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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인물열전] HDD의 선구자, 앨런 슈거트

이상우

[IT동아 이상우 기자] 하드디스크드라이브(이하 HDD)는 오늘날 컴퓨터에 쓰이는 대표적인 저장장치다. 컴퓨터에 운영체제 및 각종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동영상이나 사진 등의 콘텐츠를 저장하는 중요한 장치다. 최근에는 입출력 속도가 빠른 저장장치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이하 SSD)에 밀리는 듯한 모습이지만, 저렴한 비용으로 엄청난 용량의 저장 공간을 구축할 수 있다는 장점을 통해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사랑 받고 있다.

HDD의 구조

<HDD는 오늘날 가장 대표적인 저장장치다>

한 HDD 제조사 대표의 발언은 이런 HDD의 정체성을 더 명확히 해줬다. "사실,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단지 사람들이 쓸모 없는 소프트웨어를 더 사고, 야동을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품을 만든다(씨게이트 전 대표 빌 왓킨스, 2006년 11월 30일)."

지난 2014년에는 씨게이트, HGST 등이 6~8TB에 이르는 HDD를 출시한 데 이어, 2015년에는 10TB 제품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대용량 HDD는 현재 기업 데이터센터용으로 주로 쓰이지만, 빠른 시일 안에 일반 사용자도 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0TB에 이르는 HDD

<HDD의 용량은 10TB에 이르렀다>

최초의 HDD는 1956년 9월 13일, IBM이 공개한 IBM 305 RAMAC(Random Access Method of Accounting and Control)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의 저장장치는 약 5MB의 용량을 갖췄는데, 내부에는 무려 24인치 플래터(HDD에서 데이터가 저장되는 부분)가 50장이나 들어있었기 때문에, 크기는 냉장고만했다. 이런 크기 때문에 메인프레임 등 기업용 컴퓨터에서만 주로 쓰였다.

IBM 305 RAMAC

<비행기에서 하역 중인 305 RAMAC 시스템>

저장장치와 플래터

<305 RAMAC 시스템의 저장장치(왼쪽)와 플래터(오른쪽)>

이러한 HDD가 개인이 사용할 만큼 작아진 것은 1980년대부터다. HDD가 우리 삶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해준 인물은 미국의 기술자 앨런 슈거트(Alan Field Shugart)다.

앨런 슈거트는 1930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으며, 1951년 레드랜드 대학교(University of Redlands)에서 공학 물리학 학위를 받는다. 졸업과 동시에 그는 IBM에서 현장 관리자로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그는 IBM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저장장치 개발 프로그램을 이끌었으며, 그의 팀은 305 RAMAC을 세상에 공개했다.

앨런 슈거트

<HDD의 선구자 앨런 슈거트, 출처: computerhistory.org>

1969년, IBM을 떠는 그는 신생 저장장치 개발사인 메모렉스(Memorex)에서 3년간 근무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고 한다. 그는 미국 경제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단순히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고 싶었다’고 말했고, 일을 쉬는 중에 메모렉스 대표가 연락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1972년, 최초로 읽기/쓰기가 가능한 상용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메모렉스 650를 개발한다. 용량은 175KB였다.

메모렉스를 그만두고. 1973년에는 캘리포니아 주 쿠퍼티노에서 슈거트 어소시에이트(Shugart Associates)를 설립한다. 컴퓨터 주변기기를 주로 생산했으며, 대표적인 제품은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였다. 그가 이 시기에 개발한 8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SA800의 규격과 인터페이스는 곧 업계의 표준이 된다. 1976년에는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SA400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8인치 규격은 당시 *워드 프로세서에 사용하기에는 너무 컸기 때문이다.

*오늘날 워드 프로세서는 문서 작성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의미하지만, 과거에는 저장 매체에 직접 타이핑해 정보를 입력하는 '반자동 타자기', 즉 하드웨어를 의미했다.

SA400

<슈거트 어소시에이트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는 업계 표준이 됐다, 사진은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SA400>

1979년에는 '슈거트 테크놀로지'를 설립한다. 하지만 이름을 곧 씨게이트 테크놀로지(이하 씨게이트)로 바꾼다. 당시 슈거트 어소시에이트는 제록스의 투자를 받은 자회사였기 때문이다. 씨게이트는 1980년, 세계 최초의 개인용 5.25인치 HDD ST-506를 개발한다. 용량은 5MB였으며, 당시 가격으로 1,500달러(오늘날 가치로는 약 4,300 달러)로 비교적 저렴했다. 이 제품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인기를 끌면서 다른 HDD 제조사에서도 이 규격에 맞춰 제품을 설계하기 시작했고, 씨게이트 ST-506은 HDD의 표준 규격처럼 자리를 잡았다.

최초의 개인용 HDD

<씨게이트 ST-506. 이듬해에는 용량을 두 배로 늘린 ST-416을 내놓았다>

1991년부터 그는 조금 더 수익성이 좋은 시장에 초점을 맞추면서, 고성능 HDD를 개발에 집중한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씨게이트 바라쿠다(Seagate Barracuda) 제품군이다. HDD의 작동 구조를 살펴보면, 회전하는 플래터 위에서 헤드(플래터에 데이터를 기록하는 장치)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데이터를 읽거나 쓴다. 플래터의 회전 속도가 빠르면 데이터를 읽고 쓰는 속도 역시 빨라진다. 바라쿠다의 회전 속도는 7,200RPM으로, 현재 널리 쓰이는 데스크톱용 HDD와 같은 수준으로 빨랐다.

1996년에는 업계 최초로 1만 RPM의 HDD 치타 제품군을 내놓으면서 기업용 HDD 시장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2000년에는 1만 5,000RPM에 이르는 치타 15K 제품군도 출시했다). 이처럼 HDD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97년에는 전기전자기술자협회로부터 상을 받는다(IEEE Reynold B. Johnson Information Storage Systems Award).

씨게이트 치타 15K

<바라쿠다와 치타 제품군은 오늘날까지 씨게이트의 대표적인 HDD다>

1998년, 씨게이트가 10억번 째 자기기록헤드를 내놓았을 때, 앨런 슈거트는 CEO 자리를 내놓고 물러난다. 이후 여생을 즐기다 2006년 12월 12일, 76세의 나이로 영면에 든다.

사실 HDD의 필요성은 과거와 비교해 줄어들었다. 과거에는 '용량'을 기준으로 컴퓨터를 구매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요즘은 '성능'이 우선이다. 심지어 클라우드 서비스로 인터넷을 통해 용량을 확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SSD도 저렴해지는 추세라 HDD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콘텐츠의 용량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영화 한 편이 4GB를 넘는 것은 물론이고, 음악 파일 용량도 5~6배는 늘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할 때도, 어딘가에 있는 데이터 센터에서 열심히 작동하는 HDD가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HDD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글 / IT동아 이상우(lswoo@itdonga.com)

※본 기사는 네이버캐스트(http://navercast.naver.com/)의 'IT 인물 열전' 코너에도 함께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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