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하드 디스크도 10TB 시대

강일용 zero@itdonga.com

[IT동아 강일용 기자] 오랫동안 4TB(테라바이트) 용량의 벽에 막혀 있던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HDD)가 마침내 한계를 뛰어넘었다. 작년 씨게이트, HGST 등 HDD 제조사가 6~8TB HDD를 출시한데 이어, 올해 마침내 10TB HDD까지 등장했다. HDD는 대체 왜 4TB의 벽에 막혀있었던 것이고, 어떤 방식으로 그 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일까. 한 번 자세히 알아보자.

아직도 식지 않은 HDD
아직도 식지 않은 HDD

공간과 밀도의 한계에 부딪친 HDD

HDD가 왜 4TB의 벽에 부딪쳤는지 파악하려면 먼저 그 구조와 데이터 기록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HDD 속에는 고속으로 회전하는 플래터(Platter)라는 장치가 들어 있다. 자성 물질로 덮인 플래터를 회전시키고, 그 위에 헤드(Head)를 접근시켜 플래터 표면(트랙)의 자기 배열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읽거나 기록한다. 플래터의 중심에는 플래터를 회전시키기 위한 스핀들 모터(Spindle Motor)가 위치해 있고, 스핀들 모터의 회전 속도(RPM)가 높을수록 보다 빠르게 데이터를 읽고 쓸 수 있다.

1980년대까지는 플래터 지름 기준 5.25인치(약 13cm) 규격의 HDD가 시장의 주류를 이루었지만, PC가 소형화됨에 따라 이에 맞춰 더 작은 HDD가 나오게 됐다. 2015년 현재, 시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HDD는 3.5인치(약 9cm) 규격과 2.5인치(약 6.35cm) 규격이다. 데스크톱PC와 서버에는 3.5인치, 노트북과 외장 하드에는 2.5인치 규격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1956년 IBM이 개발한 최초의 HDD는 4.8MB(메가바이트)의 용량과 1200rpm의 속도를 갖추고 있었다. 이후 60년 동안 HDD의 용량은 꾸준히 증가했다. 하지만 2011년 등장한 4TB HDD 이후 용량 증가는 한동안 정체됐다. 3.5인치 HDD의 내부 공간이 협소해 플래터를 더 이상 집어넣을 수 없었고, 플래터의 데이터 기록 밀도 향상도 물리적인 한계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3.5인치 HDD 속에는 4~5장의 플래터를 넣을 수 있다. 그 이상을 넣으면 내부 공기가 순환하지 못해 회전 속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3.5인치 크기의 플래터에는 최대 1TB의 데이터를 기록할 수 있다. 그 이상은 공간이 모자라 기록하지 못한다. 씨게이트는 1TB의 플래터를 4장, HGST는 800GB(기가바이트)의 플래터를 5장 배치해 4TB HDD를 구현했다. (WD나 도시바는 4TB HDD의 구조를 구체적으로 공개한 적이 없으나, 씨게이트와 유사한 방식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한계 탓에 제작년까지 HDD 용량 발전은 정체된 상태였다. 그렇다고 이대로 멈출수는 없는 노릇이다. HDD 제조사들은 이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신기술 개발을 모색했고, '기와식 자기 기록(SMR, Shingled Magnetic Recording)'과 '헬륨 충전'이라는 두 가지 방법을 통해 한계를 돌파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기술 혁신으로 밀도의 한계를 뛰어넘다

기와식 자기 기록이란 기존의 기록방식인 수직 자기 기록(PMR, Perpendicular Magnetic Recording)을 대체하기 위한 기술이다. 수직 자기 기록은 읽는 부분(Reader)과 쓰는 부분(Writer)으로 구성된 데이터 트랙을 하나씩 차례대로 적어나가는 방식이다. 예전에는 데이터 트랙 간의 거리(Guard Space)를 좁힘으로써 데이터 기록 밀도를 향상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물리적인 한계에 부딪쳤다. 트랙 간의 거리가 더이상 좁아질 수 없을 만큼 가까워졌고, 플래터당 1TB라는 제약이 생겨났다.

수직 자기 기록
수직 자기 기록

<수직 자기 기록의 데이터 트랙 형태>

기와식 자기 기록은 이 데이터 트랙을 지붕 위의 기와처럼 차례차례 포개나가는 기술이다. 헤드가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미세한 부분만 노출시키고 데이터 트랙을 최대한 쌓아서 데이터 기록 밀도를 25% 이상 향상시켰다. 3.5인치 플래터 한 장에 1.25~1.5TB를 기록할 수 있다는 뜻.

기와식 자기 기록
기와식 자기 기록

<기와식 자기 기록의 데이터 트랙 형태>

씨게이트가 기와식 자기 기록을 채택한 대표적인 회사다. 기와식 자기 기록을 바탕으로 4TB의 벽을 깬 5TB HDD를 제작년 시장에 출시했고, 작년 8월에는 8TB HDD를 스토리지 기업에게 공급(베타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공간 절약의 비결은 헬륨

기와식 자기 기록이 플래터에 밀도를 향상시키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헬륨 충전은 같은 공간에 플래터를 최대한 많이 집어넣는데 초점을 맞춘 기술이다. HDD 속에 일반 공기보다 밀도가 약 1/7 작은 헬륨을 채워 플래터끼리 근접해도 회전 속도가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헬륨 충전 기술의 비결이다. 헬륨 충전을 통해 3.5인치 HDD 속에 플래터를 7장 이상 넣을 수 있게 되었다. 헬륨 충전을 적용한 HDD는 헬륨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외부가 단단히 밀봉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심지어 공기 순환용 구멍까지 막혀있다.

HGST가 헬륨 충전을 채택한 대표적인 회사다. 헬륨 충전을 바탕으로 4TB의 벽을 깬 6~8TB HDD를 작년 시장에 출시했다.

헬륨 충전의 원리
헬륨 충전의 원리
<헬륨 충전을 통해 좁은 공간에 플래터를 더 많이 넣을 수 있게 됐다>

10TB에 도달한 HDD

그렇다면 두 가지 기술을 동시에 적용하면 HDD의 용량을 더욱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 출시된 10TB HDD가 그렇다. 기와식 자기 기록과 헬륨 충전 기술을 동시에 적용해 10TB의 용량을 구현했다. HGST는 오늘(10일) 10TB 용량의 엔터프라이즈 HDD '울트라스타 아카이브 Ha10'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씨게이트도 10TB 용량의 엔터프라이즈 HDD를 오는 7월 시장에 출시할 예정이다. 다른 제조사 역시 올해 내로 10TB HDD를 출시할 계획이다.

HGST 10TB HDD
HGST 10TB HDD
<세계 최초의 10TB HDD 울트라스타 아카이브 Ha10, 기와식 자기 기록과 헬륨 충전 기술이 함께 적용되어 있다>

아쉽게도 10TB 용량의 HDD는 일반 사용자가 아닌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를 겨냥한 기업용 제품이다. 하지만 연말에 기와식 자기 기록과 헬륨 충전 기술을 적용한 일반 사용자용 6TB HDD가 출시될 예정이니 너무 실망하지는 말자.

*HDD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은 '대용량 데이터 저장 장치의 대명사 -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Hard Disk Drive: HDD) - http://it.donga.com/6074/' 기사를 참고하세요.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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