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게이트 CEO, 한국의 '빨리빨리'에 혀 내둘러

김영우 pengo@itdonga.com

지난 20일, 세계 최대의 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 제조사 중 한 곳인 씨게이트(Seagate)가 한국에 R&D(연구개발) 센터를 개관했다. '씨게이트 코리아 디자인센터'라고 이름 붙여진 이 시설은 연면적 2만 6,000제곱 미터(약 7,800평)에 총 7층의 대단히 큰 규모다. 2011년에 삼성전자의 HDD사업부를 인수한 씨게이트는 새로 들어온 삼성전자 인력들의 개발역량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기 위한 시설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이번에 개관한 씨게이트 코리아 디자인센터다.

이 시설의 개관에 즈음하여 씨게이트의 최고 경영진은 한국 언론인들과의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번 간담회에서 씨게이트의 CEO(최고경영자)인 스티브 루조(Steve Luczo) 회장은 새로 설립된 코리아 디자인센터의 역할에 큰 기대감을 표했다.

본래 씨게이트는 미국에 2곳, 싱가포르에 1곳을 비롯해 총 3곳의 개발 거점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번에 세운 코리아 디자인센터로 인해 씨게이트는 총 4군데의 개발 거점을 거느리게 되었으며, 동북아 시장의 공략 강화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스티브 루조 회장 역시 이 점에 고무된 듯 했다.

불과 9개월 만에 이런 시설을 지을 수 있을 줄이야

"이번 코리아 디자인센터의 건립이 씨게이트에게는 일대 사건입니다. 씨게이트가 새로운 개발 거점을 세우는 건 제가 2009년 씨게이트 CEO에 취임한 이후 처음이기도하고요. 그만큼 아주 신중한 결정이었습니다. 한국과 R&D에 대한 씨게이트의 지속적인 투자의욕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스티브 루조 회장은 한국 특유의 빠른 속도감에 감탄했다고 한다. 이번 코리아 디자인센터 역시 대단히 빠른 속도로 건설되었다고 강조했다.

"건축 과정에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습니다. 맨땅에서 불과 9개월 만에 이런 훌륭한 시설을 새웠을 정도지요. 클린룸(정밀 장비를 만들기 위한 청정구역)을 비롯해 연구 개발과 제품 시험생산에 필요한 특수장비도 정말 짧은 시간에 다 갖춰졌습니다. 얼마 전에 삼성전자의 임원들과 식사를 같이 했는데 '속도가 혁신이고 혁신이 경쟁력'이라고 하더군요. 확실히 이건 한국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HDD와 SSD는 상호 보완이 필요한 존재

앞으로 HDD는 SSD를 비롯한 플래시메모리 기반 저장장치에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씨게이트의 생각은 좀 다른 듯 했다. SSD와 같은 속도 위주의 저장장치도 매력적이긴 하지만, 점차 대용량을 원하고 있는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HDD의 역할도 변함 없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저장장치의 수요를 어떻게 충족할 것인지가 현재 씨게이트의 최대 과제입니다. 시장이 원하는 용량 증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기술 개발은 필수적입니다, SSD와 같은 플래시메모리 기반 기술과 HDD와 같은 디스크 기반 기술의 상호보완 관계가 밀접해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삼성전자와 협력을 강화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코리아 디자인센터는 모바일 부문이 중심 사업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씨게이트 코리아 디자인센터는 시게이트의 4번째 개발 거점이다. 이곳의 주된 역할에 대해 설명이 이루어졌다.

"향후 저장장치 시장은 모바일 부문이 주류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번에 설립된 코리아 디자인센터에서는 2.5인치 소형 HDD를 비롯한 모바일 기기용 저장장치에 대한 연구가 중점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 HDD와 SSD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드라이브, 그리고 DVR(디지털비디오레코더)과 같은 가전기기에 탑재되는 저장장치의 개발도 삼성전자의 기술에 힘입어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씨게이트 코리아 디자인센터 현재 350명 정도의 인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 중 250명 정도가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던 인원이며, 100명 정도는 새로 합류한 인원이라고 한다. 투자 금액은 1억 3,500만 달러라고 하니 씨게이트가 코리아 디자인센터에 걸고 있는 기대의 정도를 짐작할 만하다.

인수하고 보니, 삼성의 속도와 효율이 우리보다 나아

씨게이트가 삼성전자의 HDD사업부를 인수하며 무엇을 얻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스티브 루조 회장은 정말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답했다.

"같은 HDD 관련 사업을 하면서도 씨게이트와 삼성전자는 구조가 많이 달랐습니다. 씨게이트는 제품 생산에 관한 부품이나 기술을 거의 자체적으로 조달했지만 삼성전자는 상당부분을 외부에서 조달하고 있었습니다. 두 가지 방식에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씨게이트는 무리하게 삼성전자 HDD 사업부의 구조를 바꾸려고 하지 않고 몇 개월 간 관찰 기간을 가졌지요. 특히 삼성전자가 헤드와 디스크를 제조하는 기업들과 어떤 상호협력을 하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봤습니다"

스티브 루조 회장은 구체적인 사례까지 들어가며 이번 합병에서 얻은 점들을 강조했다.

"관찰 결과, 삼성전자가 씨게이트보다 우수한 점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TB용량의 HDD도 삼성전자가 먼저 출시한 바 있고, 공장의 생산량이나 생산 속도 같은 효율 면에서도 삼성이 더 우수했지요. 그 외에도 정말로 많은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발 씨게이트 제품이 IT시장을 어떻게 바꿀까

그 외에 씨게이트 코리아 디자인센터의 설립 이후에 시장에 선보일 구체적인 결과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현재 코리아 디자인센터에서 개발하는 제품들은 씨게이트 전체 제품 중 가장 높은 공간집적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공유되면서 씨게이트 전체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특히 6개월 정도 후에 이 기술이 적용된 엔터프라이즈(대기업)용 제품이 등장할 예정입니다"

씨게이트 경영진이 새로 건립된 코리아 디자인센터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음을 이번 기자간담회에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새로 유입된 삼성전자 계열의 기술과 인력의 높은 수준에 만족하고 있었으며, 삼성전자 특유의 높은 효율성과 한국 고유의 빠른 속도감에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개발된 씨게이트의 저장장치들이 IT시장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기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IT동아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Creative commons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의견은 IT동아(게임동아) 페이스북에서 덧글 또는 메신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