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의 세계] 싸워서 올라가라! 게임구조: 쟁상유

안수영 syahn@itdonga.com

길가에서 카드 게임을 즐기는 중국인들의
모습
길가에서 카드 게임을 즐기는 중국인들의 모습

길가에서 카드 게임을 즐기는 중국인들의 모습 <출처: (cc) en.wikipedia.org>

쟁상유는 중국의 카드 게임이자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하는 카드 게임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한자로 쓰면 爭上遊, 중국어 발음으로는 Zheng Shang You, 중국어 발음을 한글로 쓰면 '쩡샹요' 정도로 쓸 수 있다. 의미를 풀이하기는 어렵지 않다. 싸울 쟁, 윗 상, 놀 유, 즉 싸워서 올라가는 놀이를 뜻한다. 영미권에서는 이 카테고리 이름을 Climbing Game이라 부른다.

카드 게임 쟁상유

쟁상유는 조커 2장을 포함한 54장의 플레잉 카드를 이용하는 게임이다. 먼저 딜러부터 카드를 1장씩 받고, 모든 카드가 다 떨어질 때까지 카드를 나눠가진 뒤 게임을 시작한다. 중국 카드게임은 카드를 나누는 방법이 독특하다. 딜러가 카드를 섞은 뒤 한 사람이 카드 더미 위의 카드 1장을 가져오고, 다음에는 그의 오른쪽 사람이 더미에서 1장을 가져온다. 이렇게 오른쪽 방향으로 돌며 더미가 떨어질 때까지 카드를 1장씩 가져가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 방식은 딜러의 속임수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치는 않다.

오늘날은 유럽 보드게임이 대세가 되어 시계 방향으로 카드를 돌리거나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 익숙하지만, 중국은 오른쪽으로 돈다. 우리 전통 놀이도 오른쪽으로 도는 게임이 많으므로 큰 거부감은 없을 것이다.

게임의 진행 방향이 오른쪽이라는 것이
특이하다
게임의 진행 방향이 오른쪽이라는 것이 특이하다

게임의 진행 방향이 오른쪽이라는 것이 특이하다. 사진은 이 분야의 대표 게임인 티츄(1991) <출처: divedice.com>

이제 모두 비슷한 장수의 카드를 가진 상태에서 딜러부터 카드를 내며 게임을 시작한다. 카드를 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아무 카드나 1장을 내는 싱글(예시: 7), 같은 숫자의 카드 2장 이상을 내는 세트(예시: 7-7), 이어지는 숫자 3개 이상을 내는 시퀀스(7-8-9), 세트와 시퀀스의 혼합인 멀티플 시퀀스(7-7-8-8-9-9) 등이 있다.

딜러가 카드를 낸 뒤에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더 높은 조합의 카드를 낼 수 있으면 내고, 낼 수 없거나 내고 싶지 않다면 패스를 선언한다. 누군가가 낸 카드 조합을 아무도 당해내지 못하면, 바닥에 내려둔 카드를 모두 치운다. 그리고 마지막에 카드를 냈던 사람이 새롭게 시작 플레이어가 되어 원하는 조합을 내고 게임을 이어간다.

게임의 목표는 손에 든 카드를 모두 버리는 것이다. 꼴찌가 가려질 때까지 게임을 진행해 가장 먼저 손을 턴 사람은 2점, 2위는 1점을 얻는다. 꼴찌와 꼴찌에서 두 번째 플레이어는 다음 게임에서 받은 카드 중, 가장 서열이 높은 카드를 1위와 2위에게 헌납해야 하는 패널티가 있다.

한 번 이기면 다음에도 이기기 쉽고, 한 번 나락으로 떨어지면 벗어나기 어려운 부익빈 빈익부의 상황이 펼쳐진다. 하지만, 이 불공평한 룰과 기득권의 방해를 이겨내고 승리할 때의 성취감도 상당하다.

게임이 끝날 때까지 버려야 할 카드를 미처 버리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다면 패배하게
된다.
게임이 끝날 때까지 버려야 할 카드를 미처 버리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다면 패배하게 된다.

게임이 끝날 때까지 버려야 할 카드를 미처 버리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다면 패배하게 된다. 12는 달무티(1995)에서 가장 낮은 숫자라 버리기 쉽지 않다. <출처: divedice.com>

쟁상유 게임에서 카드는 버려야 하는 짐이기도 하지만, 싸움을 위한 자원이기도 하다. 한 번의 싸움에서 승리해 다음 시작 카드를 낼 기회를 얻는 것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하다. 초보자가 자주 하는 실수 중 하나는 초기에 카드를 대부분 소모하고도, 이후의 싸움에 아예 참여할 수 없어서 결국 꼴찌로 떨어지는 것이다.

즉, 버려야 할 카드와 게임 후반에 승부수를 던지기 위한 조합을 구별하고, 때에 따라서는 카드를 버릴 수 있는 기회가 와도 패스를 선언해야 승리할 수 있다. 상급 플레이어들은 그 동안 버려진 카드를 암기하며 타이밍을 재기도 한다.

다른 쟁상유 게임들

보드게임 중에는 쟁상유와 비슷한 게임들이 많다.

쟁상유의 변형으로 '삼가희(三家喜, San jia xi, 세 가문의 기쁨이라는 의미)'라는 게임이 있다. 이 게임은 지역에 따라 '화전(火箭, hua Jian, 불화살이나 로켓을 의미)'이라고도 불리는데, 규칙은 쟁상유와 대동소이하다. 다만, 개인전이 아닌 6명의 플레이어가 2인 1조의 팀을 이루어 3팀이 대결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쟁상유 계열 게임 중 최고로 꼽힌다.

렉시오
렉시오

쟁상유 게임 중에는 숫자 2가 중요한 게임들이 꽤 있다. Big Two의 변형으로 알려진 렉시오(Lectio, 2004)의 타일. <출처: divedice.com>

대노이(大老二)라는 이름의 변형 게임도 있다. 제목은 '두 노인'을 뜻하며, 모든 카드 중 숫자 2가 가장 강력한 카드인 것이 특징이다. 2는 플레잉 카드에서 서열을 따질 때 가장 낮은 카드이지만, 쟁상유 계열 게임에서는 종종 최강의 카드로 등장한다. 이 게임은 영어권에서 빅 투(Big Two), 듀스(Deuce) 등으로도 불린다.

대노이의 카드 조합 방법은 싱글, 페어, 트리플, 5장 그룹(스트레이트, 플래시, 풀 하우스, 포카드+아무 카드 1장) 등이다. 또한, 이 게임에서는 스트레이트를 플래시로 막거나 하는 일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는 동일 조합의 더 강한 카드를 내는 것만을 인정한다)

갱 오브 포
갱 오브 포

쟁상유 게임 구조를 가진 게임들은 보통 다양한 카드 조합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갱 오브 포(Gang of four, 1990) <출처: divedice.com>

일본에는 다이후고(Dai Fu Go, 大富豪)나 다이힌민(Dai Hin Min, 大貧民)으로 불리는 게임이 있다. 이들 게임도 쟁상유와 규칙이 비슷하다. 1970년대 일본에 쟁상유가 전해지며 이들 게임이 탄생했다고 한다. 베트남에도 비슷한 시기에 쟁상유가 전해져 띠엔렌(Tien Ren)이라는 게임이 되었다. 띠엔렌은 베트남어로 '올라간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에도 '계급투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비슷한 게임이 있다.

서양권에는 1979년 중국을 방문한 영국의 바둑 기사가 통역사에게 배워 전래했다고 알려진 게임들이 있다. 피트(Pit), 프레지던트(President), 에스 홀(Ass Hole) 등으로 불리는 게임들이다. 이 게임들은 카드 내는 방법이 같은 숫자의 카드 N장으로 고정된 것을 제외하면 규칙은 대동소이하다.

출판된 게임들

쟁상유는 플레잉 카드(트럼프 카드)로 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게임이지만 출판 버전도 종종 나온다. 출판 게임은 플레잉 카드와 구성을 달리 하거나, 다른 일러스트로 차별화하는 것이 보통이다.

위대한 달무티
위대한 달무티

위대한 달무티 <출처: divedice.com>

이 작품은 프레지던트, 에스 홀 등의 이름으로 잘 알려진 서양권 쟁상유 게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작가는 '매직 더 개더링(Magic: the gathering, 1993)'의 리차드 가필드다. 숫자 1 카드는 총 1장, 2 카드는 총 2장, 3 카드는 총 3장 등으로, 계층을 반영하는 카드 구성이 특징이다. 중세의 신분 사회를 테마로 한 일러스트도 일품이다. 노예와 왕의 극명한 신분 구조를 표현해 '왕 게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국내에 보드게임 산업이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전, 매직 더 개더링 동호인과 TRPG 동호인 사이에서 유행했던 게임이기도 하다.

프랭크의 동물원
프랭크의 동물원

프랭크의 동물원(Frank's Zoo, 1999) <출처: divedice.com>

프랭크의 동물원은 숫자가 아닌 그림으로 진행되는 게임이다. 각각의 카드에는 동물들의 서열 관계가 그려져 있다. 고슴도치보다 여우가, 여우보다 악어가, 악어보다 코끼리가, 코끼리보다 쥐가 강하며, 쥐는 코끼리를 제외한 모든 동물에 대해 서열이 아래인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작 플레이어는 원하는 종류의 동물 카드를 원하는 만큼 낼 수 있다. 이후 다른 플레이어들은 같은 종류의 동물을 1장 더 추가로 내거나, 시작 플레이어가 낸 동물보다 높은 서열의 동물을 내야 한다. 이 게임은 2000년대 초 보드게임 까페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세금, 혁명 등 다양한 요소가 있는 달무티에 밀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갱 오브 포
갱 오브 포

갱 오브 포 <출처: divedice.com>

갱 오브 포는 대노이처럼 5장 조합 규칙이 있으며, 같은 숫자 4개를 내는 조합인 '갱 오브 포'라는 규칙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갱 오브 포는 시작 플레이어가 낸 조합과 상관 없이 낼 수 있는 최강 조합이다. 이 게임은 1등만 정하고 끝난다. 다른 플레이어들의 남은 카드 수에 따라 점수가 정해지는 것은 우노(UNO, 1971)와 비슷하다.

카드 구성도 플레잉 카드와 조금 달라서 수트(색깔)가 3가지뿐이고, 같은 숫자와 같은 수트의 카드가 2장씩 들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특별한 국면에서 큰 힘이 되는 용 카드 1장, 봉황 카드 1장, 다색 1카드 1장 등 특수 카드 4장이 들어 있다. 처음 출판된 것은 1990년도이지만, 우리에게는 Days of Wonder의 초창기 작품(2002)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티츄
티츄

티츄 <출처: divedice.com>

티츄는 중국의 서민들이 즐기는 게임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카드 구성은 플레잉 카드와 거의 같은 52장에 참새, 개, 용, 봉황 등 4장의 특수 카드가 포함됐다. 카드 일러스트는 플레잉 카드와 거의 비슷하지만 수트가 칼, 탑, 옥, 별 등으로 바뀌었다. 또한 J, Q, K 카드의 일러스트에는 공자, 관운장, 마오쩌둥 같은 중국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게임은 2:2 팀 플레이로 진행하며, 자신을 제외한 다른 플레이어들이 모두 패스를 하면 카드를 얻을 수 있다. 이 가운데 일부 카드가 점수가 되는, 다소 복잡한 득점 방법이 특징이다. 한 팀이 1위와 2위를 차지하면 고정된 최고 점수를 얻는다. 또 1위할 자신이 있는 패를 받았을 때, 반드시 1위를 하겠다는 일종의 찬스 선언을 하고 성공을 하면 보너스를 얻는 규칙도 있다.

게임 진행 방식은 다른 쟁상유 게임과 대동소이한데, 갱 오브 포와 유사하게 이전 플레이어가 낸 카드 조합과 상관 없이 낼 수 있는 '폭탄' 조합이 있다. 티츄는 쟁상유 게임에서 나올 수 있는 자잘한 규칙이 꽤 많이 붙어있는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은데, 그만큼 재미있는 게임이기도 하다. 보드게이머 중에는 이 게임만 하는 플레이어들도 꽤 있을 정도로, 티츄는 국내 보드게임 동호인들 사이에서 궁극의 게임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렉시오
렉시오

렉시오 <출처: boardgamegeek.com>

국내 보드게임 개발사 다고이의 마지막 작품이다. 게임 규칙은 빅 투를 기초로 했으며, 플레잉 카드의 수트를 해, 달, 별, 구름으로 바꾸고 카드 대신 마작패처럼 세울 수 있는 타일을 사용했다. 구성물 때문에 해외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다.

해기스
해기스

해기스(Haggis2010) <출처: boardgamegeek.com>

쟁상유 게임의 대표작인 티츄는 4인에서 가장 큰 재미를 주는데 반해, 다른 게임 인원일 때 그 재미가 많이 반감돼 아쉬움이 컸다. 2010년 발매된 해기스는 2명 혹은 3명이 즐길 수 있어 티츄를 대체할 수 있는 게임으로 많이 소개됐다. 해기스의 카드는 켈틱 문양의 5개의 수트로 구성됐다. 모든 플레이어가 J, Q, K 카드를 받아 자신의 앞에 놓고, 조커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티츄에 비해 아쉽다는 평가가 많지만, 조커를 활용하는 재미가 남달라 별개의 게임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키메라
키메라

키메라(Chimera, 2014) <출처: boardgamegeek.com>

해기스 이후로 발매된 3인 전용의 쟁상유 게임이다. 쟁상유 게임은 발매되면 어쩔 수 없이 티츄와 비교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게임은 티츄의 북미, 캐나다 지역 유통사인 지맨게임즈(Z-man Games)가 티츄와 같은 카드게임 시리즈로 출시한 작품이라 더욱 눈길을 끌었다. 매 라운드마다 플레이어 1명이 키메라 역할을 하고, 나머지 2명이 키메라 사냥꾼이 된다. 게임은 티츄와 비슷하게 팀 플레이로 진행되지만, 티츄와는 다른 카드 조합이 생소하고 일발 역전 기회가 부족하다는 점이 아쉽다. 티츄 한국어판과 같은 아름다운 디자인이 눈길을 끄는 게임이다.

카드 버리기 게임

2000년대 초반까지 쟁상유와 같은 구조를 가진 게임들은 종종 '트릭 테이킹(Trick-taking)'으로 분류됐다. 일부 쟁상유 게임들은 트릭 테이킹 게임처럼 플레이어들이 카드를 내서 카드의 서열을 겨루고, 승리한 플레이어가 방금 플레이한 카드를 모두 가져가는 진행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 보드게임 커뮤니티인 보드게임 긱에서 트릭 테이킹은 게임 구조(Game Mechanics)에 등록되어 있지만, 쟁상유(Climbing Game)는 게임 구조로 등록되어 있지 않아 대부분의 쟁상유 게임들이 트릭 테이킹 게임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보드게임 긱의 일부 유저들은 게임 구조로 편입되어야 하는 게임 집합(Game Family) 중 하나로 쟁상유(Climbing Game)를 꼽고 있다. 국내에서는 쟁상유와 트릭 테이킹의 차이를 2000년대 후반부터 구분해왔으며, 현재는 쟁상유의 게임 구조로서의 지위를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다.

유명한 쟁상유 게임들은 트릭 테이킹 게임의 요소를 함께 가지고 있어, 플레이어들에게 혼동을 주기도 한다. 이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다만 여러 게임 구조를 다채롭게 섞어 다양하고 신선한 게임을 만드는 현대 게임 제작 흐름을 고려한다면, 각 게임 구조의 혼합된 재미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보드게임의 재미를 느끼는 데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글 / IT동아 보드게임 필자 박지원
편집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본 기사는 네이버캐스트 게임의 세계: 보드게임의 세계(http://navercast.naver.com/list.nhn?cid=2883&category_id=2883)에 함께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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