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의 세계] 전세계를 향해 쏘아올린 코코넛, '코코너츠'
코코너츠 (2013) <출처: divedice.com>
우리는 휴지통에 휴지를 버릴 때, 종종 멀리서 던져 넣는 시도를 한다. 작은 지점을 겨냥해 던지는 행동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골프, 볼링, 구슬치기, 다트, 농구 등 이런 속성의 놀이는 꽤 많다.
힘 조절을 하며 발사체를 날려 목표를 맞히는 게임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디지털 게임 분야에서도 곡사포로 상대를 공격하는 게임이 이미 1세대부터 만들어졌다. 이 게임의 유전자는 발전을 거듭해 윈도우 시대에는 '웜즈'와 '포트리스' 등의 작품으로 이어졌고, 스마트폰 시대에는 '앵그리 버드'가 주역을 차지했다.
'이런 게임을 보드게임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태어난 게임들이 있다. '코코너츠'는 이런 게임들 중에서 최고로 꼽히는 보드게임이다.
기존의 게임들
발사체를 날려 목표를 맞히는 게임은 보드게임보다 스포츠 분야에서 더욱 다양하게 발전했다. 우리의 손은 너무나 정교해, 가까운 거리에서는 목표물에 쉽게 물건을 던져 넣을 수 있다. 따라서, 골프나 농구 등의 스포츠는 넓은 플레이 공간과 숙련된 플레이를 요구했다.
반대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게임은 발사대라는 '발사대'라는 도구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제작됐다. 하지만 이들 게임 대다수는 규칙이 정교하지 않고 발사대에 많이 의존해, 완구와 보드게임의 중간에서 애매모호한 위치를 갖게 되었다.
날아라 개구리 (Flippin' Frogs, 2007) <출처: divedice.com>
2007년 발매된 '날아라 개구리'는 투석기 모양의 발사대로 개구리를 날려 나무 위에 안착시키는 게임이다. 약 1분 동안 나무 위에 가장 많은 개구리를 올린 사람이 승리한다. 다만, 나무가 회전하기 때문에 조준을 잘 하더라도 개구리가 튕겨나올 가능성이 높다. 최대한 많은 개구리를 올리는 것이 목표인 만큼, 정확한 조준보다는 개구리를 빨리 그리고 많이 쏘는 사람이 승리하는 편이다.
앵그리버드 젠가 게임 <출처: divedice.com>
2012년 발매된 '앵그리버드' 보드게임은 원작의 모습을 잘 재현한 작품이지만 게임성에는 차이가 있다. 원작(디지털 게임)이 정밀한 조준과 지능적인 플레이를 요구한다면, 보드게임 버전은 힘을 실어 세게 날리는 것이 중요하다. 발사대를 끝까지 당기는 힘만 있으면 더 이상의 기술이 필요 없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목표에 명중하는 디지털 게임 원작의 손맛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들 게임은 대상 연령이 매우 낮으며, 유아의 근육 발달을 고려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따라서 이들 제품에 대해 어른들은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 만약 조금 더 어렵더라도 '엄마 아빠가 자녀와 함께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면 '코코너츠'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코코너츠는 완구 게임과 보드게임을 교묘하게 접합해, 이러한 카테고리의 게임 중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 됐다.
코코너츠 하기
코코넛을 쏘아 컵에 넣으면 된다. <출처: divedice.com>
코코너츠의 규칙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자기 게임판의 빨간 여의봉 뒤에 원숭이 발사대를 놓고, 자기 차례에 코코넛 1개를 발사한다.
2) 컵에 코코넛이 들어가면 그 컵을 자기 앞으로 가져와 놓는다.
3) 자기 앞에는 컵 3개 1층, 컵 2개 2층, 컵 1개 3층의 형태로 피라미드 모양이 되도록 컵을 쌓는다.
4) 빨간색 컵을 가져올 경우, 1회 더 코코넛을 발사한다.
5) 6개의 컵을 먼저 차지하면 승리한다.
6) 코코넛을 발사하기 전, 나에게 또는 다른 플레이어에게 술법 카드를 쓸 수 있다. 눈 감고 쏘기, 바구니 지정하고 쏘기, 바람 불기 등의
술법 카드가 있다.
재미있는 점은 상대가 이미 획득한 컵을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확보한 컵에 코코넛을 넣으면 그 컵을 가져올 수 있다. 이를 통해 역전이 자주 일어나고 강자에 대한 견제가 충분히 이루어지기 때문에, 게임이 끝날 때까지 흥미진진하다.
코코너츠의 개발 이야기
한국의 보드게임 전문기업 코리아보드게임즈는 2012년부터 해외 시장 개척을 목표로 보드게임 공모전을 기획하고, 해외 작가들의 게임 출판 제안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계 무대에서 코리아보드게임즈의 인지도는 대단치 않았고, 해외 유명 작가의 핵심 작품이 코리아보드게임즈의 문을 두드릴 일은 없었다.
코코너츠의 작가 발터 슈나이더(Walter Schneider, 1953-)는 오스트리아 아이스하키 전 국가대표 선수이기도 하다. 코코너츠는 그가 만든 첫 보드게임이다. <출처: divedice.com>
그러던 중 코리아보드게임즈의 개발팀은 독일 작가 박람회에서 오스트리아의 작가 발터 슈나이더가 플라스틱 책갈피의 탄력으로 스폰지 코코넛을 날려 컵에 넣는 '코코넛'이라는 게임의 프로토타입을 발견한다.
게임은 간단했다. 자기 차례가 될 때마다 발사대로 코코넛을 쏘고, 컵이 들어가면 자기 앞에 모으며, 컵 6개를 모으면 승리했다. 처음에는 쉽게 컵을 차지할 수 있지만, 중앙의 컵은 점점 줄어드니 후반으로 갈수록 기술이 필요했다. 다른 사람의 앞에 놓인 컵에 코코넛을 넣어 빼앗는 등 실력자 견제도 가능했다. 발사대를 사용하는 어린이 지향 게임이지만 상당한 기술을 요구하고 있었고, 몇 가지 부분만 빼면 바로 상품화가 가능할 정도로 완성도도 높았다.
코코너츠의 최초 프로토타입 <출처: divedice.com>
당시 코리아보드게임즈 개발팀은 상쾌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컵에 들어가는 스폰지 볼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 스포츠 만화의 전설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는 후반으로 갈수록 덩크슛보다는 던지는 슛에서 멋진 장면을 많이 보여주는데, "왼손은 거들 뿐"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클라이맥스의 슛도 평범한 2점슛이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 링 주변을 맴도는 공을 보여주는 쪽이 덩크슛보다 더 극적 긴장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발사체를 날리는 대부분의 게임들은 포물선을 그리기보다 직선을 그리는 경우가 많았고, 보통 과녁이 되는 대상이 발사대보다 높은 곳에 위치했다. 발사체를 날려 과녁을 부수는 경우에도 포물선보다는 직선이 효과적이었기에, 포물선을 사용하는 이 게임은 다른 게임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었다. 게다가 그 동안 발사대로 뭔가를 날리던 다른 게임들에 비해 기술의 비중이 확연히 높은 만큼, 개발팀은 여기에 틈새 시장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코리아보드게임즈는 이 게임의 제목을 '코코너츠'로 확정하며, 시장에 내놓을 준비를 했다.
다만, 코코너츠를 주력 제품으로 결정하고 퍼블리싱하는 과정에서 회사 내부의 고민이 많았다. 대개 이런 액션 게임은 외국 회사들의 유명한 제품이 많이 나와 있는데다가 그들의 지위가 확고한 편이기 때문이다. 코리아보드게임즈는 비슷한 형태의 게임을 유통했지만 잘 팔리지 않았던 경험도 있었다. 게다가 당시 코코너츠 프로토타입은 조악해서 상품화를 하려면 플라스틱 사출이나 발사대 설계를 해야 하는데, 당시 코리아보드게임즈는 이 분야의 경험이 없었다.
지금 모습의 코코너츠의 발사대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출처: divedice.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팀은 나름의 확신과 비전을 갖고 여러 차례 프로토타입 작업을 거듭했다. 프로토타입의 플라스틱판 탄성 발사대는 쉽게 만들 수 있지만, 기존에 있는 유사 게임들의 발사대에 비해 조악했다. 플라스틱 발사대는 사용회수가 많아질수록 점차 마모돼 처음의 탄력을 잃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점도 고려해야 했다. 스프링 장치, 고무줄 장치를 비롯해 끈의 반동을 이용한 중세 공성무기인 캐터펄트(Catapult) 형태, 추를 이용한 공성무기였던 트레뷰셋(trebuchet) 형태 등 여러 테스트 모형이 만들어졌다.
코코너츠의 손오공 스케치 <출처: divedice.com>
다른 게임의 발사대와는 달리 기왕이면 더 크게, 힘 조절에 따른 비행 거리 차이는 가급적 크게, 비슷한 힘에서 비행 거리 차이는 가능한 작게, 좌우의 오차는 가능한 작게 하는 것으로 개발 목표를 삼았다. 그리고 수많은 발사 테스트를 거치며 발사대는 점차 완성품이 되어갔다.
한편, 코코너츠의 또 다른 중요 구성 요소는 코코넛이었다. 코코넛의 재질은 스폰지와 스티로폼으로 시작됐다. 그러던 중, 우연히 탄성이 있는 작은 구슬을 날렸더니 원바운드 골인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얌체공처럼 크게 튀면 곤란하지만 원바운드 샷이 가능하다는 것은 충분한 재미 요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코코넛의 재질을 탄성이 있는 플라스틱으로 바꿨다. 이 과정에서 원바운드 샷 빈도를 조금 높이고자 컵의 높이를 낮췄다. 또, 코코넛 무게가 무거워지면서 코코넛에 맞은 컵이 쓰러지는 문제가 생겼고, 컵의 두께와 재질이 보강됐다.
게임의 구성 요소들이 자리를 잡자, 게임의 배경에도 신경써야 했다. 처음에는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농구복을 입은 고릴라가 농구공을 골대에 던지는 테마를 구상했으나, 유럽 시장에서 독특하게 보일 수 있는 테마를 찾는 과정에서 '손오공'이 등장하는 것으로 바꿨다. 또 손오공 캐릭터가 더 많이 등장하면서 파티 분위기를 돋울 수 있는 아이디어로 '술법 카드'를 만들었다.
다양한 언어로 발매된 코코너츠 <출처: divedice.com>
북미 유통이 시작된 이후에는 입소문을 타고 판매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게임에 대한 관심은 전세계로 확산돼 2015년 4월까지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발트 3국,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스페인, 포르투갈, 중국, 홍콩, 타이완 등 총 23개의 국가에서 판매되고 있다.
코코너츠의 확장판
코코너츠 듀오의 다국어판. 코코너츠 듀오는 해외 시장의 인기를 반영해 만들어졌다. <출처: divedice.com>
코코너츠는 초판 발매 이후 구입 문의가 쇄도했고, 해외 유명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Kickstarter)'를 통해 영어판 발매를 위한 모금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 게임을 사전에 접해본 해외 유저들은 기상천외한 코코너츠 이벤트를 벌였다. 또 제품 2개를 구입해서 즐기는 코코너츠 6인 플레이 룰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해외에서 열린 인간 코코너츠 대회. 시타델의 작가 부르노 파이두티(Bruno Faidutti)가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이런 요구에 부응해 2014년에는 코코너츠를 2인 규모로 만들어서 2인 게임을 즐길 수도 있고, 원작과 합쳐 6명까지 확장해 플레이할 수도 있는 '코코너츠 듀오'가 출시되었다. '코코너츠 듀오'는 원작과 다른 종류의 술법 카드가 수록돼 눈길을 끌었다. 또한 제품 내에 분홍색과 녹색의 코코넛을 추가했다. 제품에는 별도의 용도가 나와 있지 않지만, 세계 유저들이 다른 색상의 코코넛을 활용하는 추가 룰을 만들어서 즐기곤 한다.
1994년 올해의 어린이 게임상을 받은 루핑루이(1992)의 한국어판. <출처: divedice.com>
발매 이후 빠르게 입소문을 탄 코코너츠는 2014년 3월, 전 세계에서 오직 한국에서만 판매되고 있는 상황에도 '골든 긱 어워드(Golden Geek Award)'의 최종 경쟁 부문에 국내 게임 최초로 진출했다. 2014년 9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선정하는 '이달의 게임상' 기능성 게임 부문을 수상해 그 잠재력을 확인 받았으며, 같은 해 덴마크 올해의 게임상 후보에도 오르게 된다.
그리고 2015년 4월 6일, 코코너츠는 세계 최대 규모의 보드게임 커뮤니티 '보드게임 긱'의 유저 차트에서 어린이 게임 부문 1위에 오르는 쾌거를 기록했다. 2위인 루핑루이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지만, 보드게임 긱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전세계 3,800여 종의 어린이 게임 중 최근까지 루핑루이의 아성을 위협한 게임이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결과다. 투표자 수에서는 루핑루이가 압도적이고, 유저 평점은 코코너츠가 좀 더 높아 향후 결과가 기대된다.
세계를 겨냥하다
2013년 지스타의 코코너츠 임진록 장면 <출처: divedice.com>
2013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지스타 행사장에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다. 스타크래프트의 프로게이머인 임요환과 홍진호가 일명 '임진록'이라고 일컫는 그들의 대결을 코코너츠를 통해 재현해 화제를 모았다. 양쪽이 5개의 컵을 모아 1개의 컵으로 승부가 갈리는 상황에서 홍진호의 슛이 바닥을 맞고 임요환의 컵으로 튕겨올라가는 멋진 장면이 연출되었다.
일반적으로 좋은 보드게임을 말할 때 "운칠기삼(運七技三)"의 고사를 예로 든다. 최근의 보드게임들은 운을 가급적 배제해 수 싸움이나 효율적인 움직임을 겨루지만, 카탄(1995)을 비롯해 대중적으로 인기를 모은 보드게임들은 운이 어느 정도 작용해 극적인 역전승의 발판을 만들기도 한다. 게임에서 '운'은 극적인 요소를 만들어 "한판 더!"를 외치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어린이 게임의 경우 일반적인 보드게임에 비해 운의 작용이 큰데, 재미있게도 코코너츠는 운과 기술 중 기술에 초점을 맞춘 게임이다. 프로게이머들도 승부를 겨룰 만큼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가족 게임이 탄생한 것이다. 운과 기술의 절묘한 조화. 코코너츠의 전세계적인 흥행이 이해가 가는 이유다.
글 / IT동아 보드게임 필자, 코리아보드게임즈 박지원
편집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본 기사는 네이버캐스트 게임의 세계: 보드게임의 세계(http://navercast.naver.com/list.nhn?cid=2883&category_id=2883)에 함께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