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만 원짜리 MP3 플레이어, 제가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이상우 lswoo@itdonga.com

"가격대 성능비 안 따지면 비쌀수록 좋은 것"

스마트폰 하나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세상이다. 음악 감상의 필수품이었던 MP3 플레이어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MP3 플레이어는 아직 죽지 않았다. 지금도 많은 회사가 MP3 플레이어를 출시하고 있다. MP3 플레이어의 명가 아이리버도 마찬가지다. 'Astell & Kern AK100(이하 AK100)'이라는 최고급 MP3 플레이어로 사용자들의 귀를 사로잡으려 하고 있다.

AK100의 가격을 접하면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 같다. 인터넷 쇼핑몰 기준 69만 8,000원이다. 보급형 스마트폰을 뛰어넘는 가격이다. 제품을 받아보니 한층 더 놀랍다. '번들 헤드폰' 없이 제품만 들어있다. 무슨 자신감인지 오히려 궁금하다. 때문에 69만 원짜리 MP3 플레이어는 무엇이 다른지 직접 알아보려 한다.

MQS 플레이어가 대체 뭐길래

엄밀히 말해 AK100은 MP3 플레이어가 아니다. 무손실 압축음원 재생기 'MQS(Mastering Quality Sound) 플레이어'다. 기존 MP3 플레이어와 달리 '원음에 가까운 음'을 재생할 수 있다. MP3의 샘플링 주파수는 44~48KHz에 불과하지만, 무손실 압축음원의 샘플링 주파수는 48~192kHz에 이른다. 따라서 무손실 압축음원은 MP3보다 음을 보다 풍부하고 깊게 담을 수 있다. CD(콤팩트 디스크)를 능가하는 음질이다. 파일 용량도 눈이 휘둥그레진다. 곡 하나당 평균 100MB에 이른다. MP3 파일 용량이 보통 5~10MB 정도이니 약 10배 이상의 정보를 담고 있는 것.

AK100은 여러 무손실 압축음원 가운데 'FLAC(Free Lossless Audio codec)'을 채택했다. MP3는 사람이 못 듣는 고주파 영역을 삭제해 용량을 줄이는데 집중한 음악 파일이지만, FLAC은 원음 자체를 보존하는 것에 집중한 음악 파일이다. 이러한 FLAC을 보다 효율적으로 재생하고자 AK100은 울프슨의 'WM8740 DAC(Digital Analog Converter,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 신호로 변환하는 장치. 디지털 음향 기기에 반드시 사용한다)'를 탑재했다. WM8740은 수백만 원대의 오디오 장치에 사용하는 음향 칩셋이다.

이제 AK100으로 음악을 직접 들어볼 차례다. FLAC 파일과 음질을 다르게 설정한 MP3 파일 두 개(48KHz 320kbps와 24KHz 160kbps), 총 세 개의 파일을 준비했다. 이 세 파일을 AK100과 '갤럭시탭'으로 실행했다(갤럭시탭은 FLAC 파일을 기본 실행할 수 없어, 음악 재생 애플리케이션 'Poweramp'를 설치했다).

먼저 AK100에서 들어봤다. FLAC 파일의 음질은 매우 뛰어났다. 고음, 저음 가리지 않고 모든 음역대의 소리가 잘 들렸다. 특히, 기타 줄 미끄러지는 소리, 목소리의 떨림, 숨소리 등이 생생하게 들렸다. 공연장에서 직접 듣는 듯한 느낌이다. '48KHz 320kbps MP3 파일'은 음질만 놓고 보면 FLAC 파일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자잘한 부분에서 노이즈가 느껴졌다. '24KHz 160kbps MP3 파일'은 앞의 둘과 달리 음질이 확연히 떨어졌다. 고음 부분에 노이즈가 자글자글 했고, 전체적으로 벽 하나 건너서 소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이 세 파일을 갤럭시탭으로 들어봤다. 흥미롭게도 FLAC 파일의 경우 AK100에서 느꼈던 세밀한 감각이 많이 줄었다. 48KHz 320kbps MP3 파일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음원이 좋다고 해서 아무 기기에서나 다 음질이 좋게 들리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24KHz 160kbps MP3 파일은 갤럭시탭에서도 노이즈가 심했다. 음질이 손실된 파일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실험 결과, FLAC 파일은 AK100으로 듣는 편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 듣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MP3 파일은 둘 다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FLAC 파일을 다수 보유한 사용자가 AK100을 주목해야 할 이유다.

생각컨데 AK100으로 음악을 듣는다면, 전자음이 아닌 어쿠스틱 악기(앰프를 거치지 않은 악기)로 연주한 음악을 듣는 편이 좋겠다. 각각의 악기가 내는 소리를 모두 디테일하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흉내내지 못할 독특한 인터페이스

AK100은 사용법도 독특하다. 다른 MP3 플레이어와 달리 '휠'로 음량을 조절하고, 이퀄라이저(Equalizer, 음의 특성을 바꾸는 것. 이하 EQ)를 손끝으로 '그려서' 설정한다. 얼마나 다른지 살펴보자.

음량조절 휠

먼저 음량조절 휠에 눈길이 간다. 음량조절 휠을 돌려 음량을 0.5 단계씩 총 150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나 기존 MP3 플레이어가 음량을 15~20단계로 조절할 수 있던 것과 비교하니 조절의폭이 훨씬 넓다. 최고급 MP3 플레이어를 지향하는 제품답다. 휠을 돌리다 보니 예전 라디오나 TV 음량을 조절하는 느낌이다. '아날로그적 감성'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툭 튀어나온 디자인은 약간 촌스러웠다.

드로잉 이퀄라이저

AK100은 EQ를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듯 조절할 수 있다. 쉽고 재미있는 부분이다. 마치 지휘자가 된 듯하다. 간단한 설정은 손가락으로 하되 좀 더 세밀한 조절을 하고 싶으면 EQ 화면을 살짝 눌러 설정화면을 열면 된다. 다만. 다른 기기처럼 'EQ 프리셋(여러 EQ 옵션을 모아둔 것)'이 없어 원하는 EQ 설정을 만들려면 손이 많이 간다. 필자의 경우 평소에는 중저음을 키워서 음악을 듣는 편이지만, 이 제품을 쓸 때는 EQ를 기본상태로 했다. 모든 음역대의 소리가 다 매력 있었기 때문이다.

최대 96GB의 용량

앞서 설명했듯 FLAC 파일은 용량이 크다. 이런 대용량 파일을 감당하고자 AK100은 외장메모리 슬롯을 2개나 내장했다. 내장 메모리 32GB에 32GB 마이크로 SD카드를 2개 추가할 수 있다. 최대 96GB까지 용량을 확장할 수 있는 셈이다(모종의 편법을 활용하면 64GB 마이크로 SD카드도 인식시킬 수 있다). 참고로 아이리버는 고음질의 음원을 마이크로 SD카드에 담아 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AK100 전용 음반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어디에?

AK100이 마냥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단점이 눈에 띈다. 가장 큰 문제는 FLAC 파일을 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멜론', '올레 뮤직' 등 일반적인 음원 판매 사이트에는 FLAC 파일이 거의 없다. '벅스'가 FLAC 파일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MP3 파일보다 수량이 모자라다. AK100의 가장 큰 장점이 FLAC 파일 재생인데 이 FLAC 파일을 구할 수 없다니…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리버가 나섰다. 얼마 전 아이리버는 FLAC 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는 서비스 '그루버스(www.groovers.kr)'를 개시했다. 하지만 이 역시 서비스 초기단계라 음원이 아직 부족하다. 보다 다양한 음원을 구비하길 기대한다.

EQ를 터치로 그리다 보니 미세한 조작을 하는 것도 힘들었다. EQ를 설정하다가 원치 않게 왼쪽 위에 있는 버튼을 누르는 등 손가락만으로 조작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었다.

부팅속도와 새 파일을 추가했을 때 재생목록을 갱신하는 속도가 느린 점도 문제다. 음원의 용량이 크다 보니 불러오는 속도가 느린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까지 AK100의 장단점을 살폈다. 그렇다면 AK100은 어떤 사용자에게 어울릴까? 비싼 가격 때문에 아무에게나 함부로 이 제품을 추천할 수는 없다. 일반 MP3 플레이어보다 약간 더 뛰어난 음질을 얻고자 많은 돈을 투자하는 사용자는 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드는 법이다. 사소한 차이지만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사용자 또는 느끼고 싶은 사용자라면 AK100을 눈 여겨 보라. 음질만 놓고 보면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최고 수준의 MP3 플레이어다.

글 / IT동아 이상우(lswo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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