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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을 도입한 병원은 어떻게 달라질까?

이상우

[IT동아 이상우 기자] 대전에 위치한 을지대학교병원이 병원 내에서 물건을 자동으로 옮기는 로봇을 도입했다. 이 병원에서 로봇은 환자의 각종 샘플이나 방사선 사진 혹은 의약품 등을 옮기는 역할을 한다. 간호사 등 병원 직원은 이런 물건을 검사실로 나르는 단순 반복 작업에서 벗어나 환자를 돌보는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을지대병원이 도입한 자율주행 물류 로봇은 우리가 로봇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올리는 인간형 로봇이 아닌, 원통형이다. 각종 센서와 화물을 적재할 수 있는 공간을 갖췄으며, 하단에 있는 바퀴를 이용해 움직인다. 마치 외화 시리즈 닥터후에 등장하는 전투 로봇 종족 '달렉'을 연상시키는 외형이다.

을지대학교병원이 도입한 자율주행 물류 배송 로봇으로, 건물 내에서 각 층을 이동하며 검사를 위한 혈액/조직 샘플, 간단한 의약품, 차트 등을 전달한다

사실 이전에도 무인 운송 시스템(AGV, Automated Guided Vehicle)이라는 개념이 존재했다. AGV 시스템은 공장 등 물류 이동이 필요한 곳에서 정해진 경로를 따라서 물건을 운반하고 원래 위치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물류 배송 로봇은 이런 시스템과 어떤 차별점이 있을까?

가장 큰 차이점은 자율주행이라는 점이다. AGV 시스템의 경우 전용 레일이나 차량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표시(자석 테이프 등)를 바닥에 설치해야 한다. 즉 건물을 설계할 당시부터 AGV 시스템을 염두에 두고 제작해야 하는 만큼 기존 건물에는 도입하기 어렵다. 이와 달리 자율주행 물류 로봇은 서버에 구축하는 로봇 관제 시스템 외에는 별다른 인프라가 거의 필요 없다. 복도 처럼 인간이 다니는 길을 공유할 수 있으며, 복도에서 사람이나 장애물을 만나면 멈추거나 피해간다.

스테레오 카메라, 레이저레이더, 범퍼센서 등 다양한 센서를 통해 장애물을 피해 목적지까지 이동하며, 서버와 통신해 엘리베이터를 호출하고 원하는 층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층간 이동도 가능하다. 사람 처럼 엘리베이터를 찾아 이동하고, 원하는 층을 눌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로봇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사물인터넷 엘리베이터를 호출하면 서버는 이 위치로 엘리베이터를 보낸다. 로봇이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서버에 신호를 보내면 서버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원하는 층으로 보낸다. 특히 로봇은 엘리베이터에 부착한 AR 마커를 인식하고 자신의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스스로 파악할 수 있다.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을지대병원의 실제 사례다. 이날 만난 로봇은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병원의 건강검진센터와 진단검사의학과 사이를 하루 두 번 오가며 채혈 샘플을 운반한다. 을지대병원의 건강검진센터와 진단검사의학과는 각각 신관과 구관에 위치해 있으며 층도 2층과 5층으로 다르다. 로봇은 두 건물을 잇는 연결복도를 따라 이동해 엘리베이터를 호출하고, 원하는 층에 도착해 샘플을 가지고 원래 위치로 돌아갔다.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물건을 옮기는 것은 물론, 필요에 따라 직접 호출해 급한 물건을 목적지로 보낼 수도 있다

이처럼 스케줄에 따른 이동 외에도 사용자가 직접 로봇을 호출해 물건을 배송하는 것도 가능하다. 병원에서는 건강검진센터 처럼 정기적으로 환자의 샘플을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위급한 환자의 경우 혈액이나 조직 샘플을 즉시 검사실로 옮겨야 할 경우도 있다. 이 경우 각 검사실에 배치된 공용 태블릿PC나 병원 직원의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로봇을 호출하고 필요한 물건을 실어 목적지로 보낼 수 있다.

현재는 간단한 의약품이나 검사용 샘플을 보내는 정도로 활용하고 있지만, 필요에 따라 다양한 화물을 실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세탁물(린넨)이나 의료용 폐기물 등 쌓이면 무거운 물건을 로봇이 직접 운반할 수도 있으며, 각 환자의 병실마다 식사를 배달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 로봇은 컨테이너만 변경하면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도록 제작됐다.

규격에 따라 작은 검체나 의약품을 옮길 수도 있으며, 세탁물, 의료용 폐기물, 수액 등 부피가 크고 무거운 짐을 옮기는 것도 가능하다

을지대병원 관계자는 사실 이를 처음 도입하려 할 때는 반신반의했다고 설명했다. 기존에 봐왔던 청소 로봇 때문에 이상한 곳에 들어가서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뿐만 아니라 환자와 부딪히는 등의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고, 분실이나 파손 등으로 인해 진료 공백이 생길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진단검사의학과 내부에서 검체를 소량 운반하는 정도로만 도입했지만, 이후 한 단계를 넘어 부서와 부서 사이의 이동, 이제는 층과 층사이를 이동하는 수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메르스 같은 전염병 사태에 이러한 로봇이 더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환자를 격리하기 위한 메르스 병동을 만들었을 때, 의사들은 이 곳에서 상주할 수 있지만 이 병동에서 발생한 의료 폐기물을 외부로 보낼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격리 병동 외부에 있는 직원이 이를 가지고 나가야 하지만, 그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인 만큼 이러한 로봇이 운반 작업을 대신할 수 있는 셈이다.

이 로봇은 병원 내에서 인간이 하던 단순 반복 작업을 대신 하면서, 병원 직원은 환자를 돌보는 본연의 업무에 더 충실할 수 있다

그렇다면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지는 않을까? 을지대병원에 따르면 이 로봇을 도입한 이후에도 직원 감축은 없었다. 로봇이 인간의 일들 대체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단순한 반복 노동을 대신 해준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의무보조원의 경우 인원이 항상 부족해 혼자서 환자의 휠체어를 밀면서 차트나 검체를 함께 운반하는 식으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로봇을 도입하면서 이러한 작업은 로봇이 대신 하고, 인간은 환자를 돌보는 원래 업무에만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글 / IT동아 이상우(lswo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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