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시리 써보니… "인식은 OK 활용도는 글쎄"

한국어 시리 써보니 …'인식은 OK 활용도는 글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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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 NBA 선수 르브론 제임스와 코비 브라이언트 중 누가 더 클까?”

“르브론이 조금 더 큽니다.”

‘WWDC 2012’에서 음성인식엔진 ‘시리(Siri)’가 보여준 새 기능은 실로 놀라웠다. 스포츠게임의 스코어와 경기 일정은 물론, 각 선수들의 프로필을 비교하는 복잡한 질문에도 척척 대답해 관객들의 환호성을 이끌어냈다. 또 근처의 추천 음식점을 검색하고 저녁식사 예약까지 대신해준다. 갈수록 무섭게 진화하는 시리는 이제 가상 개인비서라는 별칭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시리에 한국어가 추가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 애플 사용자들도 높은 관심을 표하기 시작했다. 개발자용 베타버전만 공개된 상태지만, 각종 언론과 블로그에는 시리 사용기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과연 시리 한국어 버전도 ‘꿈의 대화’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애플이 WWDC 2012에서 선보였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또박또박 발음하면 그럭저럭 알아듣기는 하나 그게 전부다. 동문서답을 할 때도 많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다. 베타버전이라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현재로서는 농담 따먹기 용도로 쓰이는 ‘심심이’와 거의 다를 바가 없다. 정식 버전에서는 좀 더 나아지길 기대한다.

인식률은 보통, 농담은 척척 받아쳐

먼저 음성인식률을 점검해봤더니 구글의 ‘보이스액션’보다 아쉬운 점이 많았다. 일상적인 대화를 하듯이 빠르게 말하면 잘 알아듣지 못한다. 특히 거센소리와 된소리를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잦았다. ‘3-25번지’와 같이 숫자가 섞인 말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 어색하더라도 딱딱 끊어서 분명하게 발음해야 인식한다. 또한 용언의 어미를 살짝 바꾸었을 때도 오류가 잦았다. 반말보다는 존댓말을 더 잘 알아듣는 느낌이다. 예를 들어 “알려줘”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알려주세요”는 인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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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달콤한 고백으로 시작했다. “우린 그럴 수 없는 사이라는 걸 아시잖아요”라는 냉정한 답변이 돌아온다. 다시 한 번 “그래도 사랑합니다”라고 밀어붙였다. 못이기는 척 “알겠습니다”라고 한다. 절대로 “나도 사랑한다”는 빈말은 하지 않는다. 누구나 시리에게 한번쯤 하는 말이니만큼 자연스러운 대화가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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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난감한 질문을 할 차례다. 경쟁사 제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대답하지 못했다. 애플 서버에 충분한 데이터가 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쟁사 제품이 좋은지 아이폰이 좋은지 물어보자 “나이스?”라는 엉뚱한 답변을 늘어놓았다. 이 역시 해당 질문에 맞는 데이터가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식 버전이 출시되고 사용자가 늘어나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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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에는 어떻게 반응할까. 능청스럽게 맞욕설로 응수하는 심심이와는 달리, “어머!”라는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한번 더 시도했더니 “욕은 삼가달라”라며 정색을 한다. 상당히 교양있는 여자다.

기본 앱과 연동 충실, 발음 똑바로 해야

시리의 가장 큰 장점은 애플 제품에 기본 내장된 애플리케이션(이하 앱)과 연동이 된다는 것이다. 아침에 모닝콜을 부탁하면 알람 앱이 실행되고, 주변 지리에 관해 물으면 지도 앱이 실행되는 식이다. 이를 활용하면 음성만으로 스케쥴을 조절하거나 특정인에게 전화를 걸 수도 있다. 다만 질문이 너무 복잡하거나 발음이 부정확하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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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세계시각을 확인해봤다. “중국은 지금 몇 시지?”라고 물었더니 “중국음식은 몇 시지”라는 말로 알아듣고 서울 시각을 보여준다. 발음이 부정확했다는 생각에 “아니 중국은 지금 몇 시냐고”라고 또박또박 발음했다. 그러자 ‘중국’을 ‘충북’으로 알아듣고 엉뚱한 답변을 늘어놓는다. 확실히 개인의 발음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베이징의 현재 시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시리가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때는 “중국 몇 시”처럼 간결한 단어만을 말하면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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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모닝콜을 부탁했다. “내일 7시에 알람”이라는 말은 이해하지 못했다. 말을 살짝 바꿔 “7시에 모닝콜”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7시에 깨워주세요”라고 존댓말을 쓰고 나서야 비로소 알람이 설정됐다. 제대로 설정이 됐는지 다시 한 번 반복해서 요청했더니 “잊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알람을 지워주세요”라고 말하면 해당 알람이 취소된다. 상당히 편리하다. 다만 “7시 반”과 같은 한국적인 표현은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7시 30분”이라고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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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걸어주는 기능도 유용한 편이다. “집에 전화해줘”라는 요청에 주소록에서 집 전화를 찾아서 자동으로 전화를 건다. 물론 이 기능을 사용하려면 주소록에 ‘집’이 있어야 한다. 주소록의 프로필을 꼼꼼하게 작성했다면 다른 방식으로 응용할 수도 있다. 가령 남편의 주소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주소록에 등록된 남편의 프로필을 뒤져서 주소를 알려준다. 이 부분은 영어판 시리와 거의 동일했다.

기본 앱을 정확하게 실행하고 싶다면 문장보다는 단어를 말하는 것이 낫다. “인터넷”, “유투브”, “음악” 등의 단어는 곧잘 알아듣고 일을 처리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일종의 법칙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인터넷 애플”이라고 말하면 오류를 일으키지만 “애플 인터넷”이라고 말하면 사파리가 실행되고 구글 검색에서 애플을 찾아서 보여준다. 제대로 사용하려면 이 법칙을 숙지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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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판 시리의 강점이었던 문장 의미 파악 기능도 비교적 충실히 따랐다. 단도직입적으로 “주말의 날씨가 어떻냐”고 묻지 않고 “주말에 우산이 필요할까”라는 우회적인 질문에도 주말 일기예보를 보여줬다. 그러나 “주말에 소풍을 가도 될까”처럼 너무 은유적인 질문에는 답하지 못한다. 가능하면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 좋겠다.

가능성은 무궁무진, 소외계층에게 빛을 발할 듯

시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비교적 제한적이다. 기본 앱과 관련된 일만 처리할 뿐, ‘카카오톡’과 같은 외부 앱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으며 외부 앱을 내려받거나 지우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시리의 활용 가능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도 한다. 하지만 시리가 필요한 순간은 생각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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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양 손에 짐을 들었거나, 운전 중 등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어려울 때 시리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시각장애인이나 노년층이 사용하기에 편리하다. 홈버튼을 길게 누르기만 하면 되는 사용법도 매우 매력적이다. 그동안 스마트폰 열풍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도 시리를 통해 스마트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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