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5s와 갤노트3가 공짜폰… 1.23 역대 최악의 보조금 대란

강일용 zero@itdonga.com

58만 원 > 37만 원 > 25만 원 > 16만 원 > 9.9만 원 > 7.5만 원 > 0원

1월 23일 하루 동안 애플 아이폰5s와 삼성전자 갤럭시노트3의 할부원금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주는 수치다. 최신 스마트폰이 순식간에 할부원금 0원의 '공짜폰'으로 전락했다. 워낙 극적으로 변해 수치를 집계하면서 실소를 금하지 못했다. 과거 갤럭시S3, 아이폰5 등 최신 스마트폰의 할부원금이 15만~17만 원 수준으로 급락해 '보조금 대란'이라고 표현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이제 그 어떤 대란도 이번 '1.23 대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게 됐다.

할부원금이란 스마트폰(일반 휴대폰 포함)을 구매할 때 소비자가 실제로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다. 출고가에서 이동통신 3사(이통 3사)와 제조사가 지급하는 판매 장려금(단말기 보조금)을 제외하고 책정된다. 아이폰5s와 갤럭시노트3는 출고가 90만~100만 원 내외의 고가 스마트폰으로, 보조금이 지급되더라도 할부원금이 50만~70만 원 선에 그쳤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보조금 지급 가이드라인인 27만 원을 지키기 위해서다. 즉, 이번 보조금 대란은 이통 3사 또는 제조사가 방통위의 가이드라인을 어기고 규정 이상의 보조금을 투하했다는 의미다. 약 80만~100만 원에 이르는 보조금을 투입한 것으로 추산된다.

보조금 대란의 조짐은 지난 22일 오후 갤럭시S4 액티브의 할부원금이 폭락하면서 발생했다. 이어 23일 아이폰5s, 갤럭시노트3, LG G2 등 최신 스마트폰의 할부원금이 급격히 내려가자 스마트폰 관련 커뮤니티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소식을 접한 사용자가 몰려 들자 휴대폰 유통 온라인 커뮤니티 '뽐뿌'는 홈페이지가 마비됐고, 오프라인 매장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할부원금 변동에 따른 사용자의 눈치 작전도 치열했다. 먼저 조금 비싸 다른 사용자가 신청하지 않은 계약 조건에 응한 후, 추후 더 저렴한 조건이 등장하면 그쪽으로 갈아탔다. 오프라인 매장에 줄을 선 후 더 저렴한 조건을 찾아 인터넷 홈페이지를 뒤지는 사용자도 있었다.

이통 3사도 일단 가입자수를 늘리기 위해 혈안이 된 듯했다. 일부 인터넷 홈페이지 위주로 판매했던 과거 보조금 대란과 달리 인터넷 홈페이지, 대리점 등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보조금을 투하했다. 심지어 이통 3사가 직접 운영하는 직영점에서 할부원금 0원의 스마트폰을 판매하기도 했다.

방통위가 개입해도 어쩔 수 없게 '현금완납'이라는 꼼수마저 등장했다. 할부원금을 24개월 또는 36개월로 분납받지 않고 일시에 현금으로 받아 개통취소를 불가능하게 했다.

이번 보조금 투입은 경쟁사로부터 가입자를 뺐기 위해 '번호이동' 조건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23일 하루 번호이동 건수는 14만 315건으로, 방통위가 시장과열기준으로 삼는 2만 4,000건의 6배에 달한다. 지난 2012년 9월 14일 기록된 15만 7,413건에 버금간다. 이날은 그 유명한 '갤S3 17만 원' 사태가 벌어진 날이다.

단말기 보조금 대란
단말기 보조금 대란

1.23 대란 왜 일어났나

업계에선 여러 이유가 겹쳐 이번 보조금 대란이 일어난 것으로 분석했다. 일단 이통 3사의 점유율 변동이 보조금 투입에 영향을 미쳤다. HMC투자증권은 지난해 말 이통 3사의 점유율은 SK텔레콤 49.97%, KT 30.09%, LG유플러스 19.92%일 것으로 추산했다. 지금까지 50% 이상을 유지하던 SK텔레콤의 점유율이 무너졌다. 하락한 점유율을 끌어 올리는 데 보조금 투입만큼 좋은 게 없다. 실제로 SK텔레콤 박인식 사업총괄은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점유율 50%를 반드시 지켜낼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KT 역시 황창규 신임 CEO 취임을 앞두고 시장 분위기를 자사에 유리하게 바꿔야할 상황이다. 전체 점유율은 LG유플러스에 앞서지만, LTE 점유율은 별 다른 차이가 없다. 최근 3개월 동안 단말기 판매가 부진해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한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오는 2~4월 제조사가 신형 단말기를 발표할 예정인 만큼 기존 단말기의 재고를 소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이번 보조금 대란에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다.

단말기 보조금은 왜 문제인가

그렇다면 왜 방통위는 단말기 보조금을 27만 원 이상 지급하지 못하게 하는 걸까. 이통 3사가 보조금을 많이 지급해 스마트폰을 저렴하게 구매하면 사용자에게 이득 아닌가? 보조금을 규제하는 이유를 알아보자.

이동통신 3사 로고
이동통신 3사 로고

단말기 보조금이란?
먼저 단말기 보조금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현행 단말기 보조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이통 3사와 약정 계약을 맺으면 그 대가로 요금의 일부를 할인해주는 '약정할인제도에 따른 보조금(이하 약정할인보조금)'이다. 다른 하나는 특정 단말기의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지급하는 '단말기 판매장려금(이하 판매장려금)'이다.

약정할인보조금은 '2년 또는 3년 동안 해당 이통 3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소위 약정계약) 대가로 사용자의 통신요금의 일부를 대납해주는 제도'다. 2년 약정을 맺어 1만 5,000원을 할인 받는다고 가정해보자. 소비자가 통신 요금 5만 2,000원과 단말기 대금 1만 5,000원을 내야 한다면, 통신 요금 5만 2,000원에서 1만 5,000원을 할인해 준다. 만약 약정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계약을 해지하면, 남은 기간 동안 단말기 대금 1만 5,000원을 납부해야 한다. 때문에 약정할인보조금은 엄밀히 말해 단말기 보조금이라 할 수 없다. 약정 할인 보조금 1만 5,000원과 단말기 대금 1만 5,000원이 상쇄되기에, 단말기 보조금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단말기 보조금은 판매장려금만 해당된다. 판매장려금은 '단말기의 가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이통 3사와 단말기 제조사가 대납해주는 제도'다. 단말기의 출고가에서 판매장려금을 제외한 가격, 이를 할부원금이라고 한다. 할부원금은 단말기 구매 시 실제로 내야 하는 가격이다.

판매장려금은 단말기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출고가 90만 원인 단말기 A와 70만 원인 단말기 B가 있다고 가정하자. 여기에 판매장려금을 A에게 50만 원, B에게 20만 원 지급했다. 그 결과 A의 할부원금은 40만 원, B의 할부원금은 50만 원이 됐다. 가격이 순식간에 역전된 것.

이통 3사뿐만 아니라 단말기 제조사도 판매장려금을 지급한다. 아이폰의 할부원금이 다른 단말기보다 높게 책정됐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애플은 국내 제조사와 달리 판매장려금을 지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판매장려금은 소비자가 약정계약을 해지하더라도 반납할 필요가 없다. 약정계약을 모두 채우지 않고 중간에 해지해도 남은 할부원금만 납부하면 된다는 뜻이다.

이통통신사, 단말기 제조사 외에 대리점이 직접 지급하는 판매장려금도 있다. 단말기를 판매하면 이통 3사가 지급하는 격려 수당의 일부 또는 전부를 소비자에게 지급해 단말기 판매를 촉진하는 형태다. 업계에선 대리점의 판매장려금을 프로모션 할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대리점이 할부원금의 일부를 사용자에게 현금, 유가증권 등으로 돌려주는 페이백(Payback) 제도도 격려 수당을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말기 보조금의 세 가지 문제점
단말기 보조금은 많이 지급되면 지급될수록 개인에게 이득이다. 그러나 단말기 보조금을 되도록 많이 지급해 소비자의 구매를 유도하는 현행 제도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문제점은 '가입자 간 부당한 차별', '나날이 비싸질 수밖에 없는 통신 요금', '이통 3사의 시장 지배' 등 세 가지다.

첫째, 가입 시기, 방법, 조건에 따른 가입자 간 부당한 차별이다. 예를 들어 A씨는 단말기 보조금이 10만 원 지급되는 시기에, B씨는 70만 원 지급되는 시기에 단말기를 구매했다고 가정해보자(시기). 같은 단말기를 구매했음에도 할부원금이 60만 원이나 차이 난다. A씨는 인터넷에서 B씨는 휴대폰 대리점에서 단말기를 구매했는데, 할부원금이 50만 원 이상 차이 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방법). A씨는 번호이동으로, B씨는 기기변경으로 단말기를 구매했는데 할부원금이 차이 나는 사례도 있다(조건).

물론 정보를 많이 수집하지 않고 단말기를 구매한 당사자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한 저렴한 휴대폰 구매에 익숙한 젊은 남성과 달리 중장년층이나 여성은 정보 수집이 어렵거나,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1만~2만 원 차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으나, 수십 만원 이상 차이 나는 경우가 흔한 만큼 정부의 입장에선 좌시할 수 없는 문제다.

둘째, 보조금 지급에 따른 마케팅 비용 증가다. 이통 3사의 마케팅 비용 대부분은 단말기 보조금이 차지한다. 지난 5년 동안 이통 3사의 마케팅 비용은 꾸준히 증가했다. 2012년 이통 3사는 SK텔레콤 3,053억 원(SK브로드밴드 포함), KT 1,370억 원, LG유플러스 2,603억 원을 마케팅 비용으로 지출했다. 2013년 상반기에만 SK텔레콤 1,609억(SK브로드밴드 포함), KT 690억 원, LG유플러스 1,228억 원을 지출한 상황이다.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마케팅 비용을 더 지출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통 3사 모두 제작년보다 마케팅 비용을 더 투입했음을 알 수 있다.

마케팅 비용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소비자의 염원인 이동통신 요금 인하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마케팅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통신 요금을 올리거나, 최소한 동결할 것이기 때문. 소비자 입장에선 단말기를 저렴하게 구매하더라도 통신요금이 날로 비싸져 조삼모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셋째, 이통 3사의 단말기 판매 통제다. 보조금 지급이 과열됨에 따라 현재 국내 단말기 시장은 상당히 기형적인 형태를 띄고 있다. 단말기 판매량이 제품의 품질(성능, 디자인, 기능 등)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통 3사가 단말기 보조금을 얼마나 지급하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아무리 뛰어난 단말기도 이통 3사가 단말기 보조금을 적게 지급하면 할부원금이 비싸 판매량이 주춤할 수밖에 없다. 이통 3사가 단말기 판매량을 결정할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때문에 단말기 제조사는 이통 3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단말기 제조사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다는 삼성전자마저 특정 단말기 판매량이 왜 주춤한 것이냐는 질문에 이통 3사가 보조금을 적게 지급해서라고 답하는 상황이다. LG전자, 팬택도 단말기 판매 부진의 원인을 보조금 지급 여부에서 찾고 있다. 제조사가 보조금을 더 지급해 판매를 촉진할 수도 있겠으나, 통신비로 보조금을 충당할 수 있는 이통 3사만큼 여력이 있을 리 없다.

결국 단말기 보조금이란 이통 3사가 시장 영향력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한 무기인 셈. 단말기 보조금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제조사를 구슬린다.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퍼부어가며 보조금 전쟁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이밖에 단말기 보조금 지급을 전제로 출고가를 높게 잡거나, 이통 3사가 단말기 보조금을 언제 얼마나 지급할지 소비자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등 세 가지 문제 외에도 다양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

종이호랑이 방통위, 처벌도 효과가 없어

작년 초 방통위는 과도한 보조금 지급을 이유로 이통 3사에 과징금을 부과하고, 차례대로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보조금 지급의 원흉으로 지목된 특정 이통사를 영업정지 시키는 후속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방통위의 행정처분 이후 한동안 시장은 잠잠했다. 하지만 보조금 지급액은 음성적으로 점점 증가했고, 결국 1.23 대란이 터졌다. 1000억 원이넘는 과징금과 영업정지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뜻이다. '방통위의 제재 > 시장 정상화 > 시장 점유율 변동 > 이통 3사 보조금 투입 > 시장 과열 > 보조금 대란 발생 > 방통위의 제재'라는 다람쥐 쳇바퀴를 돌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방통위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의구심을 내는 목소리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왜 방통위의 제재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걸까. 일단 처벌이 솜방망이라는 지적이다. 영업정지라는 강력한 처분을 내려도, 어차피 국내 이통시장은 과점상태라 사용자가 이탈할 곳이 없다. 이통 3사에서 돌고 돌 뿐이다. 이탈한 사용자는 다시 보조금을 투입해 데려오면 된다. 1000억 원이 넘는 과징금도 마케팅 비용의 일부라고 생각해버리면 그만이다.

방통위의 명분이 사용자의 공감을 얻지 못한 것도 원인이다. 방통위는 보조금을 제재하면 마케팅 비용이 줄어들어 통신비가 인하될 것으로 내다봤지만, 현실은 변한게 없었다. 오히려 이통 3사의 실적만 개선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 이통 3사가 보조금을 대량 투입하면 일부라도 저렴하게 단말기를 구매할 수 있는데, 방통위가 보조금을 규제하면 다같이 비싸게 단말기를 구매해야 했다. 현실이 이러다 보니 사용자는 일부라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길을 막은 방통위만 욕했다.

보조금이 가장 유효한 마케팅 수단인 점도 배제할 수 없다. 사용자 입장에선 언제 실현될지 모를 통신비 인하보다 보조금을 통해 단말기 가격을 낮추는 게 더 와 닿는다. 유럽의 통신사 보다폰(Vodafone)의 경우를 살펴보자. 보다폰은 작년 초 통신비 인하를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6개월 만에 가입자 64만 명이 이탈하자 정책을 폐지하고 보조금 지급을 개시했다. 보조금의 위력이 입증된 사례다. 방통위의 제재를 감수하고 이통 3사가 보조금을 과다 투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쟁자가 보조금으로 가입자를 유치하는 데 가만히 있으면 나만 도태된다는 위기감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징금이나 영업정지 같은 처벌 만으론 보조금이 과다 투입되는 현 이동통신시장을 바꿀 수 없다"며, "이통 3사가 단말기 유통권을 사실 상 독점하고 있는 현 상황을 개선하고, 통신비 인하 조치를 취하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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