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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CEO 열전] GPU의 아버지에서 인공지능의 리더로, 엔비디아 창업자 젠슨 황

강형석

[IT동아 강형석 기자]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모터스 CEO와 자율주행 차량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는 젠슨 황 엔비디아 회장>

"이제 자동차는 바퀴 달린 컴퓨터다. 앞으로 자동차는 영리하게 거리를 달리는 유쾌한 컴퓨터가 될 것이다. 자율주행차의 빅뱅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2015년, 테슬라모터스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한 남자는 자율주행차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며, 이것들 하나하나가 운송수단이자 슈퍼 컴퓨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현재 많은 업체들이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의 중심에 그가 개발한 그래픽 처리 장치(GPU)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 자율주행의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도 바로 GPU가 있어서 실현이 가능했다.

인공지능 개발 및 상용화에 속도를 붙인 인물, 바로 엔비디아의 설립자이자 현 회장인 젠슨 황(Jensen Huang)이다. 반도체 제조사 LSI 로직(Logic)과 AMD(Advanced Micro Devices)에서 중앙 처리 장치(CPU) 관련 개발자를 역임한 그는 현재 엔비디아에서 GPU와 관련된 기술을 사용자와 기업에게 판매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인공지능을 위한 '병렬 GPU 관련 핵심 기술(CUDA)'을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인공지능 열풍과 맞물려 엔비디아의 주식은 5년 전과 비교해 9배 이상 상승했고, 이 덕분에 엔비디아 주식 대부분을 소유한 젠슨 황은 2016년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400대 부자의 1인으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렇듯 젠슨 황 역시 처음부터 자신이 CEO가 될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젠슨 황은 대만 이민자 출신의 미국인이다. 1963년 화학 응용 공학자였던 아버지와 영어를 가르쳤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대만 타이베이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젠슨 황은 10세가 되던 해에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대만에서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미국 켄터키 주에 있는 오네이다 밥시스트 학교에 입학했는데, 그 때부터 그의 시련이 시작되었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3년 넘게 기숙사 변기를 닦는 인종차별을 겪어야 했던 것. 그러나 젠슨 황은 이를 악물고 악바리처럼 학업에 매진했고 결국 오레곤 주립 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전공은 전자공학이었다. 석사 과정을 마친 젠슨 황은 이후 스탠포드 대학원 박사 과정을 밟았다.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

흥미롭게도 젠슨 황은 탁구에 재능이 있었다. 14세 되던 시절에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에 탁구 유망주로 실리기도 했다. 15세에는 주니어 대회에 3위로 입상할 정도의 실력을 뽐냈다. 하지만 이후 학업과 결혼 생활을 위해 탁구와는 연을 끊게 된다.

'GPU'를 창안하다: 마케팅 용어를 표준 단어로 정착시키다

젠슨 황은 한 가지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딱딱한 사무용 기계로 이용되는 PC가 언젠가는 게임, 동영상 등 모든 멀티미디어를 즐길 수 있는 기기로 떠오를 것이라는 예측이다. 1990년대 초 PC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이는 업무에 관련된 영역에 한정되어 있었다. 젠슨 황은 PC로 역동적인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제대로 즐길 수 없음을 늘 아쉬워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PC에도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기술이 적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젠슨 황은 이렇게 새롭게 열릴 시장을 주도하길 원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GPU(그래픽 처리 장치) 전문 업체 엔비디아(NVIDIA)다.

1993년, 젠슨 황은 썬 마이크로시스템(Sun Microsystems)에서 그래픽 칩셋을 설계하던 엔지니어인 커티스 프리엠(Curtis Priem), 전자기술 전문가였던 크리스 말라초스키(Chris Malachowsky)와 손을 잡고 엔비디아를 설립한다. 그들의 시작은 고작 침대 2개만 있는 아파트였다. 여느 벤처들과 비슷한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가능성과 비전을 본 세쿼이아 캐피털 등 벤처투자사들은 엔비디아에 약 2,000만 달러를 투자했고, 셋은 이 투자를 바탕으로 회사를 키워나갈 수 있었다.

사실 처음 젠슨 황과 엔비디아는 CPU를 만들고 싶어했다. 멀티미디어 처리에 특화된 CPU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 요즘 개념으로 따지자면 바로 APU(CPU+GPU)다. 현재 시중의 CPU 대부분이 APU 형태로 만들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20년 이상 시대를 앞선 그의 혜안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젠슨 황의 이러한 꿈은 그때의 엔비디아에게는 무리였다. 당시 CPU 시장은 인텔 천하였다. 인텔이 모든 CPU 기술을 독점하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X86 시스템(386, 486, 펜티엄 등)을 만들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한때 젠슨 황이 근무했던 중견 CPU 업체인 AMD도 이런 인텔과 경쟁하자니 힘에 부칠 지경이었다.

결국 젠슨 황과 엔비디아는 CPU 개발의 꿈을 접고 자신들의 장기인 GPU 시장에 주력하기로 결정했다.

마침내 엔비디아는 1995년 9월, ‘NV1’이라는 GPU를 세상에 선보였다. 하지만 너무 시대를 앞서갔다. 3D만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2D와 3D, 음성까지 모든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한 장의 카드로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었지만, 가격이 비쌌고 독자 기술을 고집하다 보니 호환성 면에서 뒤쳐졌다. 당연히 시장과 게임 개발사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실패의 쓴 잔을 들이킬 수 밖에 없었다.

NV1의 실패는 엔비디아를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일본 게임개발사 세가는 엔비디아의 기술을 높이 샀다. 세가 경영진은 차세대 게임기용 그래픽 칩셋 개발을 위해 엔비디아에게 수백만 달러를 지원했다. 엔비디아는 이 자금을 바탕으로 NV1의 후속인 NV2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개발의 어려움과 독자 규격이 향후 판매 전망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내부적으로 판단되어 NV2는 빛을 보지 못하고 프로젝트 자체가 중단되고 만다.

다시 어려움에 봉착한 엔비디아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NV3 개발을 시도했다. 이 프로젝트를 성공을 이끌기 위해 젠슨 황은 컴퓨터 공학 박사인 데이비드 커크(David Kirk)를 엔비디아 수석 과학자로 영입했다.

1997년, 엔비디아는 'NV3(리바 128)'를 세상에 선보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3Dfx, ATI 등 경쟁사의 제품을 압도하는 성능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제품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엔비디아는 과거의 부진을 떨치고 단숨에 도약의 날개를 펼칠 수 있었다.

NV3의 성공 비결은 강력한 3D 처리 능력에 있었다. 당시 막 태동하던 3D 게임 시장과 맞물려 PC로 언리얼, 퀘이크, 레인보우식스 등 3D 게임을 쾌적하게 즐기길 원하는 사용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반면 3D 처리 능력에 집중한 나머지 2D 게임이나 동영상 처리 능력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렇게 부족한 2D, 동영상 처리 능력은 2000년 경쟁사인 3Dfx를 인수함으로써 확보했다.

NV3의 성공에 고무된 엔비디아는 차기 제품을 개발에 나섰고, 1999년 최초의 지포스 제품군인 ‘지포스 256(NV10)’을 공개하게 된다. 지포스 256은 처음으로 CPU의 도움 없이 GPU 자체적으로 3D 명령어를 처리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동영상 처리 가속 및 보정도 CPU에 의존하던 기존 GPU와 달리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GPU가 CPU에 부속된 부품이 아니라 별도의 능력을 갖춘 기기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엔비디아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금도 자사의 GPU 제품군에 ‘지포스’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PC의 이러한 구조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PC는 크게 CPU 파트(CPU+메모리+메인보드)와 GPU 파트(GPU+그래픽 메모리+그래픽 칩셋) 그리고 저장장치 파트(HDD+SSD)로 나눌 수 있다.)

이 때부터 엔비디아는 자사의 제품을 ‘영상 그래픽 어댑터(VGA – Video Graphics Adaptor)’라는 이름 대신 ‘그래픽 처리 장치(GPU – Graphic Processing Unit)’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GPU의 역할이 PC의 핵심인 CPU와 동급이라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젠슨 황은 자사 제품들에 그래픽 처리 장치(GPU)라는 이름을 도입했고, 이 용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시 PC 관계자들은 GPU라는 이름을 단지 마케팅 용어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다. 젠슨 황이 이루지 못한 CPU 개발에 대한 미련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든 용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2D, 3D,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CPU만으론 이렇게 발달한 콘텐츠를 빠르게 처리할 수 없음이 입증되었고, 그로 인해 GPU의 수요는 나날이 증가했다. GPU는 2002년을 기점으로 CPU와 동급의 제품임을 시장에서 인정받았다. 사용자와 기업은 자연스럽게 VGA라는 용어를 버리고 GPU라는 용어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제 GPU라는 단어는 젠슨 황이라는 한 개인이 만들어낸 개념임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학계에서도 VGA라는 사어 대신 GPU를 공식적으로 이용할 정도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젠슨 황은 GPU가 단순히 멀티미디어용으로 쓰이는 것보다 컴퓨팅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쓰이길 원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오토캐드, 3D 맥스, 마야, 앤시스, 카티아 등 산업용 3D CG 제작용 SW를 실행하는데 특화된 GPU '쿼드로(Quadro)'다.

이어 GPU가 단순 연산을 반복하는데 최적화된 기기임에 주목하고, 멀티미디어 처리 능력을 제거한 대신 천문학적인 단순 연산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일반 목적용 GPU(GPGPU – General purpose GPU) '테슬라(Tesla)'와 테슬라 수백 수천 대를 병렬로 연결해 처리 능력을 슈퍼컴퓨터급으로 끌어올리는 기술 CUDA 등을 개발했다.

소통과 희생의 리더십, 실리콘밸리 최고경영자의 미덕 연봉 1달러

엔비디아는 설립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해 왔다. 그 중에는 기업의 존폐 자체를 위협할 정도의 큰 위기도 있었다. 그 때마다 젠슨 황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왔다. 그는 '지적 정직함(Intellectual honesty)'과 소통, 희생이 위기 및 실패 극복의 힘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처녀작 NV1이 실패할 때가 그랬다. 공개 당시 구상은 좋았지만 여러 문제들이 대두되며 시장에서 완전히 밀려날 위기에 몰렸다. 동시에 투자자금까지 거의 사용했고 엔비디아는 폐업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실패를 겸허히 수용했다. 실패는 값진 교훈을 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발판 삼아 NV3를 선보였고 결국 성공을 일궈냈다.

직원들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엔비디아 내부에 자신의 집무실을 만들지 않았다. 직원들도 회사나 집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열린 업무 환경이 직원들 간에 소통을 쉽게 해준다고 생각해서다. 리더에겐 자신보다 회사 전체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설립 초기 엔비디아는 몸집이 작았다. 이렇게 작은 몸집을 직원 간 소통에 십분 활용했다. 덕분에 직원 간에 긴밀한 소통이 이뤄졌다. 이는 업계 최신 기술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이 가운데 회사에 필요한 부분을 추려내는데 큰 도움을 줬다. 젠슨 황은 다양한 방식의 소통 시스템을 도입해 직원의 능력을 직접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직원들의 신뢰를 이끌어내는 최고경영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젠슨 황의 과감한 결단과 희생 정신도 본받아야 할 점이다. 엔비디아는 지난 2008년 국제 금융위기를 맞이하며 창립 이래 두 번째 위기를 맞이했다. 41억 달러에 달했던 매출이 34억 달러로 주저 앉았다. 경제가 흔들리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았고, 동시에 나름 사치품으로 분류되던 GPU는 구매 순위에서 뒤로 밀려나고 만다. 엔비디아 내부에선 비상이 걸렸고, 젠슨 황은 이를 해결할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이때 젠슨 황은 두 가지 결단을 내렸다. 첫 번째는 자신과 임원들의 연봉을 줄이는 것이다. 그는 2009년 자신의 연봉을 1달러로 책정했다. 두 번째로 이렇게 줄인 돈을 인재를 영입하는데 활용했다. 인재를 적극 영입해 GPU 기술 수준을 경쟁사보다 뛰어나도록 향상시키면 자연스레 사용자들이 다시 엔비디아의 제품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엔비디아는 경쟁사보다 1~2단계 앞선 GPU 기술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결정이 옳았다. 엔비디아 2011년 35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반등에 성공했고, 이후 꾸준히 매출과 영업이익이 상승하게 된다. 이러한 투자와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결국 경쟁사 AMD를 밀어내고 8:2 정도의 비중으로 고사양 GPU 시장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인공지능 기업으로의 도약하다, 비결(?)은 시장 표준 장악

사실 젠슨 황과 엔비디아에겐 한 가지 안 좋은 버릇이 있다. 무엇인고 하니 바로 시장 표준 기술을 따르지 않고, 무리하게 독자 기술을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자사 최초의 제품인 NV1을 말아먹은 것도 무리한 독자 기술 고집에 있었다. 시장에서 자리잡은 지금도 시장 표준 기술 대신 피직스, G싱크 등 적지 않은 독자 기술을 고집하고 있어 많은 사용자로부터 원성을 듣고 있다. 시장 반응도 그리 썩 좋지는 않다. 엔비디아가 GPU 시장 선도 기업이 아니었다면, 저 기술들은 진작에 시장에서 퇴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젠슨 황의 이러한 뚝심이 마침내 '대박'을 하나 터트렸다. 바로 GPU 병렬처리 기술인 CUDA다. 인텔, AMD 등 경쟁사들은 시장 표준 기술인 'Open CL'을 자사 GPU에 탑재한반면 젠슨 황과 엔비디아는 직접 개발한 GPU 병렬처리 기술 CUDA를 자사 GPU에 탑재했다.

젠슨 황은 GPU라는 단어로부터 교훈을 얻었다. "시장 표준은 누가 개발했냐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이 사용하냐로 정해진다"는 것이다. CUDA가 바로 그런 사례였다. 엔비디아는 기업의 사활을 걸고 CUDA에 많은 투자를 감행했다. 관련 신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자사의 모드 GPU에 CUDA 명령어를 삽입했다. GPU 기술 개발자와 엔지니어들에게 지속적인 CUDA 기술 교육도 제공했다.

반면 경쟁사인 인텔과 AMD는 Open CL 관련 기술 개발과 투자에 소홀했다. 인텔은 GPU가 주력 사업이 아니란 이유로, AMD는 경영이 어렵단 이유로 프로젝트를 외면했다. '모두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는 격언도 인텔과 AMD의 발목을 잡았다. 태생이 오픈소스인 Open CL 관련 기술 개발과 투자를 해봤자 기업의 소유로 귀속되는 것은 적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의 투자와 인텔, AMD의 외면이 겹쳐 CUDA는 Open CL을 밀어내고 GPU 병렬처리 기술의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젠슨 황과 엔비디아의 이러한 준비가 시장 변화와 맞물려 엔비디아에게 엄청난 호재를 이끌어냈다. 바로 '인공지능의 등장'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현재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핵심 기술이 바로 '딥러닝(인공신경망)'이다. 딥러닝은 사람의 신경망을 모방한 수많은 인공 신경망을 컴퓨터 내부에 생성해, 이를 바탕으로 기계에게 학습 능력(머신러닝)을 부여하는 기술이다. 딥러닝을 통해 기계는 마침내 보고, 듣고, 학습하는 인지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딥러닝으로 인공 신경망을 유지하려면 기계 내부에서 단순 연산이 수없이 반복되어야 한다. 이렇게 수많은 단순 연산을 처리하는 데에는 GPU가 CPU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물론 단일 GPU만으로는 만족스러운 연산 능력을 확보할 수 없으니 수백, 수천 대의 GPU와 이렇게 많은 GPU를 하나로 묶을 병렬처리 기술이 필요하게 되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바로 이 시장을 엔비디아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었다. GPGPU 테슬라와 병렬처리 기술 CUDA로 말이다.

뒤늦게 인텔이 내부에서 중단된 고성능 GPU 프로젝트 '라라비'를 바탕으로한 차세대 GPGPU ‘제온파이 2세대’를 개발하고 Open CL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며 잃어버린 GPU 병렬처리 시장 확보에 나섰지만, 아직 엔비디아의 입지를 흔들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인공지능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하드웨어 원천기술을 확보한 엔비디아는 매출과 시가총액이 날개가 돋친 듯 성장했다. 한때 34억 달러까지 떨어졌던 매출은 2016년 69억 달러까지 성장했고, 2017년에는 80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달러 후반에 머물던 주가도 1년 새 100~110달러로 급증했고, 시가총액도 덩달아 3배 이상 늘어났다.

현재 엔비디아의 GPGPU는 글로벌 기업의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와 슈퍼컴퓨터 위주로 공급되고 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IBM, 알리바바, 텐센트 등 많은 글로벌 기업이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상용화하기 위해 엔비디아의 GPGPU와 병렬처리 기술을 자사 데이터센터에 도입했다. 심지어 이렇게 GPGPU와 병렬처리 기술을 도입한 것을 클라우드 서비스의 핵심 경쟁력으로 홍보할 정도다.

또, 세계 500대 슈퍼컴퓨터 대부분이 엔비디아의 테슬라 GPGPU와 CUDA 병렬처리 기술을 활용해 성능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인공지능 하드웨어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젠슨 황과 엔비디아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자율주행차의 핵심 기술인 자율주행 기술 개발이다.

엔비디아는 과거 퀄컴, 애플, 삼성전자 등이 개발한 모바일 프로세서(모바일 CPU+모바일 GPU)에 밀려 쓴맛을 본 모바일 프로세서 '테그라'를 자율주행차용 핵심부품으로 개량했다. 당시 테그라가 경쟁 제품들보다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이유가 모바일 부품답지 않은 크기와 전력에 있다. 하지만 자동차는 공간이 제법 넉넉한 관계로 테그라의 크기와 전력 소모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뛰어난 성능이 주목받게 되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엔비디아는 테슬라모터스, 아우디 등과 손잡고 개량된 테그라 프로세서를 활용한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고 있다. 이미 성과도 나오고 있다. 엔비디아의 하드웨어가 테슬라모터스의 전기차에 탑재돼 '오토파일럿(테슬라모터스가 제공하는 제한적인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하는데 이용되고 있다. 테슬라 모터스의 주요 행사에 젠슨 황이 등장해 일론 머스크와 자율주행차의 미래에 대해 환담을 나눈 이유다.

자율주행차는 그 원리가 인공지능과 같다. 딥러닝을 활용한 사물인식(컴퓨터 비전)이 자율주행차의 핵심 기술이다. 자율주행차의 소프트웨어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구글, 테슬라모터스, 우버, 네이버 등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처럼 젠슨 황과 엔비디아도 자율주행차 하드웨어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엔비디아는 GPU 시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텔, 퀄컴 등 경쟁사를 제치고 자율주행차 하드웨어의 핵심으로 떠오를 계획이다.

아직까지 엔비디아는 일반 GPU가 핵심 사업이다. 2016년을 기준으로 전체 매출 가운데 59%를 멀티미디어 구현을 위한 일반 GPU 판매가 차지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위한 GPGPU 판매는 전체 매출의 12%, 자율주행차를 위한 모바일 프로세서 판매는 전체 매출의 7%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차 시장이 확대되면 결국 이 수치는 뒤집어질 수밖에 없다. (엔비디아의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내부적으로도 이미 그렇게 보고 있다.) 게임용 GPU를 판매하던 기업이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차를 위한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기업으로 새롭게 태어나려 하고 있다. 젠슨 황의 두 번째 도전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글 / IT동아 강형석 (redb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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