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게임산업 하고 싶은데..." 아마존의 고민은 깊어가고
세계 최대의 온라인 유통 채널 '아마존(amazon.com)'이 게임산업에 진출하고 싶은 모양이다. 정확히 말하면 게임 SW 개발사가 아니라 게임을 실행할 수 있는 기반(비디오 게임기)을 판매하는 게임 플랫폼 사업자가 목표다.
아마존이 엑스박스 사업부를 인수한다?
지난 주 IGN, 유로게이머 등 해외 게임 매체는 한 가지 소문 때문에 들썩였다. '아마존이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엑스박스 사업부를 인수한 후 비디오 게임기 사업을 시작한다'는 내용의 소문이다. 마냥 헛소문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그럴 듯해서 온갖 추측성 기사가 쏟아졌다.
일단 아마존은 PC에서 벗어나 거실에 진출하고 싶어한다. 자사가 보유한 다양한 콘텐츠(게임, 영화, 드라마 등)와 아마존 홈페이지에서 판매 중인 실제 상품을 TV를 통해 사용자에게 전달하는 게 목표다(마치 홈쇼핑 서비스처럼). 문제는 진출 방법이다. 셋톱박스는 버라이즌, AT&T, 컴캐스트 등 플랫폼 사업자의 눈치를 봐야 한다. 스마트TV도 마찬가지다. 제조사가 아마존의 진입을 그리 호락호락 용납할 리 없다. 그래서 꺼낸 방식이 태블릿PC다. 킨들파이어라는 저가 태블릿PC를 판매한 후 이를 통해 콘텐츠를 공급했다. 하지만 태블릿PC만으론 거실을 차지할 수 없었다. 태블릿PC는 거실보단 침실에서 사용하기 적합한 제품이다. 거실의 주인은 여전히 TV였다.
그래서 눈을 돌린 곳이 비디오 게임기다. 국내와 달리 북미 지역은 콘텐츠 공급자의 역할을 셋톱박스와 비디오 게임기가 양분하고 있다. 게다가 비디오 게임기는 동영상 콘텐츠뿐만 아니라 게임 콘텐츠까지 판매할 수 있다는 장점을 품고 있다. 아마존이 군침을 흘릴 이유가 충분하다.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엑스박스 사업부는 계륵이다. 거실을 장악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시작했지만, 생각만큼 수익이 나진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 컨슈머&디바이스 사업부(엑스박스, 윈도폰, 서피스, 기타 하드웨어)는 상당한 영업이익을 내고 있지만, 사실 이 영업이익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제조사로부터 거둔 특허 라이선스에서 나온다. 특허 라이선스 비용을 제외하면 적자인 사업부란 뜻. MS는 엑스박스 사업을 정리해야 한다고 틈만나면 외신에서 기사가 나오는 이유다.
때문에 MS의 주주들은 새 최고경영자 사티아 나델라에게 컨슈머&디바이스 사업부를 정리하고, 클라우드&엔터프라이즈 사업에 집중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두 회사의 입장이 겹쳤으니 게임 매체가 들썩이는 것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MS는 이러한 소문을 단호하게 일축했다. MS에서 엑스박스 사업을 담당하는 아론 그린버그 이사는 "아직도 그런 헛소리를 믿으십니까"라며, MS는 엑스박스 사업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거실 진출은 창업자이자 현 기술 고문인 빌 게이츠의 오랜 꿈이며, 미래 먹거리로써 MS가 전략적으로 밀고 있는 사업이다. MS의 최신 비디오게임기 '엑스박스 원'에는 이러한 MS의 소망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각종 플랫폼 사업자와 계약을 맺고 영화, 드라마, 스포츠 등 다양한 동영상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다. 또한 음성인식과 동작인식만으로도 기계를 조작할 수 있다. 리모콘을 대신하기 위해서다. 심지어 셋톱박스처럼 HDMI In 입력도 받는다(비디오 게임기는 일반적으로 HDMI Out만 지원한다).
아마존의 게임산업 진출은 시간문제
소문은 괴담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마존이 게임산업에 진출할 준비를 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아마존은 지난 6일 더블 헬릭스 게임스(Double Helix Games)를 인수하는 등 자체적으로 게임을 개발할 역량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더블 헬릭스 게임스는 비록 자체 게임 IP(Intellectual property, 지적 재산)는 없지만 게임 제작 하청을 받으면서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개발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 인력을 기반으로 MS, 소니, 닌텐도처럼 자체 게임 IP를 개발하려는 것이 아마존의 목표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사실 아마존만큼 게임 플랫폼 사업에 적합한 기업도 드물다. 자체적으로 운영체제를 유지, 보수할 인력도 갖추고 있고, 온라인 게임 서버를 제공하기 위한 대규모 IDC(인터넷 데이터센터)도 보유하고 있다. 게임 플랫폼 사업자인 소니조차 아마존의 IDC를 임대해 온라인 게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다양한 콘텐츠 유통권을 보유하고 있고, 미국과 일본의 온라인 유통 채널마저 장악했다. 흥미롭게도 미국과 일본은 전체 게임 산업에서 비디오 게임기의 비중이 매우 높은 지역이기도 하다. 단지 비디오 게임기와 게임을 직접 만들어본 경험만 없을 뿐이다.
게임 플랫폼 사업에 진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존 플랫폼 사업자를 인수하는 것이다. 아마존이 게임 플랫폼 사업에 진출하고 싶다면, MS 엑스박스 사업부,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사업부(SCE), 닌텐도 셋 중 하나를 인수하면 된다. 만약 셋 중 하나만 인수해도 아마존은 비디오 게임기와 게임을 직접 만들어본 경험이 없다는 약점을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소니, 닌텐도가 회사의 핵심 역량인 게임 플랫폼 사업을 매각할리 만무하다. 남은 게 MS뿐이다 보니 아마존이 MS 엑스박스 사업부를 인수한다는 소문이 퍼진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아마존에겐 가장 어려운 길만 남았다. 자체 개발한 비디오 게임기를 출시해 시장에 진입하는 것. 하지만 천하의 MS조차 이 시장에 자리잡기 위해 10년 동안 공을 들여야 했다. 만만한 시장이 아니란 뜻이다. 아마존이 R&D를 진행해가며 자체 비디오 게임기를 개발할지 아니면 MS, 소니, 닌텐도 등 3사의 게임기 플랫폼 사업에 계속 눈독을 들일지, 지켜보는 것도 나름 게임 못지 않게 재밌겠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