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취약 극복]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 “장애인·고령자 위한 키오스크 표준화”

※기술은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장애인과 노약자 등 ‘디지털 취약 계층’은 아직 기술의 효용을 충분히, 제대로 누리지 못합니다. IT동아는 디지털 취약 계층을 위한 기술·기기를 만들어, 모두가 차별 없이 행복한 삶을 살도록 힘쓰는 이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IT동아 차주경 기자] 키오스크는 비대면·온라인 스마트 유통 시대를 앞당긴 주역이다. 사람이 하던 일을 신속 정확하고 실수 없이 하는 키오스크는 우리 생활 속 여러 공간에서 활약한다. 우리는 음식점과 은행, 공공 기관 등에 설치된 키오스크를 써서 손쉽게 상품을 사고 서비스를 이용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키오스크를 편리하고 능숙하게 쓰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과 고령자들은 그 반대다. 접근성이 부족한 키오스크는 이들에게 ‘장벽’이자 ‘불편’이다.

예를 들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키오스크의 화면 높이가 너무 높아 다루기 어려워한다. 시각 혹은 청각 장애인도 키오스크를 쓰는 데 애를 먹는다. 고령자들은 키오스크 화면의 작은 아이콘을 보는 것, 설명을 이해하는 것, 아이콘을 눌러 조작하는 것 모두를 어려워한다.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 임직원들과 이성일 이사장(가장 오른쪽). 출처 = IT동아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 임직원들과 이성일 이사장(가장 오른쪽). 출처 = IT동아

장애인과 고령자, 이른바 ‘디지털 취약 계층’이 키오스크를 포함한 기술의 수혜를 잘 누리도록 접근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논의와 연구도 조금씩 이뤄진다. 정부는 국민의 생활 편의와 밀접하게 이어진 키오스크의 접근성을 높일 표준화 연구를 시작했다. 기술 관련 부처, 연구 기관과 함께다. 그 선봉에 선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의 이성일 이사장을 만났다.

이성일 이사장은 성균관대학교 시스템경영공학부 교수이자 국가기술표준원의 전문위원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등 정부 기관, 장애인 단체와 소통하며 접근성의 개선을 궁리하던 그는 10여 년 전부터 함께 연구하던 동료 교수, 연구원과 함께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을 세웠다.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은 전기전자 제품과 가전 제품, 키오스크를 포함한 지능정보화 제품의 접근성을 평가합니다. 장애인이나 고령자와 같은 디지털 취약 계층이 손쉽게 키오스크를 쓰도록, 기업이 접근성 좋은 제품을 만들도록 돕는 역할을 해요. 키오스크의 접근성 증대 방법론과 평가 기준, 표준화 방안도 연구합니다.”

손병창 나사렛대학교 재활의료공학과 교수와 이인석 한경대학교 산업시스템공학과 교수, 이진복 한서대학교 의료복지공학과 교수와 박재현 인천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김현경 광운대학교 정보융합부 교수와 김상화 한국농아사회정보원 원장, 이지용 LG전자 책임연구원과 김대성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실장이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에 합류해 힘을 싣는다.

“제대로 된 접근성 시험평가 방법을 마련하고 싶었어요. 전자상거래와 인터넷 뱅킹 등 정보화 기술이 등장하자, 우리나라 정보통신 관련 부처는 이들 기술을 누구나 원활히 쓰도록 도울 웹 접근성 품질 인증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좋은 제도지만, 장애인이나 노약자 등 디지털 취약 계층의 웹 접근성까지 완전히 보장하기에는 다소 모자라요.

디지털 취약 계층도 손쉽게 쓰고 접근성이 우수한 제품을 만들려면 품질 인증 시 시험의 평가 방법을 완전히 바꿔야 합니다. 특화된 UX와 UI도 마련해야 하고요. 따라서 접근성과 관련 기술을 잘 이해하는 사람, 공학 연구자가 인증 기준을 만드는데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시험 평가 방법과 기준을 만들어요.”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의 키오스크 평가 내용. 출처 =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의 키오스크 평가 내용. 출처 =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

그러던 차에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의 키오스크 평가기관으로 임명 받는다. 임무는 디지털 취약 계층, 고령자와 장애인을 위한 접근성이 키오스크에 반영됐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이성일 이사장은 이 제도가 디지털 취약 계층의 접근성을 한층 높일 계기라며 반긴다.

“꼭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고령자와 장애인이 키오스크를 잘 쓰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에서 많이 나옵니다. 그 이전에 디지털 취약 계층의 접근성 확보는 지능정보화 기본법의 요구 사항이자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만족할 첫걸음이에요. 키오스크 기업 관계자는 물론 디지털 취약 계층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들을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려 합니다.”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으로부터 접근성 평가를 받은 기업은, 조달청에 키오스크를 납품할 때 우선 선정 대상이 된다. 접근성 평가 대상은 키오스크의 인터페이스와 UI다. 키오스크 제작사가 평가를 의뢰하면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은 ‘전문가 평가’와 ‘사용자 시험평가’를 한다.

“전문가 평가는 부문별 전문가가 모여, 키오스크가 접근성 설계 표준을 어느 정도로 충실하게 만족했는지 항목별로 평가합니다.

이어 사용자 시험평가에서는 휠체어 사용자나 시·청각 장애인, 고령자 등 디지털 취약 계층에 속한 소비자를 12명 섭외해 키오스크 조작을 맡겨요. 실제 소비자의 목소리를 충실하게 반영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이들이 키오스크를 다룰 때 비장애인에 비해 조작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조작을 실패하는 지점은 어디인지 꼼꼼하게 조사합니다.

이 두 평가의 점수를 합한 결과, 보고서를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 전달합니다. 점수와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전문가 심의 위원회를 열고 키오스크 제작사의 우선구매 대상 추천 여부를 결정해요. 최종 승인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합니다.”

접근성을 보장할 방법론. 출처 =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
접근성을 보장할 방법론. 출처 =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

지금은 디지털 취약 계층의 접근성 평가 대상이 키오스크 뿐이다. 이성일 이사장은 지금까지 접근성을 연구한 경력을 살려서 가전 제품의 접근성 평가와 인증도 추진한다. 이를 위한 표준화 연구도 진행 중이다. 그는 접근성 연구는 아주 힘들지만, 평가 기준을 정하고 표준화 방안을 천천히 마련하면 성과가 난다고 말한다.

“접근성은 연구하기 힘든 분야에요. 연구 자체가 어려운데다 인재의 수도 적습니다. 접근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반면, 기술 발전 속도는 정말 빨라요. 자연스레 기술과 접근성 사이의 간격이 커지면 디지털 취약 계층은 혜택을 온전히 받지 못합니다.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 임직원들은 가전 제품과 키오스크의 접근성 평가 기준, 방법을 오래 연구했어요. 인공지능을 포함한 첨단 스마트 기술의 접근성 연구도 관심사지만, 아직 이 부문의 연구 데이터가 많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잘 하는것, 사회에서 가장 많이 요구하는 기술의 접근성 확보 방안부터 마련할 예정입니다.”

이성일 이사장은 키오스크의 접근성을 개선할 연구를 거듭하는 가운데,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힘을 보탤 것으로 기대한다. 그럼에도 이들 기술 역시 표준화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그래야 정보통신기술이 더 많은 디지털 취약 계층을 보듬는다는 논리다.

“접근성 평가 기준을 마련할 때 꼭 필요한 것이 ‘표준화’에요. 평가 기준은 보편타당해야 해요. 그래서 쌍방향, 기업과 소비자 모두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반영해 만들어야 합니다. 토론을 거쳐 모두가 만족할 합의점을 찾고, 신중에 신중을 더해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보편성과 접근성 모두 확보해요. 자연스레 만드는데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저희는 오랜 연구와 논의 경험을 가졌습니다. 표준화를 만드는데 필요한 데이터도 차곡차곡 쌓아요. 인공지능과 데이터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 덕분에, 소비자가 디지털 취약 계층인지 파악하는 적응형 키오스크가 속속 등장 중입니다. 이들 기술·기기의 데이터가 쌓이고 발전 가능성이 보이면, 함께 제대로 된 표준화 방안을 만들 것입니다.”

출처 =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 홈페이지
출처 =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 홈페이지

이성일 이사장은 과거, 금융 자동화 시스템(ATM, Automated Teller Machine)의 접근성 개선에 앞장선 주인공이었다. 고령자가 보고 이해하기 쉽도록 ATM 화면의 아이콘 크기를 키우고, 청각장애인이 원활하게 서비스를 쓰도록 점자 자판과 이어폰 슬롯을 추가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 방안을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과 손 잡고 전국 은행에 보급했다. 덕분에 지금은 거의 모든 은행의 ATM의 접근성이 좋아졌다.

그는 이 경험을 살려 키오스크와 가전의 접근성을 개선, 디지털 취약 계층의 사용 편의를 높일 각오다. 표준화를 토대로 기술을 보급하면 점차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뀌고, 이렇게 바뀐 인식이 사회를 조금씩 좋게 만든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디지털 취약 계층이 더 쉽고 편리하게 키오스크를 쓰도록, 제조 기업에게 접근성 시험 인증의 절차와 필요성을 적극 알릴 계획입니다. 접근성 좋은 키오스크가 더 많이 나오도록 기업 대상 컨설팅도 마련할 거에요. 나아가 가전 제품의 접근성 시험 인증제와 여기에 필요한 표준화도 추진, 은행 ATM기처럼 접근성 좋은 기기가 많이 보급되는데 힘을 싣겠습니다.”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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