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자의 '선의'에 기댄 단통법, 공산주의 연상?

김영우 pengo@itdonga.com

이른바 '높으신 분들'은 뭔가 작은 문제라도 있으면 이를 제도 변화를 통해 근본적인 개선이 가능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같은 휴대폰을 누구는 비싸게 주고 사는데, 또 누구는 싸게 주고 사는 것이 문제이며, 이를 법률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위와 같은 시장의 현실이 과연 그렇게 문제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사실 이는 굳이 휴대폰이 아니더라도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노트북이나 TV 같은 일반 가전제품 역시 용산전자상가와 같은 전문점과 고급 백화점의 판매 가격은 거의 50% 정도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 이것저것 따지기 귀찮은 소비자라면 좀 비싸더라도 백화점에서 극진한 '고객' 대접을 받으며 사면 된다. 반면, 한 푼이라도 아끼고자 한다면 다소 좁은 매장과 상대적으로 불친절한 판매자들 사이에서 흥정과 발품을 거듭하며 사는 방법도 있다. '시장경제'라는 환경 하에서 두 가지 구매 행태는 공존할 수 밖에 없다.

모두가 평등하게 휴대폰을 사게 한다는 단통법의 '이상적인' 취지

하지만 지난 10월 1일부터 시행된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이른바 단통법은 이러한 시장경제의 자연스러운 행태를 '문제'라고 규정하고, 이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를 강조했다. 휴대폰 구입시 소비자에게 지급되는 보조금을 철저하게 제한함과 함께 이를 공지하게 하여 어디를 가더라도 동일한, 혹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가격으로 휴대폰을 살 수 있도록 하여 가격 차별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단통법이 자리잡으면 이동통신사(이하 이통사)들의 출혈경쟁이 줄어들어 요금 인하를 할 여력도 생길 것이며, 제조사들 역시 단말기 출고가 인하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장미 빛 전망도 정부는 내놨다.

하지만, 단통법 시행 불과 1개월이 지난 지금, 휴대폰 시장은 그야말로 가관이다. 이통사들은 그야말로 생색내기 수준의 보조금을 지급했으며, 이 조차도 제대로 받으려면 적어도 6~7만원, 많게는 10만원 대의 비싼 요금제를 써야 한다. 제조사들이 단말기 가격을 적극적으로 인하하는 움직임 역시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결론적으로는 온 국민이 '공평하게 비싼' 가격과 요금제를 떠안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당연히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았고, 휴대폰 판매량은 곤두박질을 쳤으며 일선의 판매점들은 줄줄이 문을 닫게 되었다.

공급자의 '선의'에 기댄 단통법, 공산주의 국가에나 어울려?

이란 상황에서 몇몇 소비자들은 '단통법은 공산주의다'라는 주장까지 한다. 이는 단순히 누구나 같은 가격을 주고 휴대폰을 사게 되었다는 현실을 한탄하는 것만은 아니다. 좀 더 자세히 따져보면 공산주의의 근본사상과 이것이 현실이 된 후에 발생하게 된 모순이 단통법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칼 마르크스가 당초 구상한 공산주의는 이론적으로만 따지면 정말로 완벽에 가깝다. 누구나 동일한 강도의 대가를 지불하고 그 열매를 공평하게 나눠먹으며, 결론적으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이상향을 꿈꾸기 때문이다. 단통법 역시 이러한 이상적인 시장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공산주의는 익히 알려진 대로 참담하게 실패했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욕망'을 완전히 배재하고 '선의'만을 갖춘 상태에서만 원활히 구현될 수 있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단통법 역시 안정적인 수익원을 갖추게 된 '착한' 이통사들이 '선의'로서 통신 요금을 인하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소비자들 역시 최고급 스마트폰에 대한 무조건 적인 '욕망'을 접고 중고폰이나 저가폰을 택하는 '주제파악'을 해야 하는데다, 제조사들 역시 합리적인 소비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선의'로서 단말기 가격을 낮춰야 비로소 제대로 정착이 가능한 것이 단통법이다.

1980년대 구소련에서나 볼 법한 행렬, 2014년 대한민국에도 재현

공산주의 치하의 구소련과 같은 동구권 국가들의 생산자들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수준의 품질의 제품을 넉넉하게 공급하지 못했다. 그래 봤자 딱히 이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당시 국민들은 언제 공급될지 모르는 생필품을 사기 위해 상점 앞에서 긴 줄을 서야 했다. 정부에서는 인민들의 행복을 위해 생산자들은 '선의'를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하며, 인민들 역시 '욕망'을 버리고 현재의 상황에 만족해야 한다고 열심히 정치 선전을 했지만 이것이 먹힐 리가 없었다.

80년대 구소련 식료품 매장과 2014년 대한민국 휴대펀
매장
80년대 구소련 식료품 매장과 2014년 대한민국 휴대펀 매장

시장경제 체제의 한 복판에 있는 줄 알았던 2014년 11월 현재의 대한민국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일 새벽, 단통법의 틈을 비집고 나타난 10~20만원대 아이폰6를 사기 위해 소비자들은 이동통신 매장 앞에서 긴 줄을 서야 했다. 이른바 '1101 대란'이다. 80년대 모스크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풍경이 2014년 서울 한복판에서 재현된 것이다. 정부에서는 이를 두고 강력한 처벌을 벼르고 있다고 한다. 처벌 이전에 단통법이 과연 21세기의 시장경제 국가에서 적합한 제도인지부터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따름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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