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의 세계] 판타지 세계의 테라포밍, '테라 미스티카'
테라 미스티카 (2012) <출처: divedice.com>
전세계 보드게임 순위 2위를 기록하고 있는 게임이 있다. 게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난이도가 높아 보이는 등의 장벽이 있었지만, 접해본 게이머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바로 '테라 미스티카'다.
이 게임은 전 세계적인 품절로 출시 후 한동안 국내에서 구할 수 없었다. 2015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이 게임의 한국어판 제작에 대한 모금이 진행됐고, 여러 유저들의 입소문을 타고 비로소 한국어판 제작이 결정됐다.
지형 변환 게임
테라 미스티카는 척박한 땅에서, 각각 다른 종족들이 땅을 개척하고 마을을 건설하는 문명 확장 게임이다. 각 플레이어들은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 자신의 종족을 최고로 발전시켜야 한다.
테라 미스티카의 7개 지형 <출처: divedice.com>
테라 미스티카에는 평원, 늪, 호수, 숲, 산악, 황무지, 사막 등 총 7개의 지형이 있다. 각각의 지형에 사는 종족은 두 종족으로, 총 14개의 종족이 있다. 예를 들면 드워프는 산악 지형에서 살고, 마녀는 숲에 살며, 거인은 황무지에 사는 식이다. 이 종족들은 서로 번영하기 위해 낯선 땅을 자신에게 알맞은 지형으로 변경해 정착하려고 한다. 이렇게 지형을 변환하는 것을 SF 장르 소설에서는 '테라포밍(Terraforming)'이라고 한다. 판타지 종족들이 테라포밍을 통해 종족을 발전시킨다는 설정, 재미있지 않은가?
게임 방법
라운드마다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확인하자. 사진 속 왼쪽 카드는 교역소를 지을 때마다 3점을 받는다는 의미다. 또, 보너스로 파란색 신앙 4칸마다 삽을 하나 얻을 수 있다. <출처: divedice.com>
테라 미스티카는 종족을 발전시켜 가장 높은 점수를 얻는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테라 미스티카에는 이를 위한 다양한 점수 획득 방법이 있다.
플레이어들은 선박이나 지형 변환 기술을 향상시켜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이런 기술을 토대로 건물을 많이 지어 남들보다 큰 마을을 건설하면 점수를 받는다. 사원과 성역을 지어 신의 총애를 받거나, 신앙을 발전시켜 큰 점수를 받을 수도 있다. 매 라운드마다 주어지는 목표를 달성하거나, 특정 타일을 얻어 추가 점수를 획득하는 방법도 있다. 다양한 점수 획득 경로가 있는 만큼, 각 종족의 특수 능력이 어느 방면으로 특화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게임판의 흐름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게임 준비 모습. 구성물이 알차다. <출처: divedice.com>
먼저 게임판을 중앙에 놓고, 신앙 트랙을 옆에 놓는다. 각 플레이어들은 종족을 하나 고르고, 종족 게임판과 구성물을 가져가 준비한다. 기본 자원을 받고, 각 종족이 어느 지역에서 문명을 일굴지 시작 지점을 정한다. 다음으로 보너스 타일을 무작위로 하나씩 받는다. 남은 보너스 타일 3개에 동전을 하나씩 놓고 게임 판 옆에 둔 다음, 게임을 시작한다.
테라 미스티카는 총 6라운드로 이루어진다. 각 라운드는 3단계로 이루어지는데 수입, 행동, 정리 단계다.
수입 단계에는 건물을 짓고 드러난 칸에 표시된 일꾼, 동전, 파워, 성직자, 승점 등을 받는다. "받는다"는 의미로 '손'이 그려져 있다. <출처: divedice.com>
수입 단계에서는 종족 게임판, 보너스 타일에 표시된 자원을 가져가면 된다. 자원은 동전, 일꾼, 성직자, 파워가 있다. 동전과 일꾼은 주택을 건설하고 업그레이드하는 데 주로 사용되며, 성직자는 신앙 트랙에서 주로 사용된다. 파워는 특수한 유형의 자원인데, 각 플레이어들은 3개의 파워 그릇을 가지고 게임을 시작한다. 파워 그릇은 1단계, 2단계, 3단계로 나뉘어 있으며, 3단계 그릇에 있는 파워를 사용해 일꾼, 동전, 성직자를 추가로 얻을 수 있다. 파워는 특수한 행동을 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파워를 사용하려면 3단계 그릇으로 파워들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1단계 그릇의 파워를 모두 2단계 그릇으로 옮겨야 2단계 그릇의 파워를 3단계 그릇으로 옮길 수 있어, 이 순환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신경 써야 한다.
플레이어들은 이 자원들을 행동 단계에서 사용할 수 있다. 행동 단계에 들어서면 시작 플레이어부터 돌아가며 8가지의 행동 중 원하는 것을 하나 골라서 하면 된다. 8가지의 행동은 다음과 같다.
8가지 행동 중 골라서 하면 된다. <출처: divedice.com>
다른 지형에 주택을 건설하려면 자기 종족의 거주 환경에 맞게 지형을 변환시켜야 한다. 이 과정에는 삽이 필요하다. 삽은 보통 일꾼을 사용해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변환한 지형 위에는 일꾼과 동전을 지불해 주택을 건설할 수 있다. 주택을 지으면 다음 라운드에 더 많은 자원을 얻을 수 있다.
노란색 플레이어는 검은색 늪 지형에 2개의 삽을 사용해 노란색 사막 타일을 놓아 지형을 변환하고 주택을 놓을 수 있다. <출처: divedice.com>
플레이어들은 주택을 짓기 위해 계속 지형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선박을 건조하거나 삽을 향상시킬 수 있다. 선박을 건조하면 지도상의 강을 건널 수 있게 되고, 삽을 향상시키면 더 적은 일꾼으로 삽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추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선박을 건조하거나, 삽을 향상시키면 추가 점수를 얻는다. <출처: divedice.com>
플레이어들은 최종적으로 큰 마을을 지어야 한다. 마을을 지으려면 4개 이상의 건물이 모여 있어야 하며, 이 건물들의 파워 수치가 모두 합쳐 7이상이어야 한다. 보통 주택은 파워가 1, 교역소와 사원은 2, 요새와 성역은 3의 파워 수치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플레이어들은 주택을 보다 좋은 건물인 교역소, 사원, 요새, 성역 등으로 업그레이드하려 할 것이다.
업그레이드는 간단히 비용을 지불하고 주택을 교역소로, 교역소를 요새나 사원으로, 혹은 사원을 성역으로 교체하면 된다. 주택을 업그레이드하면 수입 단계 때보다 좋은 자원을 받을 수 있으며, 사원이나 성역으로 업그레이드하면 총애 타일을 받을 수도 있다. 총애 타일은 보너스 효과가 있는 타일로, 신앙 트랙을 올려주면서 점수나 새로운 기능들을 부여해주기 때문에 빨리 얻을수록 좋다.
_마을을 지으면 마을 타일에 그려진 보너스를 받고, 신앙 트랙의 마지막 칸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획득하게 된다. 사진의 마을 타일은 7점을 얻고, 일꾼 2개를 보너스로 받으며 열쇠로 사용할 수 있다. <출처: divedice.com> _
테라 미스티카는 특이하게도, 건물을 짓거나 건물을 업그레이드하면 인접한 플레이어들이 파워를 제공받게 된다. 이렇게 파워를 얻은 플레이어는 일정 점수를 깎아야 하지만, 이 파워를 이용해서 추가 행동이나 자원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주택이나 건물을 지을 때에는 나중에 파워를 얻을 수 있도록 상대방과 인접해서 짓는 것이 좋다.
성직자를 제단에 놓으면 적혀 있는 칸 수만큼 전진한다. 플레이어는 성직자를 제단에 놓는 대신 버리고 1칸 전진을 선택할 수도 있다. <출처: divedice.com>
테라 미스티카에서는 신앙을 발전시켜 파워를 얻고, 점수를 획득할 수 있다. 플레이어들이 가진 성직자는 신앙 트랙을 올리는 데 주로 사용된다. 신앙 트랙은 총 4종류인데, 각 트랙마다 1등, 2등, 3등은 게임이 끝났을 때 추가 점수를 받는다. 신앙 트랙에서 내 말을 올리면 파워를 받거나 라운드별로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 때문에 다른 플레이어보다 더 앞서 달리고자 노력하게 되는데, 신앙 트랙의 마지막 칸은 오직 1명의 플레이어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치열하다. 성직자를 사용하면 신앙 트랙을 1칸에서 최대 3칸까지 올릴 수 있다.
파워 행동을 사용하려면 그릇3에서 그릇1로 파워를 내려야 한다. 파워 행동은 사용한 뒤 X마커로 가려, 이번 라운드에 다른 플레이어가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출처: divedice.com>
플레이어들은 파워를 사용해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파워 행동은 게임판에 6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다리를 놓는 행동, 성직자, 동전 혹은 일꾼을 받는 행동, 그리고 삽을 1개나 2개 받는 행동이 있다. 이 파워 행동은 누군가 사용하면 그 라운드에 다른 플레이어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때문에 빠르게 선점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외에도 테라 미스티카에는 별도의 특수 행동들이 있다. 각 라운드에 한 번 할 수 있는 부가 행동들을 이용해, 다른 플레이어보다 조금씩 앞서 나갈 수 있다.
플레이어들은 각 라운드의 행동 단계에서 이런 행동들을 여러 번 할 수 있는데, 더 이상 하고 싶은 행동이 없을 경우에는 패스를 하면 된다. 패스를 하면 보너스 타일을 하나 가져오고, 가지고 있었던 보너스 타일을 반납하면 된다. 가장 빠르게 패스한 사람은 다음 라운드 시작 플레이어가 된다.
정리 단계에는 라운드 마커를 뒤집고, 가려진 X마커를 모두 제거해 다음 라운드에 행동 칸을 쓸 수 있게 준비하면 된다. <출처: divedice.com>
정리 단계에는 라운드 타일에 따라 점수 및 보너스를 계산한 후 타일을 뒤집는다. 사용한 행동 칸 등을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정리하고, 다음 라운드를 진행한다. 이렇게 6라운드를 마치면 게임이 끝난다. 최종 점수 계산을 해서 가장 점수가 많은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테라 미스티카의 전략
7개의 지형 배치를 눈여겨 보자. 이 종족은 황무지를 자신의 거주 지형으로 하며, 산악 지형과 사막 지형을 손쉽게 변형할 수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호수와 늪은 변형하기 어려운 지형이다. <출처: divedice.com>
테라 미스티카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지형 변환이다. 자신의 종족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 때는 가급적 삽(비용)이 적게 드는 지형을 골라 변환해야 한다. 지형을 변경할 때 드는 비용은 게임을 시작할 때 선택하는 종족 게임판에 나와 있다. 7개의 지형이 원을 그리며 있는데, 자신의 거주 지형 인근에 있는 지형 2개가 변경하기 손쉬운 지형이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이 조건은 마찬가지인데, 중요한 점은 이 게임에서 참여 인원에 따라 사용하지 않는 지형이 생긴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4명이 플레이할 때는 3곳의 주인 없는 지형이 생기게 되는 셈이다. 주인 없는 지형을 인근에 둔 종족을 선택하면 초반에 쉽게 확장할 수 있다. 처음 주택을 배치할 때에도 이런 조건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내 지형과 인근에 있는 지형을 거주지형으로 하는 종족과는 가급적 주택이 붙어 있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 만약 붙어 있으면 서로 치열하게 땅을 차지하느라 게임이 힘겨워진다.
반대로 내 지형과 완전히 반대 지형에 있는 종족이라면, 같이 붙어 있을 때 상부상조할 수 있다. 서로 파워를 주고 받으며 서로에게 필요한 땅만 먹으면서 크게 확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건물이 서로 붙어 있으면 파워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사진은 노란색 플레이어의 주택이 교역소로 업그레이드되며 회색 플레이어에게 파워를 주는 장면. 회색은 파워를 하나 받을 수 있다. 만약 회색 플레이어의 건물이 교역소였다면 점수를 1점 지불하고 파워를 2개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출처: divedice.com>
테라 미스티카는 게임 인원에 따라 게임판의 크기를 조절하지 않는다. 따라서 2명이서 게임을 하면 4명이서 게임을 할 때보다 광활한 공간을 느끼고, 4명이서 할 때보다는 경쟁이 적어 싱겁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 테라 미스티카가 게임 인원에 따라 게임판의 크기를 조절하지 않는 이유는 종족끼리의 상호 작용에 있다. 서로 인접해야 같이 발전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게임 구조상, 서로 떨어져 발전을 추구하면 서로 인접했을 때보다 발전의 한계가 금방 온다. 결국 종족의 특수 능력이나 라운드 점수 획득에 따라 게임의 승패가 갈린다. 서로 인접할수록 좋은 영향을 주고받아 더욱 발전하는 시스템 덕에, 테라 미스티카를 플레이하면 다른 게임에서 맛볼 수 없는 특별함을 느낄 수 있다.
이 외에, 지형적인 유불리는 게임에 없다고 봐도 좋다. 테라 미스티카의 게임 디자이너도 지형과 종족은 게임 배경(Theme)에 따라 정했다고 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라운드별 점수 타일과 보너스 타일이다. 각 라운드마다 점수 획득 방법이 유리한 종족, 보너스 타일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종족을 고르는 게 낫다.
파워 그릇은 왼쪽 아래 그릇에서 시작해, 오른쪽 그릇으로 이동한다. 오른쪽 그릇에 있는 파워만을 사용할 수 있어, 소모한 파워를 빨리 순환시킬수록 유리하게 게임을 끌어갈 수 있다. <출처: divedice.com>
추가적인 이득을 주는 요소들도 잘 관리해야한다. 총애 타일은 게임에서 추가적인 이득을 주기 때문에, 빠르게 획득해 활용해야 한다. 추가적인 이득을 주는 파워 그릇 또한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초반에 주어진 12개의 파워는 사실 너무 많은 편이다. 파워를 획득하면 1번 그릇부터 파워가 올라가기 때문에 파워의 이동이 정체되기 십상이다. 파워를 초반에 희생해두면, 빠르게 파워를 순환시켜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다.
총애 타일을 초기에 활용하면 득점 루트를 다양화할 수 있다. <출처: divedice.com>
테라 미스티카는 종족, 라운드 점수 타일, 총애 타일 등으로 게임의 양상이 매번 달라지기 때문에 매번 다른 전략을 세워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기본 사항을 알아두면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5년의 개발 기간
테라 미스티카는 무려 15년에 걸쳐 개발됐다. 디자이너 헬게 오스터택은 1997년 이 게임의 뼈대가 되는 게임 '고라드(город, 러시아어로 '도시'를 의미)'를 만들었다. '고라드'는 매킨토시 게임 'Spaceward Ho!(국내에는 '은하정복'으로 발매)'의 테라포밍 아이디어에 감명을 받아 만들어졌다.
디자이너 옌스 드뢰게뮐러(Jens Drogemuller, 좌)과 디자이너 헬게 오스터택(Helge Ostertag, 우) <출처: boardgamegeek.com>
'고라드'는 '워크래프트'와 같은 PC게임의 테크트리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 작가의 새로운 아이디어로 꾸며졌다. 작가에 따르면 테라미스티카의 종족 게임판은 '쓰루 디 에이지스(Through the Ages: A Story of Civilization, 2006)'나 '이클립스(Eclipse, 2011)'에서 쓰는 개인 게임판과 유사하지만, 이 게임들의 출시 이전에 고안한 자신만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헬게 오스터택은 그의 동생 안젤름(Anselm Ostertag)과 함께 고라드를 만들었다. 고라드는 당시 두 형제가 많이 플레이했던 게임인 '카탄의 개척자(1995)'에 영향을 받아 조립 게임판(Modular Board) 형태로 제작됐다.
당시 고라드는 5개의 서로 다른 지형과 각각의 지형에 거주하는 판타지 종족 5개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각 종족은 특수 능력 하나씩을 갖고 있었고, 게임의 목표는 게임판에 가급적 넓게 도시를 확장하는 것이었다.
확장을 하려면 테라포밍을 해야 했다. 당시에는 주택, 빌딩, 사원 등 3가지 타입의 건물만 있었는데, 이 건물들은 플레이어들에게 일꾼과 돈, 액션 카드를 제공했다. 헬게 오스터택은 이 프로토 타입을 재미있게 즐겼지만, 액션 카드로 인해 운에 의해 게임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아 게임의 밸런스를 해쳤다고 회고했다.
테라 미스티카의 프로토 타입, 고라드의 카드 <출처: boardgamegeek.com>
그는 프라이부르크에서 가족, 친구들과 함께 여러 번의 테스트를 거쳤고, 게임 제작사를 만나기 위해 뮌헨에서 열리는 국제 게임 박람회를 찾았다. '고라드'는 독일의 유명 보드게임 퍼블리셔 중 하나인 한스 임 글뤽(Hans im Gluck Verlags-GmbH)의 흥미를 끌었지만, 출판 제안은 없었다. 여기에 상심한 헬게 오스터택은 게임 디자인을 중단했다.
2001년, 브레멘으로 이사한 후 그는 다시 게임 디자인을 시작했다. 의기투합한 친구들과 그는 보드게임 테스트 그룹을 만들었고, 친구들에게 '고라드'를 선보였다. 2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게임은 친구들에게 크게 환영을 받았다.
헬게 오스터택은 액션 카드의 영향을 줄이는 방향으로 게임을 디자인 했다. 이 과정에서 2개의 지형과 종족을 추가했고, 조립 게임판과 고정 게임판을 비교하며 테스트했다. 또 건물과 자원의 양을 늘리거나 줄여가며 밸런스를 조절했다. 이 시기에 그는 동생 안젤름과 함께 보드게임 제작사 피피쿠스(Pfifficus Spiele)를 설립해 보드게임을 제작하기도 하는 등 열성적으로 일했다. 그는 이 회사에서 제작한 게임들을 들고 2004년 에센 박람회에 나가기도 했다.
제작자로서 일하는 것은 즐거웠지만, 게임 디자이너로서의 일에 더 집중하기 위해 헬게 오스터택은 2008년 회사를 그만두고, 2009년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도시인 엡스타인으로 이사했다. 이 시기에 고라드는 거의 완성됐다.
그는 종족을 14개로 늘렸고, 건물, 기술의 업그레이드에 집중했다. 그는 인근의 게임 모임에 참여해 정규 멤버가 됐고, 그 모임 친구들을 통해 테스트 플레이를 이어갈 수 있었다. 2010년에는 이 모임에서 주최하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다. 이 이벤트는 열흘 동안 많은 게임의 프로토타입을 테스트하며 보드게임 제작자와 디자이너의 만남을 주선하는 행사였다.
2004년 큰 인기를 모은 전략 게임, 자반도르의 셉터(The Scepter of Zavandor, 2004)
여기에서 헬게 오스터택은 아그리콜라(2007)의 디자이너, 우베 로젠베르크(Uwe Rosenberg)를 만났다. 우베 로젠베르크는 이 게임의 제작을 호언 장담하며 많은 개선점을 제안했다. 그의 조언으로 마침내 게임에서 카드가 제외되어 보다 전략적으로 변화했고, 종족 간의 차이점이 더 확연해졌다.
우베 로젠베르크는 친구들을 데려와 함께 테스트 플레이를 하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그의 디자이너 파트너인 옌스 드뢰게뮐러와 제작자인 프랭크 히렌(Frank Heeren)도 포함되어 있었다.
옌스 드뢰게뮐러는 '자반도르의 셉터'의 디자이너였는데, 고라드를 몇 차례 플레이하고 감명을 받아 헬게 오스터택에게 공동 디자이너 자리를 정중히 요청했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어려운 난이도의 전략 게임을 즐기는 타입이라 곧 의기투합했다.
2012년까지 헬게 오스터택, 옌스 드뢰게뮐러, 우베 로젠베르크, 프랭크 히렌 등 네 사람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며 수없이 많은 테스트 플레이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2012년, 프랭크 히렌이 세운 제작사 포이어란트(Feuerland Spiele)의 첫 작품으로 '테라 미스티카'가 발매됐다.
테라 미스티카의 확장
테라 미스티카의 확장 '불과 얼음'. <출처: boardgamegeek.com>
2013년 독일 게임상(Deutscher Spiele Preis)을 수상하며 인기에 탄력이 붙은 테라 미스티카는 곧 확장판을 예고했다. 2014년 발매된 테라 미스티카의 확장 '불과 얼음(Terra Mystica: Fire & Ice, 2014)'은 게임에 몇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먼저, 6개의 종족이 새롭게 추가됐다. '테라 미스티카'는 7개의 지형에 각 지형마다 2종족씩 14개의 종족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종족 추가는 어렵게 느껴졌다. 각 지형마다 이미 할당된 종족이 2개씩 있으니, 새로운 지형을 필요로 하는 종족을 추가하기는 더욱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불과 얼음'이라는 확장판의 이름에 걸맞게 불, 얼음 지형이 생겼다. 이렇게 생긴 새 지형은 '테라 미스티카'의 기존 지형을 대체한다. 게임 시작 전에 다른 플레이어가 사용하지 않는 지형을 골라 고리를 올려두는 식이다.
또한, 지형을 변환하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 새 종족을 추가했다. 삽이 아닌 파워나 성직자를 사용해 지형을 변화시키는 종족이 있는가 하면, 강을 따라서만 건설이 가능하지만 사용할 수 있는 지형을 점차 해제해 다양한 지형에 적응할 수 있는 종족도 생겼다. 때문에 기존 게임의 밸런스를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 색다른 느낌의 종족을 추가할 수 있었다.
추가된 종족은 기존 지형을 이용한다. <출처: boardgamegeek.com>
두 번째로 추가된 것은 새로운 게임판과 최종 점수 계산 타일이다. 새 게임판은 고정된 지형의 한계를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새롭게 추가된 최종 점수 계산 타일은 4종류인데, 기존의 게임 규칙처럼 최종 점수를 계산한 후 다른 조건을 추가해 점수를 더한다.
이를테면 가장 긴 거리를 가진 마을을 지었거나, 게임 판의 가장자리에 가장 많은 건물을 지으면 점수를 얻게 되는 식이다. 기본판에서 플레이어들은 큰 덩어리의 마을을 짓는 데 골몰했었는데, 이제는 게임 시작 전 최종 점수 계산 타일을 보고 장기적으로 마을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됐다.
새로운 최종 점수 타일 <출처: boardgamegeek.com>
세 번째로, 선택 규칙이 2가지 생겼다. 그 중 하나는 게임 순서를 변경하는 것이다. '테라 미스티카'에서는 누군가 패스를 하면 그 플레이어가 다음 라운드 시작 플레이어가 됐고, 그 플레이어를 기준으로 시계 방향으로 게임 순서를 가졌다.
확장판에서는 이 부분을 보다 전략적으로 바꿨다. 게임 순서 게임판을 새롭게 추가해, 누군가 패스할 때마다 이 게임판에 표시한다. 그리고 이 표시 순서로, 즉 패스한 순서대로 다음 라운드의 게임 순서를 결정하게 됐다. 이를 통해 원하는 보너스 타일을 가지기 위해 패스 순서를 고민했던 플레이어들에게 추가 고민거리를 던졌다.
게임 순서 선택이 정교해졌다. <출처: boardgamegeek.com>
다른 하나의 선택 규칙은 게임 시작 전 종족을 선택하는데 경매를 도입하는 것이다. '테라 미스티카' 기본판은 절묘한 균형에도 불구하고 몇몇 종족들이 강하거나, 몇몇 종족들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온라인 사이트들을 중심으로 경매 규칙이 도입됐다. 40점의 승리 점수를 가지고 경매를 시작해 원하는 종족을 가져오는 방식을 적용했다. 많은 점수를 지불하고 강한 종족을 가져오거나, 승리 점수를 아끼고 약한 종족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각 종족의 차이를 완화했다.
테라 미스티카는 이 외에도 프로모션 확장이 몇 가지 있다.
_테라 미스티카의 프로모션 확장들. 보너스 타일(좌), 마을 타일(중), 지형 타일(우) <출처: divedice.com> _
2013년 에센 박람회를 통해 발표된 새로운 마을 타일 4종류는 더 많은 전략적 선택지를 제공한다. 2013년 독일의 보드게임 잡지 슈필박스(Spiel box)에서 부록으로 제공한 보너스 타일 또한 게임의 전략을 높인다는 면에서 필수 확장이다. 지형 타일은 그림이 다른 타일로, 기존 타일을 대체해 사용할 수 있다. 게임 내에 큰 의미는 없지만, 테라 미스티카 마니아들의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켰던 확장이다.
테라 미스티카 빅박스 <출처: divedice.com>
확장판이 많은 게임은 이를 모아 하나의 딜럭스 판을 내기 마련이다. 테라 미스티카도 그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테라 미스티카', '테라 미스티카 확장: 불과 얼음', 모든 프로모션 확장을 포함하는 빅박스가 2015년 출시될 예정이다.
크라우드 펀딩의 성공
2012 Meeples' Choice Winner
2013 Deutscher Spiele Preis Best Family/Adult Game Winner
2013 Golden Geek Best Strategy Board Game Winner
2013 Golden Geek Board Game of the Year Winner
2013 Hra roku Winner
2013 International Gamers Award - General Strategy: Multi-player Winner
2013 JUG Game of the Year Winner
2013 Nederlandse Spellenprijs Best Expert Game Winner
2013 Spiel des Jahres Kennerspiel des Jahres Recommended
2013 Tric Trac d'Or Winner
2012년 혜성같이 등장한 테라 미스티카는 2012 에센 박람회의 기대작들을 반영하는 페어플레이 차트에서 줄곧 1위를 수성하다가, 2일째 되는 날 매진이 되면서 그 기세가 꺾인 후 키플라워(KeyFlower, 2013)에 1위 자리를 내주고 최종적으로 2위를 차지했다. 에센 박람회에서 직접 게임을 공수한 소수의 게이머들이 이 게임에 대한 호평을 쏟아내면서 관심을 끌었지만, 오랜 기간 국내에 입고가 이루어지지 않아 그 열기가 사그라들었다.
테라 미스티카는 2012년과 2013년에 보드게임 주요 상에 노미네이트되고, 독일 게임상을 거머쥐었다. 이 후 2014년 확장판이 발매되면서 다시금 인기를 끌고, 전세계 보드게임 순위 2위를 차지했다. 그렇지만 해외에 비해 국내에서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다 2015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한국어판 제작이 결정되자, 이 게임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같은 해 발매된 '촐킨(Tzolk'in: The Mayan Calendar, 2012)'이 국내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상당량의 영어판이 판매된 것을 생각할 때 '테라 미스티카'에 대한 뒤늦은 국내 열기는 안타까운 점이 많다. 아무래도 에센 박람회 이후 전세계적인 품절 상태가 오래 지속돼 이 게임에 대한 평가가 빠르게 이어지지 못한 탓이 아닐까 한다. 게임의 초기 판매량이 게임의 평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는 사례다.
촐킨의 인기는 대단했다. <출처: divedice.com>
국내에 번역되는 한국어판 게임, 특히 고난이도 전략 게임의 경우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그 종류가 많지 않은데, 다른 나라에 비해 보드게임을 즐기는 취미 인구가 적기 때문이다. 때문에 야심차게 한국어판을 제작하고도 수익을 달성하지 못해 쓰러져간 보드게임 회사들이 부지기수였고, 결국 보드게임 한국어판 제작은 신중히 결정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2013년부터 보드게임 한국어판 제작 환경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옮겨감에 따라, 테라 미스티카는 재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국내의 보드게임 크라우드 펀딩이 처음부터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글래스로드(GlassRoad, 2013)', '아그리콜라 크고 작은 피조물들(Agricola: All Creatures Big and Small, 2012)'은 기대와는 달리 실망스런 성적을 냈다.
하지만, '패치스토리(2013)', '로빈슨 크루소: 저주 받은 섬의 모험(2012)', '프리제의 랜드로드(2013)', '연금술 아카데미(2014)','아쿠아파크(2015)', '더 돔(2015)' 등 많은 게임들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성공적으로 발매되는 등, 보드게임 제작 환경에서 크라우드 펀딩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테라 미스티카'의 크라우드 펀딩은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사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가격을 대폭 낮추고, 프로모션 아이템을 모두 포함해 국내 유저들의 호평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한 프리제의 랜드로드(2013), 연금술 아카데미(2014)' <출처: divedice.com>
테라 미스티카의 크라우드 펀딩은 2015년 3월 20일 게임이 밝혀지지 않은 채 사전에 공지되면서, 어떤 게임이 대상이 될지 많은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혜안을 갖춘 유저들은 '테라 미스티카'를 꼽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테라 미스티카의 크라우드 펀딩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이 있었다.
이미 2년 전에 출시된 게임이고, 난이도가 높아 많은 사람들이 펀딩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크라우드 펀딩이 시작되자 획기적인 조건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고, 단 48시간 만에 목표를 달성하며 국내 고난이도 전략 게임의 수요에 대한 의문을 불식시켰다. '테라 미스티카'의 성공은 어려운 난이도의 전략 게임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될 수 있다는 희망을 엿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테라 미스티카를 이제 손쉽게 하자 <출처: divedice.com>
테라 미스티카의 성공은 우리에게 2가지 선물을 줬다. 전세계 게임 순위 TOP 10 안에 드는 게임을 이제 간편하게 한국어로 접하게 됐다는 것과, 앞으로 어려운 난이도의 게임이 보다 활발히 제작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다는 것이다.
글 / IT동아 보드게임 필자, 코리아보드게임즈 권성현
편집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본 기사는 네이버캐스트 게임의 세계: 보드게임의 세계(http://navercast.naver.com/list.nhn?cid=2883&category_id=2883)에 함께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