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는 컴퓨터라기엔 함량미달, 갤럭시기어
삼성전자가 25일 갤럭시노트3와 함께 국내 시장에 갤럭시기어를 선보였다. 갤럭시기어는 차세대 컴퓨터로 각광받고 있는 웨어러블 디바이스(Wearable Device, 입는 기기 또는 입는 컴퓨터라고 부른다)로, 시계의 형태로 제작됐다. 쉽게 말해 스마트시계다. 삼성전자 서초 사옥에 방문해 갤럭시기어를 사용해본 소감을 적는다.
갤럭시기어는 블루투스를 통해 스마트폰과 연동돼 다양한 작업을 수행한다. 스마트폰을 주머니 또는 가방에서 꺼내지 않아도 전화를 걸거나 받을 수 있고, 메시지와 메일을 읽어볼 수도 있다. 캘린더에 저장해놓은 일정도 확인 가능하다. 여러 가지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해 다양한 기능을 추가할 수도 있다. 기본 내장한 앱은 전화, S보이스, 음성 메모, 카메라, 내 디바이스 찾기, 미디어 콘트롤러 등이다.
크기 1.63인치, 해상도 320x320의 슈퍼 아몰레드(AMOLED) 디스플레이, 800MHz의 모바일 프로세서, 512MB의 메모리, 용량 315mAh의 배터리 등을 탑재했고, 변종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로 실행된다.
이처럼 유용한 기능과 쓸만한 성능을 갖추고 있지만, 아직 입는 컴퓨터라고 부르기엔 함량미달이다. 모름지기 컴퓨터는 특정 작업을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갤럭시기어는 스마트폰, 정확히는 갤럭시노트3가 없으면 그 어떤 작업도 처리하지 못한다. 앱 설치조차 갤럭시기어에서 처리할 수 없다. 먼저 갤럭시노트3에 앱을 내려받은 후 이를 다시 갤럭시기어로 옮기는 형태다. 갤럭시노트3 없이 갤럭시기어로 할 수 있는 일은 세 가지, 시간 확인과 만보계(운동량 측정기) 그리고 사진 및 동영상 촬영 뿐이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보다 웨어러블 액세서리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조작방식도 의구심을 자아낸다. 삼성전자 이돈주 사장은 갤럭시기어를 소개하는 행사장에서 "갤럭시기어는 손을 자유롭게 하는 것을 목표로 설계됐다"고 밝혔지만, 직접 써보니 손을 여전히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거의 대부분의 조작은 터치 스크린에 의존한다. 화면을 전환하고, 앱을 실행하려면 화면에 손가락을 올려 놓고 열심히 터치해야 했다.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다.
삼성전자의 음성인식 서비스 'S보이스'를 활용해 음성으로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보낼 수는 있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위한 바람직한 조작방식이며, 손을 자유롭게 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정작 S보이스를 실행하려면 손가락을 움직여야 했다(전원 버튼을 빠르게 두 번 눌러야 한다). 가속도 센서, 나침반 등 다양한 센서를 내장했음에도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시간을 보기 위해 손을 들어올리면 자동으로 화면이 커지는 용도에만 활용된다.
<갤럭시노트3에서 갤럭시기어의 설정을 조작하는 모습>
배터리 사용시간은 최대 25시간이다. 하루에 한번씩 충전해야 한다. 제품을 충전하려면 마이크로USB 단자 대신 전용 충전기를 이용해야 한다.갤럭시기어와 연동할 수 있는 제품은 현재 갤럭시노트3뿐이며, 10월 갤럭시S4, 12월 갤럭시S3 및 갤럭시노트2와 연동을 지원할 계획이다. 타사 제품과 연동을 지원할지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다.
가격은 39만 6,000원이다. 가격 자체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판매 방식이다. 삼성전자 대리점 또는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 저 가격을 일시에 지불하고 구매해야 한다. 3G나 LTE 등 통신기능이 없기 때문에 이동통신사가 약정을 걸고 판매할지는 미지수다.
물론 부정적인 부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부분도 여럿 존재한다. 일단 디자인을 칭찬하고 싶다. 디자인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편견을 깨고, 사용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뛰어난 디자인이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한 본체는 견고하고 고급스러워 보인다. 다양한 색상의 시계줄도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 시중의 여느 패션시계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색상도 6가지로 다양한 편.
카메라 성능도 기대 이상이다. 190만 화소 이미지 센서를 내장했는데, 제법 볼만한 품질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일상생활을 기록하기엔 충분하다. 음성 메모 기능도 유용하다. 녹음한 음성을 텍스트로 자동 변환해주는 기능이다.
전용 앱이 다양한 점도 눈에 띈다. 라인, 카카오톡, 에버노트 등 유명 앱부터 삼성전자가 직접 제작한 다양한 운동 관련 앱까지 출시 초기임에도 상당히 많이 준비돼 있다. 노력한 흔적이다. 특히 건강 관련 앱이 많은데, 이를 통해 삼성전자가 갤럭시기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유추할 수 있다. 앱은 삼성전자의 앱 장터 '삼성앱스'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스마트폰이 있어야만 실행할 수 있는 앱도 있고(예를 들어 데이터 통신이 필요한 앱), 스마트폰이 없어도 실행할 수 있는 앱(시계 디자인을 바꿀 수 있는 앱이나 운동량을 측정해주는 앱 등)도 있다.
<삼성앱스에 올라온 갤럭시기어용 앱의 일부>
음성 인식 기능도 뛰어나다. 목소리를 조금 크게하면 약 50cm, 소곤소곤 말하면 약 30cm 거리에서 음성 명령을 인식했다. 행사장 주변이 시끄러웠음에도 불구하고. 이름, 통화, 메시지 등 특정 키워드에도 제대로 반응했다.
정리하자면, 하드웨어는 흠잡을 데 없지만 소프트웨어가 이를 받쳐주지 못하는 모양새다.
갤럭시기어가 액세서리가 아닌 당당한 하나의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인정받으려면 스마트폰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스마트폰을 집에 던져놓고 와도 갤럭시기어를 사용하는데 지장이 없어야 한다. 앞에서 배터리 사용시간을 문제 삼았는데, 사실 이는 큰 문제가 아니다. 현재 갤럭시기어의 진짜 문제는 2대를 충전해야 한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을 충전하고, 갤럭시기어도 충전하고… 처음에는 열심히 할지 몰라도 추후에는 어떻게 될까. 사용자가 매일 충전해야할 제품은 하나면 충분하다. 여기에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성패가 달려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