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부심과 비아냥 교차하는 '인터넷 슈퍼카'의 계보

김영우 pengo@itdonga.com

[IT동아 김영우 기자] 자동차 애호가라면 누구라도 한 번은 꿈꾸는 것이 바로 '슈퍼카'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맥라렌 등의 브랜드로 대표되는 슈퍼카는 일반 차량과 비교가 되지 않는 성능, 전위적인 디자인, 그리고 희소성이 특징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가격이 최소 수억 원이며, 수십억 원 이상에 이르는 모델도 상당수다.

이렇게 일반인 입장에선 손에 넣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바로 슈퍼카라는 존재지만, 인터넷의 자동차 관련 커뮤니티에서 반 장난으로 일컬어지는 일명 '인터넷 슈퍼카'들도 존재한다. 물론 이들은 엄밀히 말해 진짜 슈퍼카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국산 일반차종에 불과하다. 하지만, 일부 매니아들이 이들 차량에 쏟은 애정은 진짜 슈퍼카 못지 않은 수준이다. 인터넷의 여명기부터 존재했던 '인터넷 슈퍼카'의 계보를 살펴보자.

대우 아카디아(1994년 출시 ~ 1999년 단종)

1994년 출시된 대형 세단인 아카디아는 대우자동차(현 한국GM) 브랜드로 출시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본 혼다의 '레전드(2세대)'를 반 조립 상태로 들여와 국내에서 완성 후 판매한, 실제로는 수입차나 다름 없는 모델이었다. 당시 한국과 일본의 자동차 기술은 상당한 격차가 있었기 때문에 아카디아의 전반적인 완성도는 국내의 어떤 차량도 따라오지 못할 수준이었다. 특히 아카디아에 실린 3.2리터의 6기통 엔진, 그리고 단단한 하체가 발휘하는 강력한 주행성능은 큰 호평을 받았다.

대우 아카디아
대우 아카디아

다만, 성능만큼이나 가격 역시 차원을 달리하는 수준이었다는 것이 문제다. 국산 차량 중에 3,000만원대 차량도 극소수였던 당시 상황에서 4,000만원을 넘는 아카디아는 너무 비싸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이 때문에 아카디아는 많이 팔리지 못했고 1999년, 재고처리를 끝으로 단종되었다. 하지만 이 차량의 가치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재조명 되었고, 신형 스포츠카를 살 만한 형편이 되지 못하는 자동차 매니아들이 아카디아 중고를 구매해 스포츠카처럼 튜닝을 하기도 하기도 했다. 단종 후에 오히려 더 많은 사랑을 받은 차량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마르샤 2.5 V6(1995년 출시 ~ 1998년 단종)

마르샤는 중형 세단인 쏘나타와 대형 세단인 그랜저 사이의 수요를 메우기 위해 등장했다. 기본적으로 쏘나타의 뼈대를 이용하지만, 파워트레인이나 부가기능의 상당수는 그랜저에 준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이 특징이다. 특히 상위 트림인 마르샤 V6 2.5 모델에는 일본 미쓰비시와의 기술 제휴로 개발한 6기통의 2.5리터 엔진을 탑재해 차량 무게에 비해 넉넉한 힘을 발휘했으며, 당시 국산차량에선 보기 드물었던 ECS(전자제어서스펜션)까지 탑재하고 있어 안정적인 코너링이 가능했다.

현대 마르샤
현대 마르샤

다만, 차량의 크기는 쏘나타에 가까운데 가격은 그랜저를 바라본다는 애매한 위치가 판매에 발목을 잡았으며, 1997년 말 전국을 강타한 IMF 외환위기는 마르샤의 입지를 더 좁혔다. 결국 출시 후 3년만에 단종되었다. 하지만 이 차량의 후속모델로 기획되어 개발되던 차량은 '그랜저 XG'라는 이름으로 출시,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르노삼성 SM7 3.5(2004년 출시 ~ 2008년 단종)

2004년에 출시된 1세대 SM7은 동시기에 팔리던 2세대 SM5와 마찬가지로 일본 닛산의 '티아나'를 기반으로 개발된 차량이다. 때문에 이 두 차량은 전반적인 외형과 실내가 유사했다. 하지만 SM5가 평범한 4기통 2.0리터 엔진을 달고 있는 반면, SM7은 당시 닛산이 자랑하던 6기통 유닛인 VQ 엔진(2.3 / 3.5리터)을 탑재하고 있었다.

르노삼성 SM7
르노삼성 SM7

이 덕분에 SM7은 동급 차량 대비 확연히 뛰어난 가속능력과 부드러운 주행감각을 동시에 발휘했고 특히 3.5리터 모델은 자동차 매니아들에게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한 등급 아래 차량인 SM5와의 디자인과 크기가 거의 비슷하다는 점, 그리고 경쟁차량인 현대 그랜저의 입지가 너무 강하다는 점 때문에 그다지 눈에 띄는 판매량은 기록하지 못했다.

기아 프라이드 디젤(2005년 출시 ~ 2011년 단종)

대한민국에서 디젤 승용차의 계보는 1989년 대우 로얄 디젤의 단종 이후 한동안 끊어졌다가 2005년, 기아에서 2세대 프라이드의 1.5 리터 디젤 모델을 출시하면서 16년만에 부활했다. 1.5리터 VGT(가변제어터보) 디젤 엔진은 어지간한 중형 가솔린 엔진을 능가하는 강력한 토크를 발휘하는데, 이를 가벼운 소형차인 프라이드에 얹은 결과, 기존의 소형차를 훨씬 능가하는 가속감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디젤 소형차라는 것 자체가 국내에서 워낙 특이한 존재였기 때문에, 이런 감각을 처음 접하고 놀라는 경우가 많았다.

기아 프라이드 디젤
기아 프라이드 디젤

여기에 디젤엔진 특유의 우수한 연비까지 실현, 프라이드 디젤은 차량 구입 비용과 연료비를 아끼면서 시원스런 주행을 하고자 하던 실속파 자동차 매니아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엔진의 힘에 비해 하체는 그다지 튼실한 편이 아니라 전반적인 균형이 맞지 않는 불안정한 차량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이 차량 출시 이후부터 소형 디젤 승용차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확실하다. 프라이드 디젤과 같은 차량에 대한 관심은 이후에 나온 크루즈 디젤, 엑센트 디젤 등으로 이어진다.

기아 모하비(2008년 출시 ~ 현재)

2008년에 즈음해 SUV는 강성을 강조한 프레임 방식 대신 승차감과 연비를 중시하는 모노코크 방식이 대세가 되었고, 대형보다는 중형이나 소형 모델의 판매 비중이 확연하게 늘어났다. 하지만 이 때를 즈음해 등장한 기아의 모하비는 전장 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차체를 가진 프레임 뼈대를 갖추고 있었다. 덕분에 다부진 외형은 물론, 오프로드 주행도 문제없이 소화하는 강인함까지 발휘했으며, 여기에 6기통 3.0리터 디젤엔진부터 8기통 4.6리터 가솔린 엔진을 비롯한 강력한 파워까지 갖추면서 정통파 SUV에 목말라했던 매니아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기아 모하비
기아 모하비

다만, 가장 문제는 시대가 이런 SUV를 그다지 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하비는 나긋한 승차감이나 부드러운 외형, 우수한 연비 등과 거리가 멀었고 가격 역시 어지간한 트림을 사려면 4,000 ~ 5,000만 원 정도는 지불해야 할 정도로 비쌌다. 결국 만족할만한 상업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특히 기대가 컸던 북미 시장에서 조기 단종되는 굴욕까지 겪었다.

쉐보레 크루즈 2.0 디젤(2009년 출시 ~ 현재)

2008년에 GM대우 라세티 프리미어(2011년까지)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시된 쉐보레 크루즈는 사실 주행 성능이 그다지 주목 받는 차량은 아니었다. 동급 차량 대비 단단한 하체는 나름 호평이었지만, 초기 모델에 달린 1.6리터 가솔린 엔진은 차량의 무게에 비해 너무 힘이 없어서 구매자들은 고질적인 가속력 부족을 호소하곤 했다. 하지만 2009년, 2.0리터 디젤엔진을 얹은 크루즈가 출시되자, 이 차에 대한 평가는 그야말로 180도 달라졌다.

쉐보레 크루즈
쉐보레 크루즈

크루즈 디젤에 탑재된 2.0 디젤 엔진은 본래 크루즈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중형차인 토스카, 그리고 SUV인 윈스톰(현 캡티바)에 쓰이던 것이었다. 이는 당시 소형 디젤 엔진을 확보하지 못한 한국GM의 사정 때문이기도 했는데, 이런 엔진을 이런 엔진을 준중형차인 크루즈에 얹으니 당연히 힘은 넘쳐흘렀다. 동급 차량 대비 확연히 비싼 가격, 디젤 승용치고는 다소 떨어지는 연비 때문에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이 차량에 대한 매니아들의 지지는 확고했다.

'인터넷 슈퍼카'라는 비아냥이 나쁘게만 들리지는 않는 이유

위에서 언급한 차량들 외에도 현대 엑센트 디젤(수동변속기 모델), 기아 스포티지 T-GDI, 쉐보레 말리부 디젤 등도 인터넷 상에서 특히 매니아 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은 이른바 ‘인터넷 슈퍼카’의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차량의 공통점을 꼽자면 일부 예외(프라이드 디젤 등)를 제외하면 그다지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모델은 아니라는 점, 동급 차량에 비해 강력한 엔진을 탑재해 우수한 가속력을 자랑했다는 점, 그리고 은근히 가격이 비쌌던 점등을 꼽을 수 있다.

사실, 시장에서 꾸준하게 많이 팔리기 위해선 톡톡 튀는 개성 보다는 무난함이 중요하다. 가격 역시 너무 비싸면 곤란하다. 어느 한 두 가지 면에서만 유난히 장점이 부각되는데다 가격까지 비싸서야 대중들에게 외면당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반면, 일반 대중이 아닌 매니아 입장에선 오히려 이런 점이 더 매력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차량을 보유한 매니아들은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서 자기 차량의 장점을 알리기 위해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다만, 이런 열정이 너무 지나치다 보니,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은 '슈퍼카라도 나왔냐?'라는 식으로 비꼬기도 한다. '인터넷 슈퍼카'라는 명칭 자체가 자부심이나 동경심보다는 비아냥에서 비롯되었다는 의미다.

다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마냥 비슷하고 무난한 자동차만 시장에 존재하고 있다면 이 세상은 참으로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저런 차별화된 시도 끝에 세상을 바꿀 만한 새로운 트랜드나 패러다임이 개척될 지도 모를 노릇이다. 또 다른 매니아들을 열광시킬 만한 새로운 '인터넷 슈퍼카'의 등장을 기대하게 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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