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기업에게 주어지는 불명예 '블랙기업대상'... 일본의 나쁜 기업 체크리스트

김영우 pengo@itdonga.com

[IT동아 김영우 기자] 직원은 소모품? ‘블랙기업’을 아십니까?

‘악덕기업’의 기준은 여러 가지다. 낮은 품질의 제품이나 속임수 마케팅으로 고객에게 피해를 주는 기업, 환경오염이나 탈세 등으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기업, 그리고 자사의 노동자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는 기업 등이 대표적일 것이다. 이 중에 종업원 처우 문제가 심각한 기업을 일컬어 일본에서는 ‘블랙기업(ブラック企業)’이라고 한다.

블랙기업
블랙기업

<영화 ‘블랙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지금 나는 한계에 도달했는지도 모른다’의 한 장면>

블랙기업이라는 용어는 본래, 폭력조직(야쿠자 등)과 결탁해 위법행위를 하는 기업을 뜻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의미가 다소 변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즈음해 일본은 버블경제 붕괴의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었고, 각지에서 정리해고가 이어지면서 고용시장이 극히 불안정해졌다. 신규 고용의 축소는 물론, 회사에 남은 직원들에 대한 처우 역시 악화되었다. ‘평생직장’이 당연시되던 일본의 기업문화에서 이런 변화는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종업원들에게 혹독한 근무환경을 강요하는 기업들이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은 이를 블랙기업이라 지칭하게 되었다.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신세한탄이 부른 사회적 반향

블랙기업이라는 용어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09년, ‘블랙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지금 나는 한계에 도달했는지도 모른다(ブラック会社に勤めてるんだが、もう俺は限界かもしれない)’라는 일본 영화가 개봉한 이후부터다. 이는 쿠로이 유토(黒井勇人)라는 네티즌이 일본의 커뮤니티 사이트인 2ch에 2007년부터 올리던 게시물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가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겪은 온갖 고생을 정리해 신세한탄 하듯 적어낸 글이었는데, 이것이 다른 네티즌들에게 큰 호응과 공감을 불러내면서 2008년에는 책으로, 그리고 2009년에는 영화로 제작되었다.

블랙기업
블랙기업

<영화 ‘블랙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지금 나는 한계에 도달했는지도 모른다’의 포스터>

작품의 주인공인 ‘마오토코’라는 청년은 취업난 끝에 한 IT 회사에 간신히 입사했지만, 급여는 쥐꼬리만하고 근로조건은 혹독했다. 퇴근 시간이 되었는데 그 누구도 퇴근할 생각을 하지 않으며, 야근과 철야는 일상이었다. 직장 상사는 심지어 정시 퇴근은 도시전설이라며 주인공을 비웃을 정도다. 추가 수당 등의 경비는 당연히 지급되지 않는다. 상사들의 전반적인 능력은 바닥 수준이라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몇몇 직원은 정서적으로 극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상태이니 직원들은 회사를 지옥처럼 여기고, 주인공 역시 심한 갈등을 겪는다는 것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최악의 기업에게 주어지는 불명예, ‘블랙기업대상’

위 작품의 내용은 전형적인 블랙기업의 행태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개봉 이후, 일본에는 언론인 및 노동단체, 교수 등이 협력, ‘블랙기업대상기획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이 단체는 2012년부터 매년 각계의 제보 및 언론기사, 네티즌 투표 등을 바탕으로 일본 최악의 블랙기업을 선정하는 ‘블랙기업대상’ 수상식을 연다. 이 단체가 정의하고 있는 블랙기업의 판별기준은 다음과 같다.

-장시간 노동
-성희롱 및 사내 권력을 이용한 괴롭힘
-집단 따돌림
-장시간 과밀 노동
-낮은 임금
-법규 위반
-육아 휴가 및 출산 휴가 등의 제도의 미비
-노조에 대한 적대도
-파견근로자 차별
-파견직에 대한 높은 의존도
-잔업수당의 미지급 및 거짓 구인공고

위와 같은 조건을 바탕으로 2017년 12월 24일 발표된 ‘블랙기업대상 2017’ 선정 기업의 목록 및 선정 이유는 이하와 같다. 참고로 이는 해당 기업에게 큰 불명예이므로 해당 기업의 당사자가 직접 상을 받으러 수상식에 참석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때문에 이를 대신해 해당 기업을 상징하는 가상의 인물에게 상장을 전달한다.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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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블랙기업대상 2017 수상식 (출처=니코니코동화)

블랙기업대상: 주식회사 힛코시샤(株式会社 引越社)

이 기업은 노조에 가입한 자사의 영업사원을 징계 해고한 후, 해당 남성의 사진 및 징계 사유를 기재한 전단을 회사의 각 점포에 비치했다고 한다. 더욱이 징계 사유를 ‘죄목’이라고 표기해서 모욕감을 부풀렸으며, 위와 같은 내용을 모든 사원이 보는 사보에 게재하기도 했다. 나중에 해고가 철회되긴 했지만, 이후에도 약 2년 동안 이 사원은 하루 종일 문서 파쇄업무만 하도록 강요를 받았다고 한다. 그 외에 이 기업은 노조에 가입한 직원들에게 탈퇴하도록 갖은 방법으로 압력을 가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부당한 사례가 다수 보고되어 블랙기업대상으로 선정되었다.

특별상: 타이세이 건설주식회사, 산신 건설공업주식회사(大成建設株式会社, 三信建設工業株式会社)

2017년 3월, 도쿄올림픽 메인스타디움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23세의 남성이 자살했다. 이 남성은자살하기 직전까지 월 190시간 정도의 잔업을 했는데, 이 사건에 대해 관청에서는 장시간 노동에 의한 산업재해라고 인정했다. 그 외에 메인스타티움 건설공사에 참여하는 업체 중 37개사가 불법 시간외노동을 강요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도쿄올림픽을 원활히 개최해야 한다는 미명 하에 이러한 불법행위가 일어나고 있다고 선정위원회는 비판했다.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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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스크린샷

산업상: 니가타 시민병원(新潟市民病院)

2016년, 이 병원에서 근무하던 37세의 여성 레지던트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레지던트가 죽기 전의 초과 근무시간은 월평균 과로사 위험 수치의 2배에 달하는 187~251시간에 달했다고 한다. 이는 해당 병원이 공립병원인 점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수치라고 선정위원회는 강조했다.

블랙 연수상: 제리아 신약공업주식회사(ゼリア新薬工業株式会社)

이 회사는 2013년에 신입사원연수를 진행하면서 당시 22세였던 신입사원을 정신적으로 괴롭혀 자살로 몰아넣었다고 한다. 특히 과거에 왕따를 당하던 경험이나 말더듬증 등을 동료들 앞에서 고백하게 하기도 하는 등, 업무와 전혀 무관한 교육 프로그램을 강요했는데, 이는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위원회는 언급했다.

블랙기업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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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동안 최소 159시간 잔업에 시달린 끝에 2013년 31세 나이로 과로사한 사도 미와 기자. 일본 NHK는 해당 기자가 과로사한 사실을 2017년에 공표했다. NHK 방송 캡쳐>

이 외에도 31세의 여성 기자를 과로사로 몰아넣은 일본방송협회(NHK)가 네티즌 투표상을 수상했으며, 직원들의 과로사가 이어지고 있는 파나소닉, 이나게야 등의 기업들이 블랙기업대상 2017에 노미네이트 되었다고 선정위원회는 발표했다.

‘과로사’라는 단어의 원조는 일본이다?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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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로 과로사를 뜻하는 ‘karoshi’는 각종 영어사전에 등재돼 있다>

위 내용을 살펴보면 상당수가 장시간 노동에 의한 과로사다. 사실 일본 사회에서 과로사의 역사는 상당히 뿌리깊은데, 특히 1960년대부터 시작된 고속성장 시기부터 다발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서구에는 이런 사례가 상대적으로 흔치 않았기 때문에 해당 현상을 정의하는 별도의 단어가 없었다.

때문에 일본의 과로사를 뜻하는 ‘karoshi(過勞死)’라는 단어가 옥스포드 사전을 비롯한 유명 사전에 그대로 기입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overwork death’나 ‘death from overwork’라고 풀어 쓰기도 한다.

세계정상급 노동 강도의 한국, 블랙기업 온상 될 수도

위 내용은 일본의 사례지만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작년 OECD의 발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 근로자들의 연간 노동 시간은 평균 2069 시간으로, 이는 OECD 회원 35개 국가 중 2위에 해당할 정도로 길다(1위는 연평균 2,255 시간을 일하는 맥시코). 과로사라는 용어의 원조인 일본의 근로자들 역시 만만치 않은 연평균 1713시간을 일하지만, 이는 OECD 평균인 1,764 시간보다 오히려 적은 수준이다.

블랙기업
블랙기업

한국 기업문화의 상당수는 과거 일본의 것에서 유래된 것이 많다. 특히 상당수의 한국 기업들이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조직 및 의사결정 구조를 갖췄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빨리빨리’ 문화로 대표되는 한국 기업 특유의 성과 우선주의가 결합되면서 ‘한국식 블랙기업’이 번성할 토양이 마련되었다. 실제로 최근 국내 보도에서 과로사나 사내 성희롱,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사례를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런 블랙기업들은 종업원들의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해당 기업의 고객들에게도 피해를 끼치게 된다. 사측에게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종업원이 고객들에게 진심으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블랙기업 내에선 잦은 퇴사와 신입채용이 악순환처럼 반복되기 마련인데, 이는 해당 기업의 장기적인 발전에 큰 장애가 된다. 근로자는 물론, 기업 경영인, 그리고 일반 소비자들까지 꼭 명심해야 할 것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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