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는 소니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강일용 zero@itdonga.com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가 일본 전자제품, 그 가운데 특히 소니 제품을 선호했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비밀이다. 6년 동안 스티브 잡스와 함께 일한 켄 시갈(Ken Segall)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는 98년 일체형 데스크톱 아이맥(iMac)을 제작하고 처음엔 맥맨(Macman)이라고 불렀다. 소니의 불세출의 히트작 워크맨(Walkman)을 기리는 의미에서다.

일본의 IT 블로그 매거진 노비닷컴의 저널리스트 하야시 노부유키(林信行)가 스티브 잡스와 소니의 '특별한' 관계에 대해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소니의 창립자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 전 회장은 "미국엔 특출난 재능을 가진 영웅이 두 명 존재하는데, 한 명은 마이클 잭슨이고 다른 한 명은 바로 스티브 잡스"라고 평가했다. 모리타와 잡스는 개인적으로도 매우 친밀했다. 모리타는 잡스를 자주 소니에 초대했고, 회사를 이끌어나갈 향후 비전에 대해 논했다.

최고 경영자가 친한 만큼 두 회사 간 기술 교류도 이뤄졌다. 동영상 압축 기술을 개발한 애플 퀵타임팀은 소니의 자체 음향 코덱 ATRAC 개발을 도왔고, 방송용카메라(XDCAM)에 널리 사용되는 EX퀵타임 코덱을 개발한 애플 기술자가 소니 사이버샷 디지털 카메라 개발을 지휘하기도 했다.

잡스 본인도 소니 제품을 사용해보고 많은 의견을 내놨다. 소니의 휴대용게임기 PSP(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를 사용해보고 "이 제품에 왜 광학매체(UMD)가 달려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평가하기도 했고, 사이버샷 카메라를 사용한 후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엔 GPS가 포함돼야 한다"고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현재 광학매체가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는 점, 그리고 모든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에 GPS가 내장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혜안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협력은 모리타 전 회장이 타계한 이후에도 계속됐다. 2001년 소니 임원진은 하와이에서 잡스와 만났다. 이 자리에서 잡스는 소니 바이오 노트북에 OS X(맥 OS)을 탑재하자고 주장했다. 대단히 파격적인 얘기다. 97년 잡스가 애플 CEO로 복귀한 이후 경영 정상화를 위해 진행한 작업 중 하나가 타 회사로부터 맥OS의 라이선스를 거둬들인 것이다.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는 맥OS 라이선스는 애플의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맥이라는 브랜드 자체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후 맥OS는 오직 애플의 제품에서만 접할 수 있게 됐다. 잡스는 이러한 원칙을 깨고 오직 '특별한' 관계인 소니에게만 OS X을 탑재한 바이오(Vaio) 노트북이 등장하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바이오 for OS X
바이오 for OS X

당시 소니 임원진은 이를 제법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두 회사의 철학은 어딘가 닮아있었고, 임원진 역시 98년 출시된 아이맥에 감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바이오는 윈도 노트북으로서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고, 윈도 운영체제에 적응을 마친 바이오팀에서 "그것은 가치가 없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함에 따라 계획은 백지화됐다. 결국 'Vaio for OS X'은 잡스 혼자만의 짝사랑으로 끝났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 맥북 제품군의 놀라운 판매량을 보고 이제 와서 당시 소니의 결정이 어리석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분명 당시 OS X은 윈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했다. 사실 지금도 비주류 제품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그때 소니가 애플과 협력해 Vaio for OS X을 제작해 지금까지 이어왔고,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었다면 애플과 소니의 관계도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친밀하지 않았을까. 예를 들면 '엑스페리아 for iOS' 같은 형태로 말이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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