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싼 걸 왜 사냐고요? 이기기 위해서죠 - 벤큐코리아 박인원 과장

김영우 pengo@itdonga.com

현재 모니터 시장은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다. 199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모니터 생산업체가 몇 군데 없었고, 각 업체간의 기술력 차이도 컸다. 때문에 경쟁도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3년 현재, 모니터를 생산하는 업체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며, 전반적인 품질도 상향평준화 되었다. 그만큼 경쟁도 극심해졌으며, 경쟁사와 차별화를 해야 하는 업체들의 고민도 커졌다.

이런 와중에 최근 벤큐(BenQ)는 게이머들을 위해 최적화된 '게이밍 모니터'를 다수 개발해 시장에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디자인이나 화면크기, 해상도 등의 일반적인 사양으로 경쟁하는 기존 모니터 시장에서 벗어나 특정 소비자를 노린 특화 제품으로 승부하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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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벤큐의 한국 지사인 벤큐코리아는 e스포츠의 인기가 높은 한국시장의 특성을 고려해 각종 게임리그에 자사의 게이밍모니터를 후원하는 등, 프로게이머들과 게임매니아들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이에 IT동아는 벤큐코리아의 LCD 모니터 세일즈팀의 박인원 과장을 만나 벤큐 게이밍모니터의 의의, 그리고 한국 시장 공략에 임하는 자세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남들 다 물러났지만 벤큐는 살아남았다

벤큐는 대만의 대표적인 IT업체로, 아시아 외에도 북미, 유럽 등 전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펼치고 있는 글로벌기업이기도 하다. 취급하는 제품군은 모니터 외에도 프로젝터, 디지털카메라, 캠코더 등 다양한데, 한국 시장에서는 모니터와 프로젝터와 같은 디스플레이 기기의 판매가 주력이다. 벤큐코리아는 한국 시장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국 시장은 토종기업들의 입지가 탄탄한데다 트랜드가 워낙 빠르게 바뀌기 때문에 외국계 업체들이 공략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사실입니다. 모니터 시장만 봐도 외국브랜드의 비율이 아주 낮지요.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벤큐코리아는 상당한 입지를 확보한 상태입니다. 물론 델이나 HP와 같은 업체들도 한국에 모니터를 팔고 있지만 이들의 주 사업은 어디까지나 PC죠. 모니터에 주력하는 외국계 업체 중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둔 경우는 저희가 거의 유일하다고 봅니다"

직접 패널을 제조한다는 의미

그 말대로 한국 IT시장은 외국 업체들의 무덤과도 같은 곳이다. 애플을 제외한 대부분의 외국 브랜드가 한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모습을 감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 모니터 시장에서 벤큐 브랜드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물었다.

"LCD 모니터의 핵심은 '패널'입니다. 얼마나 우수한 패널을 쓰는지, 그리고 얼마나 원활하게 패널을 수급할 수 있는지에 따라 제품의 전반적인 성능과 가격이 결정되죠. 대다수의 모니터 업체들은 외부에서 패널을 공급받아 제품을 생산하지만, 벤큐는 자체적으로 패널을 생산하는 자회사인 'AUO(AU Optronics)'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경쟁력의 핵심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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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AUO는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에 이어 세계 3, 4위권을 다투고 있는 대규모 LCD패널 제조사다. 하지만 AUO는 벤큐에만 패널을 공급하지는 않는다. 패널이 같으면 모니터의 품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소비자들도 있을 텐데 이에 대해 벤큐코리아는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같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패널이라도 등급의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벤큐는 그 중에서도 우수한 등급의 패널을 우선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지요. 반면,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의 패널은 주로 중저가 모니터 업체들에게 공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벤큐는 패널의 성능에만 의존하지 않고 사용자의 환경이나 구동되는 콘텐츠에 따라 최상의 화면모드를 선택에 제공하는 '센스아이'와 같은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해 탑재하고 있으며, 전문가들을 위해 원본에 가까운 색감을 제공하는 'SRGB모드'와 같은 부가 기능도 제공하지요. 이것이 바로 노하우의 차이입니다"

게이밍 모니터를 왜 써야 하냐고 묻는다면

현재 벤큐는 게이머들을 위한 전용모니터를 지향하고 있는 'XL2420T(이하 XL시리즈)', 'RL2450HT(이하 RL시리즈)'등의 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현재 PC시장에는 이른바 '게이밍기어'라 불리는 게임 전용 주변기기들이 다수 나와있는 것이 사실이나, 대부분 마우스나 키보드와 같은 입력기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게이밍 모니터'라는 단어는 다소 생소하다. 왜 게이머들에게 전용 모니터가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일반 모니터와는 어떤 점이 차별화되는지를 박인원 과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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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나와있는 게이밍 마우스나 키보드를 보면 대부분 '빠른 반응'을 강조합니다. 고도로 숙련된 프로게이머들의 경기는 0.1초도 되지 않는 찰나의 순간에 승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마우스나 키보드의 반응속도가 아무리 빠르더라도 이를 표현하는 모니터가 이를 따라주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겠지요. 벤큐의 게이밍 모니터는 일반 모니터의 2배 정도로 부드럽게 움직임을 표현할 수 있는 120Hz 주사모드(XL 시리즈)를 탑재하고 있으며, LCD의 한계에 가까운 2ms의 빠른 반응속도를 발휘합니다"

'반칙'에 가까울 정도의 유리함

실제로 FPS(1인칭 슈팅)나 RTS(실시간 시뮬레이션)와 같은 게임을 할 때는 모니터의 반응속도가 중요하다. 예전에는 반응속도 때문에 LCD를 거부하고 CRT(브라운관) 모니터를 고집하는 게이머들도 제법 있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초기의 LCD는 반응속도가 10ms에 달할 정도로 느렸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는 화면을 표시하면 심한 잔상이 발생하곤 했다. 하지만 벤큐의 게이밍 모니터라면 굳이 CRT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벤큐측의 설명이다. 다만, 단순히 반응속도가 빠른 모니터라면 벤큐 외에도 다른 업체에서도 종종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박인원 과장은 보충 설명을 이어갔다.

"빠른 반응 속도 외에도 벤큐 게이밍 모니터는 실질적인 경기력 개선을 위한 기능을 다수 제공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어두운 배경에서도 캐릭터나 사물을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블랙이퀄라이저'기능이지요. 만약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 한다고 할 때, 화면 외곽은 어둡게 표현이 되어 사물을 잘 분간할 수 없지만, 블랙이퀄라이저 기능이 탑재된 벤큐의 XL이나 RL시리즈를 사용한다면 일반 모니터에 비해 외곽에 위치한 상대방 유닛의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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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큐 게이밍 모니터의 가능 큰 특징이라는 블랙이퀄라이저 기능에 대한 박인원 과장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RTS는 물론, 서든어택과 같은 FPS 게임에서도 블랙이퀄라이저 기능은 진가를 발휘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반칙'에 가까울 정도로 유리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FPS를 하다 보면 '섬광탄'처럼 상대방의 시야를 방해하는 테크닉을 종종 사용하게 됩니다. 만약 섬광탄을 맞았다면 잠시 동안 시야가 마비되므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리게 되죠. 하지만 블랙이퀄라이저 기능이 탑재된 벤큐 XL이나 RL시리즈는 일반 모니터에 비해 섬광탄의 효과가 빨리 풀리며, 눈부심도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사실 이 효과는 블랙이퀄라이저 기능의 개발과정에서 고려한 것은 아닌데, 나중에 발견하고선 모두 깜짝 놀랐죠"

한국 프로게이머도 직접 개발에 참여해

현재 게임 전용 모니터를 표방하는 제품을 내놓는 업체는 벤큐가 거의 유일하다. 벤큐가 게이밍 모니터를 개발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며 기술 개발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박인원 과장은 자세히 설명했다.

"벤큐 본사가 본래 E스포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세계 최대의 게임 대회이기도 한 WCG(월드사이버게임즈)의 초창기 때부터 모니터를 후원하고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그 때는 일반 모니터만 있었지요. 하지만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게이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많이 들을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기술개발에 나선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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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큐 게이밍 모니터의 개발에는 벤큐 내부의 기술자 외에 실제로 프로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프로게이머들도 다수 참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중에는 한국의 프로게이머도 포함되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박인원 과장이 설명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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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작년 초까지 스타크래프트2, LOL(리그오브레전드) 프로게임단인 '스타테일'을 후원하고 있었습니다. 스타테일팀의 대표적인 스타인 '박성준' 선수가 직접 벤큐 대만 본사에 가서 게이밍 모니터의 개발에 참여하게 된 것도 이런 인연 덕분이죠. 블랙이퀄라이저 기능 같은 것도 박성준 선수의 조언이 반영된 것입니다. 구형 RL 시리즈 중에선 흰색 제품도 있었는데 이 역시 박성준 선수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였죠.

값이 비싸다는 것은 인정, 하지만 시장은 납득할 것

이렇게 벤큐의 게이밍 모니터는 게이머들을 위한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선뜻 추천하기는 어려운 물건이다.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2013년 1월 현재, 인터넷 최저가 기준으로 벤큐 XL2420T는 50만원, RL2450HT는 30만원 정도에 팔리고 있다. 특히 벤큐 XL2420T 같은 경우는 일반 24인치 LCD모니터를 2대 살 수 있는 가격이다. 이에 대한 벤큐코리아의 입장은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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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반인 입장에서는 가격대비 성능이 크게 떨어져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제품은 일반인을 위한 제품이 아니지요. 1승을 더 올리기 위해 어떤 방법이라도 동원하는 프로게이머나 게임매니아 입장이라면 충분히 이 가격을 이해할 것입니다. 실제로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되니까 말이죠. 시중에 나와있는 게이밍 키보드나 마우스 중에는 15~20만원에 팔리는 것도 있는데 이를 생각하면 벤큐 XL이나 RL시리즈가 마냥 비싸다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게이머들의 '모니터 인증샷'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벤큐의 게이밍 모니터는 한국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얻고 있을까? XL과 RL시리즈의 판매량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그리고 이 제품에 대해 E스포츠 관계자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에 해 질문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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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FPS 관련 인터넷 카페에 가면 회원들이 XL이나 RL시리즈를 구매했다고 자랑스럽게 '인증샷'을 올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지요. 구체적인 판매량은 여기서 밝힐 수 없지만 상위 1%를 겨냥한 제품 치고는 의외로 꾸준한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온게임넷의 FPS 해설을 담당하고 있는 '온상민' 해설위원의 경우, 경기를 해설하다가 선수 측 모니터는 XL시리즈인데 자신의 모니터는 일반 제품이라 섬광탄이 터진 이후의 공방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고 경기 중에 말하기도 했지요. 온상민 해설위원 역시 원래는 CRT 모니터를 고집하고 있었지만, 이후부터는 저희가 후원한 XL2420T을 애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니터계의 람보르기니, 페라리를 지향한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박인원 과장은 소비자들과 IT동아의 독자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벤큐는 특정한 소비자에게 특화된 다양한 제품군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XL과 RL시리즈 같은 게이밍 모니터 외에도 디자이너를 위한 전문가용 모니터, 터치스크린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탑재한 태블릿PC 겸용 모니터 등도 곧 소비자 여러분들에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패널 종류나 수치적인 스펙이 비슷한 제품이 시장에 많이 나와있지만, 그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벤큐의 제품에 주목해 주십시오. 직접 보시면 차이를 느끼실 수 있을 것이고 본격적으로 써 보신다면 정말로 맘에 드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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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르기니'나 '페라리'와 같은 슈퍼카들은 값이 무척 비싼데다 승차감도 형편없고 연비도 거의 최악이다. 만약 출퇴근이나 장보기 같은 일상적인 용도로 쓰려고 이를 구매한다면 정말로 어리석은 짓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차들이 살 가치가 없다고 하지는 않는다. 99%의 대중이 아닌 1%의 소수를 위해 나온 물건이기 때문이다.

벤큐의 XL과 RL시리즈 같은 게이밍 모니터도 비슷한 경우일 것이다. 인터넷이나 문서작성과 같은 용도로 쓰기에는 가격대비 성능이 떨어지며, 게임에 쓴다 하더라도 상당수의 일반인들은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프로게이머나 게임매니아가 쓴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상대방보다 0.1초 정도 먼저 반응할 수 있으며, 반경 1mm 정도 더 나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그들은 주저 없이 비용을 투자하기 때문이다. 장차 프로게임 리그를 보면 키보드나 마우스 외에 모니터까지 자신의 전용 제품을 들고 다니는 프로게이머들을 종종 볼 수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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