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보조금, 대체 왜 잘못된 건가요?"
"스마트폰을 저렴하게 구매하면 소비자에게 이득 아닌가요? 왜 정부가 보조금을 규제하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요"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양모 씨(29)가 제기한 의문이다. 양모 씨뿐만 아니라 소비자 대다수의 생각도 이와 일치하리라 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부는 현행 단말기(휴대폰, 스마트폰) 보조금 제도에 큰 문제가 있다 판단하고, 대수술을 감행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지적한 단말기 보조금 제도의 문제점은 대체 뭘까. 현행 제도의 문제점과 정부가 제시한 개선방안을 짚어본다.
단말기 보조금이란?
먼저 단말기 보조금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소비자, 언론 모두 입을 모아 단말기 보조금을 논하지만, 구체적인 정의에 대해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때문에 대다수의 소비자는 이동통신사가 왜 단말기 보조금을 지급하는지 알지 못한다. 지급하는 이유를 모르니, 단말기 보조금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행 단말기 보조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이동통신사와 약정 계약을 맺으면 그 대가로 요금의 일부를 할인해주는 '약정할인제도에 따른 보조금(이하 약정할인보조금)'이다. 다른 하나는 특정 단말기의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지급하는 '단말기 판매장려금(이하 판매장려금)'이다.
약정할인보조금은 '2년 또는 3년 동안 해당 이동통신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소위 약정계약) 대가로 사용자의 통신요금의 일부를 대납해주는 제도'다. 2년 약정을 맺어 1만 5,000원을 할인 받는다고 가정해보자. 소비자가 통신 요금 5만 2,000원과 단말기 대금 1만 5,000원을 내야 한다면, 통신 요금 5만 2,000원에서 1만 5,000원을 할인해 준다. 만약 약정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계약을 해지하면, 남은 기간 동안 단말기 대금 1만 5,000원을 납부해야 한다. 때문에 약정할인보조금은 엄밀히 말해 단말기 보조금이라 할 수 없다. 약정 할인 보조금 1만 5,000원과 단말기 대금 1만 5,000원이 상쇄되기에, 단말기 보조금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단말기 보조금은 판매장려금만 해당된다. 판매장려금은 '단말기의 가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이동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가 대납해주는 제도'다. 단말기의 출고가에서 판매장려금을 제외한 가격, 이를 할부원금이라고 한다. 할부원금은 단말기 구매 시 실제로 내야 하는 가격이다.
판매장려금은 단말기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출고가 90만 원인 단말기 A와 70만 원인 단말기 B가 있다고 가정하자. 여기에 판매장려금을 A에게 50만 원, B에게 20만 원 지급했다. 그 결과 A의 할부원금은 40만 원, B의 할부원금은 50만 원이 됐다. 가격이 순식간에 역전된 것.
이동통신사뿐만 아니라 단말기 제조사도 판매장려금을 지급한다. 아이폰의 할부원금이 다른 단말기보다 높게 책정됐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애플은 국내 제조사와 달리 판매장려금을 지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판매장려금은 소비자가 약정계약을 해지하더라도 반납할 필요가 없다. 약정계약을 모두 채우지 않고 중간에 해지해도 남은 할부원금만 납부하면 된다는 뜻이다.
이통통신사, 단말기 제조사 외에 대리점이 직접 지급하는 판매장려금도 있다. 단말기를 판매하면 이동통신사가 지급하는 격려 수당의 일부 또는 전부를 소비자에게 지급해 단말기 판매를 촉진하는 형태다. 업계에선 대리점의 판매장려금을 프로모션 할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대리점이 할부원금의 일부를 사용자에게 현금, 유가증권 등으로 돌려주는 페이백(Payback) 제도도 격려 수당을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행 보조금 제도 왜 문제인가
단말기 보조금은 많이 지급되면 지급될수록 개인에게 이득이다. 그러나 단말기 보조금을 되도록 많이 지급해 소비자의 구매를 유도하는 현행 제도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문제점은 세 가지다.
첫째, 가입 시기, 방법, 조건에 따른 가입자 간 부당한 차별이다. 예를 들어 A씨는 단말기 보조금이 10만 원 지급되는 시기에, B씨는 70만 원 지급되는 시기에 단말기를 구매했다고 가정해보자(시기). 같은 단말기를 구매했음에도 할부원금이 60만 원이나 차이 난다.
A씨는 인터넷에서 B씨는 휴대폰 대리점에서 단말기를 구매했는데, 할부원금이 50만 원 이상 차이 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방법). A씨는 번호이동으로, B씨는 기기변경으로 단말기를 구매했는데 할부원금이 차이 나는 사례도 있다(조건).
물론 정보를 많이 수집하지 않고 단말기를 구매한 당사자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한 저렴한 휴대폰 구매에 익숙한 젊은 남성과 달리 중장년층이나 여성은 정보 수집이 어렵거나,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1만~2만 원 차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으나, 수십 만원 이상 차이 나는 경우도 있는 만큼 정부의 입장에선 좌시할 수 없는 문제다.
둘째, 보조금 지급에 따른 마케팅 비용 증가다. 이동통신사의 마케팅 비용 대부분은 단말기 보조금이 차지한다. 올해 1분기 SK텔레콤은 9,070억 원의 마케팅 비용을 지출했다. 전년 1분기보다 25.1% 상승한 수치다. KT는 6,976억 원을 지출 해 전년 1분기 대비 39.4% 증가했다. LG유플러스는 4,497억 원의 마케팅 비용을 지출했다. 전년 1분기와 비교해 28.2% 늘어났다.
이처럼 이동통신사의 마케팅 비용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마케팅 비용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소비자의 염원인 이동통신 요금 인하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소비자 입장에선 단말기를 저렴하게 구매하더라도 통신요금이 날로 비싸져 조삼모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셋째, 이동통신사의 단말기 판매 통제다. 보조금 지급이 과열됨에 따라 현재 국내 단말기 시장은 상당히 기형적인 형태를 띄고 있다. 단말기 판매량이 제품의 품질(성능, 디자인, 기능 등)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동통신사가 단말기 보조금을 얼마나 지급하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아무리 뛰어난 단말기도 이동통신사가 단말기 보조금을 적게 지급하면 할부원금이 비싸 판매량이 주춤할 수밖에 없다. 이동통신사가 단말기 판매량을 결정할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때문에 단말기 제조사는 이동통신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단말기 제조사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다는 삼성전자마저 특정 단말기 판매량이 왜 주춤한 것이냐는 질문에 이동통신사가 보조금을 적게 지급해서라고 답하는 상황이다. LG전자, 팬택도 단말기 판매 부진의 원인을 보조금 지급 여부에서 찾고 있다. 제조사가 보조금을 더 지급해 판매를 촉진할 수도 있겠으나, 통신비로 보조금을 충당할 수 있는 이동통신사만큼 여력이 있을 리 없다.
결국 단말기 보조금이란 이동통신사가 시장 영향력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한 무기인 셈. 단말기 보조금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제조사를 구슬린다.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퍼부어가며 보조금 전쟁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이밖에 단말기 보조금 지급을 전제로 출고가를 높게 잡거나, 이동통신사가 단말기 보조금을 얼마나 지급할지 소비자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등 다양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
어떻게 바뀌나?
지난 8일 미래창조과학부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서 토론회를 개최하고, 신규가입, 기기변경, 번호이동 등 가입 방식에 따른 보조금 차별 제공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은 ▲가입 방식에 따른 보조금 차별 제공 금지 ▲보조금 홈페이지 공시제 도입 ▲단말기 할인 및 요금 할인 분리 요금제 도입 ▲보조금 지급을 조건으로 특정 요금제를 강제하는 계약 제한 ▲단말기 제조사도 보조금 제제 대상 추가 ▲대리점 위법 행위 시 당사자에게 과태료 부과 ▲보조금 경쟁 과열 주도 사업자에게 긴급 중지 명령 등 7가지 내용이 핵심이다.
일단 가입유형, 요금제, 거주지역 등에 따라 부당하게 보조금을 차별 지급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앞서 설명한 첫 번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다.
보조금 홈페이지 공시제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정한 보조금 한도(현행 한도 27만 원)를 보다 실효성 있게 보조하기 위한 제도다. 현재 이동통신사가 지급하고 있는 보조금을 홈페이지에 명시해 소비자의 혼란을 막고 과도한 보조금 지급을 규제하겠다는 것.
단말기 할인 및 요금 할인 분리는 약정할인보조금과 판매장려금을 혼용하고 있는 현행 요금제도를 소비자가 보다 알아보기 쉽게 개선하기 위해 도입하는 제도다. 보조금 지급을 조건으로 특정 요금제를 강제하는 계약을 제한하는 까닭은 나날이 증가하는 가계통신비 부담을 줄이고, 소비자가 요금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단말기 제조사를 보조금 제제 대상에 추가한 점도 흥미롭다. 과거 방송통신위원회 시절에는 보조금 경쟁이 과열되면 이동통신사만 제제를 받았다. 지난 1~3월 이동통신 3사가 순차적으로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래부는 과도한 보조금 지급을 막으려면 이동통신사뿐만 아니라 제조사가 지급하는 보조금도 제한해야 한다고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대리점 위법 행위 시 당사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대리점이 격려 수당을 지급해 단말기 가격을 과도하게 낮추는 것을 막기 위함이고, 보조금 경쟁 긴급 중지 명령은 미래부의 행정처분을 보다 실효성 있게 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보조금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아직 미흡한 부분이 적지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현행 보조금 제도를 고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자체는 긍정적인 모습이다"며, "하지만 출고가와 할부원금으로 이원화 되어있는 가격구조나 이동통신사가 단말기 유통권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현 상황을 개선하지 않는 이상 보조금 경쟁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