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 노키아 인수로 '위협적인 3위' 되나?
"우리는 노키아의 훌륭한 직원들, 기술, 자산 등이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와 함께하게 되어 무척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MS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는 지난 2013년 9월 2일(미국 현지 시각) 노키아 휴대폰 사업부 인수 소식을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렇다. 휴대폰 시장 왕좌를 차지했던 노키아 휴대폰 사업부는 이제 MS 하드웨어 사업부에 통합돼 사라지게 됐다. MS는 노키아의 제품과 서비스, 특허, 지도 시스템 라이센스(얼마 전 노키아는 지도 서비스 'Here'를 선보인 바 있다) 등을 모두 합쳐 약 54조 4,000억 유로(한화 약 7조 8,654억 원)에 인수했다. 인수 금액은 8조 원에 달하지만, 과거 노키아의 전성 시대를 생각하면 어딘가 쓸쓸한 뒷모습이다.
이번 인수로 인해 노키아의 현 CEO 스테판 엘롭(Stephen Elop)을 포함한 노키아 임직원 3만 2,000여명은 MS 산하 노키아 휴대폰 제작부서로 이동하게 됐다. 스테판 엘롭은 노키아 CEO를 그만두고 MS 휴대폰 제작부서 담당임원을 맡는다.
노키아, 스카이프보다 싼 가격에
약 8조 원. MS는 구글이 모토로라 인수 시 지급한 125억 달러(한화 약 13조 7,500억 원)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노키아 휴대폰 사업부를 인수했다. 게다가 MS는 지난 2011년 인터넷 전화 업체 스카이프(Skype) 인수하기 위해 85억 달러(한화 약 9조 1,800억 원)를 지급한 바 있다. 모토로라는 커녕 스카이프보다도 낮다. 세계 최대 휴대폰 업체였던 노키아의 자존심이 구겨지는 순간이다.
노키아는 한때 정말 '잘 나갔다'. 지난 1999년, 노키아의 시가 총액은 무려 2,080억 달러(한화 약 228조)로 핀란드의 수출입 규모를 능가하며 유럽 최대 기업으로 떠올랐다. 그랬던 노키아가 지난 2013년 6월 기록한 시가 총액은 약 140억 달러(한화 약 15조 4,000억 원). 10여 년 전 시가 총액의 6% 수준으로 추락했다.
노키아 몰락의 원인은 스마트폰 시대의 개막에 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며 본격적인 플랫폼 전쟁이 시작됐다.일반 휴대폰(피처폰) 중심이었던 노키아에게 스마트폰 플랫폼을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 온 것. 여기서 노키아는 두 가지 치명적 실수를 저지른다. 첫째, 자체 모바일 운영체제(이하 OS) 심비안을 고집한 것. 둘째, 안드로이드 OS를 택하지 않은 것이다.
다른 제조사들이 안드로이드 OS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속속 선보일 때 노키아는 심비안을 고집했다. 고집은 치명적이었다. 노키아의 점유율은 급격히 하락했다. 다급해진 노키아는 안드로이드 OS 대신 MS의 윈도폰 OS를 채택한 스마트폰을 출시하며 반전을 노렸다. 하지만 이미 전세계를 점령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군단과 맞서기엔 역부족이었다.
구글의 모바일 OS 안드로이드는 현재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79.3%를 차지하고 있다(2013년 3분기 기준, IDC 자료). 삼성전자, LG전자, 레노버, HTC 등 내로라하는 휴대폰 제조 업체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출시하는 상황이다. 지금 스마트폰 진영이 안드로이드 vs iOS의 형세가 되리란 걸 미리 알았다면 과거 노키아는 다른 결정을 했을까?
"우리 원래 친한 사이에요"
MS와 노키아는 지난 2011년 2월부터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노키아는 '루미아(Lumia)'라는 브랜드의 윈도폰을 지속적으로 출시했다. MS는 루미아로 대표되는 윈도폰의 성장을 한층 강화하기 위해 노키아 인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노키아는 윈도폰 제조사 중 확실한 1위다. 2013년 3분기 기준 시장 점유율은 무려 81.6%. 그야말로 윈도폰의 든든한 아군이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79.3%)과 아이폰(13.2%)에 한참 밀리긴 하지만, 그래도 윈도폰(3.7%)은 스마트폰 운영체제 중 3위의 자리를 지키며 꾸준히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다.
윈도폰은 저가 스마트폰을 주력으로 한다. 대표적인 제품은 노키아 루미아 520이다. 윈도폰 사용자는 주로 일반 휴대폰을 쓰다가 처음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사람이다. 아직 전세계 인구의 반 이상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윈도폰의 보급형 전략은 좋은 성과를 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위협적인' 3위가 되기 위해
손 안의 PC라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PC용 OS 최강자 MS는 자존심을 구겼다. MS는 전세계 데스크톱 OS의 90%를 점유했지만, 모바일 OS는 쑥스러운 성적을 내고 있다. 우리나라만해도 데스크톱, 노트북엔 죄다 윈도 일색이지만, 막상 사람들 손에 쥐어진 OS는 안드로이드, iOS다.
윈도폰을 키우기 위해 MS는 대담한 결정을 했다. MS는 '스마트폰 최강자'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비결이 '소프트웨어 + 하드웨어'라고 본 듯하다. 그간 경쟁사의 행보를 봐도 이 가설은 성립한다. 애플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전부 만들고, 소프트웨어 중심의 구글은 하드웨어 회사인 모토로라를 인수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제조사' 1위라지만 어딘가 아쉬워 보인다. 그래서 자체 모바일 OS인 타이젠의 개발을 손에서 못 놓는 것 아닐까.
MS는 노키아의 검증된 능력과 기술을 하드웨어 디자인, 엔지니어링, 제조 관리, 유통, 마케팅 등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MS 스티브 발머 CEO의 말대로 대단한 두 팀이 뭉쳤으니 구글과 애플이 깜짝 놀랄만한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남은 노키아의 운명은?
이번 MS의 인수는 노키아의 휴대폰 부문에 한정된다. 기지국 등 각종 통신 장비를 생산하는 NSN(노키아 솔루션 네트워크) 사업부와 지도 사업부 등은 예전 그대로 노키아의 브랜드를 달고 사업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CEO는 핀란드의 안철수로 불리는 앤젤투자가(유망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 사업가) 리스토 실라즈마(Risto Siilasmaa)가 이어 받는다. 전세계 통신 장비 시장에서 NSN의 점유율이 상당한 만큼 오히려 예전보다 탄탄한 기업으로 다시 태어날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사용자에게 친숙한 휴대폰 사업부가 빠지는 만큼 지멘스, 알카텔루슨트 등 B2B 시장에 주력하는 기업들처럼 사용자들의 관심에선 다소 멀어질 전망이다.
글 / IT동아 나진희(naji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