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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노키아 쇼크 극복한 핀란드를 배우다] 같으면서도 다른 핀란드와 한국의 스타트업 지원 전략, 생태계 활성화 차이 불러

강일용

[헬싱키=IT동아 강일용 기자] 인구수 대비 스타트업이 가장 많은 국가는 어딜까.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정답은 핀란드다. 2016년 기준 핀란드 전체 생산량의 77%가 중소기업에서 비롯됐고, 중소기업 생산량의 절반이 창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스타트업에서 나왔다. 스타트업이 핀란드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닌 셈이다.

핀란드에 스타트업이 많은 이유는 불안감과 자율성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1960년대 핀란드는 풍부한 임업 자원을 바탕으로 한 자원 수출 위주의 산업구조를 구축했다. 헬싱키를 포함한 핀란드의 모든 항구 도시는 유럽, 소련 등의 나라에 목재와 종이를 수출하기 위하여 북적였다. 심지어 스마트폰, 네트워크 사업 등으로 유명한 노키아도 이 때는 종이를 만드는 사업을 했을 정도다.

시리즈 순서
1. 핀란드 알람시계는 1시간 일찍 울린다… 5가지 핵심 경쟁력
2. 화려한 불쇼 레이저쇼 열리는 스타트업 경연대회…7주간 육성해 글로벌 무대위로
3. 4단계 검증 통과해야 정부 지원금, 한국과 상반…슈퍼셀 등 초우량 기업 나와
4. 언제나 변해왔다, 노키아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5. 헬스케어 산업의 요람
6. 나라 전체가 테스트베드, 기업 유치를 위한 새로운 기법
7. 핀란드의 강소기업을 만나다

하지만 1989년 이후 소련이 러시아로 변하면서 나라 경제에 큰 위기가 찾아든다. 주요 수출국이던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에 경제 위기가 닥치자 핀란드의 자원을 수입할 수 없었다. 덩달아 핀란드도 위기를 맞았다. 경제를 지탱하던 여러 임업 관련 기업이 도산해 실업률이 치솟았다. 한국이 1997년 맞이한 외환위기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의 국가비상사태였다.

일을 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핀란드 국민들은 실업의 문제를 컴퓨터와 같은 하이 테크놀로지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불황으로 인해 시합이 열리지 못하던 비어버린 아이스하키 경기장에 수 천명의 사람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컴퓨터를 학습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끼리 팀을 꾸려 하이 테크놀로지를 취급하는 기업을 만들었다. 이것이 핀란드의 1차 스타트업 붐이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모이는 문화는 직장인에서 학생에게로 전파되었다. 2010년대에 들어 핀란드를 지탱하던 대기업 노키아가 위기에 처하자 학생들은 취업 대신 자발적으로 모여 창업에 나섰다.

이를 통해 로비오, 슈퍼셀 등 전 세계에서 큰 유명세를 떨친 스타트업이 태어났다. 이를 핀란드의 2차 스타트업 붐이라고 부르며,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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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대표적인 IT 신시가지 포카란카투. 슈퍼셀, 테케스 등 핀란드의 기술 기업과 이들을 지원하는 정부 기관이 모여 있다 / 출처 일마리넨 비즈니스타워>

디지털 라이트하우스, 핀란드 정부의 3단계 기업 지원 전략

이러한 핀란드 국민들의 자발적인 창업 붐을 돕기 위해 핀란드 정부는 단기(Short-term), 중기(Mid-term), 장기(Long-term) 등 3가지 단계로 나뉜 '디지털 라이트하우스'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단기 지원은 특정 회사가 자사의 연구를 사업 아이템화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비즈니스적 도움을 주는 전략이다. 기업의 사업 자체를 돕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원은 핀란드 정부 산하의 '핀프로(Finpro)'가 주도하고 있다. 핀란드의 인구는 550만 명으로 매우 적기 때문에 내수만으로는 기업을 지탱하기 힘들다. 핀란드 기업은 필연적으로 전 세계로 진출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핀프로는 이러한 핀란드 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도록 다양한 도움을 주고 있다. 한국으로 치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라고 할 수 있다.

중기 지원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이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현실화할 수 있도록 돕는 전략이다. 쉽게 말해 스타트업 육성 전략이다. 이 지원은 핀란드 정부 산하의 '핀란드 기술청(Tekes, 테케스)'이 제공하고 있다. 장기 지원은 5G, 가상현실, 인공지능 등 미래 먹거리 기술을 기업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국책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VTT(핀란드 테크니컬 리서치 센터)'가 진행한다. 한국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RTI)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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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타트업 투자 전략의 문제점

세 가지 전략과 세 가지 전략을 실행하는 기관 중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곳은 테케스다. 테케스는 다양한 정책 설정과 자금 지원으로 핀란드의 스타트업 붐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스타트업 육성으로 한국의 중소벤처기업부와 동일하지만,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식에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 차이가 앞에서 설명한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의 차이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중소벤처기업부가 중소기업과 벤처를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세우지만, 회사 설립 및 사업 진행을 위한 자본 투자는 산하기관과 민간에게 맡기고 있다. 자본을 제공하는 곳과 운용하는 곳이 다르다 보니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외형만 보면 한국은 정말 창업하기 좋은 국가다. 김경근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와 구스나 겐지 고베대 교수가 함께 펴낸 한국의 하이테크 벤처 생태계 보고서(Venture capital activities and financing of high-tech ventures in Korea: Lessons from foreign experiences)에 따르면 한국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벤처캐피털 투자금 비중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국가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줄곧 전 세계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투자에도 불구하고 정작 기술 개발에 전념하는 견실한 스타트업들은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투자를 받지 못해 허덕이고 있다. 많은 투자금이 제대로 사업을 하려는 스타트업 대신 아이디어만 내고 이 아이디어로 사업을 진행할 의지가 없는 이들에게 흘러들어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0년대 초반 1차 벤처 붐이다. 이때 정부투자금을 바탕으로 수 많은 벤처 기업이 생겨났지만, 지금까지 생존한 기업은 드물다. 수백억 원을 투자 받고도 기술 개발은 등한시하고 이 돈으로 술 먹고 노는데 집중한 사업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별거 아닌 아이디어로도 정부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투자를 받기 쉬웠던 것이 이유다.

이러한 도덕적 해이를 경험한 한국 정부는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강하게 설정했다. 스타트업이 비즈니스적 성과를 내지 못하면 투자한 금액을 모두 회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러한 결정이 정작 더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스타트업은 필연적으로 실패를 동반한다. 창업의 천국이라는 실리콘밸리에서 조차 글로벌 대기업(유니콘: 10억 달러 이상의 기업 가치를 보유한 스타트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스타트업은 전체의 3%뿐이고, 이 상황에서 기업공개를 할 수 있는 기업은 전체의 0.4% 수준에 불과하다. 창업에 나선 기업 가운데 65%는 살아남지 못하고 망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인사이트 조사 기준) 창업의 천국이라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상황이 이런데,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상황은 어떻겠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가 창업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창업가들이 이렇게 실패를 거듭해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창업을 진행해 결국 성공을 일궈내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업가들의 과거를 살펴보면 대부분 2~3번 정도의 창업 실패를 겪었을 정도다. 이들은 실패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실패에서 얻은 경험을 자산으로 더 나은 기업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결정한 투자비용 회수는 족쇄가 되어 한국 창업가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모든 사업은 시기성이 있다. 지금은 좋아 보이는 아이디어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에서 통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를 만든 스티브 첸은 스타트업 앞에 서면 언제나 "자신의 아이디어가 최고라고 여기지 말고 시장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바꿔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심지어 유튜브조차도 이렇게 시장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사업 아이템을 바꾼 결실이다(온라인 미팅 서비스 > UCC 업로드 서비스).

투자비용 회수라는 벽에 부딪친 한국 스타트업은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과 달리 쉽사리 사업 아이디어를 변경할 수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성과를 내기 위해 시기에 맞지 않는 것으로 평가받는 아이디어에 매달려야 한다.

성공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실패하면 이러한 투자비용 회수가 빚이 되어 창업가에게 남는다. 이러한 빚이 부담되어 창업과 재창업을 꺼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만큼 스타트업 생태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즉, 현재 한국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은 스타트업을 지원한다는 생색은 내지만, 지원에 따른 리스크는 스타트업에게 모두 전가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같으면서도 다른 핀란드와 한국의 스타트업 지원 전략

테케스의 스타트업 지원 방식은 한국과 정반대다. 일단 정부 지원을 받는 것은 쉽지 않다. 일정 수준의 자기 자본금을 보유하던가, 아니면 외부에서 투자를 유치한 실적이 있어야 핀란드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한 번 지원금을 주면 끝인 한국과 달리 테케스는 4단계에 걸친 고강도 테스트를 진행해 지속적으로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한다. 사업이 실패할 경우 대부분의 지원금을 회수하는 한국과 달리 테케스는 지원금을 회수하지 않는다. 스타트업이 지원을 받기는 어렵지만, 스타트업이 망한 것에 따른 지원 실패 책임은 핀란드 정부가 고스란히 지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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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케스 청사의 모습 / 출처 테케스>

테케스는 핀란드 스타트업이 지원을 위해 정부 기관 가운데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기관이지만, 동시에 가장 마지막으로 만날 수 있는 기관이기도 하다. 테케스에게서 지원을 받지 못하면 핀란드 정부로부터 그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스타트업 지원 창구가 테케스로 일원화되어 있는 것이다. 때문에 핀란드 스타트업들은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면 테케스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모바일게임 '크래시오브클랜'으로 유명한 슈퍼셀도 이렇게 지원받기 위해 테케스의 문을 두드린 스타트업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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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성공한 스타트업인 슈퍼셀의 히트작 크래시오브클랜의 캐릭터들 / 출처 슈퍼셀 페이스북>

테케스로부터 지원을 받으려면 엄격한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 최소 3만 유로(4045만 원)의 자기자본금을 보유하거나, 이에 상응하는 금액을 외부 민간 투자자로부터 유치해야 한다. 그 다음 테케스 내부 심사를 통해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핀란드 정부도 당연히 지원금을 낭비하는 도덕적 해이를 경계한다. 때문에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까다롭게 설정한 것이다. 테케스 자체 심사뿐만 아니라 외부 민간 투자자의 심사라는 이중 심사를 통과해야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테케스가 스타트업을 지원할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창업가의 의지와 글로벌 시장 진출 가능성이다. 스타트업이 테케스에게 지원을 받으려면 창업 아이디어가 현실성 있는지 확인하는 단계와 함께 창업가가 실패를 하더라도 이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 의지를 확인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현재 스타트업이 어느 정도 자본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 후 목표 달성을 위해 정말 정부의 도움이 필요한지 검토해서 지원을 결정한다. 또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려는 스타트업을 최우선으로 지원한다. 핀란드는 내수가 작기 때문에 국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의 해외 진출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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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케스 사무실 전경 / 핀란드 공동 취재단>

스타트업은 처음부터 테케스로부터 많은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4단계에 걸친 테스트를 통과해야 후속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대신 테스트를 통과할 때마다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은 급격히 늘어난다. 후속 지원 모델은 1) 교육 및 테스트 2) R&D 3) 성장 및 확장 4) 비즈니스 모델 완성 및 상용화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가가 스타트업이 제대로 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과제를 주고, 이 과제를 통과하면 지원금이라는 보상을 주는 셈. 처음 2000개의 스타트업을 선발했다고 가정해보자. 2단계에 접어들면 절반으로 줄어든다. 3단계에 들어서면 200~300개밖에 남지 않는다. 이 가운데 20~30개의 기업만이 4단계를 통과해 테케스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4단계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20~30개의 급격히 성장할 스타트업과 200~300개의 제법 괜찮게 성장할 스타트업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테케스 관계자의 설명이다.

미카 클레메티넨 테케스 프로그램 매니저는 "테케스의 지원 프로그램은 엄격하지만 또한 많은 부분을 스타트업 자율에 맡기고 있다. 테케스는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지만, 스타트업이 어떤 비즈니스를 진행하는지 일일이 감독하지 않는다. 오직 성장을 위한 도움을 주는 것만이 목표다"며"테케스는 회사에 지원함으로써 리스크는 공유하지만, 매출은 공유하지 않는다. 성공한 뒤 나오는 모든 이익은 기업과 창업자의 것"이라고 말했다.

테케스는 1983년 설립되어 올해로 34주년을 맞이했다. 2015년에만 5억 7500만 유로(7686억 원)의 비용을 핀란드 스타트업에게 지원했다. 현재 인공지능, 로봇, 증강현실 및 가상현실 등 미래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관련 스타트업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핀란드의 일반 중소기업 성장률이100% 라면 테케스의 지원을 받은 스타트업 성장률은 156%로 나타났다. 테케스의 지원을 통해 핀란드 내의 일자리가 16% 증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테케스라는 이름에서 스타트업 지원을 연상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내년부터 테케스는 '비즈니스 핀란드'로 부서의 이름을 변경할 계획이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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