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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인물열전] 위대한 IT 재능 기부자, 리누스 토발즈

김영우

컴퓨터 시스템에서 하드웨어가 육체라면 소프트웨어는 영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시스템 전반을 제어하는 운영체제(OS)는 소프트웨어의 핵심이다. 때문에 우수한 운영체제는 개발하기가 정말로 힘들다. 하지만 해당 운영체제가 일단 제대로 개발되어 시장에 정착하고 나면 이를 통해 막대한 부와 명성을 거머쥘 수 있을 뿐 아니라, IT 생태계 전반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

리누스 토발즈

그런데 좁게는 수천만, 넓게는 수억 명이 이용하는 운영체제의 첫 번째 버전을 혼자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이를 무료로 공개한 사람도 존재한다. 바로 리눅스(Linux) 운영체제의 아버지로 알려진 '리누스 토발즈(Linus Benedict Torvalds)'가 그 주인공이다.

가풍에서 비롯된 살짝 다른 사고방식?

리누스 토발즈는 1969년, 12월 28일 핀란드의 헬싱키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핀란드의 시인인 '올레 토발즈(Ole Torvalds)'다. 참고로 할아버지의 본명은 '올레 토발드 엘리스 삭스버그(Ole Torvald Elis Saxberg)'였으나 1935년 헬싱키로 이주하면서 성을 '토발즈(Torvalds)'로 바꿨다. 이 때문에 현재 세계에서 토발즈의 성을 가진 사람은 수십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의 집안은 핀란드에서도 소수에 속하는 스웨덴계였으며, 아버지인 닐스 토발즈(Nils Torvalds)는 젊은 시절 구소련의 모스크바에 유학을 다녀왔을 정도로 사회주의에 심취한 좌파 언론인이었다. 참고로 리누스(Linus)라는 그의 이름은 미국의 과학자인 '라이너스 칼 폴링(Linus Carl Pauling)'에서 따온 것인데, 그는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화학자이자 반핵운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다. 리누스 토발즈가 또래의 다른 젊은이들과 살짝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것은 이런 집안의 특성, 그리고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불안한 가정환경, 컴퓨터를 벗삼아

어린 시절, 리누스 토발즈의 집안은 넉넉하지 못했고 부모가 이혼을 하는 등, 가정도 다소 불안한 편이었다. 그러던 1981년, 통계학 교수인 외할아버지가 코모도어(Commodore) VIC-20 컴퓨터를 구매하면서 리누스 토발즈의 인생은 바뀌기 시작했다. 호기심 많은 10대 소년에게 컴퓨터는 정말로 무한한 재미를 주는 존재였으며, 곧 깊이 빠져들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이 컴퓨터는 자연스럽게 그의 것이 되었다.

코모도어 VIC-20

리누스 토발즈의 컴퓨터 심취는 대학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1988년 헬싱키 대학교에 입대한 후, 이듬해 입대해 11개월간 병역의무를 수행할 때를 제외하곤 그는 줄곧 컴퓨터에 매달렸다고 한다. 전역 후 그는 어셈블리어 수준의 프로그래밍 언어를 깊이 연구하기도 하고 문서 편집기나 게임 등의 응용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와중, 그는 앤드류 타넨바움(Andrew S. Tanenbaum)이 개발한 유닉스(UNIX) 기반의 운영체제인 미닉스(MINIX)를 접하게 된다.

'리눅스'가 '프릭스'가 되어버릴 뻔한 사연

미닉스는 주로 교육용으로 활용되었는데, 리누스 토발즈는 당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인텔 80386 기반의 IBM 호환 PC에서도 미닉스가 구동되기를 원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미닉스를 참고한 새로운 운영체제를 개발, 1991년 8월에 이를 자신이 활동하던 유즈넷의 뉴스 그룹 네트워크에 처음 공개했다. 이것이 바로 '리눅스(Linux)'의 시작이다. 다만, 그가 당초 뭔가 대단한 포부를 가지고 리눅스를 개발한 것 같지는 않다. 2001년에 출간된 자서전에서 그는 리눅스의 개발 동기에 대해 '단순히 재미로(Just for fun)'라고 밝힌 바 있다. 리눅스는 1996년 헬싱키대 전산학 석사논문으로 그가 발표한 '리눅스, 이식 가능한 운영체제(Linux: A Portable Operating System)'를 통해 학계에도 널리 알려졌다.

리눅스라는 이름은 본래 리누스 토발즈가 개발 중에 붙인 가칭이었다. 그 의미는 단순히 리누스의 미눅스라는 뜻인 'Linus's MINIX'를 줄인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이 다소 창피하다고 생각했던 리누스 토발즈는 괴짜(Freak)스러운, 혹은 자유로운(Free) 유닉스(UNIX) 계열의 운영체제라는 뜻의 '프릭스(Freax)'로 이름을 바꿨다. 다만 운영체제를 배포하기 위해 빌린 FTP 서버의 주인이자 리누스 토발즈의 친구인 아리 렘케(Ari Lemmke)는 프릭스라는 이름을 맘에 들어 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다시 이 운영체제의 이름은 리눅스가 되었다.

21세 청년이 무료로 공개한 1만행짜리 소스코드, 세상을 강타하다

리누스 토발즈가 당초 공개한 리눅스 커널(kernel, 핵심 구성 요소)의 첫 번째 버전(0.01)은 약 1만행 정도의 소스 코드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이를 보고 흥미를 느낀 개발자들이 하나 둘 이 프로젝트에 참가해 힘을 보태기 시작했고 리눅스는 성능과 기능이 급격히 향상되기 시작했다. 불과 1년 후에 출시된 버전 0.96의 소스 코드는 4만행 정도로 덩치가 커질 정도였다(참고로 2012년을 즈음해 리눅스 커널의 소스 코드는 1,500만 행을 돌파했다).

특히 소프트웨어의 소스 코드를 무료로 공개하는 오픈 소스(open source) 확산 운동을 주도하던 리처드 스톨먼(Richard Matthew Stallman)이 설립한 자유소프트웨어재단(FSF, Free Software Foundation)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리눅스는 그들이 추진하는 GNU(GNU's Not Unix) 프로젝트의 핵심 중 하나로 부상하게 된다. 이로 인해 전세계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리눅스의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고, 1994년 3월, 마침내 첫 번째 완성 버전인 리눅스 커널 1.0.0이 공개되었다. 이후에도 리눅스 커널은 여전히 무료 공개 원칙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를 변형시키고 재배포 하는 것도 자유롭다는 점 역시 변함이 없다.

IT기기 이용하는 사람은 대부분 리눅스 이용자?

이 때문에 리눅스는 정말로 많은 파생 버전이 존재한다. 같은 리눅스 커널에 기반하더라도 기능이나 형태가 천차만별인 수많은 리눅스 운영체제가 등장했는데, 데비안(Debian) 계열, 레드햇(Red Hat) 계열 등이 대표적이며, 이 안에서 또다시 파생된 우분투(Ubuntu), 페도라(fedora) 등의 배포판까지 합친다면 그 종류는 최소 수백 가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레드햇과 안드로이드

리눅스 계열은 일반 PC용 운영체제 시장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시리즈에 비해 점유율이 미미한 편이지만, 서버용 운영체제 시장에서는 거의 대등할 정도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용 운영체제 중 가장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구글의 안드로이드(Android) 역시 리눅스 커널에 기반하고 있다. 넓게 본다면 IT 기기를 보유한 사람이라면 상당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리눅스의 이용자가 되는 경우가 많은 셈이다.

거물이 된 지금도 여전히 '개발자'

이렇게 리눅스는 IT 세계 전반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지만, 정작 리눅스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리누스 토발즈가 이를 통해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거두지는 않았다. 리눅스가 유명세를 얻게 된 이후에도 리누스 토발즈는 이를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6년에 대학을 졸업한 그는 이후 미국의 반도체 회사인 트랜스메타(Transmeta)에 취업, 1997년부터 2003년까지 개발자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미국에서 Linux라는 상표권을 취득해 보유하고 있는 것도 리누스 토발즈 자신이지만, 정작 그 자신은 이를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한 적이 없다. 단지 다른 사람이 리눅스의 상표권을 멋대로 취득해 부당한 이득을 얻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그는 리눅스 재단의 산하에서 리눅스의 개발 및 표준 규정을 주도하는 단체인 OSDL(Open Source Development Labs, 오픈 소스 개발 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여전히 그는 경영자나 고문이 아닌 소프트웨어 개발자(Software engineer)로 분류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애플의 스티브 잡스 못지 않은 유명세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의 위대한 재능기부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세계는 여전히 주목하고 있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본 기사는 네이버캐스트(http://navercast.naver.com/)의 'IT 인물 열전' 코너에도 함께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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