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콘텐츠로 자녀와 소통하기] 4. 게임과 유튜브에 집중하는 아이들의 속마음

이문규 munch@itdonga.com

[IT동아]

일반적으로 게임 속에서 아이들이 하는 행동은 총을 쏘거나 칼을 휘두르고 주먹이나 발길질을 합니다. 대체로 현실에서는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려운 행동이 대다수인데요. 유튜브 영상은 일상에서 보기 어려운 묘기나 이상한 행동이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아이들이 따라 하거나 혹은 그로 인해 심성이 나빠질까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왜 이런 것을 좋아하는지 이해한다면 걱정보다 안쓰러운 마음을 갖게 될 겁니다.

사람을 '사회적 존재'라고 하는 건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을 만나고 있으면 그 앞에 앉은 나는 '학생'이 됩니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 그들의 '친구'가 되며, 집에 와서 부모님 앞에 있으면 '자녀'라는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나는 혼자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 덕분에 내가 '나'일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에 관한 생각이나 이미지를 심리학에서는 '자아(self)'라는 개념으로 다룹니다. 아이들도 '학생자아', '친구자아', '자녀자아' 등 여러가지 자아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을 때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출처=엔바토 엘리먼츠
출처=엔바토 엘리먼츠

그런데 이렇게 자아가 많다보니, 이들 자아를 잘 관리하는 게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자아'가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그냥 되는 일은 아닙니다. 마음 속에 수 많은 자아들이 참고 억눌려 있게 됩니다. 이를 테면, 예의 바르고 성실한 자아가 한결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면, 그 자아의 밑바닥에는 마음대로 하고 싶은 자아의 희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죠.

그래서 아이들은 하루종일 학교에 있다 집에 오면 지친 모습을 보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한 자아도 혼자서 역할을 수행하느라 힘들었겠지만, 그 밑에서 하고 싶은 것을 참고 있던 자아들도 억누르는데 많은 심리적 에너지를 소진한 까닭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아이들은 가방을 내팽게치고 게임과 유튜브에 빠집니다. 이제까지 억눌려 있던 자아들에게 한숨을 돌릴 기회를 주기 위한 방편입니다. 억눌려 있던 자아들도 기지개를 켤 기회를 적절하게 주는 것은 내일 또 다시 성실한 공부자아가 활동할 수 있도록 밸런스를 맞추는 일입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공부만 한하면 좋겠지만, 사람 심리는 절대로 그렇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여러 자아들 중 억눌린 자아가 많은면 많을수록 심리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꼭 심리학 전문가가 아니어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게임이나 유튜브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것들이 내일도 학교 수업에 집중을 할 수 있게 하는 숨은 기능을 담당합니다.

아이가 유튜브와 게임을 하지 않도록 한다면 공부에만 몰입할 수 있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낮다는 것은 다양한 심리학 연구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흔하게 경험하는 일입니다. '흰곰을 생각하지마'라고 말하면 오히려 더 흰곰을 더 많이 떠올리는 '사고 억제 역설의 효과(Ironic effect of thought suppression)'를 발휘합니다.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가 결정적인 클라이막스에서 딱 멈추면, 사람들은 그후 이야기가 궁금해 한 주동안 내내 드라마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라고 합니다. 아이들의 게임과 유튜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이 막으면 막을수록 오히려 아이들 마음 속에 게임과 유튜브가 더 강하게 자리잡게 됩니다. 그리고 게임을 한판 또는 레벨 단위가 아닌 시간 단위로 게임을 제한하면,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로 중단하게 되어 아이들의 마음 속에서 게임이나 유튜브 생각이 더욱 간절하게 자리잡게 됩니다. 자이가르닉 효과인 거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들이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게임, 유튜브에 대해 부모와 함께 대화를 나눠보길 권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대화하면서 보고 즐긴 것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면, 아이들의 심리적 건강뿐 아니라 해야 할 다른 일로 전환하는데 좀더 나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어떤 동기를 가지고 콘텐츠를 즐기는지 파악하는 것입니다.

출처=엔바토 엘리먼츠
출처=엔바토 엘리먼츠

영국 학자 리처드 바틀(Richard Bartle)은 게임을 즐기는 스타일에 따라, 게이머를 성취형, 모험형, 킬러형, 사교형 등 4가지의 유형으로 나눴습니다. 먼저 성취형(Achiever)은 자신이 설정한 게임 속의 포인트나 레벨 등의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 재미를 느끼는 유형입니다. 이런 게이머는 게임에서 가장 높은 레벨이 먼저 도달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거나, 세트 아이템을 하나도 빠짐없이 구비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면서 목표가 얼마나 남았는지 관심을 갖습니다. 아이가 "다음 레벨까지 10점이 남았군"과 같은 말을 한다면, 성취형에 가까운 게이머임에 분명합니다.

모험형(Explorer)은 게임 세상을 샅샅이 뒤져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들은 주로 평범한 게이머라면 모르는 게임 속의 장소를 발견하거나, 지름길을 찾는 것과 같은 탐험을 즐깁니다. 이런 과정에서 발견한 게임 상의 오류(버그)를 이용해 남들은 생각지도 못한 기발한 플레이를 하기 좋아하며, 이를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현실의 탐험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오늘 게임에서 뭐 새로 발견한 것 없니?"라는 질문은 아이와 대화에 좋은 신호가 됩니다.

다음으로 사교형(Socializers)은 게임 속 다른 게이머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을 즐기는 유형입니다. 굳이 게임이 좋다기 보다 게임을 통해 마음에 맞는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 채팅을 통해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에서 재미를 느낍니다. 주로 시시껄렁한 농담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중요하거나 긴급한 문제에 대한 정보나 도움을 주고 받기도 합니다. 게임하면서 한시도 말을 멈추지 않거나, 채팅하는 타이핑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면 아마도 게임 속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마당발, 사교형 게이머가 분명할 것입니다.

마지막, 킬러형(Killers)은 대결에서 승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다른 게이머보다 우월함을 느끼고 싶어하며, 다른 사람들이 항복하거나 자신의 실력을 알아봐주면 만족하게 됩니다. 당연히 게임 속에는 적들이 많으며, 많은 적들이 자신을 노리고 몰려오는 것을 반깁니다. "나한테 다 덤벼! 본떼를 보여주겠어!", "실력도 없으면서 나한테 덤비고 있어!"와 같은 말을 자주 한다면 킬러형 게이머입니다 이런 아이들이라면 "오늘 전적은 어때?"라고 물어봐주면 아이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 있는 열쇠가 됩니다.

이처럼 아이가 게임을 하고 나면 누구와 했는지, 거기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그 경험을 물어보길 제안합니다. 이는 마치 축구 경기를 하고 온 아이에게 경기 내용을 묻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들은 사소하지만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에 공감과 관심을 받으면, 부모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이런 아이들은 회복탄력성이 강해서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헤쳐가는 어른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적어도 심리학적 연구에 의하면 다분히 그렇습니다.

글 /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이장주 소장 (zzazanlee@gmail.com)

첨단 기술이 사람의 마음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문화심리학박사. 현재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게임문화재단 이사,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이사, 한국중독심리학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왕성한 대중강연과 IT동아 등의 매체에 기고활동을 하고 있다. <게임세대 내 아이와 소통하는 법>, <십대를 위한 미래과학콘서트(공저)>등의 저서가 있다.

정리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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