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탑과 노트북, 서로에게 묻다

이문규 munch@itdonga.com

우리 생활에서 컴퓨터는 이제 단순한 ‘전자계산기’가 아닌 하나의 일상이 됐다. ‘일상’의 한 부분이라는 것은 그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젠 컴퓨터가 없다면 단지 인터넷을 못하거나 문서를 만들 수 없다거나 또는 게임을 즐길 수 없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만히 상상해 보라. 수십 년 전 누군가가 전자계산기를 발명, 개발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반도체 기술, 마이크로 프로세서 기술이 지금과 같이 발전하지 못했다면, 데이터 저장 기술이 저용량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면, 네트워크 대역폭이 꾸준히 늘어나지 않았다면 우리 일상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일 것이다.

우리 일상에서 컴퓨터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사용된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든든하고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스크탑’과 언제 어디서든 자유로운 컴퓨팅 라이프를 제공해 주는 ‘노트북’이 그것이다(우리는 흔히 ‘노트북’이라 하지만, 외국인들은 ‘랩탑(laptop)’으로 말한다. 물론 그들에게 ‘노트북’이라 말해도 못 알아듣는 건 아니다. 어찌 보면 ‘데스크탑’의 상대적인 이름은 ‘랩탑’이 정확하다 할 수 있겠다).

여기서는 태생부터 지금까지 영원한 동지도, 숙적도 아닌 두 컴퓨터 제품군이 만나 그 동안 묻고 싶었고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나눈다.

001.jpg
001.jpg

데스크탑(이하 ‘데’): 반갑습니다. 우린 서로를 너무 잘 알지만 이렇게 한 자리에 앉아 보기는 무척 오랜만인 것 같네요. 요즘 실적 좋으시다 들었는데…

노트북(이하 ‘노’): 네, 오랜만 입니다. 그저 운이 좋은 게지요. 그 동안 철옹성 같던 데스크탑 판매율에 제가 조금 앞지르게 됐습니다.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데: 위로라니요. 언젠가는 그리 될 줄 알았습니다. 솔직히 이렇게 빠를 줄을 몰랐지만… 어떻게 들릴 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리 오래가진 않을 겁니다. 판매율이야 시장 경제에 따라 다른 거니까요. 그리고 판매율이 높다고 점유율까지 높은 건 아니니 고삐를 늦추시면 안될 겁니다.

002.jpg
002.jpg
(자료 출처: 미국 ‘아이서플리-www.isuppli.com’)

노: 뼈 있는 충고의 말씀, 염두에 두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컴퓨터 사용 환경이 변하고 있습니다. 컴퓨터라고 언제까지 책상 아래 어두컴컴한 곳에 박혀 있을 순 없잖습니까? 사용자들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어요. 그런 변화의 흐름에 반응하지 못하면 금새 도태되기 마련입니다.

데: 뭐든 예외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데스크탑 컴퓨터가 그래도 각 가정집에 배치돼 있고 또 제 몫을 다하고 있습니다. 노트북이야 특정 사용자들에게만 국한되는 거 아닙니까. 범용적이지 못하죠, 아직은.

노: 과연 그럴까요? 영원하리라 의심치 않으셨던 판매율이 역전됐습니다. 그 다음은 점유율 순서겠지요. 노트북을 더 많이 산다는 건 그만큼 사용자가 이동성을 중시한다는 걸 증명하지요. 집안에서 한가로이 데스크탑에 앉아 있을 겨를이 없어요. 무선 인터넷, 와이브로, 블루투스 같은 네트워크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서 결국 노트북이 데스크탑을 대체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이 바닥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003.jpg
003.jpg

데: 이동성이라… 물론 좋지요. 어디서든 컴퓨터를 사용한다는 거, 그거 분명 매력적이에요. 하지만 모름지기 컴퓨터라면 ‘성능’으로 대변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이 이동성이네, 편리성이네 따지는 거죠. 요즘 세상에 컴퓨터로 얼마나 할 게 많은데 고작 인터넷 검색이나 문서 작성만 하겠습니까.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즉 ‘유흥적 인간형’이 바람직한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성능이 받쳐줘야 하고요.

노: ‘성능’ 논제로 일관하시는 건 여전하시군요. 물론 그 동안은 성능 면에 있어서 노트북이 데스크탑을 따라잡을 수 없었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희 ‘노트북계’에 센트리노2 기술과 같은 대항마가 등장한 이후부터 전반적인 성능, 특히 3D 그래픽 성능에 비약적인 발전을 보였습니다. 이제 노트북에서도 웬만한 게임은 충분히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어디 게임뿐이 던가요. HD급의 고화질 영화도 얼마든지 시청할 수 있어요.

데: 그 정도를 가지고 지금 ‘성능’이라 하셨습니까. 우리 ‘데스크탑계’의 진정한 성능에 대해서는 뭐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아실 테고. 성능이라 하면 적어도 ‘아이온’ 같은 온라인 게임을 풀옵션으로 돌리거나 ‘크라이시스’ 같은 고사양 패키지 게임을 원활하게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게임뿐 만이 아닙니다. 포토샵이나 프리미어 같은 사진,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도 무난하게 실행할 수 있어야 그걸 가지고 ‘성능’이라 말할 수 있는 겁니다.

004.jpg
004.jpg

노: 물론 아직은 우리 쪽에서 그런 고사양 게임을 제대로 플레이 할 순 없습니다(일부 크고 무거운 녀석들은 예외지만요). 하지만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반드시 그런 고사양 게임을 실행해야 하는가 말이죠. 그게 컴퓨터 생활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죠? 또 ‘크라이시스’ 같은 고사양 게임을 과연 얼마나 즐기고 있을까요? 적어도 컴퓨터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게임은 그런 패키지 게임이 아니라 ‘온라인 게임’입니다. 잘 아실 텐데요. 우리 ‘노트북계’에서도 이제 온라인 게임이라면 자신 있습니다. 앞으로도 노트북의 성능을 배가시킬 여러 기술이 속속 개발, 출시될 테니까요.

데: 자신감이 대단하시군요. 물론 최근 노트북의 3D 그래픽 성능은 직접 확인해 본 바로도 꽤 쓸 만하더군요. 네, 딱 그 뿐입니다. 쓸 만 한 정도. 노트북을 게임하려고 사는 사용자는 얼마 없을 테니 딱 그 정도면 되겠네요. 하지만 사용자들의 개인적인 욕망과 욕구는 그렇지 않습니다. 보다 빠른, 보다 멋진, 보다 화려한 것을 갖고 싶어 하니까요. 딱 맞는 성능만 고려한다면 이 바닥에서 데스크탑은 벌써 사장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잖아요?

데: 말씀하셨다시피, 일부 고급 노트북 중 데스크탑의 성능에 버금가는 제품도 있습니다만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가격도 일반 사용자라면 엄두도 못 낼 만큼 비싸기도 하지요. 300만 원짜리 노트북을 사는 비용으로 데스크탑을 산다면, 인텔 코어 i7급 프로세서 등을 장착한 그야말로 최상급 프리미엄 제품을 장만할 수 있을 겁니다.

데: 결론적으로 노트북은 현재 ‘이동성’을 제외하고는 여러 모로 데스크탑을 앞설 수 없습니다. 일시적인 판매율 증가도 곧 잠잠해지리라 예상합니다.

005.jpg
005.jpg
노: 저희 쪽에서도 성능 면에서 데스크탑을 따라잡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 의미 있는 도전이 아니니까요. 넘어서서 뭐 하겠습니까. 중요한 건 전체 판매율에서 데스크탑을 앞질렀다는 것. 그건 바로 요즘의 컴퓨터 생활 패턴이 변하고 있음을 전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대로,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자신에게 딱 필요한 정도만 있으면 큰 불만이 없습니다. 문서 작업, 인터넷 작업은 기본이고 자주 즐기는 온라인 게임도 무난하게 처리하면 그 이상 필요한 게 없습니다. 그러면서 이동도 편하고 이런 저런 케이블로 복잡하지도 않고 책상도 많이 차지 하지도 않으니 얼마나 유용합니까. 완벽한 제품이란 무언가를 더 이상 추가할 게 없는 게 아니라 더 이상 빼낼 게 없는 거란 말도 있잖습니까. 1년에 한두 번 실행해 볼까 말까 한 그런 고사양 게임을 몇 번 돌리기 위해 고성능 데스크탑을 산다? 이게 과연 현명한 소비 생활일까요?

데: 자, ‘현명한 소비 생활’이라 하셨습니다. 자 어느 것이 더 현명할 지 판단해 주시지요. 노트북은 한번 사면 메모리 추가 장착 외에는 업그레이드 자체가 불가능 합니다. 프로세서나 그래픽 카드를 바꿀 수도 없습니다. 즉 유연한 확장 측면에서는 비효율적이란 얘기죠.

데: 반면에 데스크탑은 어떻습니까. 프로세서, 메모리, 하드디스크, 그래픽 카드 다 추가 내지는 업그레이드가 가능합니다. 또한 내장 사운드 품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급 사운드 카드를 달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키보드, 마우스도 무선 제품을 사용하면 복잡한 케이블도 말끔히 정리됩니다. 참 무선 랜까지 사용한다면 랜 케이블도 없앨 수 있겠군요.

데: 과연 어떤 제품을 구입하는 게 사용자 측면에서 볼 때 현명하겠습니까. 집안에서만 사용할 컴퓨터에 굳이 ‘이동성’이라는 특징을 부여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고 현재까지는 데스크탑이 아무래도 가격적으로도 유리합니다. 데스크탑은 ‘있어야 할 것’으로, 노트북은 ‘있으면 좋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에는 동의하셔야 할 겁니다.

노: 일반 가정에서 컴퓨터의 이동이 없다 하셨는데, 요즘의 디지털 라이프 스타일을 전혀 고려치 않으시는군요. 방금 말씀하신 대로 데스크탑을 ‘있어야 할 것’으로 예상하셨습니다. 정확히 말씀 드리자면 데스크탑은 ‘있어야 할 것’이라기 보다는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겁니다. 데스크탑이 있어야 할 곳, 어딥니까, 보통. 책상 아래, 위… 더 있나요? 한번 설치되면 이사 가기 전까지 회색 먼지 뒤덮이며 그 자리에서 지내야 합니다.

노: 노트북은 집안 어디서든 활약할 수 있습니다. IPTV 등도 있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드라마 주인공의 프로필을 인터넷으로 확인한다거나, 화장실에 앉아 볼일 보면서 무릎에 놓고 정보도 습득할 수 있습니다. 발코니에 가지고 나가 담배 피우며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노트북과 TV를 연결해 영화도 볼 수 있고, 거실에 있는 오디오와 연결해 대형 스피커로 MP3 음악도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무선 랜으로 집안 어디서는 자유롭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겠지요. 이처럼 노트북은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합니다. 하나의 멀티 엔터테인먼트 기기가 되는 셈이지요. 그럼 데스크탑은 그냥 ‘컴퓨터’일 뿐이겠네요.

006.jpg
006.jpg

노: 과거의 컴퓨터는 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소수의 매니아만이 아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기기로 변화하는 것이죠. 데스크탑계도 이런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겁니다.

데: 저희가 시대나 문화에 뒤떨어지고 있다는 뉘앙스의 말씀을 하시는군요. 좋습니다. 그에 대한 반론을 드립니다. 최근에 출시되는 데스크탑 제품을 못 보신 듯하네요. 데스크탑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습니다. 모니터와 본체가 합쳐진 일체형 데스크탑은 예전에 등장했고, 이제는 터치스크린 기능까지 가미되고 있지요. 또한 말씀하신 디지털 엔터테인먼트를 강조한, 그러면서도 심플하고 간결한 구성의 제품이 선보이고 있고, 또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들 일체형 제품은 현재의 노트북계와 비슷한 케이블 구성을 갖습니다. 무게도 한층 가벼워져 여성은 물론 어린이들도 번쩍 들고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노트북도 17인치 이상의 제품은 솔직히 이동성이 매우 떨어지는 게 사실이잖습니까. 물론 가방에 넣어 외부로 나갈 수는 없겠지만, 한정된 공간에서의 이동성은 요즘 데스크탑에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물론 그러면서 성능의 이점도 살릴 수 있고요. 자 어떻습니까.

007.jpg
007.jpg

노: 네, 일체형 데스크탑 제품이야 잘 알고 있지요. ‘데스크탑계’ 제품 치고는 제법 의미 있는 변화를 적용했다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러한 사용자의 변화를 인정하고 이를 적극 반영해야 합니다. 이는 데스크탑이나 노트북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노: 오늘 저는 이 자리에서 저희 ‘노트북계’와 ‘데스크탑계’의 헤게모니 다툼을 말하려 한 건 아닙니다. 무엇을 사용하든 그것은 전적으로 사용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들이 보다 편하고 윤택한 컴퓨터 생활이 될 수 있도록 진화하는 것이 우리들 컴퓨터에게 주어진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 기준이 10년, 20년 전과 같은 ‘성능’ 하나에, 특히 게임 그래픽 성능에 맞춰지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노: 20세기의 컴퓨터와 21세기의 컴퓨터는 그 성격과 역할, 목적이 엄연히 다릅니다.

008.jpg
008.jpg

데: 전적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우리는 사용자와 함께 할 때 진정 의미가 있습니다. 일부 컴퓨터 매니아들 만이 선호하는 사양 보다는 대부분의 일반 사용자들에게 사랑 받는 제품이 돼야 하겠습니다. 그들에게는 가격도 싸고 성능도 좋고 많은 기능을 제공하는 컴퓨터를 필요로 하지만, 그 모든 걸 취할 수 있는 제품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에 따라 각 사용자에 맞는 맞춤형 사양 제안이 필요하겠습니다. 즉 높은 성능이 필요한 사용자에게는 고가의 고성능 컴퓨터가, 간결한 구성과 기본적인 기능만 필요한 사용자에게는 저렴하고 심플한 컴퓨터가 적절한 선택입니다.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종종 이렇게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노: 여러 모로 바쁘실 텐데 자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IT 기술과 트랜드는 우리 두 계열의 유기적인 협력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사람을, 사용자를 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충언과 고견을 부탁 드리겠습니다. 또 뵙도록 하죠.

자, 지금까지 데스크탑과 노트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PC를 사용하는 사람 중 한명인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향후 몇 년 후에 노트북이 과연 데스크탑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고성능 데스크탑의 수요가 계속 늘어날까?

만약 당신에게 제법 예산이 있다고 할 경우, 당신은 무엇을 구입하겠는가? 데스크탑? 노트북? 평소 자신이 PC를 사용하는 패턴을 잘 생각해보고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글 / IT동아 이문규(munch@itdonga.com)

IT동아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Creative commons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의견은 IT동아(게임동아) 페이스북에서 덧글 또는 메신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