수준까지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이에 힘입은 세가는 1990년대 중반에 32비트 게임기로 5세대 시장에서 승부를 보기로 했다. 그런데, 세가의 32비트 게임기인 ‘세가새턴(Sega Saturn)’이 개발되는 도중,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났다. 바로 일본 최대의 가전 업체 중 한 것인 소니(Sony)가 게임기 시장 진출을 선언한 것이다.

소니는 자사의 새로운 게임기 이름을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이라 명명하고 1993년에 이 게임기의 데모를 처음으로 공개했는데,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들던 고품질의 3D 그래픽을 구현해 큰 충격을 주었다. 2D 그래픽 성능에 중점을 두어 새턴을 개발하던 세가는 크게 당황했고, 플레이스테이션에 대항하기 위해 새턴의 구조를 변경, 2개의 CPU를 탑재해 성능을 보강했다.

한편,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닌텐도는 32비트를 건너뛰고 64비트 게임기를 개발해 이에 대응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물론 세가와 소니를 미리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이런 와중에 1994년 말, 세가의 새턴과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시장에 출시되었다. 이들은 닌텐도의 64비트 게임기가 나오기 전까지 최대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치열한 혈투를 벌였다. 새턴과 플레이스테이션은 32비트 CPU를 탑재하고 CD-ROM을 저장매체로 삼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았다.

세가 새턴
<소니 플레이스테이션과 치열하게 경쟁했던 세가 새턴(1994년)>

초반에는 상대적으로 게임 시장 경험이 더 많은 세가의 새턴이 유리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플레이스테이션의 인기가 더욱 높아지기 시작했다. 소니의 경우, 자체적인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은 부실했지만, 이를 보강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서드파티를 모집했으며, 손쉽게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개발도구도 마련했다. 그리고 당시 대세였던 3D 그래픽도 새턴보다 더 수월하게 구현할 수 있었다.

반면, 새턴의 경우는 아직도 상당수의 주요 게임들을 세가 자체적으로 개발해야 했으며, 개발도구 역시 불편해서 서드파티들의 호응도 적은 편이었다. 더욱이, 새턴의 개발 막바지에 급히 도입한 듀얼 CPU의 성능을 완벽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게임 개발사는 매우 적었다. 이 때문에 새턴용 게임의 3D 그래픽 품질은 플레이스테이션용 게임보다 뒤떨어져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서드파티들이 새턴보다 플레이스테이션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세가는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닌텐도가 1996년, 64비트 게임기인 ‘닌텐도64(Nintendi64)’를 출시했지만, CD-ROM 보다 용량이 적고 단가가 높은 롬 카트리지를 저장매체로 채택하는 등의 약점으로 인해 서드파티들의 호응은 예상보다 좋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1997년, 오직 닌텐도의 게임기만으로 게임을 내놓던 스퀘어(현재의 스퀘어에닉스)사가 인기 시리즈의 최신작인 ‘파이널판타지7’을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독점 출시하는 것을 시발점으로 경쟁구도는 소니 쪽으로 크게 기울어진다. 이 사건은 세가 뿐 아니라 닌텐도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결국 5세대 게임기 시장의 승자는 소니가 되었다.

바닥부터 새로 쌓아 올린 회심의 역작, 드림캐스트

새턴으로도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세가는 남은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 6세대 게임기 시장에서 승부를 보기로 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1998년에 출시한 ‘드림캐스트(Dreamcast)’였다. 드림캐스트는 이전 세가 게임기들의 약점을 철저하게 분석,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그래픽 성능 면에서 경쟁사보다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해 고성능 그래픽 칩과 고용량 그래픽 메모리를 탑재했다. 그리고 이전 세가 게임기들의 소프트웨어 개발이 어렵다는 서드파티들의 지적을 수용,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CE(Windows CE) 운영체제를 탑재해 개발환경도 개선했다.

그리고 게임기 본체의 디자인이 크고 투박했다는 지적 역시 받아들여 최대한 작고 세련된 디자인의 본체도 실현했으며, 향후 온라인 게임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예측, 당시 가정용 게임기에선 보기 드물게 인터넷 통신이 가능한 모뎀을 기본으로 탑재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세가의 최고 인기 게임인 소닉 시리즈의 최신작을 드림캐스트용으로 출시하는 등,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초기 본체 출시 가격 역시 199달러(북미 기준)로 저렴한 편이었다.

드림캐스트 광고
<실제 세가의 임원인 ‘유카와 전무(왼쪽)’를 광고 모델로 기용한 드림캐스트 출시 광고>

드림캐스트의 초반 기세는 좋았다. 출시 첫날부터 일본과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매진을 기록했으며 소프트웨어들의 품질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드림캐스트용 그래픽 칩을 생산하던 NEC의 공급 능력이 원활하지 못해 세가는 출시 초반에 충분한 양의 제품을 팔지 못했고, 이 때문에 드림캐스트는 초반의 기세를 오래 이어가지 못했다.

차세대 플레이스테이션(플레이스테이션2)을 개발 중이던 소니의 언론플레이도 드림캐스트의 판매량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 세가는 드림캐스트를 이용해 초당 300만개의 폴리곤(3D 오브젝트의 기본 단위)를 처리할 수 있다고 홍보했는데, 소니는 이에 대응해 “차세대 플레이스테이션이 초당 2,000만 폴리곤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론에 공공연히 말하는 식이었다. 소니의 이러한 언론 플레이는 상당부분 과장된 면이 있었지만, 게이머들의 마음을 흔들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당시 영상기기 시장에선 CD의 뒤를 잇는 DVD가 차세대 영상 매체로 주목을 받고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2는 DVD를 저장매체로 채택, DVD 영화 플레이어 겸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을 받았다. 반면 드림캐스트는 대용량 CD의 일종인 ‘GD(Giga Disc)’를 채택했기 때문에 영화 플레이어로 이용할 수 없었다는 것이 의외로 큰 약점이었다.

치열한 싸움 끝에 기다리고 있던 냉엄한 현실

이러한 가운데 2000년,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가 출시되었다. 플레이스테이션2가 엄청난 기세로 팔리면서 드림캐스트는 시장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세가는 드림캐스트의 가격을 149달러 수준으로 인하하고, 온라인 게임 서비스에 가입하면 본체를 무료로 증정하는 등의 출혈 경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와중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쉔무’, ‘판타지스타 온라인’과 같은 대작 게임을 개발하는 등,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 소니와 경쟁했다.

셴무
<’쉔무’는 막대한 개발비를 들여 만든 대작 게임이었으나 판매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드림캐스트를 외면하고 플레이스테이션2를 선택했으며, 세가가 야심 차게 내놓은 대작 게임들의 판매량도 예상보다 좋지 못했다. 더욱이, 2001년에는 IT공룡 마이크로소프트마저 ‘엑스박스(Xbox)를 출시해 비디오 게임기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 세대 때 잠시 주춤했던 닌텐도 역시 ‘포켓몬스터’를 위시한 인기타이틀의 힘으로 화려하게 부활, 세가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다.

세가는 더 이상 쓸 카드가 없었다. 드림캐스트의 하드웨어 성능은 뛰어났고, 콘셉트 역시 미래지향적이었다. 소프트웨어 개발환경도 우수했으며, 본체 가격 역시 대단히 저렴했다. 그리고 ‘소닉 어드벤처’, ‘바이오하자드 코드베로니카’, ‘사쿠라대전3’ 등, 완성도가 높은 양질의 소프트웨어도 적잖게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가가 소니와 같은 뛰어난 마케팅 능력도,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막강한 자금력도 없었으며, 포켓몬스터와 같은 압도적인 인기 타이틀도 보유하지 못했다는 점은 드림캐스트의 명백한 한계였다.

결국 2001년 1월, 세가는 비디오 게임기 사업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말 그대로 패배선언이었다. 이로서 20여 년 동안 이어진 세가의 비디오 게임기 시장 도전사는 막을 내리게 되었으며, 드림캐스트는 세가의 마지막 게임기가 되었다. 이후 세가는 플레이스테이션2 및 엑스박스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공급하는 등, 소프트웨어 전문업체로 전향하게 되었다. 그 후, 2018년 현재까지도 세가가 게임기 사업을 다시 시작한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장인’이었지만 ‘상인’은 되지 못한 세가

세가는 ‘버추어 파이터’, ‘소닉’, ‘골든액스’, ‘수왕기’ 등 다수의 명작 게임을 탄생시킨 일류 게임 개발사 중 한 곳이다. 하지만 게임기 시장에서 그들이 보여준 마케팅 능력은 미숙하기 짝이 없었다. ‘장인’이 되기 이전에 ‘상인’이 되지 못한다면 시장에서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무엇보다 4세대 연속으로 이어진 ‘패배자’ 인상이 너무 강해지면서 소비자들이 세가의 성공을 믿기 힘들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뼈 아픈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적지 않은 게이머들은 당시의 세가가 보여준 역동성, 그리고 그 무렵의 세가 게임들이 품고 있던 독특한 감각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다수의 일반인들에게 외면을 받을 지 언정, 소수의 마니아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큰 사랑을 받던 업체가 바로 세가였기 때문이다. 특히 드림캐스트의 경우, 비록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세가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은 회심의 역작으로 기억되고 있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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