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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흥망사] 초고속 인터넷 선구자 두루넷, 불꽃처럼 사라지다

김영우

[IT동아 김영우 기자]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전반에 걸쳐 '정보화' 물결이 거세게 일어났다. 컴퓨터의 보급률이 급격하게 높아졌고 PC통신 및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정보 교환 기술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각 요소를 연결하는 통신 기술이었다. 아무리 단말기의 성능이 높아지고 이용자가 많아지더라도 서로 빠르게 정보를 교환하지 못한다면 지식의 발전 및 창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루넷 로고

당시 컴퓨터에서 이용하던 가장 일반적인 유선 데이터 통신 수단은 전화 모뎀이었는데, 최대 데이터 전송속도가 기껏해야 56Kbps 정도였다. 텍스트 기반의 정보를 주고받는 데 적합하며, 영상이나 음성 기반의 데이터 통신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속도다. 이런 와중에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 사회에서도 전화 모뎀보다 훨씬 빠르게 데이터 통신을 할 수 있는 광대역 통신 기술(broadband), 이른바 초고속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작을 알린 기업이 바로 1996년에 설립된 '두루넷(thrunet)'이었다.

백지화 될 뻔한 한전의 인터넷 사업

두루넷 설립의 발단이 된 곳은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였다. 한전은 이미 전국 규모의 철탑 및 송전선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데이터 전송능력이 높은 광섬유 케이블만 추가한다면 대단위의 초고속 통신망을 비교적 손쉽게 구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1990년대 들어 종합유선방송(케이블TV)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각 가정에 유선방송용 케이블이 연결되기 시작했는데, 이 역시 데이터 통신망 구축에 유리한 조건이었다.

통신사업 진출을 두고 한전과 한국통신(현 KT)과의 갈등을 보도한 1997년 6월의 신문 보도(출처: 동아일보)

다만, 한전에서 통신 관련 사업을 한다는 소식에 체신부(현재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한국통신(현재의 KT)은 강하게 반발했다. 통신 사업은 한전의 설립 목적과 맞지 않는다는 명분이었다. 더욱이, 한국통신은 한전에서 하고자 하는 광대역 케이블TV망(HFC) 기반의 인터넷이 아닌, 전화선 기반이면서 기존의 전화 모뎀보다는 빠른 데이터 통신 기술인 ISDN(Integrated Services Digital Network) 서비스를 1993년부터 보급 중에 있었다.

단독으로 통신사업을 하기가 힘들어진 한전은 민간업체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이 사업의 전망을 밝게 본 100여개의 기업이 참여의사를 밝혔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이었던 곳이 국내의 대표적인 PC 제조업체였던 삼보컴퓨터였다. 당시 PC 시장의 급격한 성장으로 높은 매출을 올리던 삼보컴퓨터는 사업 영역의 확장을 노리고 있었다. 더욱이 초고속 인터넷 통신 사업은 PC 산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200배 빠른 초고속 인터넷의 데뷔, 폭발적인 호응

이러한 과정을 거쳐 1996년 7월, 국내 최초의 초고속 인터넷 사업자인 ‘두루넷’이 설립되었다. 두루넷이라는 이름은 통함(through) + 네트워크(network)의 합성어로, 언제 어디서나 두루두루 통하는 서비스를 하겠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참고로 설립 당시 두루넷은 한전이 9%, 삼보컴퓨터가 10%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삼보컴퓨터의 계열사 같은 취급을 받기도 했다.

두루넷은 1996년 11월부터 시범서비스를 시작했으며, 1998년 6월에 본격 상용화를 선언했다. 두루넷의 가장 큰 장점은 빠른 통신 속도였다. 기존의 전화 모뎀이 불과 56Kbps, ISDN의 최고속도는 128Kbps 정도에 그쳤으나, 두루넷 광대역 케이블TV망(HFC) 기반 인터넷 서비스의 최대 속도는 10Mbps에 달했다. 전화 모뎀의 약 200배, ISDN의 약 100배에 해당하는 수치였기 때문에 기존의 통신망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했던 실시간 동영상 전송이나 음성통화와 같은 본격적인 인터넷 서비스의 이용이 가능했다. 때문에 당시 두루넷은 '총알 인터넷'이라는 광고 문구를 강조하기도 했다.

'총알 인터넷'을 강조한 당시 두루넷의 신문 광고(1999년 4월)

더욱이, 당시 전화 모뎀이나 ISDN 기반 인터넷은 서비스 이용량이 많아질수록 요금도 올라가는 ‘종량제’ 방식이었다. 인터넷 세계가 점점 넓어지는 가운데, 이러한 종량제 방식은 이용자에게 큰 부담을 줬다. 반면, 두루넷은 매월 일정액을 지불하면 이용량 제한 없이 자유롭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정액제’ 상품을 제공해 사용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두루넷은 큰 인기를 끌었는데, 1999년 7월에 10만명이었던 가입자가 2000년 8월에는 50만명, 2001년 5월에는 10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빠른 성장을 했다.

설립 초기의 두루넷은 거침이 없었다. 당시 두루넷은 한국 최초이자 아시아 최대의 초고속 인터넷 사업자이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2000년 8월에는 미국 나스닥에 상장을 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승승장구를 했다. 초고속 인터넷 사업에 이어 인터넷 포탈 사업에도 진출했는데, 이것이 바로 2000년 9월에 오픈한 '코리아 닷컴(Korea.com)'이다.

배신과 시행착오, 짧았던 전성기

하지만 두루넷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경쟁사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0년을 전후해 KT, 하나로텔레콤(현재의 SK 브로드밴드)등이 본격적으로 초고속 인터넷 사업을 개시했으며, 심지어 두루넷의 한 축이었던 한전마저 2000년에 ‘파워콤(현재의 LG 유플러스)’을 설립해 별도로 초고속 인터넷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동업자 관계와 같던 삼보컴퓨터와 한전이 갑자기 경쟁자가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 삼보컴퓨터의 관계자들은 정부 및 공공기관의 대처에 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두루넷의 주요 상품이었던 케이블TV망 기반 인터넷 서비스의 특성도 발목을 잡았다. 케이블TV망 기반 인터넷은 가구마다 케이블을 직접 연결해야 했기 때문에 단독으로 케이블TV를 시청하는 일반 주택에는 적합했지만, 케이블TV망을 공동선로로 이용하는 아파트 등의 공동주택에는 적용이 쉽지 않았다. 반면, 당시 경쟁사들은 전화선을 기반으로 하면서 ISDN보다 통신속도를 크게 향상시킨 ADSL(Asymmetric Digital Subscriber Line)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웠는데, 이는 유선 전화를 이용하는 곳이면 비교적 손쉽게 설치할 수 있어 빠르게 보급률을 높일 수 있었다. 두루넷 역시 2001년 3월부터 ADSL 서비스를 개시했지만 경쟁사들에 비해 한 발 늦은 상태였다.

2000년 당시 방영하던 코리아 닷컴의 TV 광고

두루넷이 야심차게 시작한 인터넷 포탈 서비스인 코리아 닷컴도 그다지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한 재미교포에게 500만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하며 Korea.com 도메인을 구매하고, 황금시간대에 TV 광고를 하는 등, 코리아 닷컴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네이버, 다음 등의 기존 포탈 강자의 입지에 도전하기엔 역부족이었고, 결국은 존재감을 상실해 2006년, 대성그룹에 헐값으로 팔리게 된다.

쓰러진 두루넷, 가속화된 시장 재편

이러한 와중에 사실상 두루넷의 모기업이었던 삼보컴퓨터의 경영상태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삼보컴퓨터는 1990년대 말의 벤처 붐을 타고 PC 제조 및 유통, 두루넷 외에도 케이블 방송, 증권, 무선 호출기(삐삐), 서버,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지만 실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더욱이 2000년대 중반부터 벤처 관련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경영 위기가 시작되었는데, 결국 2005년 삼보컴퓨터는 부도를 맞아 법정관리를 신청했으며, 같은 해 두루넷은 하나로텔레콤에 인수된다.

이후,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시장의 재편은 가속화된다. 하나로텔레콤은 2008년에 SK텔레콤에 인수되어 'SK브로드밴드'가 되었으며, 한전의 파워콤은 2002년 LG그룹에 인수된 후 2010년에 LG텔레콤에 합병되어 'LG유플러스'가 된다. 결국 2010년대 이후,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시장은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의 3강 체제로 고착화된다.

안타까움만 남긴 선구자, 두루넷

두루넷은 초고속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국내에 처음 도입한 선구자적인 기업이다. 초고속 인터넷이 마치 공기처럼 익숙한 존재가 되어버린 요즘 사람들의 입장에선 감이 잘 오지 않겠지만, 이미지 한 장이나 음악 파일 하나를 전송하는 데 수십 분이나 걸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당시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있어 초고속 인터넷이 준 충격은 대단했다. 덕분에 설립 초기의 두루넷은 초고속 성장을 하며 국내 인터넷 산업의 선두주자로 등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장이 커지면서 자본 경쟁, 기술 경쟁이 격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두루넷은 이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자금력은 항상 발목을 잡았으며, 한전 및 삼보컴퓨터 등을 비롯한 여러 단체의 이해관계와 자본이 동시에 맞물려 탄생했다는 태생적인 특성 때문에 체계적인 마케팅 및 적극적인 기술 개발을 하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심지어 동업관계에 있던 한전에게 사실상 ‘배신’을 당하기도 하는 등, 일관성 없는 정부 정책 때문에 피해를 보기도 했다. 그리고 두루넷을 이끌던 삼보컴퓨터 역시 부도를 맞는 등, 초기의 기세에 걸맞지 않은 안타까운 뒷모습만 남겼다. 이 여파로 삼보컴퓨터는 한동안 인수 및 재인수 등의 과정을 겪다가 2012년에야 정상화된다.

선구자가 된다는 건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남들이 아직 가 보지 못한 길에 한발 먼저 내딛어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고되고 힘든 것 역시 선구자다.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그리고 그 영광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하기 때문이다. 잠깐의 불꽃처럼 화려하게 데뷔했다가 사라진 두루넷의 사례가 대표적인 반면교사라 할 수 있다.

글 / IT동아 김영우 기자(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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