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안전망은 '긴급재난문자'가 아닙니다"
[IT동아 권명관 기자]
"재난안전망이요? 아, 지진이나 태풍 같은 것 온다고 알려주는 문자 말하는건가?"
얼마 전, 지인에게 재난안전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하자, 돌아온 답변이다. 그는 "안그래도 요즘 네팔 지진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라며, "우리나라는 그래도 긴급 문자라도 잘 오는데"라고 덧붙였다. 기자는 아차 싶었다. 2014년 하반기부터 재난안전망은 뜨거운 논쟁거리였지만, 재난안전망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사실 기자도 '재난안전망란 이런 것!'이라고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대략적인 개념을 (IT 기자라는 미명 하에) 조금씩 주워 들은 것에 가깝다. 그래서 관계자를 직접 만나 들었다. 재난안전망이 무엇인지, 요즘 왜 이렇게 자주 들리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지난 2014년 7월 31일, 미래창조과학부는 전부 세종청사에서 개최한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차세대 재난안전통신망(이하 재난안전망) 기술방식을 재난망용 PS-LTE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재난안전망에 필요한 주파수 대역과 소요량을 검토한 결과, 현재 가용한 주파수 대역 중 가장 낮은 700MHz 대역이 바람직하며, 총 20MHz 대역폭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지난 5월 12일, 노키아코리아에서 PS-LTE를 총괄하고 있는 MBB솔루션의 권용석 상무와 ATC센터장과 테크놀로지팀 상무를 겸임하고 있는 조봉열 공학박사를 만났다. 참고로 700MHz 대역은 현재 재난안전망뿐만 아니라 UHD 방송을 위해 지상파 방송사들과 이동통신사 간 분배 문제를 놓고 진통을 겪는 중이다.
재난안전망이 대체 뭐길래
IT동아: 만나서 반갑다. 우선 노키아 150주년을 축하한다(웃음). 오늘은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묻고 싶어 방문했다. 재난안전망 이슈가 연일 뜨겁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재난안전망이 무엇인지, 어디에 사용되는지도 잘 모른다. 기자도 그렇다(웃음). 그래서 오늘 이렇게 방문했다. 재난안전망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간단하게 설명을 부탁한다.
권용석 상무 (이하 권 상무): 이것부터 말하고 싶다. 재난안전망은 긴급재난문자 시스템이 아니다. 자, 재난이 발생하게 되면 수많은 관계 기관이 모여서 대책활동을 진행하게 된다. 군과 경찰청, 소방방재청, 지방자치단체 등 관련 기관들이 모두 모여야 한다. 즉, 재난안전망은 여러 관련 기관의 무선통신망을 하나로 통합해 지휘체계를 일원화하고,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무선통신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현재 국내 (재난 관련) 무선통신망은 그렇게 구축되어 있지 않다. 군, 경찰, 소방 등 관계 기관은 각각 다른 통신망(네트워크)를 이용한다. 이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지금 말하고 있는 재난안전망이다. 긴급재난문자 시스템이 아니라(웃음).
2,000년도 초에 경찰은 독자적으로 통합지휘망 사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정부 및 교통부 등 관계자들과 많은 대화를 주고 받았었는데, 경찰 대학교의 한 교수님과 나눴던 대화가 기억난다. 그 교수님은 이런 말을 했다. 그는 "통합망(재난안전망)은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 번째로 모든 공공기관이 통신할 수 있는 통합 인프라 스트럭처(하드웨어)가 필요하며, 이를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IT동아: 해외에서 이 같은 통합망을 구축한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권 상무: 노키아 본사가 있는 핀란드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핀란드는 경찰 대학에서 통합망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친다. 우리나라처럼 후방전화나 경찰전화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시스템을 갖추고, 각 관계 기관의 부서에 어떻게 연락해야 하는지 즉, 중간에 통제하는 방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친다. 대형 사고, 대형 재난의 경우 이 같은 통합 시스템은 필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대형 가스트레일러나 유조차가 어떤 사고로 인해 도로 위에서 전복되었다고 가정하자. 일단, 교통경찰들이 먼저 도로를 통제할 것이고, 특수한 화학가스를 운반 중이었다면 특수 소방팀을 투입할 것이다. 또한, 현장에서 사상자가 발생했을 경우 의료진도 투입해야 한다. 이처럼 종합적인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에 통합망은 필수다. 원거리에서 원격으로 지원하고, 현장에서 통제소를 세운 뒤 하나로 움직여야 한다.
IT동아: 과거 일본에서 발생했던 동일본대지진 당시, 직접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들었다.
권 상무: 소프트뱅크에 지원 업무를 나가 있다가 재난을 겪었다. 동일본대지진 당시 교통도 마비됐다. 소프트뱅크 도쿄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도쿄 인근에서 출퇴근하는 직원들은 교통 수단이 없어 걸어서 가는 상황이 발생했다. 우리나라로 생각하면, 서울에서 근처 일산이나 의정부, 판교 등으로 걸어간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해당 지역과 통신이 끊겼었다는 점이다. 연락도 안되고, 교통도 끊기니 걸어서라도 가서 확인해야 할 것 아닌가. 한 동료는 2~3일 동안 걸어가기도 했다.
또한, 동일본대지진은 긴 해안 지형 때문에 피해 범위가 상당히 넓었다. 구호 물자도 제대로 옮기기 어려웠고…. 통신 자체가 끊기기 어쩌겠는가. 이에 급하게 헬기로 기지국을 재난 지역에 만들어 설치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그랬다.
여담이지만, 재난이 발생하면 그 당시에는 잘 모르는 후유증이 찾아온다. 살아남은 이들이나 구조한 이들 모두 일종의 패닉에 빠진다. 지금 정신치료를 받고 있는 구조 대원들이 상당수다.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 등은 모두 중단되고, 방송은 뉴스 위주로 계속 편성된다. 때문에 사상자가 증가할수록 국가적으로 심리적인 압박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세월호 사건 당시의 국내 환경을 생각해보면 된다.
재난안전망, 왜 PS-LTE인가
IT동아: 재난 시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재난안전망의 필요성은 이제 알겠다. 그럼 국내에서 PS-LTE(쉽게 말해 재난안전망을 LTE로 구축하는 것)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권 상무: 앞서 동일본대지진 당시를 예로 들어보자. 스마트폰 보급 이후,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다양한 기기에서 촬영한 사진이나 동영상 등의 자료가 상당히 많았다. 수많은 멀티미디어 영상 정보가 센터로 들어왔는데, 이걸 현장에 나가 있는 구조 요원이나 담당자에게 말로 설명해야 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멀티미디어 정보를 현장에 보내 보여줄 수만 있다면 더 빨랐을텐데 말이다. 이에 어떻게 하면 멀티미디어 정보를 현장으로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지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에 노키아는 전세계 여러 국가의 다양한 업계 관계자가 수많은 대화를 나눴다. 독일의 경우, 국내와 비슷하게 TETRA(현 국내 경찰의 무선망)를 전국에 구축했다. 그런데, 전국에 TETRA를 구축했는데도, 현장 요원들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닌다더라. 이유는 간단했다. TETRA도 좋긴 좋은데, 음성 정보만 전달할 수 있으니 (멀티미디어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더 낫더라는 것이다. 여러모로 국내 실정과 독일의 환경이 비슷하다. 결국 독일 정부는 통합망으로 PS-LTE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들도 기존 재난안전망 시스템을 다시 한번 고민하고 있다. PS-LTE는 아니더라도 멀티미디어를 지원하는 통합망으로 바꾸고자 한다.
조봉열 상무: PS-LTE는 이 같은 다양한 요구사항이 등장하자, 'LTE를 어떻게 재난망으로 사용할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한 기술이다. 현재 이동통신은 3GPP라는 표준화기구에서 기술 표준을 확정하고 있다. 이에 LTE를 재난안전망으로 사용하기 위한 즉, 요구 조건에 대한 기술 표준을 새롭게 도입해 제정하기 시작했다. 재난안전망에 필요한 기능 및 성능 등을 LTE에서 구현하기 위한 기준 표준이 바로 PS-LTE다. 올해 3월에 발표한 '릴리즈12'에 재난안전망을 위한 기반 기술이 약간 포함되어 있긴 하다.
다음 기술 표준인 '릴리즈13'에 이르면, PS-LTE의 대략적인 기술 표준은 완성될 것이다. 릴리즈12는 기기 간, 장비 간 인터페이스를 정립하는 단계였다면, 릴리즈13은 어떻게 데이터를 주고 받을 것인지, PTT(Push to Talk)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등 솔루션을 완성하는 단계다. 재난안전망 중 필수 기능으로 꼽히는 PTT 기능의 경우, 지금도 IP 기반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제약 사항이 존재한다. 그룹을 만들어서 수백명과 PTT로 통신한다던가, 멀티미디어 등을 전송할 때 원활하지 못할 수 있다. 이 같은 제약 사항을 향후 PS-LTE는 모두 해결할 것이다.
IT동아: 각 나라마다, 지역마다 재난안전망을 어떤 방식으로 구축하는지 궁금하다.
권 상무: 계속 발전 중이다. 동일본대지진 당시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가 기존 3G 망을 통해 열린 사례가 있었다. 이는 사고 발생 지역으로 급증하는 트래픽을 관리하기 위해 상용망에 대한 음성을 차단하고 일부 데이터망만 열어 준 결과인데, 급한 재난 관련 메시지를 이동통신사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조치였다. 음성을 차단한 이유는 정말 긴급한 용도로 관계 부서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다양한 조건을 재난안전망은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도로가 모두 파손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럴 경우에는 공중에서 무선통신망을 살릴 수 있는 기지국을 투하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드론이나 기구 등을 사용하는 테스트도 진행 중이다. 실제로 일본 같은 경우 헬기를 많이 투입한다. 위성을 이용해 끊어진 통신을 되살리는 경우도 있지만, 지연 시간이 많이 걸려 문제가 될 수 있다. 아직 발전하는 단계다. 가장 중요한 안정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기존에 사용하던 통신망과 연동해 사용할 수 없는가라는 질문도 많이 하는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기존 인프라를 그대로 이어서 사용할 수는 없다. 다른 나라 같은 경우도 대부분 새롭게 망을 구축한다. 기존 망은 백업 용도 정도로만 사용하게 된다. 아마 국내도 비슷하게 바뀔 것이다. 점차적으로 PS-LTE로 바뀔 것으로 예상한다.
IT동아: 미국 같은 경우, PS-LTE를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권 상무: 미국은 지난 2012년 상무부 정보통신관리청(NTTA) 산하의 독립기관인 '퍼스트넷(ForstNet)'을 출범하고 70억 달러(약 7조 원)의 예산을 투입해 700MHz 대역에서 재난안전망 PS-LTE를 구축하고 있다. 현재 퍼스트넷과 주 정부 간 협상이 완료되어 재난망 구축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곳은 콜로라도의 아담스 카운티, 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레스, 뉴저지, 뉴멕시코, 텍사스 등이다.
미국이 PS-LTE를 도입하며 채택한 예산 책정 방식이 재미있다. 알다시피 미국은 주정부가 따로 정책을 수립하고 담당한다. 이에 퍼스트넷은 각 주정부를 존중하면서 재난안전망 담당자들과 회의를 나눈다. "PS-LTE라는 솔루션이 있는데 이걸 설치하면 어떻겠느냐"라고 제안하고, 주정부가 이를 선택할 때 정부가 후원하는 방식이다. 만약 주정부가 "기존 망을 그대로 유지하겠다" 또는 "PS-LTE가 아닌 다른 방식의 재난안전망을 구축하겠다"라고 해도 퍼스트넷은 이 의견을 존중한다. 다만, PS-LTE와 연동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이외의 국가 중에도 PS-LTE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나라는 상당히 많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뉴질랜드와 호주다. 호주의 경우 최근 경찰들에게 스마트폰을 지급해 사용한다. 이유가 재미있는데, 기존 무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개인 휴대폰으로 연락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뉴질랜드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모두 지급했다. 결국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다. 이처럼 LTE 기반의 스마트폰을 사용이 늘어나면서 점차적으로 PS-LTE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중이다.
PS-LTE는 다양한 사업자가 참여할 수 있어야
IT동아: 미국의 사례가 재미있다. 주정부와 협의를 통해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
권 상무: 미국의 이전 재난안전망은 TETRA 방식의 '프로젝트25'였다. 미국은 당시 모토로라의 네트워크만을 전역에 도입해 한 사업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때문에 운영 효율성은 떨어졌고, 구축 비용도 비쌌다. 이에 미국은 다양한 사업자가 참여하도록 개방형 표준 기술인 PS-LTE를 채택해 문제를 개선했다. 다양한 사업자가 참여해 경쟁을 유도해 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느 사업자의 장비를 선택하더라도 상호 연동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운용 비용도 줄일 수 있다.
노키아는 한국 중소기업들과 PS-LTE 솔루션을 개발하려고 노력 중이다. 또한, 함께 협업한 결과물로 해외에 동반 진출할 수도 있다. 사실 이미 많은 중소기업과 만나 솔루션을 공동 개발 중이다. 단순히 네트워크 장비, 특정 소프트웨어만 협업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를 만드는 것 모두에 중소기업과 함께 한다. 아마 개인적인 예상이지만, 본격적으로 국내에서 PS-LTE를 구축하고 적용하기 시작하면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지 않을까 싶다. 이를 바탕으로 해외 진출도 그만큼 빠르게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인터뷰는 약 1시간 가량 진행됐다. 특히, 권 상무는 동일본대지진 당시 현장에서 보고 느낀 점을 담담하게 설명해 재난안전망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그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PS-LTE는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재난안전망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지금도 그가 기자에게 보여 준 동영상 한편이 기억에 남는다. 동영상은 일본 이동통신사 KDDI의 재난 시 훈련이었으며, 다양한 크기의 이동기지국으로 빠르게 기지국을 세워 통신망을 재건하는 영상이었다. 동영상을 보고 난 뒤 기자는 이렇게 물었다. "국내 이동통신사도 이런 훈련을 할까요?" 우리 모두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